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오늘 무엇을 마셨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아마 커피가 그 답이 될 공산이 크다. 우리 나라의 커피 소비량은 급격히 늘어나, 연 1조 원 어치의 커피를 수입하며, 인당 지출 비용은 전 세계 3위로, 한국인 성인은 평균 연간 353잔의 커피를 마신다. 거의 하루에 한 잔 꼴인 셈이다. 비단 우리 나라뿐에서 아니라, 전 세계에서 물과 차에 이어, 전 지구상에서 세 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음료인 커피는-하루에 대략 23억 컵, 한 시간 당 1억 컵씩!-손꼽힐 정도로 인기 많은 상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커피는 우리의 일상 속에 너무나 깊게 스며들어 있다. 아침을 깨우는 아메리카노 한 잔, 점심 식사 후의 커피 한 잔, 미팅 중에도 커피 한 잔은 빠질 수 없을 테고 퇴근 후 친목이나 대화, 일을 위해 방문한 카페에서도 수많은 이는 이 검은 음료를 앞에 두고 있다. 그만큼, 이 음료는 우리의 일상을 깊게 지배하고 있다.
오늘은 커피에 대해 알아본다.
단어와 함께 돌고 돌아 여기까지
이 음료는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흘러가고 있을까? 그 기원은, 이야기에 따르면, 에티오피아의 한 목동인 칼디에서 시작된다. 약 6세기 경, 이 목동이 치던 염소가 붉은 열매를 먹더니 흥분하는 것을 보았고(그림 1), 호기심에 이 열매를 먹은 후 이것이 정신을 맑고 또렷하게 하는 것을 알린 것이 그 시초라고 전해진다¹. 이후 이 열매를 우려낸 마실 것은 아라비아로 넘어가고, 이슬람교에 도입되어 술을 마실 수 없는 이슬람교도들에게 중요한 마실거리가 되어 왔다.
그림 1. 잘 익어가는 중의 커피 열매. 덜 익은 것(녹색) 부터 익어가는 것(붉은색) 이 달려 있다. 미주 1 참조.
이러한 음료는 카와라고 불리게 되었고, 이것은 터키어 카브를 지나 네덜란드어 코피가 되었다. 이후 코피가 어떠한 단어로 변화하였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 주변의 많은 단어들이 그렇듯, 이러한 어원은 커피의 역사 또한 반영한다². 이 검은 음료는 이슬람을 지나, 터키를 건너, 네덜란드와 같은 유럽인의 손을 지나 우리에게 전해졌다.
방금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커피 나무는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되고, 이후 빠르게 이슬람교 전체에 퍼져나가게 되었다.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유럽에도 이 향 좋고 맛 좋고 정신도 일깨워 주는 마법의 음료가 퍼져나가게 되었고 이를 열성적으로 수입하게 되었는데, 아라비아 반도 남쪽의 예멘에서는 이 커피를 독점적으로 키우며 엄격히 외부의 반출을 통제해 왔다. 이 예멘에서 나오는 귀중한 커피 열매는 모카라는 항구에서 엄격하게 통제되어 독점 거래되었기 때문에, 커피를 지칭하는 이름이 모카가 되었을 정도였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모카 번, 모카 라테의 모카라는 단어 또한 여기서 나온다, 그림 2).
그림 2. <모카 라떼>. 이는 본디 초콜릿 향이 나는 모카 항구에서 팔리는 커피 자체를 지칭하는 단어인, 모카에서 왔다. 농담처럼 말하곤 하는 목화와는 다르다...
당연히 이 엄청난 이윤을 남겨주는 귀중하고 값비싼 커피의 생산을 훔쳐 오고자 하는 시도를 많은 사람들이 하게 되었다³. 그것을 성공한 것이 바로 네덜란드였고, 이들은 예멘에서 훔쳐 낸 커피 묘목을 심어 널리 퍼트리게 되었으며, 이후 프랑스와 브라질과 같은 후발 주자들이 뛰어들고 커피라는 좋은 수출 상품의 가능성을 접한 유럽 열강들이 앞다투어 아프리카, 아시아의 식민지에 커피 농장을 늘려 가며⁴ 생산량을 늘리고 수출을 하였으며, 이것이 결국 현대의 커피 생산과 소비의 패턴을 빚어내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주로 커피를 생산하는 지역들은 과거 열강의 식민 지배 영역과 놀랍도록 겹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과거의 유산이 남긴, 또 하나의 흔적인 셈이다.
커피 그리고 근대
이렇게 유럽에 퍼진 커피는, 사회를 뒤흔드는 중요한 매체가 되었다. 고작 음료가 어떻게 그러할 수 있었을까? 이는 복합적인 이유들이 관여하는데, 첫 번째로는 주로 맥주와 같은 알코올성 음료가 차지하던 자리를 커피가 꿰찼기 때문이다. 곡물로 빚어 물보다 영양이 풍부하다고 간주되었던 (비록 저도수이지만) 맥주는 유럽에서 아침부터 널리 음용되었고, 알코올 기반의 음료가 커피로 대체되면서 맑아진 정신은 아마도 큰 사회적 변혁을 유도하였을 것이다(산업시대, 장기간의 노동을 위한 카페인이 포함된 차와 설탕을 생각해 보라). 두 번째로, 커피를 마시는 곳-커피 하우스, 또는 카페, 당연히 커피와 같은 어원에서 기원한-은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하는 곳이 되었으며, 이는 자유로운 사상과 정보의 교류터가 되었고, 이렇게 교류된 정보는 사람들을 계몽하고 사회 변혁의 바람을 일으키는 추동력이 되었다.
많은 사례들은 이를 증거한다. 예를 들어 파리의 카페 게르부아는 마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등의 예술가(바티뇰 그룹) 들이 회동하며 인상주의와 같은 근대적 미술의 한 획이 그어지는 장소였고(그림 3),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민중들의 장소도 커피 하우스였으며, 미국에 매기는 지나친 차 과세에 대해 반발한 보스턴 차 사건 또한 커피하우스에 모인 인사들로부터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머천트 커피하우스에서 모여 논의하고 교류하며 독립을 준비했었으며, 독립선언문을 커피히우스 앞에서 낭독하기도 하였다.
그림 3. <카페 게르부아>.
특히나 이러한 문화가 발달한 영국에서는 카페에서 주식 거래도 이루어지기도 했다. 조너선 커피하우스라는 카페에 모여 증권을 거래하던 사람들은 결국 그 장소에 런던 증권 거래소를 세웠다. 그뿐 아니라, 로이드 커피하우스라는 곳에서는 보험업자들이 모여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받으며 대화하던 곳이었는데, 이곳은 런던 금융가에 위치한 런던 로이드라는 보험 시장에서 여전히 그 명목을 이어가고 있다(그림 4). 멀리 해외로 갈 것도 없이, 혜화동에 가 보자. 그곳에는 이상을 비롯한 시인과 학자, 철학가들이 모여 논의하고 글을 적었으며, 젊은 운동가들이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카페가 있다(그림 5).
그림 4. 영국, 런던. 거킨(작은 오이, 정식 명칭은 30 세인트 메리 액스 빌딩) 앞에 로이드 빌딩이 보인다. 이 거대한 보험 거래소는 카페에서 출발했다.
이와 같이, 커피를 매개로 한 모임은 사회 변혁, 사상 개혁과 전파의 핵심 장소로 기능함으로써 과학, 기술, 예술, 경제를 불문하고 근대로의 전환을 이끌어 왔음을 볼 수 있다. 나는 가끔 카페에 가, 그곳이 조용히 공부하는 독서실과도 같은 곳, 혼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바뀐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일화들을 떠올리곤 한다. 사회 교류의 장이자, 정보의 공유터이자, 대화를 통해 혁신과 개혁을 주도하던 카페가 이제는 인터넷에 밀려나 변화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그림 5. 대학로,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모이던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카페, 학림다방⁵. 카페의 모습은 몇백 년간 빠르게 변화해 왔다.
이번에는 커피 한 잔에 담긴 역사를 그 이름을 따라가며 열매부터 근대화까지 알아보았다. 다음에는, 제목 그대로, <커피 한 잔에 담긴 것> 에 대해 알아보자. 그것은 바로, 아주 잘 알려진, 잠을 가시게 하고 정신을 깨우는 그 물질. 카페인이다.카페인은 어떤 물질이길래 우리의 뇌에 작용하여 정신을 깨우는가?어떻게 그렇게 할까? 커피는 왜 그런 물질을 만들까?다음 글에서는 이 질문들에 대하여 답한다.
미주 Endnote
1. '붉은' 열매라고? 커피가 붉은지에 대하여 의문을 품을 수 있겠다. 당연히 이는 커피 열매를 지칭하는 것인데, 잘 익은 커피 열매(이 열매를 커피 '체리' 라고도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붉은 빛을 띤다. 우리가 보는 커피 콩(정확히는 씨앗) 은 이 열매의 과육을 물에 씻어내거나 말려 벗겨낸 것을 보는 것이고(각각 워시드/내추럴 가공방식), 녹빛을 띠는 이 생두를 볶아야 갈색으로 변하며 향미가 추출될 수 있게 된다.
2. 어원학은 너무나도 흥미롭고 재미있는 분야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에 살아 숨쉬는 역사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원을 되짚어 가며 단어의 변천사를 되따라 가다 보면, 이를 기반으로 언어가 분기된 시점 또한 알아낼 수 있다. 예컨대, 게르만어, 그리스어,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등의 언어에서 놀랄 만한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비교언어학자들은 이와 같은 기법을 통하여 이 모든 언어들이 하나의 원시적인 언어, 원시인도유럽어(proto-Indo-European language, PIE)에서 갈라졌을 것이란 이론을 세울 수 있었다.
3. 이전의 글 (10) 의 4번 미주에서는 기밀로 부쳐진 누에 양식법이 퍼져나간 것에 대해서 다루면서, 이러한 누에가 남긴 우리의 역사 속 흔적들에 대해서도 알아본 적 있었다. 또한, 이슬람 세력이 통제하던 향신료의 운송권을 빼앗아 보고자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자 했던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의 시도들도 여기에 겹쳐 보이기도 한다. 역시 역사는 돌고 돈다.
4. 커피는 열대 작물이므로, 유럽의 기후에서는 자랄 수 없으므로 적당한 강수량과 기온이 유지되는 고산 지대가 필요했고(적도를 기준으로 남회귀선과 북회귀선을 지나는, 위도 23.5 도 내외의 띠 모양 지역에서 커피는 주로 재배된다. 이를 커피 벨트라고 부른다), 이에 여러 열강들은 자신들의 식민지 중 적절한 기후를 가진 곳을 찾아 커피를 대량으로 재배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수탈과 착취, 그리고 잔혹한 노예제도가 도입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당시 교황이 나서 노예제의 정당성을 공표하였을 정도이다).
5. 이하, 학림다방 홈페이지에서 발췌;
공간이 없으면 시간은 어디에 기억될 것인가
1956년부터 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천상병과 전혜린이 문학을 이야기하고 서슬 퍼런 독재의 시기에는 민주주의에 목말랐던 젊은이들의 고뇌가 있었고 송강호와 설경구가 연극 포스터를 찾으러 들렀던 곳,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대학로 학림다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