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는 당신을 A에서 B로 이끌어 줄 것이다. 그러나 상상력은 어디로든 데려다 줄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추정, 많은 아인슈타인의 어록이라고 떠도는 것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아인슈타인의 발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추론이 아닌 상상
이전의 글 에서, 우리는 인간을 규정하는 독특한 인지적 특징들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바로 상상력이다. 언어와 문자, 다양한 문화에서 보이는 자유로운 연상을 통한, 추상적인 대상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을 인간은 가지고 있다는 내용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면 놀라운 점은, 이러한 존재들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그림 2 참조). 즉, 그것들은 세상의 무언가를 본따 만든 것이 아닌 새로운 창조물이다. 세상에 @ 처럼 생긴 사람은 없고, m 처럼 생긴 괴물은 없으며, 전차는 네모 토막처럼 생기지 않았다. 즉 우리는 앞서 계속 강조하였듯, 자유로운 연합적 사고, 즉 상상을 할 수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기존 우리가 본 것들에 대한 충실한 재현이 아닌, 그것들에 대한 개념적 조작을 거치고, 새로운 내용들을 결합하여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단순한 논리적 추론과는 다른 놀라운 현상이다¹. 어떻게 이러한 복잡한 정신적 작용이 가능할까?
상상력의 기반과 진화
던바 교수에 따르면, 실제로 상상하는 능력은 인간의 특징적인 인지적 능력 중 하나이다. 프랑스의 신경과학자 스타니슬라스 드앤은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인간의 신경계에서 나타난 전역 작업공간(neuronal global workspace) 때문이라고 주장한다². 여타 비인간 영장류와는 달리, 인간의 뇌에서 나타나는 연합 신경 경로들이 뇌의 여러 부분들을 통합함으로써 다른 동물들에게는 결여된, 현실의 요소들을 자유롭게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능력, 이러한 심적 종합을 평가하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림1. 신경 다발의 비교해부학적 연구. 인간은 여타 유인원에 비해 훨씬 발달한 다발들을 가짐을 볼 수 있다. A. Friederich, 2016.
실제로, 우리 인간, 그러니까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여타 유인원과 갈라져 나온 이후의 진화 과정에서 다른 동물에게서는 관찰되지 않는 여러 신경 다발들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고고학적 비교해부 연구를 통하여 알려졌다. 이것들은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인지 능력, 예를 들면 타인의 의도를 추론하는 등의 인간에게 고유한, 복잡한 인지능력에 연관될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예컨대 진화 과정에서 인간의 조상들에 비해 우리는 앞띠다발, 갈고리다발, 위세로다발과 같은 자아 인식과 인지기능에 아주 중요한 신경 회로들이 강화되고 생겨났다는 것이 아주 잘 알려져 있다(그림 1).
이와 같은 추론은 고고학적 증거와도 잘 들어맞는다. 인간은 침팬지와 약 400만-600만 년 이전에 분기하였으나, 인간이 그 이후 놀라운 문화적 발전을 이루는 동안 침팬지는 그렇지 않았다. 또한, 현생 인간(호모 사피엔스)의 근연이며, 약 40만 년 전 분기된 네안데르탈인 또한 인간과 비슷한 여러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으며 원시적 문화를 가지고 있었으나-매장 의식, 공동체에 대한 돌봄, 심지어 아마도 원시적 언어-호모 사피엔스가비슷한 출발점에서 시작해 지난 몇 년간 놀라운 문화적 진화를 이루는 동안(어쨌든, 우리는 더 정교한 석기, 동굴 벽화, 음악과 악기, 정교한 언어 문법과 문학을 지나 컴퓨터와 달 착륙선을 만들지 않았는가, 그림 2) 네안데르탈인들은 별다른 문화를 발달시키지 않았다³.
그림 2. 약 4만 년 전 발견된 '사자-인간' 상. 호모 사피엔스는 최소한 이 때부터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였을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관련하여, 사회진화론의 창시자이자, '현대의 찰스 다윈' 이라고 불리우는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 교수는 이렇게 적는다;
'네안데르탈인의 문화는 그 종의 역사 내내 그다지 발전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능의 영역들을 연결하여 추상적 패턴을 만들고 복잡한 시나리오들을 상상하는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 후기 구석기에 (호모 사피엔스의) 인류 문화가 대폭 발전한 것은 서로 다른 영역들에 저장된 기억을 연결하여 새로운 형태의 추상 개념과 비유를 생성하는 능력 때문임이 분명하다'
여백의 미
이러한 '상상하는 능력' 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던져준다. 예컨대, 우리는 영화보다는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즐기곤 한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영화에서는 이미 완벽하게 짜여져 보여지는 모든 것들을 소설에서는 우리가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⁴. 즉, 우리가 능동적으로 개입하여 채울 수 있는 빈 여백이 훨씬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 3. 무엇이 보이는가? 무의미한 흑백 점의 집합인가?⁵
마찬가지로, 구상 미술이 아닌 추상 미술의 감상에서는 단순한 인지가 아닌, 상상과 같은 하향식 처리가 더욱 많이 작동하게 된다. 뚜렷한 형상을 가진 초상화, 정물화, 풍경화를 볼 때에 비해, 모호하고 추상적인 모양을 가진 추상미술을 바라볼 때에는 우리는 수동적으로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능동적인 개입을 통해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해야 한다(그림 3,4)⁶.
그림 4. 피트 몬드리안의 나무 연작. 구상화에서 추상화로의 전환을 볼 수 있다. 점차 추상화되는 형상과 패턴 사이에서, 우리는 수동적 관람이 아닌 능동적 해석으로 넘어간다.
칸딘스키, 몬드리안,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쿠닝과 같은 추상주의 거장들의 작품들에서는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마주하는 선과 면, 공간과 구성이 해체되고 분해되어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혼돈과 혼란 속에서 상상을 통해 의미와 감정과 형체를 부여하고, 그 과정에서 너무나도 명료한 구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틈새를 관찰하게 되는 것이다(그림 5).
그림 5. 피에트 몬드리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위, 좌측); 이우환, <선으로부터>(위, 우측); 마크 로스코, <무제(빨강)>(아래). 잠시 스크롤을 멈추어 감상하고 가시길
늘 깨닫는 것은, 너무나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도 파고들어 보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늘 추상화와 개념 재조립을 통해 세상을 재구성하며 살아가기에, 그것을 매우 '당연히' 여긴다. 그러나, 인간의 인지 기능 모두가 그러하듯, 여기엔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다. 바로, 뇌에 수십만 년에 걸쳐 새겨진 이야기들이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감정과 기억, 학습과 수면(sleep) 같은 다른 새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자.
미주 Endnote
1. 글 서두의 인용문처럼, 이미 알려진 사실들을 조합하는 논리적 추론과 상상은 구분된다. 인간 영아와 동물들 또한 논리적 추론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영장류 연구 등을 살펴보면, 이들은 간단한 형태의 배타적 추론을 할 수 있으며, 인간 영아들 또한 학습 이전부터 선언적 삼단논법을 통한 추론을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2. 이는 1986년에 주창된 드앤 모델로써, 드앤은 이 모델이 의식(consciousness) 을 뒷받침하는 기제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은 다양한 뇌 영역들이 다발을 통해 종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도중에, 특별한 요소들에는 마치 연극의 조명을 비추듯 조망하여 그것이 의식으로 드러나면서 생겨난다. 마치 연극에는 수많은 관객과 연극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모두의 시선은 조명을 받고 있는 주인공에게 사로잡히듯 말이다. 물론 아마도 뇌과학의 마지막 문제가 될, '의식' 이라는 것의 정체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으며 이에 대한 여러 가설이 펼쳐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이에 대한 인지도 높은 가설로는 방금 다룬 전역 작업망 가설뿐 아니라 고차원 가설(Higher order theory, HOT), 자기조직적 메타-표상 가설, 통합된 정보 가설 등이 있다. 리뷰를 위해서는 Seth et al., 2022, Nature reviews neuroscience 를 참고하라.
3. 오히려, 우리는 이들과 경쟁하여 도태시켰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먼저 뻗어 나가 유럽과 아시아에 도달한 네안데르탈인은, 후속으로 도착한 호모 사피엔스와의 경쟁 과정에서 멸종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적대적으로 대했든, 혹은 더 훌륭한 사냥 기술과 협동 기술을 통해 사냥감을 제한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이루어졌든 간에 말이다.
4. 우리는 상상만으로 어떠한 물체, 얼굴, 공간과 같은 시각적 대상들을 또렷하게 재현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마치 실제로 보는 것처럼 그것들을 다시 불러낼 수 있다. 놀랍게도, 이것은 뇌의 상위 영역들이 하위 영역을 역방향으로 활성화시킴으로써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우리가 A라는 물체를 볼 때 일어나는 시각 피질의 활성화 패턴은 눈을 감고 A라는 물체를 상상할 때에도 나타난다! 기억 속에 담긴 물체를 상상하면, 그 기억이 다시 시각 피질을 활성화하여 '마치 보는 것처럼' 시각적 경험을 유도하는 것일지 모른다(관련된 논문이 너무 많아 하나의 참고 문헌을 인용하지는 않겠다, neural correlate of visual imaginary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 보길!).
5. 잘 살펴보면, 나무 밑에 있는 달마시안 개를 발견할 수 있다.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개의 형태를 유심히 살펴보라. 흥미로운 것은, 한 번 개를 찾고 나면 이젠 다시는 무의미한 패턴으로 이 그림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게슈탈트 심리학의 언어로, 개의 형상을 전체로 받아들이는, 창출). 더 놀라운 것은, '무의미한 패턴'과 '나무 밑 달마시안' 에서 우리의 망막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우리 뇌의 하향식 정보 처리가 이것을 규정한다.
6. 현대 신경과학의 한 지평을 열었다고 평하기에 손색이 없는 에릭 캔델(2000년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이다) 은 특유의 배경을 바탕으로-예술의 도시 비엔나 출생-, 신경과학과 예술을 연관짓는 여러 시도를 하여 관련된 저작 또한 출판한 바 있다. 본 문단은 <통찰의 시대> 및 <예술과 뇌과학에서의 환원주의> 를 참고하였으며,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