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시간을 거꾸로 돌려, 고대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를 곱씹어 보자. 오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배경 사진), 뒤를 잇는 호메로스의 저작들은 물론이며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창조신화와 구전들은 현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림 1. '듄' 시리즈에 등장하는 거대한 모래 벌레. 이들이 살아가는 생태계는-비록 사막 생활에서 영감을 받았더라도-순전한 상상에 기반한다.
죽지 않는 불로불사의 존재, 부활과 승천, 갖가지의 신에 대한 믿음과 귀속, 날아다니는 소와 말들, 불가사의한 마법들, 입으로만 전해지는 전설의 금속들과 같은 이야기들은 수천 년 전은 물론이고 현재의 비디오 게임에서도 여전히 찾아볼 수 있는 클리셰가 되었다. 현대에서도, 이러한 놀라운 상상의 세계는 굳건히 자리를 지킨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모두에게 잘 이해될 만한 좋은 예시이겠고, '듄', '반지의 제왕' 과 같은 고전은 물론이요 범주를 넓히자면 모든 소설들, 영화들, 수많은 예술 작품들은 자연에 없는 것들을 창작해 낸 것이며 판타지는 그 극단에 있을 뿐이다(그림 1).
상상이 만든 세계
이러한 상상력은 비단 예술에 그치지 않는다. (비록 내가 믿음과 상상에 대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며 모호한 정의를 이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세상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만이 아닌, 만지고 듣고 맛볼수 없는 것들을 머릿속에서 추상화하여 정의하고, 그 개념을 공유함으로써 살아간다.
인간 사회의 직책을 생각해 보라. 아무개가 A 국가의 대통령인 것은, 사회의 사람들이 그렇게 정하고 믿고 따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머무는 곳, 명찰과 명패, 의전과 허례허식들은 겉보기에 불과할 뿐이다. 실제로 그 직책을 그 직책으로 유지하는 것은 사람들의 믿음과 동의라는 상상적인 족쇄일 뿐이다.
그림 2. 1923년,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난 독일에서 마르크화를 태워 난방을 하는 여성¹.
그뿐 아니라, 사회의 많은 요소들이 그러하다. 돈이라는 존재를 생각해 보자. 섬유를 엉겨 얇게 펴고, 그 곳에 잉크를 이용해 기호를 착색한 이 물체를 왜 우리는 가치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우리는 아무런 쓸모도 없는-먹을 수도, 입을 수도, 무언가를 만들 수도 없는-동전과 지폐를 이용해 유용한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문명의 도구들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그렇게 믿고, 우리의 상상 체계 속에서 그러한 규칙이 굳어졌기 때문일 따름이다. 실제로, 돈에 대한 상상 체계가 파괴되고 믿음이 사라질 때, 돈은 '잉크가 착색된 종이' 로 변화한다(그림 2).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된 인플레이션 사태와 화폐 개혁의 역사가 그것을 투명히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인 언어성은 또 어떠한가? 기호학에서 다루는 기표(signifier) 를 퍼스는 도상icon, 지표index, 상징symbol 로 나누었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인간이 가지는 자유로운 연상의 강력함을 엿볼 수 있다. 모양을 그대로 본딴 도상과는 달리(그림 3), 인과관계를 통해 결합된 지표와 문화적 약속에 의하여 정의되는 상징이라는 기표는(예컨대, 언어와 문자가 그러하다. '사과' 라는 문자가 우리가 아는 붉고 둥근 과실과 연결되어야만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미국에서는 똑같은 과실을 'apple' 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적절한 사회적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사과를 '과사' 라고 불러도, '슭굃' 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을 것이다) 인간만이 가지는 독특하고 강력한 도구이며, 이러한 자유성에 힘입어 인간은 다른 동물들은 얻을 수 없는 수준의 의사소통 능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림 3. 이모티콘, 혹은 이모지는 대표적인 도상 중 하나다. 물체의 외관을 그대로 본땄으며 어느 문화권에서든 같은 의미로 통용된다.
법은 어떠한가? 우리는 왜 물리적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법이라는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하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들 간의 믿음 체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극을 바라볼 때, 어째서 저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은 맥베스가, 로미오와 줄리엣이, 마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그렇게 상상하는가? 어째서 우리는 직접 본 적도 없는 지구라는 존재가, 시속 천 삼백 킬로미터로 돌며 초속 삼십 미터로 태양의 주변을 돈다는 것을 납작한 채색 그림을 보며 상상할 수 있는가?
그림 4. 최초의 그래픽 RPG 게임, 로그rogue. 이후 디아블로를 포함한 수많은 정신적 계승작을 낳았으며, 아직도 로그라이크라는 장르는 건재하다.
또한, 군대의 지휘관들이 편편한 종이에 그려진 것들을 보며, 네모낳게 깎은 나무 토막들을 움직이며 어떻게 실제 전투를 상상하고 전술을 계획할 수 있는가? 우리가 보드판을 펴 놓고, 보드 게임을 즐기는 것을 상상해 보자. 어째서 우리는 실제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 붉은 나무 토막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그렇게 간주하며 아무런 문제 없이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가? 1980년에 출시된 고전 컴퓨터 게임인 <로그> 를 보면, 그곳의 몬스터는 다만 이름의 알파벳 앞글자를 땄고 주인공은 @ 모양으로 생겼다(그림 4). 그러나 우리는 두 다리가 달린 전사가 짐승과 전투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1970년대의 <던전 앤 드래곤즈> 에서는, 사람들은 서로 모여 테이블에 둘러앉는다. 그 시간 동안에는 그들은 마법사가, 도적이, 성직자가 되어 연기를 통해 상상 속의 던전을 탐험한다. 그들 앞에는 어떠한 물리적 실체조차 없다. 그저 풍부한 대화와 무언가를 기록할 종이, 펜 하나뿐이다².
이러한 모든 능력들은,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상징들을 자유롭게 결합하고 이해하는 능력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사과> 라는 단순한 문자의 집합을 이용해 우리가 잘 아는 과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었고, 가치와 법률, 규칙과 같은 보이지 않는 추상적 존재들을 다른 현실적인 존재들-가치는 지폐와, 법률은 법전과, 규칙은 명문화된 규칙서를 통해-와 결합시켰다. 연극과 같은 문화에서, 우리는 가상의 인물을 현실 세계의 살을 가진 인간과 동치시켜 그 서사를 즐길 수 있고, 이러한 상상력의 결정은 가장 아름다운 인류의 문화를 일구어내었다.
이렇게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되돌아보며 곱씹으며 지나왔으니, 다음으로 던질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상상하는가?> 가 될 것이다. 다음에는, 이 질문에 대하여 답하여 본다.
미주 Endnote
1. 이 당시 독일은 전쟁 배상금을 갚기 위해 막대한 마르크화를 찍어 냈고, 결과적으로 살인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마르크화의 가치는 이전의 1조 분의 1로 떨어졌으며, 빵 한 조각을 위해 수백억 마르크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는지폐로 차라리 벽지를 바르고, 땔감으로 태우는 것이 차라리 나을 따름이다.
2.이와 같은 '상상 놀이' 는 아마도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유흥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자유로운 연상과 대화, 롤 플레잉은 지금도 인류의 주요한 유흥 수단 중 하나이며, 고대의 음유시인은 기억을 통해 풍부한 서사를 전달했다. 사실상 기록된 문화는 구전을 통하여 전해졌을 테니, 이와 같은 문화의 형성과 지속은 그러니까 입과 귀로 만들어진 셈이다. 실제로 문자를 가지지 않은 원시 부족들은 낭송을 통하여 역사를 기록하며, 적잖은 종교 경전들은 이와 같은 암기를 통하여 구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