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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May 22. 2022

(19) 모닥불에 둘러앉아 -(2)

하윤의 Resolution

 명의 전파는 불의 그것과 비견될 만 하다.

-니콜라 테슬라




이전의 글에서, 우린 이라는 현상, 즉 물질이 산소와 결합하며 에너지를 발하는 현상이 생명체를 진화 과정에서 어떻게 빚어내었는지 알아보았으며, 산소 호흡을 하는 모든 생명의 근간이 되는 세포 호흡에 대해 다룸으로써 결국 생명이란 작고 느린 연소 기관이라는 관점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러나 단순히 분자적 수준뿐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에서 또한 인간에게 영향을 주었다. 문화와 발달의 차원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불멍의 과학


 일상 생활에서 불을 맞이하는 순간을 떠올려 보면, 불을 바라보는 행위는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을 제공하곤 한다. 실제로, 흔히 ‘불멍’ 이라고 하는, 불을 바라보는 행위는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해 보았듯 안정감과 만족감을 준다(실제로, 앨러바마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불을 바라보는 것은 혈압을 낮추는 등 심리적 안정의 효과를 준다). 그것이 촛불이든, 모닥불이든, 화로든 말이다(그림 1). 


그림 1. '캠프에서 피우는 불' 인 캠프파이어. 캠핑 중 불 앞에서 결속을 다지듯, 고대 인류 또한 그러하였을 것이다.

인류학자 크리스토퍼 린은 ‘불 주변에 앉아 요리하고 협력하는 것은 중요했을 것이며, 불을 잘 지키고 유지하는 집단은 그렇지 못한 집단보다 이득을 얻었을 것’ 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페슬러 교수는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불을 피우고 유지하는 것에 대한 문화적 학습을 하였을 것이라는 재미있는 주장을 하였다. 어린 아이들이 유달리 불에 대해 집착하고, 이런저런 물건들을 불에 집어넣는 등 장난치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중요한 것이고, 배워야 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어떤 물건이 불을 유지하는 데 좋은지에 대해 학습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넣어 보는 것일 테니!). 실제 연구에 따르면 불을 일상적으로 다루는 집단에서는 7살 정도의 나이가 되면 아이들이 불을 피우고, 유지하는 데에 있어 완전히 숙달된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문명에서는 불을 충분히 접할 기회가 없기에 이러한 불에 대한 욕망과 흥미가 해소되지 못하고, 그러한 욕구가 불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그림 2. 유인원과 인간의 수면 비교 연구. 출처: Samson, 2016


또 다른 재미있는 불과 관련된 이론에 따르면, 인류는 다른 동물에 비해 긴 렘수면(REM sleep) 을 가진다. 2015년 데이비드 샘슨의 유인원과 인간의 수면 비교 연구에 따르면(Samson et al., 2016, Evolutionary anthropology, (그림 2)), 인간은 타 유인원에 비해 더 짧지만(인간은 지구상의 어떤 영장류보다 적게 잠을 잔다) 깊은 잠을 잔다. 약간의 부스럭 소리만 나도 깨는 선잠을 자는 비인간 유인원들에 비해 인간은 완전히 근육이 이완되는 렘수면을 더 길게 가지는데¹(전체 수면의 약 22%), 이 렘수면은 학습과 기억을 정리하는 단계이다. 인간이 불을 사용함에 따라 포식자의 걱정 없이 깊이 잠을 잘 수 있게 되면서, 도구 제작을 비롯한 복잡한 학습이 가능해졌다는 주장이다.



문화 속에 스며든 불


생명을 탄생시키고 인류를 진화시킨 불은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요소가 되어 왔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 불은 고대부터 인류의 중심이었고, 많은 문화권에서 공동체 가운데에는 화덕이 존재했으며 따라서 사회적 회합 장소와 소통의 장소로써 기능하였다(여전히 인간들은 캠프파이어를 즐기며 사회적 회합 장소와 소통의 장소로 불가를 이용한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그리스의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가 가정의 신을 겸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그림 3).


그림 3. 그리스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이름부터 화덕에서 왔다). 동시에 가정의 신인 이유는 화롯가와 가족 공동체의 밀접한 연관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중요성 혹은 상기한 것과 같은 내제된 선호성 때문에, 가장 초기의 원시적 신앙들에서도 불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숭배하였으며, 최초의 일신교로 생각되는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의식에 이용되는 성스러운 불을 보존하고자 하였다². 힌두교에서는 불의 신 아그니를 최고의 신 중 하나로 숭상했으며, 성화에서 행해지는 의식을 뜻하는 야즈나를 담당한다(그림 4). 많은 문화권에서 하늘에 존재하는 신의 존재를 믿었기에(이전 글 (5) 번을 참고하라), 무언가가 불에 타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신에게의 헌정과 쉽게 결부지어졌으며 이는 불을 통한 희생 제의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리스, 유대교, 힌두교를 불문하고 많은 신앙 체계는 신에게 올리는 번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림 4. 힌두교에서 이루어지는 절차 중 하나인 야즈나Yajna. 만트라를 암송하며 성화 앞에서 신들에게 공물을 바친다.


불은 또한 더러운 것, 불경한 것을 태워 없애는 정화의 기능 또한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이집트 신화에서 이시스는 왕의 아들을 불을 통해 인간의 죽음의 특성을 정화하여 불멸의 존재로 만들고자 했다. 사람이 죽었을 경우, 불로 그 육신을 태우는 화장 또한 상기한 맥락들에서 해석된다. 불은 빛을 내고, 그것은 우리 주변을 밝게 비추어주기에 이성과 지식의 상징으로도 사용된다. 태양신 아폴론이 학문의 신을 겸하는 이유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곧 이성과 연관지어, ‘로고스’ 와 불의 연관성을 주창하기도 했다.



근대화를 추동하다


이러한 불은 근대의 과학자들에게 낱낱이 파헤쳐지게 되었고, 결국 물질과 산소, 발연점³이라는 요소들로 환원되게 되었다. 인간이 불을 통제하고 이해함에 따라 인류 문명은 두 번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산업 혁명이다.


산업 혁명은 누군가가 말했듯 ‘인간이 동물의 근육에서 벗어난 에너지를 이용하게 된 것’ 이라고도 정의된다. 기존 인간이 접근할 수 있던 에너지는 식사를 통해 인간 혹은 동물의 근육이 만들어 낸 에너지뿐이었는데, 산업 혁명을 추동하였던 증기 기관을 통해 인간은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에피메테우스와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를 생각나게 하는데, 에피메테우스가 동물들에게 발톱, 털, 힘을 주었지만 인간에게 줄 것이 없자 프로메테우스가 대장간에서 훔친 불을 인간에게 선사한 그 이야기이다(그림 5). 인간은 불을 통해, 다른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했던 힘을 얻게 되었다. 로라 길먼은 이것을 "문명은 불과 함께 시작되지 않았다. 불로 물을 끓이는 법을 발명 순간 시작되었다" 고 다소 과장을 보태어 말한 바 있다.


그림 5.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 이로 인해 평생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게 된다.


18세기, 인간이 물을 퍼내던 탄광에서 증기 기관이 일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증기 기관은 이 탄광의 수력 펌프를 작동시키기 위해 고안된 조악한 기구였지만, 점차 개량되어 그 효율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1842 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영국의 존 허셀은 1부셸의 석탄(부셸은 서양권의 관용 단위로써, 대략 한 바구니로, 35리터에 해당한다)를 태우면, 3만 2천 톤의 무게를 1피트(약 30cm) 들어올릴 수 있다고 계산하였다. 이는 실로 엄청난 것인데, 고작 석탄 2바구니로 성인을 몽블랑 산 꼭대기까지 들어 올리거나, 화강암으로 지어진 기자의 대 피라미드를 겨우 630바구니의 석탄으로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피라미드는 590만 톤의 무게와 140m 의 높이를 가지고 있으며, 3만 명이 동원되어 20년에 걸쳐 만들어진 구조물임을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이, 석탄을 태우며 발생한 막대한 에너지는 증기기관을 통하여 물리적 힘으로 바뀌었고, 이것은 약간의 공학적 장치를 거쳐 인간과 동물의 일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림 6. 가장 큰 증기 터빈으로 알려진 Arabelle 증기 터빈. A380 항공기보다도 긴 길이를 가지고 있다. 비록 많은 공학적 개량이 이루어졌지만, 그 근본 원리는 같다⁵.

말이 제공하던 추력을 증기기관이 대체하며 기차와 증기선이 탄생했고, 바람과 물이 돌리던 풍차와 수차를 증기기관으로 돌리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이후 증기 기관은 더 효율적인 내연 기관으로 대체되었지만 여전히 자동차나 비행기와 같은 우리에게 편리한 교통 수단을 제공하며, 증기 터빈은 발전소로 그 자리를 옮겨 전기를 만들며 이 전기는 스마트폰부터 슈퍼컴퓨터, 인공 위성까지 온갖 문명의 장치들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는다(그림 6). 비록 그 모양과 형태는 바뀔지언정, 현대 문명은 결국 불과 함께 시작되었고, 여전히 불로 지지되고 있는 셈이다.



불과 함께


지구를 밤에 바라보면, 눈부신 빛들이 보인다(커버 그림). 인간이 태양의 제약에서 벗어나고자 일궈 낸 불빛들이다. 인류의 문명을 상징하는 자 불빛들은 모닥불에서 촛불을 거쳐 전기등과 LED로 바뀌어 왔지만, 그 기저는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불과 함께 시작된 동물이다.




미주 Endnote


1. 우리의 잠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렘수면과 비렘수면이 그것이다. 렘수면은 REM Sleep이라고 적고, 이는 rapid eye movement의 줄임말이다. 이름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렘수면 시에는 빠른 안구 운동이 나타나며, 꿈을 꾸고, 한 깨어 있을 때의 지식들이 통합되고 저장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되고 있다. 이 렘수면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우리의 뇌파는 마치 깨어 있는 것마냥 활발하지만 수면에 빠져 의식과 운동이 없다는 것인데, 이 중 운동이 없는 현상을 REM sleep muscle atonia(렘수면 근이완)라고 부른다. 렘수면 시에는 뇌 아래의 연수 부분에서 몸의 운동 능력을 글라이신이나 GABA같은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인위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고, 이것이 적절히 일어나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꿈 속에서 행동하는 대로 몸이 행동하게 된다. 주변을 걷거나, 어다니거나, 소리지르고 흐느끼는 등 감정 표현을 하기도 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이와 같은 렘수면 운동장애는 파킨슨병이나 다른 류의 치매를 놀랍도록 잘 예측한다고 알려져 있다.


2. 조로아스터교는 4천 년 이전 경 기원한 최초의 일신교로써, 차후의 유대교를 비롯한 아브라함계 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일신 사상, 천국과 지옥, 심판, 천사와 같은 개념들이 조로아스터교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되며, 바빌론 유수 기간 동안에 유대교 신앙에 편입되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3. 이를 연소의 3요소로 부른다. 즉 바꿔 말하면 3 요소 중 한 가지라도 차단된다면 불을 소화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산소를 차단하는 질식소화, 온도를 낮추는 냉각소화, 탈 물질을 없애는 제거소화가 그것이다. 물을 뿌리는 것은 물의 높은 비열과 발열(수소결합 때문)을 이용하여 온도를 급격히 내리는 냉각소화에 해당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말소화기는 인산암모늄 분말이 주성분인데, 이것이 열에 노출되면 분해되어 불연성 가스를 만들고 반응 과정에서 열을 냉각하는 등 질식과 냉각소화가 복합적으로 일어난다.


4. 석탄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다. 죽은 식물 늪지 등에 매몰되어 분해되지 않고 고온, 고압의 환경에서 탄화되는 것이 그 원리다. 그런데, 지구 상에 존재하는 석탄의 90% 는 오로지 3억 년 6천만 년 전부터 2억 5천만 년 전, 지구 역사 47억 년 중 고작 1억 년에 해당하는 기간에만 특이적으로 만들어졌다. 왜 이 때에만 석탄이 그렇게 많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당시의 독특한 지질학적, 생물학적인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으로 추측되는데, 이 시기 직전인 데본기에 목질을 통해 고농도의 탄소를 저장하는 나무가 탄생하였을 뿐 아니라 높은 산소 농도(30%) 이산화탄소 농도 때문에 나무의 성장이 빠름과 동시에 잦은 산불로 탄화가 촉진되었고, 또한 빙하기로 인하여 수위가 급격하게 하락하며 넓은 습지가 형성되어 대량으로 자라난 나무이 묻혀 탄화되기에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또한 일각에 의하면 이 때는 아직 나무의 목질부를 구성하는 단단한 물질인 리그닌을 분해하는 생물이 없어 썩기 이전 퇴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는데, 최근 이 시기에도 리그닌 분해성 곰팡이들이 존재했다는 발견이 이루어졌다. 다시 요약하자면, 석탄의 탄생은 복잡한 지질학적이고 생물학적 요인들이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 요점이다. 물론 이것은 석유도 마찬가지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어 보자.


5. 해당 터빈은 대형 원자력 발전소에서 이용되는데, 터빈 한 대당 최대 1800 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한다. 근 남한 전체의 발전량이 2022년 3월 기준 5만 기가와트시, 30일 24시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69 기가와트급 발전인 셈인데, 이론적으로는 위 터빈 18 개를 최대 출력으로 가동하면 남한의 전체 전기 소모량을 충족시킬 수 있는 셈이다.


* 참고 문헌: 불과 학습, 수면에 관한 내용 중 일부는 https://medium.com/illumination/why-do-humans-stare-at-fire-8a33c0672ada에서 변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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