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는, 술에 관한 짧은 이야기 단락들을 모아서 살펴보도록 하자(따라서, 글 전체는 비교적 두서없이 이어질 수 있음을 양해바란다. 또한 내가 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므로, 이번 글에서는 많은 인용문을 추가하고 객관적 기술을 하고자 하였다).
이전 글에서 다루었듯, 우리는 진화적으로 아주 오랜 시간 전부터 에탄올에 노출되어 왔으며, 이는 진화가 우리의 신체에 다양한 에탄올에 대한 반응을 유도하기 충분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두괄식으로 먼저 말하자면, 술은 이전 글에서 다룬 신경세포에의 작용뿐 아니라, 우리의 혈관을 확장시키고, 식욕을 돋구는 등의 생리학적 작용을 하며, 농도에 따라 상반되는 작용을 한다. 또한, 큰 사회적 문제가 되는 알코올 중독에서 알아볼 수 있듯, 우리는 술에 중독된다.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폭넓게 다루어 보자.
1. 술과 혈관
우리는 술을 마시면 덥다고 느낀다. 실제로 높은 도수의 술을 홀짝이면 몸이 금세 후끈해지며, 땀이 나기도 한다. 추운 겨울 밤이어도, 술에 얼큰히 취하면 추위를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스위스의 설산에서 실종자를 구조하는 구조견들은 목에 위스키나 브랜디를 담은 통을 낀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그림 1; 실제 역사적으로 술을 들고 다녔는지에 대해서는 아마 사실이 아니며 와전된 소문일 가능성이 크지만) 이 또한 독한 술이 추위를 견디는 데에 좋다는 ‘상식’ 때문일 테다.
그림 1. 스위스의 세인트 버나드. 이들은 산악 구조견으로 활동한다. 목에 달린 브랜디 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스스로의 신체를 속이는 것이나 다름없는데(이것은 멘톨이 차가운 느낌을 주고, 캡사이신을 바른 피부가 뜨겁게 느껴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전 글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그것은 술이(알코올 그리고 분해산물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Guivernau et al., 1987, J Pharmacol Exp Ther) 피부 근처의 혈관을 확장시키고 그에 따라 피에서 열이 빠르게 방출되며 피부가 뜨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실제로, 피부의 온도는 상승하게 된다, 미주 1). 그러나 이는 당연히 체열을 빠르게 내보내고 결과적으로 생존에 중요한 심부 체온을 낮추게 되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은 체온 유지에는 오히려 나쁜 역할을 한다(미주 2).
2. 술과 식사
또한, 수많은 인간 문화에서 식사에는 으레 술을 곁들이곤 한다(그림 2; 흔히 반주한다고 말하는 그것). 서양에서는 특히나 식사를 시작하기 전 입맛을 돋우는 식전주(아페리티프; aperitif, ‘연다’ 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왔다) 로 식사를 시작해 식사 후의 식후주(다이제스티프; digestif, 말 그대로 소화를 돕는) 로 마칠 만큼 식사와 음주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식전주를 먹는 습관은 최소한 5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추측이지만, 발효된 과일을 먹던 원숭이의 식사 습관에서 그대로 내려온 문화적 전통이지 않을까 싶다.
그림 2. 식전주는 주로 쌉쌀하고 단맛이 적어 입맛을 돋구는 역할을 한다. 사진은 이탈리아의 식전주 아페롤 스프리츠.
이러한 음식에 술을 곁들이는 반주는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을 통하여 설명될 수 있는데, 알코올은 음식의 섭취량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Yeomans et al., 2003, Curr Opin Clin Nutr Metab Care). 반주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비교해 보면, 술을 곁들이는 경우는 약 320킬로칼로리나 음식물을 더 섭취하는 경향이 있다(Kwok et al., 2019, BRIT J NUTR). 사실 통계를 보기도 전에, 우리가 술집에서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더 많은 (평소라면 먹지 않았을) 간식거리나 음식물을 먹는지를 생각해 보자.
이러한 원인은 알코올이 우리의 음식 섭취를 관장하는 시상하부에 작용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대표적으로 시상하부의 Agrp 라고 하는 유전자를 발현하는 신경세포는 이들이 음식 섭취량(배고픔) 을 조절한다고 알려져 있다(미주 3). 이러한 신경 세포들은 알코올을 먹으면 활성화되며, 이에 따라 우리가 알코올을 먹으면 과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Cains et al., 2017, Nat. Comm). 대개 영양소 부족보다는 과다로 고생하는 현대인에게, 알코올은 아주 강력한 ‘체중 증가제’ 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3. 술과 건강 - 역설적 호메시스
술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흔히 술은 만병의 근원으로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과다한 음주는 우리의 몸을 해치며, 알코올은 국제 암 연구소에서 정한 1군 발암 물질에 속한다(술로 인하여 연간 60만 명 가량이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미주 4).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쥐나 초파리와 같은 실험 동물에게 적당한 정도의 알코올을 노출시키면, 이들은 오히려 더욱 오래 살고, 사망률이 감소하며, 잘 번식한다(그림 3; Starmer, 1977, PNAS; Diao, 2022, Aging 외 다수). 앞 Diao 의 연구에서, 3.5% 의 알코올을 섞은 물을 평생 준 생쥐는 물만 마신 생쥐보다 4.2% 가량 오래 살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이 향상되었으며, 고지방 식이에도 장기가 덜 손상되고, 당뇨의 특징인 인슐린 저항성도 덜 생기며, 염증도 덜 생긴다.
그림 3. 좌측은 초파리, 우측은 생쥐에 대한 실험 결과. 결과는 명백한데, 적당량의 알코올은 수명을 늘려 준다는 것이다.
인간도 그럴까? 그렇다. 하루 한 잔 이하의 약간의 음주를 즐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약 0.94년 수명이 더 길고, 사망률의 8% 감소를 보인다(Liu, 2022, Sci. Rep). 그 외에도 많은 문헌들이 약간의 술이 가져오는 건강상의 이득을 보고한 바 있는데, 이러한 이상한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일부는 이러한 현상을 호메시스(hormesis) 라고 칭하는데, 과할 경우에는 몸에 나쁘지만 소량의 경우에는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특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소량의 알코올은 항산화 기능을 하며 심혈관계 질환을 완화시키는 것으로 보인다(Prickett, 2004).
그러나, 그렇다고 ‘음주는 건강에 좋은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찾지는 않기를 권한다. 이것은 소량을, 조금씩 마시는 사람에서 그랬던 것이며, 같은 연구에서 더 많은 술을 먹는 사람들은 뚜렷한 수명 감소를 보인다(대조군 대비 7년이나 수명이 감소한다!). 또한 앞선 연구는 낮은 농도의 알코올을 이용했음을 참고하라.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자연의 발효하는 과일에는 40% 의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다. 그것은 순전히 인간이 만들어낸 초자극적 물질이다. 아래에서 바로 살펴보겠지만, '술은 술을 부른다'.
4. 술 그리고 중독: 탐닉은 무엇인가?
술은 앞서 말한 건강 상의 단순한 문제 뿐 아니라, 강한 의존성을 가지고 있다(그것이 많은 문화권에서 미성년의 음주에 대하여 엄격한 이유이다). 여기서 의존성을 갖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용어로 ‘중독성이 있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자어 중독이라는 단어는 ‘독성이 있는 물질을 섭취함intoxication’ 과 ‘의존성이 생겨 부정적 결과가 나타남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게 됨addiction’ 이라는 두 가지를 모두 의미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언어의 뾰족함을 잃게 된다. 이에, 본 글에서는 후자를 ‘의존성을 가짐’ 혹은 '탐닉' 으로 지칭한다.
‘술이 술을 부른다’ 는 말처럼, 술에 자주, 반복적으로, 많이 노출되는 경우 점차 의존성을 갖게 된다. 일반적으로 말해, <알코올 중독>에 걸리게 된다. 우리는 왜 무언가에 의존성을 갖게 되는가? 이것은 매우 크고 중요하며 복잡한 연구 갈래 중 하나이며, 내가 여기서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겠지만 간략히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에 관련된 연구 중 가장 시초가 되는 연구 중 하나는, 이미 4천 번 넘게 인용된 1954년 올즈와 밀너의 실험을 꼽을 수 있다(Olds & Milner, 1954, J. comparative and physiological psychology). 이들은 쥐의 특정 뇌 영역에 전기 자극을 줄 수 있는 전극을 삽입하고, 쥐가 레버를 누를 때마다 스스로에게 전기 자극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쥐는 수십 시간 동안, 물도 식사도 짝짓기도 심지어 자식의 육아도 거부하고 2초마다 레버를 눌렀다. 뇌에서 탐닉을 담당하는 지역이 발견된 것이다(그림 4).
그림 4. 올즈와 밀너의 실험을 통해, <쾌락 중추> 의 존재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곳은 탐닉과 의존에 아주 중요하다.
탐닉은 왜 존재할까? 본디 그것은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이유와도 같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 시원한 물, 신뢰할 수 있는 인간관계, 성관계에서 큰 행복을 느낀다. 그것은 생명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자손을 만드는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이다(미주 5). 즉 행복은 유기체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계속해’ 라는 가이드 신호와도 같다.
그러나, 이러한 신호 체계가 교란되는 경우에는 이것은 과도하게 작동하여 탐닉을 만든다. 술이나 마약과 같은 존재들은 우리 뇌의 보상 중추(reward center, 위 실험에서의 중격핵(nucleus accumbens) 등이 그 예시다) 를 건드린다. 이러한 물질은 우리를 인위적인, 그러나 강력한 황홀감을 주고, 이에 따라 그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게 만든다. 올즈의 실험에서처럼, 우리는 약물을 통해 중격핵을 스스로 자극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행복감은 금방 사그라들고(미주 5 를 참조하라), 오히려 이제는 의존증을 유발하는 물질의 부재가 끔찍한 금단 증상을 유발한다. 이제는 행복이 아닌, 불안함과 짜증이 해당 순환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대부분의 중독성 순환은 이런 식으로 초반에는 긍정적인 자극을 통해, 나중에는 부정적인 자극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그림 5. 다양한 의존성 물질. 좌측 상단에서 알코올과 담배를 찾을 수 있다(data from David, 2007, Lancet).
이것은 ‘정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뇌의 육체적 문제다. 마치 뇌를 전극으로 자극하던 쥐가 물과 음식과 사회적 관계를 무시하듯, 인간도 탐닉 상태에 빠지게 되면, 다른 생존을 위한 정상적 자극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것이 탐닉의 무서운 점이다. 이에, 수많은 연구자들은 오늘도 탐닉과 의존성의 원인을, 그리고 그 원인을 바탕으로 한 치료법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다.
나가는 글
이렇게 이번 글에서는 다양한 술의 작용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사실 효모와 발효에 대해서도 하나의 단락으로 다루고 싶었지만, 그것은 분량의 문제로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다시 한번 다른 글로 다루어 보도록 하자(미주 6).
술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주제다. 많은 분들이 술을 가까이 하고 또 즐기리라 믿는다. 물론 술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 그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운 것이지만 그것을 뛰어넘은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번 글이 술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을 엿보는 기회가 되었기를 고대한다.
미주 Endnote
미주 1. 이와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는 다른 경우가 있는데, 심각한 저체온증으로 인하여 사망하는 경우이다. 저체온증 사망자의 상당수(20~50%) 는 옷을 다 벗은 채로 사망하여 발견되는 경우가 잦은데, 이를 “모순적 탈의” 라고 부른다. 자세한 원인이 완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지나친 저체온증으로 인하여 피부의 근육이 작동을 멈추며 혈액이 과다 공급되어 피부가 뜨겁게 느껴진 사망자들이 옷을 벗는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미주 2. 그러나, 일부 연구에서는(Freund et al., 1994, J. Wilderness Med) 알코올로 인한 심부 열 손실이나 저체온증은 단순히 혈관 확장 때문이 아닌, 알코올로 인한 떨림 반사의(우리가 추운 겨울 떠는 반응) 감소 때문일 가능성이 있음을 보이기도 했다.
미주 3. 시상하부는 우리의 뇌 밑바닥에 있는, 말하자면 온 몸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아주 일반론적으로 말해, 이곳은 몸의 온도, 배고픔, 수분량과 같은 정보를 받아들여 부족하면 더하고 과다하면 덜어내는 작용을 통하여 체내의 균형을 유지한다. 이 중에서도 배고픔 신호와 배부름 신호는 대개 위장과 지방세포에서 보내는 호르몬을 통하여 조절되는데, 배부르니 음식 섭취를 감소시키라는 신호를 보내는 렙틴(leptin, ‘마른’ 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leptos 에서 왔다) 과 배고프니 음식 섭취를 증가시키라는 신호를 보내는 그렐린(Ghrelin, 단어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자라게 만드는(grow) 단백질이라는 뜻이다) 이 그것이다. 시상하부의 Agrp와 NPY 를 발현하는 세포는 그렐린에 의해 활성화되어 식욕을 돋구고, POMC 세포는 렙틴에 의해 활성화되어 식욕을 떨어트린다. 신경과학 교과서가 아니니, 여기까지만 하자.
미주 4. 그러나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1군 발암물질이 2군 발암물질보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인과성이 얼마나 확실한가’를 통하여 정해지기 때문이다. 아주 위험하고 미량만 노출되어도 암을 유발하는 것 같더라도 그 인과 관계가 확실하지 못하면 2군이 되기도 한다(예를 들어, 2군에는 고사리나 식품 첨가물로도 쓰이는 카라기난과 함께 하이드라진이나 벤조퓨린, 코발트, 클로로포름 같은 무시무시한 물질들이 같이 속한다. 2군이라고 하여 고사리나 하이드라진이 ‘비슷하게 위험하다’ 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올바르지 못한 생각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1군에는 알코올, 가공육, 담배, 미세먼지, 햇빛(아주 강한 피부암의 원인)과 함께 카드뮴, 방사능, 다이옥신 등이 같이 속한다.
미주 5.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 이 아니고, ‘살기 위해 행복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의미 있는 삶에 따르는 부산물이라 말했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행복은 생명체가 잘 살아남기 위한 내제적인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그것은 행복이 너무나 빠르게 사그라드는 이유를 잘 설명해 주며(수십 억짜리 복권 당첨도, 꿈에 그리던 연인도, 평생 처음 먹어보는 산해진미도 그것이 주는 행복감은 몇 주를 가지 못한다), 우리가 끊임없는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불행을 얻는 이유도 설명한다. 내가 얻은 성취에 끊임없이 행복해하는 생명체는 더 이상의 성장을 위한 노력을 멈출 것이기 때문이며, 남이 누리는 평균적인 것을 나도 누리도록 우리의 보상 체계가 유도하기 때문이다.
미주 6. 그러나, 자동양조증후군(Auto-brewery syndrome (ABS)) 이라는 흥미로운 증상을 이야기하지 않기에는 글을 적기 전까지 손이 간지러울 것 같다. 이것은 장에 존재하는 효모나 다른 곰팡이류가 증식하며, 우리가 섭취한 탄수화물이 장에서 바로 알코올로 발효되어 술을 먹지 않았는데도 혈류에 알코올이 생겨나고, 그것 때문에 취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실제로 음주 운전에서 단속되었는데 운전자가 음주를 하지 않았다고 완강히 거부하여 알아보니 이러한 자동양조증후군 환자로 밝혀진 사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