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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Nov 13. 2022

(35) 마음을 비추는 거울, 얼굴

하윤의 Resolution

얼굴은 마음의 그림이며, 눈은 그 해석자라

-키케로



신분증에 빠지지 않는 것은?


여권,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아니면 학생이라면 학생증. 이들의 공통점은 신분을 증명하는 '신분증' 이라는 것이다. 다른 형태적인 공통증은 무엇인가? 전 세계의 수많은 국가에서 신분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사진이다. 그것도, 얼굴의 사진을 담는다(그림 1). 행간에 담긴 의미를 정리하자면, '얼굴은 인간의 신분을 증명한다'. 실제로 인간은 얼굴에 큰 의미를 둔다. 공공 장소에서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미주 1) 몇 안 되는 신체 부위이기도 하다.


그림 1. 우리의 신분을 증명하는 신분증에는 사진이 빠지지 않는다. 머리에 쓴 국수건지개가 왜 나온지 궁금하다면 미주 1을 참고.


수많은 인간들은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하여 신경쓰며, 이것은 거대한 산업을 낳고 또 존속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림의 '초상화' 에서 제일 주요하게 묘사되는 신체 부위는 말할 것도 없이 얼굴이다(그림 2).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모양을 담은 그림' 임에도, 얼굴이 가장 중요하게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 얼굴이라는 구조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미주 2). 하다 못해 옛 전쟁터에서도, 누군가를 처치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목'을 가져오지 않았던가? 소셜 네트워크의 큰 획을 그었던 페이스북, 교류를 위한 얼굴 사진에 간단한 소개를 적은 책자에서(말 그대로, face book)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림 2.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 미주 2를 참고하라. 여담: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 그림을 뒤틀어 다른 그림을 그려냈다. <인노첸시오 10세 초상화 연구> 를 찾아볼 것.



얼굴에 담긴 것


내가 관상법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 핵심적 선언문은 동의할 만 하다: 우리의 얼굴에는 실로 다양한 정보가 담긴. 우리는 흘긋 얼굴을 스치듯 1초만 보아도(우리가 익숙한 사람이나 유명한 사람을 알아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50밀리초로, 4분의 1초에 불과하다!; Thorpe et al., 1999, Nature) 그 사람에 대한 무수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얼굴형을 통해서는 성별을 알 수 있고, 일일히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얼굴의 특질을 통하여 (과학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인종, 즉 유전적 배경을 알아볼 수 있다(우리는 얼굴만 보고 그들의 국가를 곧잘 맞추곤 한다).


그림 3. 얼굴의 형태에 관여하는 수많은 유전자들. 이들의 발현이 정확히 올바른 비율로 나타나고, 좋은 환경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소위 말하는 '예쁜 얼굴' 이 된다.


우리는 피부, 주름, 홍조, 머릿결을 통해 타인의 나이와 건강 상태를 짐작할 수 있으며, 근육의 수축 상태, 즉 표정을 보면 상대방의 감정적 상태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다(미주 3). 상대방의 시선을 보면 그들이 무엇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는지 알아챌 수 있다. 이 외에도 얼굴에는 우리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처리하는 수많은 정보들이 아로새겨져 있다(그림 3). 단 1초의 얼굴 마주침으로 우리는 그들의 성별, 나이, 유전적 정보, 감정과 기분 상태, 집중과 관심의 대상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간단한 예시로 '눈치를 보다' 는 관용어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는 눈의 형세를 살핀다는 뜻이다. 눈이 어디를 향하는지, 어떤 형태를 하고 있는지를 통해 타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기에 이러한 관용어구가 탄생했을 것이다). 얼굴은 그야말로 우리의 신분 증명서로 적절하다고 할 수 있겠다!



눈길을 잡아끄는eye-catching


이것이 아마도 우리가 그토록 얼굴에 끌리는 이유일 것이다. 보통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한번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면밀히 그리고 내성적으로 점검해 보라. 우리의 시선은 놀라울 정도로 얼굴에 끌린다. 이것은 시선 추적 프로그램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미주 4), 얼굴이 포함된 그림이나 이미지를 제공하고 시선이 어디를 훑는지를 살피면 그 답은 명백하다. 우리의 눈은 얼굴을 면밀하고 길게 훑어 살핀다(그림 4-5; 미주 5). 인지심리 용어로 이것을 '현저성saliency' 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해 무언가가 우리의 시선과 관심을 잡아 끌어 무시하기 쉽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을 현저성이 있는 자극이라고 부른다. 얼굴은 무척이나 현저성을 띠는 자극이기에 우리는 실제 얼굴이 아닌 것을 얼굴로 매우 쉽게 착각하거나, 적어도 얼굴처럼 인식하곤 한다.


그림 4-1.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마지막 만찬>. 쉬어간다고 생각하고,  이 그림을 10초 정도만 조목조목 살펴보라.
그림 4-2. <마지막 만찬> 을 볼 때의 시선. 위에서 당신의 눈길이 머문 곳과 대조해보라.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림 5. 일반인과 자폐증 환자의 시선 차이. 일반인(좀 더 과학적인 용어로는 신경전형자)은 두 눈을 매우 강하게 응시하는 반면, 자폐증 환자는 그렇지 않다. 미주 5를 참고하라.


이러한 것을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고 부르는데,좋은 예시는 자동차의 앞 조명등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고 '마치 얼굴인 것처럼' 생각한다(그림 6). 양 옆의 전조등과 라디에이터의 미묘한 구성과 형태를 보고 우리는 심지어 그 '얼굴' 의 특징을 감별한다. 이모티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_- 나 >_<, :) 와 같은 너무나 간단한 선분 자극에서 얼굴을 그리고 표정을 '읽는다'. 한때 짧은 논란이 되었던 화성의 얼굴 모양 바위도 좋은 예인데, 우리는 우연히 만들어진 음영과 굴곡에서 얼굴을 찾는다.


그림 6. 전혀 얼굴이 아닌 것에서 우리는 얼굴을 본다. 벽의 희미한 얼룩에서, 토스트가 탄 자국에서. 그것은 우리가 얼굴 찾기에 매우 민감하게 조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분증으로써의 얼굴: 어떻게 그리고 왜


다시 처음의 꼭지로 돌아가자. 우리의 얼굴은 우리가 서로를 알아챌 수 있도록 하는 신분증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 잠깐 질문을 던져 보자. 우리가 길거리에서 만나는 비둘기, 야생의 유인원 집단, 물고기, 가축들은 인간만큼 다양한 얼굴의 형태를 가지지 않는다(그림 7). 어떻게 인간은 이들에 비해 놀라울 만큼 다양한 얼굴의 특성을 가지게 되었는가? 인간 뿐 아니라 염소, 말, 개와 같은 종들은 얼굴을 통해 서로의 정체(identity)를 인지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우리만큼 다양한 얼굴 특징을 갖지는 않는다(미주 6).


그림 7. 펭귄 집단. 이들은 그 유전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구분이 어려울 만큼 비슷하게 생겼다. 인간의 얼굴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인간의 얼굴 다양성이 진화 과정에서 모종의 선택압을 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어떠한 특질이 예상되는 평균치보다 높다면, 진화 과정에서 그쪽으로 몰아붙이는 모종의 힘이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최근의 연구는 이러한 가설이 맞을 가능성을 강하게 지지하는데, 인간의 얼굴 형태에 관여하는 수십 개의 유전자에 대한 변이를 여러 국가의 사람들에서 확인한 결과, 이들은 예상되는 평균 변이보다 높은 변이를 보였다(Sheehan et al., 2014, Nat. Comm). 일상적인 용어로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의 얼굴은 다양해지도록 진화했다. 이것의 장점은 무엇이었을까?


그림 8. 백인우월주의 단체 쿠-클럭스-클랜, 또는 KKK단. 이들은 전신과 얼굴을 가리는 망토를 착용했는데, 이는 익명성을 보장함으로써 폭력을 손쉽게 행사하게 하였다.


수많은 가설이 대립하고 있으며 이것을 직접적으로 밝힐 방법은 없지만, 얼굴을 통한 개인 신분 인식이 가능해진 것은 인간 사회에서 모종의 이익을 주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어렵다면, 이렇게 주어진 장점을 떠올려 보는 대신, 우리 사회에서 개인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의 해악을 상상해 보자.


(1) 우리는 개개인을 인식하지 못하므로 어떠한 장기적 사회적 관계를 맺기 어려워질 것이며(따라서 육아와 출산이 크게 저하될 것이다),

(2) 이에 따라 집단의 협동이 어려워지고 집단적 활동을 하기 어려워질 테고(따라서 문화의 발전과 존속이 크게 위협받을 것이다),

(3) 또한 익명성 뒤에 숨어 부도덕한 행위를 손쉽게 저지르는 자가 많아지며 도덕과 법치 체계가 붕괴될 것이다(평생을 폭력성의 연구에 대해 바친 필립 짐바르도는 익명성과 폭력성의 긴밀한 연관에 대해 보인 바 있다: 탈개인화deindiviualization 키워드를 참고할 것; 그림 8).


인간과 같은 복잡한 사회를 구성하는 생물에게 있어 서로의 정체를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은 이만큼 중요한 것이다(얄팍한 수미상관으로 끝맺자면, 그래서 우리는 신분증에 얼굴을 새겨 넣는다).




이번 글에서는 얼굴이 어떻게 우리의 신분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살펴보며, 동시에 얼굴 인식에 대하여 아주 얕게 살펴봤다. 얼굴은 개인적으로 내가 아주 흥미롭게 여기는 주제 중 하나인데, 따라서 할 말이 꽤 많을 듯 하다! 관련된 여러 주제들을(연속적이지 않더라도) 하나씩 다룰 텐데, 얼굴의 진화 / 얼굴의 인식 / 표정과 감정 / 얼굴의 아름다움 정도로 최소한 4개 정도의 글은 더 다룰 생각이다(정확히 언제 연재될지는 나도 모른다). 앞으로 누군가의 얼굴을 살펴볼 때, 오늘의 얕은 지식이 종종 떠오르길 고대한다.



미주 Endnote


미주 1. 일부 종교적 국가들은 예외다. 대표적으로 여성의 안면 노출을 꺼리는 이슬람 국가들이 그렇다. 잘 알고 있듯 이러한 문화권에서는 부르카나 니캅과 같은 의복을 통하여 얼굴의 노출을 막는다. 이와 같은 문화적 차이는 갈등을 빚곤 하는데, 대표적으로 신분증 사진을 찍을 때 히잡과 같은 종교적 의미를 담은 의복으로 신체의 일부를 가려도 되는지에 대한 논쟁이 프랑스에서 불거지기도 했었다. 관련된 재미있는 사례로, 미국 메사추세츠에서는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교(FSM교)의 종교적 상징으로 인정받은 국수 건지개를 머리에 쓰고 신분증 사진을 찍은 사례가 있다.


미주 2. 우리는 요즘 세상에서, 온갖 필터와 보정 기능을 이용해 카메라에 담긴 우리의 모습을 미화한다. 우리만 그러하였겠는가?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군주와 권력자들은 자신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를 의뢰하였다. 이것이 과연 그들의 올바른 모습을 그대로 담았을까?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1660년대 당시 교황인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화를 그렸다(유명한 작품인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 이 그 작품이다, 로마의 도리오 팜필리 미술관 소장).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인 이 작품을 보고 작품의 대상이었던 교황이 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너무나 진실되구나! (Troppo vero!) 우리가 사진관에서 사진을 보며 말하는 것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는가(저기, 너무 사실처럼 찍혔는데요..)?


미주 3. 표정은 감정 상태를 놀라울 만큼 투명하게 드러내는 수단 중 하나이다. 이것은 단순히 꾸며 낸 표정을 우리가 그리도 쉽게 간파하는 이유이며, 또한 배우가 쉽지 않은 직업인 이유이다. 관련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로 자세히 다루어보자.


미주 4.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인간은 망막의 아주 좁은 범위인 중심와fovea에 맺힌 상만을 고해상도로 판별할 수 있고-이곳에는 주변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밀도의 망막 광수용체가 존재한다, 따라서 관심있는 대상을 정확히 중심와에 위치시키도록 눈을 움직이기 때문에 그렇다(우리는 시선의 정중앙만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 아니라고? 시선을 몇 센티미터만 옆에 고정시키면 글을 전혀 판독할 수 없다. 믿을 수 없다면 시도해보라. 모바일 기준으로, <미주 4> 에 눈을 고정하고 <미주 5> 의 내용을 한 줄이라도 읽으려 시도해 보라. 만일 읽을 수 있다면 댓글을 남겨 주시라. 소정의 상품을 제공하겠다). 따라서, 눈의 동공을 살피면 이들의 시선이 와 닿는 곳을 확인할 수 있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독수리와 같은 동물들은 중심와가 눈마다 두 개 존재한다.


미주 5. 그 중에서도, 특히나 우리는 눈을 주로 응시한다. 아마 다른 글에서도 다루겠지만 타인(아니면 타 동물) 의 시선을 인지하는 것이 생존 그리고 사회적 활동에서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나 중요한지 우리의 뇌에는 아이 컨택에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신경 세포도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특질을 이용해 영아의 자폐스펙트럼장애(자폐증)를 예측할 수 있다. 자폐 영아는 얼굴에서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저 별 특징 없는 무언가를 보듯이 슥 지나가버리고 만다. 더불어 이들은 부모의 미소를 보고도 웃지 않는다. 왜인가? 슬프게도 37명 중 한 명이 가질 정도로 흔한 자폐증의 명백한 원인이나 치료법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많은 연구가 그렇듯, 이에 반하는 증거도 몇몇 존재한다)


미주 6. 개나 집고양이와 같은, 아주 오랜 기간 사육되어 온 동물들은 다소간 예외가 될 수 있다. 이들은 야생의 타 동물에 비해서는 더 높은 안면 다양성을 보인다(간단히, 우리는 자신의 반려동물을 얼굴을 보고 잘 구분할 수 있다!). 이것은 인류가 오랜 기간 행해 온 선택적 교배에 따른 특질일 것이다. 실제로 개와 같은 반려동물의 얼굴은 귀엽고 독특한 특질을 위하여 장기간 선택적 교배가 이루어졌으며, 퍼그와 같은 일부 견종은 이로 인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준이 되었다: 구글에 pug skull 을 검색해보라. 반복된 교배로 그들의 두개골은 뇌를 담기도 버거울 만큼 찌부러졌고, 인간이 보는 귀여움을 위해 그들은 열사병 위험성, 척추 이상, 호흡의 불편함을 감내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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