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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ul 03. 2022

(23) 관찰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하윤의 Resolution

현미경 덕분에, 우리의 질문을 피해갈 수 있을 만큼 작은 것은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해에 대한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되었다.

-로버트 훅, 영국의 과학자이며 세포의 최초 명명자


허블 망원경은 우리에게 존재론적 자각을 일깨웠다. (...) 망원경은 우리의 지성으로 하여금 무궁무진한 수준의 시공간에 대하여 숙고하게 했다.

-로스 앤더슨, 천체물리학자


천문학의 역사는 지평선을 밀어내는 역사와도 같다.

-에드윈 허블




이전의  글에서 우리는 인간이 얼마나 시각적 동물인지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시각적 진보가 어떻게 인류의 지적인 세상의 한계를 결정지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자.



지식의 가장자리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 인간은, '보는 것을 믿는다'. 아무리 글로 보거나, 말로 전해 들어도, 자기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적절한 시청각 자료 한 장은 수많은 글과 말보다 나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은 보는 것에 천착한다. 그리고 인류의 과학 또한 보는 것을 통해 발달해 왔다.


간단히 말해 인류 지식의 가장자리는 인간이 볼 수 있는 거리와도 같다. 어떠한 지식이든 간에, 인간이 인지하고 볼 수 있는 형식으로 전환되어야 그것이 인정받고 이해되기 때문이다¹. 아무리 훌륭한 결과를 얻어도, 그것을 보기 편한 방식으로 올바르게 시각화하는 것은 결과 자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². 대부분의 줄글들에 한 장으로 잘 정리한 그래픽 요약본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며, 아무리 논문에 온갖 수식과 정교한 실험들이 있어도 사진이나 영상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인간은 세상을 시각으로 인지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³. 



나누고 분할하여 우리를 이해하기 - 환원주의


이러한 '보는 것' 의 두 가지 대척점은, 현미경과 망원경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모두, (최소한 초창기에는) 거울과 렌즈를 매개한 빛의 반사/굴절을 통해 빛을 모으고 확대함으로써 맨눈의 한계를 넘어서게 했다. 현미경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것을 보여줌으로써 세상 안을 더욱 깊게 파고들게 했고, 망원경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혀 왔다.


그림 1. 최초로 세포를 관찰하고 명명한 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훅.


현미경이 미친 영향부터 살펴보자. 현대 생물학은 현미경으로부터 시작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과학의 환원주의적 사조에 알맞게,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이루는 기초적인 단위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로버트 훅이 1665 년에 코르크를 관찰하며 '세포cell' 을 명명하며 얻어낸 성과다(그림 1, 커버 사진). 이러한 지식이 알음알음 모여서,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다양한 기능의 세포가 모여 생명체가 된다' 라는 세포설은 1839년에야 주창되었다(그림 2). 200년이 채 안 된 셈이다.


그림 2. 최신의 광학 기술을 이용하여 살펴본 단일 세포의 모습. 세포막의 미세한 부품은 세포가 죽어갈 때 보이는 현상이다apoptotic vesicle.


세포의 발견은 조직의 이해를 낳았고, 염색과 조직학의 발달을 통해(그림 3) 생물의 기능에 대한 추론이 가능해지며 수준 높은 생리학과 발생학으로 이어졌다. 세포라는 구조의 발견은 그 작동 원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세포생물학과 분자생물학으로 이어졌고, 유전학은 이러한 사조와 결합되어 분자유전학으로 꽃피게 되었다. 생명의 기본 단위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생명의 본질을 어찌 이해할까? 현미경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1600년대의 개괄적이고 미숙한 생물학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림 3. (좌) 카할의 신경세포 그림 (우) 골지염색법을 이용해 형상화한 신경세포. 놀라운 그림 실력과 관찰력을 엿볼 수 있다. 이 관찰에서 신경생리학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 발달한 현미경은 이제는 전자를 이용한 나노미터 수준의 이미지조차 뛰어넘어, 개별 원자를 관찰하고 조작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그림 4). 그리스 철학자들이 머리 속에서 도출했고, 근대의 간접적 실험을 통해 유추했을 뿐인, 세상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들을 드디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미경은, 말하자면, 과학의 환원주의 사상에 입각해 복잡한 구조물을 나누고 해체한 그 미세 구조물을 관찰할 수 있게 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기여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림 4. IBM 사에서 제논 원자들을 조작하여 그린 회사의 엠블렘. 보이는 점 하나가 원자 하나다.

* 참고; IBM 사는 2013년에는 같은 기술을 이용하여 원자로 그린 영상을 만들었다. 본 영상 참조.


더 멀리서 우리의 기원을 찾기


현미경과는 대조로, 망원경은 인류와 지구가 거대한 계 내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인류에게 일깨워 주었으며, 그럼과 동시에 이 거대한 계를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공했다.


 과학은 철저한 분할정복법(divide and conquer) 에 따른다. 세상을 작은 것으로 나누어 충분히 이해하고 나면, 그것을 합쳐서 큰 법칙을 이끌어 낸다는 뜻이다. 망원경은, 그 합침의 관점을 넓혀 주었다. 생태학자 멀린 셀드레이크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는 실험용 플라스크 속에 살고 있다'. 현실의 문제를 떼어 유리관에 담아,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연구하지만 정작 우리 존재는 지구라는 유리관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리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구 밖으로 눈을 돌려 한다. 어쨌건, 우리는 지구라는 단 하나의 사례만을 관찰했기 때문이다(그림 5,6). 궁극적 자연 세계인 우주 전체에 적용되는 보편 법칙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더 넓은 공간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 5. 지구의 크기에 대해 상상하던 인간은,이제는 지구 전세계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술을 갖게 되었다.
그림 6.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 '창백한 푸른 점'. 1990년, 지구에서 6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찍은 이 사진은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일깨운다.


실제로, 망원경의 발달은 인간의 세상을 확대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세웠다. 인간의 맨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고대 인류의 하늘은 태양, 달,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별들(그리고 비교적 가까운 수성-토성의 행성들) 이 전부였다 . 그러나 망원경의 발달 이후 이어진 놀라운 관찰들-갈릴레오의 목성 위성 관찰이나 달 관찰 등-은 기존의 공고한 패러다임을 파괴하고 변혁하기 충분하였다.


덴마크의 튀코 브라헤는 놀라운 시력과 (망원경은 아니지만-튀코 브라헤는 망원경이 발명되기(1608) 이전에 사망했다) 관찰 기구들을 이용하여 엄청난 정확도의 천체 기록을 남겼고(최소 0.017도 가량의 오차를 보인다!), 제자인 케플러는 이 기록들을 이용하여 천체의 움직임에 대한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법칙들을 유도해 내었다. 이러한 관찰 기록은 뉴턴의 수학적 엄밀성과 합쳐져 고전 역학을 만들어 냈고, 이것은 수많은 학술적 탐구로 이어져 현대의 근간을 이루는 이론 물리학을 탄생시키게 되었다. 저 먼 곳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림 7. 허블 딥 필드. 저 심연의 밤하늘을 들여다 보면, 반짝이는 무수한 은하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발견은 우리의 생각을 통째로 뒤집었다.


또한, 망원경은 우리의 세상을 넓혔다. 인간이 인지하는 세상은 좁은 마을에서, 대륙으로, 그리고 또 전 지구로 넓어졌다. 면밀한 천체 기록을 통해 이것은 태양계로, 그리고 또 은하로 넓어졌다. 1995년, 허블 망원경을 통한 로버트 윌리엄스의 발견은 심우주를 관찰하며 천문학의 격변을 일으키며(그림 7) 우주의 크기와 방대함에 대해 재고하게 되었고 이제는 관찰 가능한 우주(465억 광년에 달하는 크기를 가진) 의 대략적인 거대 구조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그림 8).


그림 8. 인류는 경험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거대한 우주의 구조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다. 사진은 우주의 거대구조에 대한 지도로, 밝은 부분이 은하들이 모인 필라멘트이다.


관찰은 단지 공간적 크기뿐 아니라 시간에 대해서도 이해하게 해 주었다. 은하는 서로 팽창해 멀어져 가며 색의 편이를 나타내는데, 이러한 편이를 측정함으로써 멀어져 가는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그럼, 그 속도를 알면 처음에 모든 물체들이 모여 있었을 순간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빅뱅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망원경 관찰은 우리 우주의 크기, 구조뿐 아니라 그 시초 모습을 상상하게 해 주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는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거시적 관점을 제공한 셈이다(그림 9).


그림 9. 폴 고갱, 1898,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보이지도 않는, 그래서 닿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러나 늘 반복되었던 역사가 말하듯, 새로운 발견은 새로운 진보를 낳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깊이 들여다보고, 더 먼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변주하자면, '관찰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미주 Endnote


1. 간단히 말해, 인간이 행한 초기의 '과학 실험' 은 무언가를 볼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자기장을 볼 수 있게 만든 철가루 실험과 나침반을 생각해 보라.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결국 어떠한 실험을 행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모니터 스크린에 나타나는 결과를 '보는 것' 이다. 철가루의 배열이 보이지 않는 자기장을 보여주듯, 지금 인류의 과학 실험 기기는 인간의 오감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것을 감지케 해 준다. 즐겨 쓰는 표현처럼, '수단은 변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2. 인간은 3차원 공간 속에서 살아가며 3차원으로 세상을 인지하지만, 사실 현실 세계는 3개의 축으로 설명하기는 너무나도 복잡하다. 예를 들어, 세포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발현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세포마다 2만 5천 개에 달하는 유전자를 변수로 가져야 한다. 무려 2만 5천 차원의 정보인 셈이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2차원-3차원 형식으로 바꾸어 주는 차원 축소법dimension reduction 이라는 통계 기법들이 존재한다. 말은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평면인 종이 위에 3차원 존재를 그리고 인식하는 것과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3. 인간은 시각적 동물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물체에 전율 또한 느낀다. 이것이 원시적인 예술의 시작점이 되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신경미학에 관한 글로 다시 다루어 보도록 하자.


4. 생물학의 발달에서,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염색법 또한 지대한 기여를 했다. 보통 생명 조직은 그저 흐릿한 덩어리로 보일 뿐인데, 여기에 관찰 가능한 대조contrast 를 만들기 위해서는 염색을 해야만 그 세부 구조를 볼 수 있게 된다. 그러한 방식으로, 그람 염색은 박테리아를 보고 분류하게 도왔고, 골지 염색은 신경계와 뇌의 작동 원리를 책임지는 뉴런을 찾아내게 했고, H&E 염색법은 1876년도에 도입된 이후 백 오십년의 세월 동안 굳건히 병리학의 충실한 도우미가 되어 의학의 발전과 함께하였다. 1940년대부터 시작된 항체를 이용한 면역염색법은 이제는 최신 생물학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기법이 되었고, 수없는 생물학적 발견을 일구었다.


5. 물론, 인류의 놀라운 지성은 몇 안 되는 관찰만으로도 엄청난 통찰을 이끌어내곤 했다. 사모스의 아리스타코르스는 달, 태양, 지구의 상대적 거리와 위치를 식 현상을 통하여 2천 3백여 년 전에 수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고, 교과서에도 나오는 에라토스테네스의 실험을 통해 지구의 크기를 유추해 이를 통해 태양과 달의 실제 크기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면밀한 관찰과 약간의 기하학적 공리를 통해 이루어낸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놀라운 관찰의 사례를 바라볼 때면 전율감을 느낀다.


6. 인간의 맨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천체의 개수는 약 5천 개 정도라고 한다. 물론 이 중 한 위치에서는 절반의 천체를 볼 수 있을 것이므로(나머지는 지평선과 수평선 아래에 있을 것이다), 대략 2500개 정도가 맨눈 관찰의 한계가 될 것이다. 기원전 129년, 그리스 시대의 히파르코스는 850여 개의 별을 기록했고, 1300년대 말 조선에서 만든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1467개의 별이 기록되어 있다. 몇천 년 전부터 하늘의 이야기들과 법칙을 해석하는 것은 인간 삶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것들이었던 것.


7. 전체 우주 중에서, 137억 년의 시간을 지나 지구에 빛이 도달한 만큼만 인간이 관찰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관찰 가능한 우주' 고 부르는 것이다. 전체 우주 중에서 관찰 가능한 우주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현재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지만, 관찰 가능한 우주의 몇백 배에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가능성까지 많은 가능성이 혼재한다. 더욱 슬픈 것은 실제 인류가 다다를 수 있는 곳은 관찰 가능한 우주 6% 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 우주론적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부르는데, 우주는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중력이 붙잡고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를 포함한 우리 은하군 외에서는 아무 것도 밤하늘에서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만일 그만큼의 시간이 지난 지구에서 인간과 같은 지성체가 발생하더라도, 그들은 우주의 시작에 대해, 우주의 팽창에 대해, 그리고 무수한 다른 은하군에 대해서는 절대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우주에 대한 과학적 발견을 하기 위한 적절한 시간대에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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