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과 식물은 우리 주변에서(당연히 식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군 중 하나다. 당연히 우리가 아는 수많은 콩들(땅콩을 포함한)뿐 아니라, 우리가 아주 잘 아는 토끼풀, 보랏빛 꽃이 아름다운 등나무(그림 1), 향이 좋은 아까시나무도¹ 콩과에 속하는 식물들이다².
그림 1. 빛깔이 참 아름다운 등나무. 이들 또한 콩과 식물이다(잎과 꽃의 구조로 말미암아 알아볼 수 있다).
실제로, 콩과 식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식물군 중 하나이다(가장 큰 분류군은 난초과로, 이들이 약 2만 8천 종을 차지하고, 그 다음이 국화과 식물(2만 5천 종), 다음으로 세 번째가 콩과 식물들이다(약 2만 종)-M. Christenhusz et al., Phytotaxa, 2016). 콩과의 식물들은 약 6천 5백만 년 전부터 갈라져 나와 진화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여러 독특한 특징들 덕분에 성공적인 식물계의 그룹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오늘은, 흔히 넘어갔을 콩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살펴본다.
1. 뿌리 그리고 공생
콩에 대해 시작하는 첫 번째 이야기로 꺼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뿌리에 관한 이야기다. 잘 알려진 이야기겠지만, 이들의 뿌리는 독특한 공생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식물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영양분 중 하나는 바로 질소다. 생체를 이루는 데 있어 필수적인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질소가 꼭 필요한데, 동물은 다른 동물이나 식물을 섭취함으로써 질소를 얻지만, 식물들은 그런 거 없이 땅에 존재하는 미량의 질소를 추출해 이용해야만 한다. 공기 중에는 물론 78% 나 질소가 존재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아주 강력하게 결합한 질소 기체(N2) 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삼중 결합을 통해 서로 강하게 붙잡고 있어서, 웬만한 일로는 생체가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되지 않으며³, 일부 박테리아만(질소 고정 세균이라고 부르는)이 이러한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림 2. 콩과 식물의 뿌리에서 보이는 부풀어 오른 구조의 뿌리혹. 이 내부에는 공생성 세균이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콩과 식물들은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러한 박테리아와 손을 잡는 법을 알아냈다. 콩과 식물들은 이러한 공생성 근균(라이조비움rhizobium 속의)을 이끌어 오는 물질을 분비하고, 이 물질에 끌려온 근균들과 접촉하게 되면 근균을 둘러싸서 소포와 같은 구조를 만든다. 이 작은 구조물 안에서 근균은 증식하여 부풀어 오른 뿌리혹을 생성하게 된다(그림 2). 이 뿌리혹 안에 사는 박테리아들은 식물에게서 당분과 같은 영양분을 공급받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질소를 고정하여 질산염을 생성하여 식물에게 공급한다. 이러한 질소 고정 과정은 산소 농도에 매우 민감한데, 질소 고정 효소(nitrogenase) 가 산소와 접촉하면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뿌리혹 안에는 산소 농도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 산소를 만나면 산소를 강하게 잡아 두는 물질이 존재한다.
그림 3. 뿌리혹의 단면을 살펴보면, 붉은 고기와도 같은 모양이 보인다. 이는 피 속의 헤모글로빈과 매우 유사한 레그헤모글로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레그헤모글로빈(leghemoglobin, 어원을 분석해 보면 콩에 존재하는(leg) 헤모글로빈(hemoglobin) 이라는 뜻이다) 이라고 불리는 물질이다. 이 물질은 동물의 적혈구 속에 존재하는 헤모글로빈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⁴, 산소를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하여 뿌리혹 내의 적정 산소 농도를 유지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콩과 식물의 뿌리혹을 잘라 보면 붉은 피와 같은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그림 3). 이 점에 착안하여, 식품 가공 회사들은 인공육의 맛과 풍미를 더해 주기 위하여 이 레그헤모글로빈을 추출하여 인공육에 더하곤 한다. 이는 일반적인 고기에서 느껴지는 ‘피의 맛’ 을 더하여, 육향과 색감을 강화한다고 알려져 있다.
2. 작물과 식품으로써의 콩
이러한 넉넉한 질소를 공급받는 특징 덕분에, 콩과 식물은 단백질이 풍부하며(밭에서 나는 소고기라는 관용어구도 있지 않은가), 또한 자신이 자라는 토양에 질산염을 공급함으로써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미주 1 참조). 이러한 특징 덕분에 땅의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인 윤작법(crop rotation) 에 널리 이용되는데, 대표적으로 밀이나 쌀 등을 수확한 후 그곳에 콩을 심어 지력을 회복하는 등의 방법이 이용된다(조선시대부터 널리 행해진 방법이며,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수많은 문화권에서 경험적으로 콩을 이용한 윤작이 행해졌다).
그림 4. 로마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키케로, 그의 성은 재미있게도 지중해에서 아주 인기 많은 콩인 병아리콩에서 왔다.
재미있게도, 이렇게 단백질이 풍부하다 보니 콩은 아주 좋은 먹거리가 되었다(영양분이 풍부한 식품을 동물들이 마다할 리 없다). 콩과 식물은 볏과 식물에 이어 선사 시대부터 지금까지도 두 번째로 인간에게 중요한 먹거리가 되어 왔으며, 대부분의 인류 집단에서는 콩을 식단과 농업에 포함하고 있다(재미있게도, 이러한 콩으로부터 이름을 따온 사람들도 있다-대표적으로 로마의 시인 키케로는 ‘병아리콩’을 의미하는 cicer 에서 이름을 따왔다. 아마 그의 집안이 전통적으로 병아리콩 장사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콩은 그러므로, 자신의 소중한 종자가 먹혀 사라지는 것에 대응하기 위하여 나름의 방어 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는데⁵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단백질 분해효소 저해제이다. 콩과 식물들에는 단백질 분해 효소를 저해하는 물질이 아주 풍부하게 들어 있는데(렉틴을 비롯한 몇몇 물질이 종합적으로 들어 있으며,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단백분해효소 저해제를 바로 콩에서 추출한다), 그에 따라 동물이 콩을 섭취하게 되면 위장에서 작동해야 할 트립신과 같은 단백질 분해 효소들이 억제되어 소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⁶. 이에 따라 더부룩한 소화 장애 증상들이 나타나게 되고, 동물들의 섭취를 억제하게 된다(그에 더불어, 여러 올리고당과 같은 비대사성 탄수화물이 풍부해 이것이 소화관에서 미생물에게 의해 분해되며 여러 가스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가스 대사물들은 방귀로 배출되는데, 실제로 피타고라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여러 이유로 말미암아 콩을 먹지 않았으며 ‘콩을 먹으면 가스가 차게 된다’ 고 말한 바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익히지 않은 풋콩을 동물의 사료로 사용하면, 소화 불량과 독소로 인하여 동물들의 체중이 정상적으로 증가하지 못하므로 요즘에는 조리한 사료를 이용한다. 물론 인간은 이를 억제하는 방법을 개발해 내고야 말았는데, 그 중 첫 번째는 가열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발효하는 것이다.
그림 5. 한국의 발효 식품을 대표하는 메주.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서깊은 발효 식품이다. 이와 같은 경험에서 도출된 발효과 가열은 식단을 풍성하게 했다.
가열은 당연히도 단백질을 파괴하고 그 기능을 없애므로, 콩을 오래오래 푹 끓이는 것은 거기에 들어 있는 단백질 저해 효소들을 효과적으로 비활성화하여 섭취에 문제가 없도록 만들어 준다.
두 번째로, 발효를 거치면 미생물들이 인간이 분해하지 못하는 콩의 탄수화물을 미리 분해하여 섭취해도 문제가 없도록 변화시키므로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게 되고, 그에 더불어 콩의 단백질이 파괴되어 글루탐산과 같은 맛있는 물질들로 변화하게 되므로 맛 또한 좋아진다. 이러한 장점에 착안하여, 이미 기원전부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콩을 이용한 발효 식품들이 널리 퍼져 왔으며 지금까지도 간장이나 된장, 낫토와 같은 콩 기반 발효 식품은 중요한 식단으로 이용되고 있다⁷.
3. 그리고 또 더
그 외에도 콩과 식물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제공해 주는데, 대표적으로 우리의 수많은 식품들(소스류, 젤리, 음료, 맥주, 우유, 빵을 비롯한 수많은 식품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에 들어가는 증점제를 제공한다. 나는 가공 식품을 구매하면 늘 버릇 삼아 성분표를 구경하곤 하는데, 이 중 아주 자주 보이는 이름들이 있다. 아라비아검, 로커스트콩검, 구아검과 같은 물질들이다.
그림 6. 인디고페라 꽃(좌측)에서 얻어내는 인디고 염료(우측).
이것은 다당류의 일종으로, 다당류의 특성상 끈적끈적한 점도를 더해주는 증점제로 주로 이용되고 있다. 위에 말한 3 종류의 검은 모두 다 콩과 식물로부터 추출된다(아라비아검은 아카시아나무에서(미주 1참조), 로커스트콩검은 말 그대로 로커스트 콩에서, 구아검은 콩의 일종인 구아 콩에서 추출한다.
마지막으로, 콩은 유용하게 사용되는 색소들도 제공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인디고가 있다. 우리의 청바지를 물들여 왔던 천연 인디고 색소는 콩과 식물인 인디고에서 얻어지며(그림 6), 조직학 검사를 위해 150년간 꾸준히 사용되어 온(23번 글, 미주 4번 참조) 조직 염색약 중 하나인 헤마톡실린 또한 콩과 식물인 로그우드logwood 에서 추출하고 있다(그림 7).
그림 7. 조직학 검사의 표준인 H&E염색으로 가시화한 폐포 조직. 보랏빛으로 보이는 것이 콩과 식물에서 추출한 헤마톡실린이 염색한 세포핵이다.
오늘은 콩에 관하여 알아보았다. 인류 문명의 발달과 밀접하게 연관된 식물 종인 만큼, 생각 외로 많은 곳에 콩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청바지부터 식품 첨가물, 발효 음식부터 실험용 시료 공급처이자, 예전부터 사용된 천연 ‘녹색 비료’ 까지). 다음에는 다른 식물에 대한 즐거운 이야기들을 담은 글도 다루어 보자!
미주 Endnote
1. 아까시나무는 우리가 흔히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그 흰 꽃을 피우는 나무다. 실제 아카시아는 노란 꽃을 피우며, 미모사와 더 근연이다. 국어 사전에까지 같은 단어로 등록되어 혼용되고 있지만, 엄밀히는 완전히 다른 종이다. 아까시나무는 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본문에서 서술한 뿌리혹박테리아 때문이다. 지력 보충에 큰 도움이 되어 녹화 사업 시에 의도적으로 많이 심기게 된 것.
2. 이들이 콩과인 것을 믿을 수 없는가? 그렇다면 가을쯤 토끼풀의 꽃이 진 자리를 자세히 쳐다보라. 아주 조그마한 콩 꼬투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 이런 강력한 결합을 깰 수 있는 일은 자연계에 몇 없는데, 그 중 한 가지는 바로 낙뢰다. 번개가 떨어지는 과정에 수반되는 엄청난 고온은 질소의 결합을 분해하여 산소와 결합하게 만들고, 이렇게 생성된 이산화 질소는 수증기에 녹아 비의 형태로 땅으로 흡수되게 된다. 즉, 번개가 많이 치는 곳은 비옥한 토양이 된다. 이 뿐 아니라 화산 활동이나 우주에서 날아오는 자외선 또한 질산염을 생태계에 더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질산염을 더하는 법은 아주 제한적이기 때문에, 식물에게 질소를 풍부하게 공급해 주는 것은 집약적 농업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비료인데, 이전에는 이러한 질소를 공급하기 위해 동물의 배설물을 주로 이용하였고(동물의 소변에는 질소를 다량 포함한 요소가 존재하며, 최고의 비료 중 하나였던 구아노 또한 질소의 보고이다(글 5번, 7번 미주 참조)), 요즘은 하버-보슈법으로 인공적으로 합성한 암모니아 비료를 이용한다. 하버-보슈법을 만든 프리츠 하버는 '공기에서 빵을 만든 과학자' 로 칭송받았으나, 동시에 독일 제국을 위해 독가스인 염소 가스를 개발하여 사용을 장려한,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4. 헤모글로빈의 어원을 더 분석하면, 피 속의(hemo) 수용성 단백질(globin) 이라는 뜻이다. 적혈구 하나 안에는 대략 27억 개의 헤모글로빈이 들어 있으며, 헤모글로빈 분자 하나는 4개의 산소 분자와 결합하여 운반하는 능력을 가진다. 참고로, 우리 몸 내에는 대략 25조 개의 적혈구가 존재하며, 이것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총 세포의 대략 50% 가량을 차지하는 수다. 다만, 적혈구는 수명이 짧아 지속적으로 분해되고 새롭게 만들어진다.
5. 식물은 동물처럼 능동적으로 회피할 수 없기에, 피식을 막기 위한 여러 방법을 발달시켜 왔다. 그 중 한 가지 방법은 동물들이 먹을 수 없도록 쓴 맛을 생성하거나 혹은 먹을 경우 불쾌한 감각을 유도하는 방법인데, 고추의 캡사이신, 와사비나 겨자의 알릴티오사이아네이트, 마늘의 알리신, 산초의 산쇼올, 계피의 시나알데하이드, 후추의 피페린같은 많은 물질들이 스스로를 동물에게서 보호하고자 만들어 낸 물질들이다(실제로 이러한 물질들은 통각을 느끼는 신경들을 활성화하여 불쾌한 감각을 유도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물질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음식의 맛을 돋구는 데 사용하고 있으니, 식물의 입장에서는(?) 통탄할 따름이다. 심지어 신경 독소로 작용하는 카페인이나 니코틴도 인간들은 좋다고 기호 식품으로 써먹고 있다.
6. 그러나, 단백질 분해효소 저해제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체 내에 적절히 존재해야하며, 이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의 피 속에도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단백질 분해효소 저해제들이 있는데(SERPIN 이라고 부른다), 이런 저해제들은 염증 상황 시에 면역 세포들이 분비하는 분해 효소들이 필요한 만큼만 작동하도록 막아준다. 이 저해제가 유전적으로 결핍된 사람들은,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 분해 효소들이 폐와 같은 섬세한 조직들을 분해하여 폐기종과 같은 병에 걸리게 된다.
7. 뜬금없을 지 모르지만, 우리의 식탁에 있는 다른 소스 중 하나인 케첩도 여기서 시작된다. 인도네시아에서 대두를 발효시켜 만드는 간장의 일종을 케캅kecap 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의 변종들이 다시 영국으로 넘어가 버섯으로 만드는 케첩 소스가 되었고(아직도 mushroom ketchup 등을 검색해 보면 레시피를 찾을 수 있다), 다시 19세기 미국에서는 버섯 대신 토마토를 넣어 토마토 케첩이 만들어졌다. 이후 토마토 케첩이 훨씬 대중적이 되면서, 그냥 케첩이라는 말이 토마토 케첩을 의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