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벌이 없었다면, 인류는 꽃을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벌이 없었다면 피어나는 꽃들이 그토록 화려하지도, 향기롭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어 핸슨, <벌의 사생활> 중
이전 글에서, 우리는 꽃이라는 구조물이 생겨나 얼마나 급진적으로 생태계의 빈 틈을 채웠는지를 살펴보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꽃이 빠르게 분화하여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이번엔 그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
식물과 동물의 왈츠
이에 대해 골머리를 앓던 과학자들은, (물론 당연하게도 다양한 대안 가설과 설명이 있고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지만) 곤충에게서 그 해답을 찾았다. 꽃이 그토록 급진적으로 진화하고, 성공적으로 퍼져나간 까닭은 식물과 동물의 왈츠, 공진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림 1. 벌의 진화사. 벌은 육식성 말벌류와 1억 2천만 년 전 가량 갈라져 나왔다. 우리가 제일 친숙한 꿀벌(Bombus 속)은 꿀벌과(Adidae) 에 속한다.
왈츠의 상대를 찾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맑고 따뜻한 아침날 꽃을 보면 거기엔 으레 손님이 있곤 하다. 꿀벌이다. 이런 꿀벌은 언제 생겨났을까? 약 1억 2천만-1억 5천만 년 전이다(그림 1). 본디 꿀벌의 조상은 지금의 말벌과 비슷한 육식성 포식자였으나,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이들 중 일부는 잡기 힘든 곤충이 아닌 식물로 그 식이를 바꾸게 되었다¹. 단백질이 풍부한 꽃가루를 모아 그것으로 먹이를 대신하게 되었는데, 꽃은 이렇게 변화한 벌의 식습관을 통해 바람이나 물을 매개로 퍼트리던 자신의 꽃가루를 운반해 줄 운반자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림 2. 많은 꽃은 인간에게는 단색으로 보이지만, 벌을 비롯한 곤충들은 볼 수 있는 자외선으로만 인지 가능한 패턴을 가진다². 이 패턴은 꿀과 꽃가루의 위치를 드러낸다.
이에 꽃은 벌에게 더 잘 보이는 화려한 색상과 달콤한 꿀냄새,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자외선 시각을 통해 곤충들이 볼 수 있는 패턴을 통해 벌이 더 쉽게 도달할 수 있도록 하였고(그림 2), 벌은 이러한 '호의' 를 거절하지 않았다. 꽃가루와 꿀을 제공하는 꽃에 기꺼이 앉아 채집하며, 꽃과 꽃 사이를 왕복하며 그들의 수분을 도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서로가 서로에 맞추어 변화하는 공진화(co-evolution) 을 통해, 벌과 꽃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러한 왈츠를 통해, 신생대는 가히 '꽃의 승리' 로 대표되게 되었다³.
꽃과 벌의 줄다리기
물론, 당연하겠지만 꽃도 벌도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자연은 이기적이다. 진정한 이타적 행동은 극히 일부의 사례에서만 관찰할 수 있을 뿐이다). 꽃은 자선 사업가가 아닌지라, 정확히 벌을 간신히 꾈 만큼의 꿀을 제공할 뿐이다. 굳이 필요 이상의 꿀을 만드느라 에너지를 소모해, 남 좋은 일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벌은 아주 부지런하게 움직이는데, 벌 한 마리는 시속 30킬로미터에 달하는 속도로 몇 킬로미터에 달하는 둥지-꽃밭을 수십 번씩 왕복하며, 한 번의 왕복에서 50-100 개 이상의 꽃을 방문하며 하루에도 5천여 개의 꽃을 수정시킨다.
그림 3. 벌을 닮은 꽃, 벌 난초(Ophrys apifera). 수컷 벌들은 암컷 벌을 꼭 닮은 이 꽃에 꾀여 수분을 해 준다.
일부는 이보다 더욱 영악한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난초들 중 약 30%는 독특하게도 암컷 벌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꽃을 가지고 있어(심지어 벌이 내뿜는 페로몬을 모사하여 일반적인 벌보다 훨씬 높은 농도로 분비한다), 교미를 원하는 수컷 벌을 꾄다(그림 3). 암컷 벌로 착각한 수펄이 꽃에 달려들면, 온 몸에 꽃가루를 묻히고 다음 '암컷 벌' 에 달려들 때 그 꽃가루를 전달하는 것이다.
또한, 강릉요강꽃과 같은 몇몇 꽃들은 벌을 유혹해 함정과 같은 공간으로 빠트리고, 그곳에서 벌이 윙윙대며 몸부림치는 동안 온 몸에 꽃가루를 묻히도록 만들기도 한다. 놀랍게도, 2021년의 최신 연구에 따르면(Arnold et al., 2021, current biology) 일부 식물들은 벌을 중독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이 카페인에 중독되듯이, 카페인을 생성하는 몇몇 식물들은 꽃꿀에 카페인을 섞어 벌이 그 꿀에 중독되도록 한다. 실제로 벌들은 이런 꽃꿀을 더 선호하고, 잘 기억하는 현상을 보였다⁴.
공진화가 빚어낸
식물은 동물처럼 움직이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진화가 빚어낸 구조들은 놀랍기만 하다. 예컨대, 꽃가루가 아무 때나 터져나가지 않도록 토마토와 같은 식물의 꽃가루는 350헤르츠 정도의 진동이 가해졌을 때만 방출된다. 이 진동은 무엇일까? 예측할 수 있겠지만 벌의 날갯짓에 해당하는 진동이다. 어떤 꽃들은 정밀하게 조절된 수술과 암술의 위치를 통해, 벌이 들어올 때 등을 정확히 톡 건드리게 되고, 이를 통해 정확한 수분을 매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림 4. '다윈의 난초', 안그레쿰 세스퀴페달레. 다윈은 꽃만 보고 이 꽃을 특이적으로 먹고 사는 곤충의 존재를 예측했다. 결국, 그 곤충은 다윈 사후 발견되었다.
이러한 동물과 꽃의 공진화를 통한 구조 합치는 너무나도 정확하게 이루어져 있는데, 이에 대한 좋은 예시 중 하나는 다윈의 난초, 마다가스카르산 안그레쿰 세스퀴페달레이다. 이 꽃은 너무나도 독특한, 28센티미터나 되는 꿀주머니 속에 꿀이 들어있어 접근도 하기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다윈은 이 꽃을 보자마자 마다가스카르에는 28센티미터의 주둥이를 가진 매개 동물이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예측은 다윈 사후 21년이 지나, 마다가스카르에서는 크산토판박각시나방이라는 나방 종이 발견되면서 확인되었다. 이 나방의 주둥이는 기이할 정도로 길어 27센티미터에 달했다.
인간의 식탁, 그리고 꿀벌
이러한 꿀벌은 꽃에게만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에게도 꿀벌은 소중한 존재인데, 인류가 먹는 수많은 채소와 과일들이 벌에 의해 수분이 매개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벌 없이는 더 이상 이런 음식들을 맛볼 수 없게 되거나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과일과 채소들 중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아몬드를 비롯한 견과류, 사과, 딸기, 수박, 커피, 오이, 호박 등이 있다⁵. 몇몇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 식품 생산의 3분의 1이 꿀벌에 의존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로 꿀벌은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벌은 큰 위기를 겪고 있다. 2006년부터 보고된 군집붕괴현상이 그것인데, 뚜렷한 이유 없이(지구온난화, 전자파, 살충제 등이 원인으로 꼽히나 명확한 인과 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국내에서는 응애와 같은 기생성 해충 또한 큰 영향을 준다. 이 중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는, 이른 개화와 큰 일교차를 유도하여 꿀을 채집하러 나간 일벌들이 큰 일교차에 동사하여 돌아오지 못하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대량으로 벌 군집이 사멸하는 현상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겨우 몇 달 전 우리 나라에서도 양봉 업계에서 대규모 벌이 사멸하며 큰 뉴스거리가 된 적이 있다. 이 때 사멸한 꿀벌의 개체수는 약 40여 만 통, 60억 마리다. 국내에서만 몇 달 사이 60억 마리의 꿀벌이 죽은 것이다.
이와 같은 벌의 사멸 때문에 벌통을 빌리는 값이 두 배 가까이 크게 올랐다는 것이 뉴스거리가 되었던 적이 있다. 나를 포함한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민들에겐 익숙하지 않을 이야기인데, 이것은 앞서 주구장창 이야기한 벌의 수분 능력에 연관되어 있다. 양봉업의 큰 수입원 중 하나가 이러한 벌통을 빌려주는 것인데, 과수원 등에서 벌통을 빌려 벌을 풀어주면 이 벌들이 꽃 사이를 움직이며 수분을 담당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수분이 일어나지 못한다면 아무리 튼튼한 나무여도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과수원에게는 큰 손해가 되므로 벌을 이용해 효율적인 수분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림 5. 인간이 직접 과실나무의 꽃을 수분해 주는 모습. 이들은 '인간 꿀벌' 인 셈이다.
우리 나라는 아직 이 정도는 아니지만, 이웃 나라 중국에서는 벌이 너무나 크게 줄어 자연적 수분이 어려워질 정도여서, 인간이 직접 수분을 하기도 한다. '인간 꿀벌' 이다. 이들은 나무 위로 사다리를 통해 올라가, 깡통에 모은 꽃가루를 막대기 끝에 묻혀 꽃에 톡톡 두드린다(그림 5). 이렇게 수백 개의 꽃을 일일히 수정시킨다. 이들의 인건비가 자연스레 벌이 제공하는 노동보다 비싸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벌이 제공하는 수분은 노동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217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벌은 사람보다도 꽃을 잘 이해하고 있는 훨씬 효율적인 수분자다. 앞서 여러 번 언급한, 1억 년 간의 왈츠 파트너라는 것을 고려하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이와 같이, 벌은 우리의 풍요로운 식탁을 지지하는 기둥 중 하나다(말을 빌리자면, '세상에 인간은 없어도 되지만, 벌은 없어선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윙윙거리는 꿀벌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매년 5월 20일은 UN에서 지정한 국제 벌의 날이다. 며칠 지나긴 했지만, 다음에 꽃을 보며 즐길 때는 벌의 날을 기념하는 마음에서 꽃 옆의 벌에게도 감사의 눈길을 던져 보자.
미주 Endnote
1. 재미있게도, 식물을 먹는 꿀벌들 중 일부는 다시 육식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시체매 벌vulture bee는 시체를 먹고 사는 시체매처럼 썩은 고기를 먹고 사는데, 이들의 내장 미생물군총은 여러 유해균들을 먹어도 문제가 없도록 조성되어 있다고 알려졌다(L. Figueroa et al., 2021, American society for microbiology).
2. 이러한 자외선 패턴은 플라보노이드와 같은 여러 물질들로 인해 만들어진다. 인간은 약 380 나노미터의 보라색 빛까지 감지할 수 있는 반면, 벌은 300나노미터에서 600 나노미터 파장대의 빛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광수용 능력의 차이로 인간은 보지 못하는 자외선 패턴을 벌을 비롯한 곤충들은 인지하게 된다.
3. 상술했듯, 물론 이에는 여러 대립 가설들이 있다. 나비나 딱정벌레 같은 다른 곤충들이 이미 벌 이전에도 수정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2010년대 들어 발표된 여러 고고학적 연구는 꽃의 원시격 조상들은 사실 1억 5천만 년보다도 훨씬 이전에 나타났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연구조차도 첨예한 대립 상태긴 하다.
4. 물론, 벌들도 순순히 당해 주지만은 않는다. 보존생물학자이자 벌과 꽃에 대한 책을 쓴 소어 헨슨에 따르면 벌은 때때로 꽃의 아래쪽을 바로 뚫고 들어가 꿀만을 쏙 가져가곤 한다고 한다. 국화과 식물과 같은 일부 식물들은 꽃 밑면을 두껍게 감싸는 겹친 꽃받침 구조를 갖는데, 이것은 벌이 이렇게 꼼수로 꿀을 가져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5. 더 자세한 목록에 대해서는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crop_plants_pollinated_by_bees 를 참조. 벌 뿐 아니라 나비와 같은 다른 곤충들 또한 수분을 돕고, 새에 의해 수분이 일어나는 것들도 있으므로(조매화) 꿀벌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식물마다 다르다. 그러나, 아몬드와 같은 견과나 수박 등은 거의 꿀벌만이 수분을 도우므로, 꿀벌이 사라진다면 이러한 식물은 우리의 식탁에서 사라지거나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