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도 다루었지만, 인간의 감각을 우리는 흔히 다섯 개로 나눈다². 이 중, 가장 소중한 감각은 무엇인가? 다르게 묻는다면, 하나의 감각만을 느낄 수 있게 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아마 여러분은 시각을 선택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선택을 내린다(80퍼센트 가량, Hutmacher, 2019, Front Psychol.). 우리의 옛 속담에도 ‘몸이 천냥이면 눈이 구백냥’ 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인간은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 동물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것은 신경과학 교과서에서도 다루어진다. 에릭 켄달의 기념비적인 교과서를 살펴보면, 시각 파트에서는 ‘인간의 세상에 대한 지각과 기억은 대부분 시각에 의존한다’ 는 문장을 찾을 수 있다.
시각의 처리 과정
시각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빛을 느끼는 것이다(그 간단한 생리학에 대해서는 2번 글에서 다루었으니 넘어간다). 전자기파의 일종인 가시광선이 우리 망막의 색소를 통해 전기 신호로 전환되고, 이 전기 신호는 시각 신경을 통하여 이동한다. 망막에서 뻗어 나오는 시각 신경은 우리 뇌 바닥면을 따라 깊숙히 들어오고, 뇌 중앙의 시상하부 아래에서 서로 교차하며(optic chiasm³) 뇌 중앙의 ‘정보 허브’ 인 시상의 외측 슬상핵(LGN) 이라는 핵을 거친다. 이후, 우리 뇌의 뒷부분에 위치하는 시각 피질로 전달되어 이것이 ‘의식적인 시각’을 만들어 낸다(그림 1,2).
그림 1. 인간의 시각 처리 체계. 각 안구의 좌측 시야는 좌반구애서, 우측 시야는 우반구에서 처리된다. 가운데의 시신경이 교차하는 X자 구조물이 바로 optic chiasm이다.
그림 2. 시각 피질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시각 정보를 처리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래쪽은 물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윗쪽은 물체의 위치나 이동에 대해 파악한다.
잠깐, 의식적인 시각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비의식적인 시각도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우리는 뇌 뒤의 시각 피질이 손상되면 의식적으로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외부의 시각 자극에 대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예시로, 실험 동물의 시각 피질을 제거하면 이 동물은 시각은 잃어버리지만,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쫒아 고개를 돌린다. 또한 빛이 가해지면 동공은 여전히 수축하고, 앞에 갑작스럽게 물체가 나타나거나 밝은 빛에 눈을 질끈 감는 등의 반사들도 남아 있다.
이러한 경우에 환자에게 ‘왜 눈을 감았어요?’ 라고 묻는다면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의 의식이 처리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⁴ . 또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하는 환자들에게 ‘이걸 잡아 보세요’ 라며 시각 자극을 제시하면, 그들은 ‘보지 못하지만’ 물체로 올바르게 손을 뻗는다! 또한 무작위로 배치한 장애물들을 잘 통과한다. 그럼에도 환자들은 ‘그저 운’ 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을 맹시 blindsight 라고 부른다. 눈 먼+시각 이니 정말 역설적인 단어이지만, 실제로 이러한 현상은 존재한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시각 피질로 전달되는 것 외에도, 상구 superior colliculus 라고 부르는 곳으로 지나가는 병렬 신경 회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왜, 빛인가?
차치하고, 이러한 시각에 우리는 왜 의존할까? 그것은 많은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다른 감각들은 시각만큼 정밀하고 예민하지 못하다. 아예 물리적으로 닿아야 하는 미각이나 촉각은 말할 것도 없으며, 후각은 대략적인 방향과 거리를 알려 주지만 당연히 정확치 못하다. 화학적 분자의 확산이니, 거리가 조금만 떨어져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청각도 마찬가지다. 소리는 그 파장이 크니, 쉽게 회절하게 되고 물체의 위치를 특정하기 어렵다. 간단히 생각해 보자. 눈을 감고 박수 소리만 들으면서 술래를 잡는 놀이를 생각해 보면, 청각을 통한 물체의 거리나 위치 파악이 얼마나 어려울지 이해할 수 있다⁵. 반대로 빛은 아주 세밀한 디테일까지 보여줄 수 있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관없이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러니 시각이 진화 과정에서 아주 유용한 도구로 선택되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쉽다.
그림 3. 인간의 시각 피질. 후두엽에 위치하는 시각 피질은 전체 피질 면적 중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잘 대변하듯, 인간 뇌에서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는 V1과 V2지역을 합하면 전체 피질 넓이의 20% 를 차지하며(그림 3), 원숭이 연구에 따르면 피질의 55% 가 시각 처리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한다. 그뿐 아니라, 머리에 위치한 여러 기능들(표정 짓기, 눈 움직이기, 시각과 후각, 촉각 정보 전달하기...) 을 담당하는 12쌍의 뇌신경 중 무려 4개가 눈과 관련되어 있다(시각신경(II)은 시각 정보를 전달하며 동안신경(III), 활차신경(IV), 외전신경(VI) 은 각자 눈의 움직임에 관여한다,그림 4)! 신체는 필요 이상으로는 배정하지 않는 자린고비 원칙을 따름에도 이렇게나 많은 비율을 시각 처리에 배정한다는 것은, 그만큼 시각이 중요한 감각 양상임을 시사한다.
그림 4. 우리의 몸은 척수에서 나오는 31쌍의 척수신경이 조절하지만, 목 위쪽은 뇌에서 바로 기원하는 12쌍의 얼굴신경이 조절한다. 이 중 4개가 눈에 할당되어 있다.
시각적 동물, 인간
그러나 사실, 포유류 중에서는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 가 독특한 편에 속한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시각이 그렇게 좋지 않고, 특히나 색각이 뛰어나지 않다. 이것은 포유류가 중생대에 수궁류로 갈라진 이후, 공룡들과 함께 살아가던 작은 야행성 동물들로부터 진화해왔기 때문이다(사실, 아직도 포유류의 65% 가량은 야행성이다,(그림 5)).
이들은 주로 밤에 활동하였으므로, 다양한 색각을 발달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개, 고양이, 쥐, 소를 비롯한 비인간 포유동물들은 색을 훨씬 덜 다채롭게 느낀다(그림 6). 반면, 영장류는 주로 나무 열매 등을 주식으로 섭취하였는데, 그에 따라 열매의 색을 명확히 구분하는 데에 선택압이 있었고 그에 따라 돌연변이로 생겨난 새로운 수용체를 통해 3색각을 얻었으며, 이는 인간(을 비롯한 마카크, 오랑우탄, 고릴라 등의 구세계원숭이류)에게 화려한 색채를 선사했다⁶.
그림 5. 동물군에서 색각의 진화를 나타낸 도표. 포유류의 조상인 수궁류(therapsids) 에서 여러 돌연변이가 겹치며 다양한 색각이 형성되었다.
그림 6. 개나 고양이 같은 다른 포유류들은 인간으로 치면 적록 색맹인 셈이다. 이들은 광수용체의 차이로 붉은색과 녹색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⁷.
길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인간은 시각을 중요히 여기는 생명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인간의 판단에는 시각이 큰 역할을 한다.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시각 우세 효과visual dominance' 라는 현상인데, 이것은 시각과 다른 감각이 반대되는 정보를 전달할 경우 시각 정보가 우선시되는 것을 의미한다. 잘 정립된 현상으로는 콜라비타 효과가 있으며, 좀 더 간단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현상으로는, 화이트 와인에 붉은 색소를 타면, 와인 전문가들도 그것을 레드 와인으로 느낀다는 것이 있다. 분명 그 속의 맛을 내는 향미 물질들은 그대로인데도 말이다(Morrot, 2001, Brain and language).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시각' 의 관점에서, 현미경과 망원경이라는 두 개의 도구가 인간의 과학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살펴본다.
미주 Endnote
1. 흥미롭게도, 인간의 오감은 물론이요 감각이라는 개념을 초월한 신이라는 대상에 대해서도 '보기 좋다' 는 표현을 우리는 서스럼없이 사용한다. 인간이 가지는 시각적 집착의 투사의 결과일 테다.
2. 이미 우리는 오감을 넘어서는 수많은 감각들에 대하여 다루었다. 글 15번, 2번 미주를 참조하라.
3. 이 해부학적 구조는 말 그대로 서로를 교차하며 지나가는 x 자 모양을 가지고 있다. Chiasm 이라는 말이 애초에 교차한다는 의미인데, 이와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로 그리스 문자 카이 chi 가 있다. 우리가 흔히 수학에서 미지수로 사용하는 x 같이 생긴 그 문자다. 염색체가 교차되는 과정의 x 자 형태도 키아즈마라고 부르고, 문학의 교차대구법도 영어로 키아즈머스chiasmus 라고 부른다. 이 곳을 지나가는 특이한 신경 교차 구조 때문에, 이곳이 손상되면 시야의 바깥쪽은 안 보이고 안쪽만 보이는 반맹 증상이 나타난다.
4. 흔히 인류가 겪은 세 가지 충격으로 엮어 부르는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1500년대의 코페르니쿠스가 가져온 인류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재발견, 둘째는 1859년 다윈이 불러온 인류가 독특하고 신성한 피조물이 아니라는 발견, 그리고 마지막으로 1900년대 지그문트 프로히트의 우리의 의식마저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무의식의 발견이 그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명확히 의식이 곧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수많은 심리학과 생물학 연구는 그것이 아니라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5. 물론 이것을 훌륭하게 해내는 생명체도 많다. 대표적으로 박쥐가 있다. 이들은 초음파를 통한 반향정위를 통해, 먹잇감의 속도와 크기를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다.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인간의 신체 구조가 시각에 특화된 것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각은 그 물리적 특성(짧은 파장) 으로 인해 훨씬 더 세밀한 구조를 보여줄 수 있다. 박쥐가 초음파를 통해 글자를 읽을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6. 이는 돌연변이를 통한 새로운 광수용체의 등장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인간은 RGB 세 개의 빛을 조합하여 색상을 인지한다. 이것은 빨강, 녹색, 파랑을 인지하는 세 가지 광수용체인 L, M, S 수용체를 가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S과 M, 두 가지 수용체를 가지는 반면 영장류는 M 수용체가 중복 및 돌연변이를 일으켜 L 형으로 변화하게 되고, 유전자의 교차를 통하여 이 세 수용체를 모두 가지게 되었다. 이 한 가지가 늘어남으로써 얻은 추가적인 색각은 얼마나 될까? 간단한 예시로, 컴퓨터가 사용하는 8비트 RGB색상은 32*32*32=32,768 개의 색상을 표현할 수 있는데, 여기서 R을 빼면 32*32=1,024 개의 색상 표현이 가능해진다. (물론 당연히 컴퓨터와 생명체는 다르지만) 세상이 32배 단조로워지는 셈이다.
7. 사실은 개가 적록 색맹이라는 것은 인간 기준의 관점일 뿐이지만. 6번 미주에서 말했듯, 그들은 빨강을 인지하는 수용체를 가져 본 적조차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곤충들에 비해 인간은 '자외선 색맹' 일 테다. 재미삼아, https://dog-vision.andraspeter.com/tool.php 에서는 사진을 업로드하면 '개가 보는 색' 으로 바꾸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