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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Oct 23. 2022

(33) 이 술 가져다가 온 세상에 고루 나누어-(1)

하윤의 Resolution

벗 삼아 와인 한 병을 마셨다. 샤또 마고였다. 천천히 와인을 맛보며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퍽 즐거웠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중


* 여담으로, 헤밍웨이는 엄청난 애주가였다. 와인 중에서는 샤또 마고를 특히 즐겼는데, 손녀의 이름을 마고로 지을 정도였다. 칵테일 중에서도 헤밍웨이의 이름을 딴 것이 있다.



우리는 이전 글에서 술, 그러니까 에탄올의 생리적 작용에 대하여 짧게 살펴보았다. 오늘은, 다시 이 술이라는 물질을 다른 관점에서 조망하도록 하자. 그러니까, 우리는 왜 술을 좋아하는지, 술은 어떠한 역사를 거쳐 왔는지에 대하여 다루어 보도록 하자.



술 빚는 원숭이, 인간 


인간의 회합 과정 중 술은 빠질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온갖 축제를 살펴보면, 그곳에는 빠짐없이 술이 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 그만큼 술이라는 음료가 인간에게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2022년 기준, 알코올성 음료 시장은 1조 5천억 달러의 매출을 낸다. 애플의 2020년 시가총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심지어 (주류 의견은 아닐지라도), 일부 학자는 농경과 문명이 술을 위한 열망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술을 도대체 인류는 언제부터, 왜 즐기게 되었을까?


이에 대하여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으레 그리하였듯,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술을 먹게 되었는가? 고고학 연구의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최소한 1만 3천 년 이전부터 인류가 의도적으로 발효 과정을 유도하여 알코올을 함유한 음료수, 즉 술을 만들어 먹었다는 증거들이 존재한다(그림 1; Liu et al., J Archaeol Res, 2018; 모르긴 몰라도, 분명히 의도하지 않고 만들어진 술을 처음 입에 댄 것은 그것보다도 훨씬, 훨씬 더 이전일 것이다. 밑 문단에서 후술한다!).


그림 1. 고대 이스라엘의 Raqefet 동굴의 돌 절구에서 인위적인 발효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무러 1만 3천 7백여년 전의 일이다. (Liu et al., 2018)


고대 중국, 이집트, 중동, 유럽 등, 인류의 문명이 있었던 곳에는 저마다의 술이 있었다. 그들 또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회합 과정에서, 축제에서 술을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이집트의 벽화에는 과음한 후 구토하는 모습이 그려진 것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림 2). 5천 년 전쯤 이집트 왕국 시대가 되면, 이들은 맥아와 물을 교반하며 가열하는 대규모의 현대적 양조장을 지어 수만 리터 분량의 맥주를 전통적으로 양조했으며(물론, 이 때의 맥주는 현대의 맥주와는 매우 다르다. 곡물로 반죽을 만들고 이를 굽고 물에 적셔 만드는 매우 걸쭉하고 불순물이 첨가된 탁한 형태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의 맥주 마시는 벽화를 보면 거름망이 달린 빨대로 걸러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들 또한 맥주와 빵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2. 아메넴하트의 무덤(기원전 1450년 경) 에서 발견된 음주 후 구토하는 사람의 벽화.



어떻게? : 당분과 효모


이러한 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구상에는 그 문화권마다 수없이 다채로운 고유의 술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의 재료는 단 하나다. 당분이다. 당분이 있어야, 그것을 효모가 먹고 발효하여 알코올(에탄올)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¹. 그렇기에, 인류가 가장 먼저 빚은 술은 아마도 벌꿀 술mead 또는 포도주와 같은 과실주일 것으로 생각된다(그림 3).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별도의 가공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다량의 당분을 포함하는 두 재료가 바로 벌꿀과 과실이기 때문이다². 이러한 재료에 자연에 풍부하게 존재하는(특히 포도 껍질에: 포도 껍질의 하얀 가루는 포도가 만드는 과분이며, 여기 효모가 풍부하게 서식한다) 효모가 물과 함께 배합되어 발효를 진행하면 그것이 술이 된다. 인류가 최초로 먹은 술은 아마도 이렇게 자연적으로 발효된 것이었을 테고, 이후 도자기 등이 개발되고 발효의 과정을 터득함에 따라 인위적 과정으로 만들어졌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그림 3. 벌꿀 술, 미드. 우리 나라에서는 접하기 어렵지만, 북유럽 등지에서는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다. 바이킹은 뿔을 깎아 만든 잔에 이 벌꿀 술을 마시곤 했다.


또한, 농경이 시작되고 여분의 곡식이 생기며 이 곡식을 이용해 술을 빚기 시작했을 것이다(곡식은 과실과는 달리 자유로운 형태의 당분이 많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녹말을 끊어 자유로운 단당류나 이당류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가장 흔한 방법은 싹을 틔우는 것인데, 식물의 씨앗은 싹이 트면 에너지로 사용하기 위해 녹말을 분해하여 당분으로 만든다. 식혜, 조청, 엿을 만들 때 쓰는 엿기름이 무엇인가? 보리에 싹을 틔운 것이다. 이러면 녹말 분해 효소인 아밀레이스가 활성화되어 녹말이 분해되고, 달콤한 당이 나온다³).



야생에서의 음주 생활: 우리는 왜 술을 좋아하는가에 대한 진화론적 기원


실제로, 야생에서도 동물들은 이러한 발효된 과일을 섭취함으로써 일종의 ‘음주’를 한다. 특히나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의 주식은 과일인데(과식동물(frugivore);이전 글에서도 다루었듯, 인간이 유달리 육식을 많이 하는 영장류다. 대개는 과일과 식물성 식품이 영장류의 주식이다), 푹 익은 과일들은 껍질이 갈라져 터지게 되고, 이 틈새로 야생 효모가 침투하여 발효를 진행한다⁴. 발효가 진행됨에 따라, 이 알코올 함량은 4~5% 까지도 다다르게 되는데, 웬만한 맥주의 알코올 함량과도 비슷한 정도다.


영장류들은 과일을 하루 종일 수 킬로그램까지 섭취하는데, 이렇게 발효된 과일을 통해 섭취하는 알코올의 양은 맥주 서너 잔에서 일곱 잔의 양에 달한다(그림 4). 실제로, 인간과 영장류들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40배나 효율적인 알코올 분해 효소(정확히는 알코올 탈수소효소와 아세트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 를 가지고 있는데⁵, 이는 대략 천만 년 전 발생한 돌연변이 때문이다(Carrigan et al., PNAS, 2015). 이는 영장류들이 이 무렵부터 알코올에 많이 노출되기 시작했음을 시사하는데, 아마 이 무렵 즈음하여, 인간과 유인원의 조상은 땅으로 내려와 발효된 과일을 다량으로 주워 먹게 되었을 것이다.


그림 4. 침팬지와 같은 영장류들은 주로 과일을 통하여 에너지를 섭취한다. 특히 달콤한 무화과는 이들 칼로리 섭취량의 거의 절반까지 차지한다.


적당히 발효되어 약간의 알코올을 함유한 과일은 이것이 푹 익었으며 풍부한 당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껍질이 갈라질 만큼 익었으며, 안에 효모가 바꿀 당분이 풍부하였으므로 발효가 진행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잘 익은 맛있는 과일을 섭취하고자 하는 동물은 약간의 알코올을 함유한 과일을 그렇지 않은 과일에 비하여 선호하였을 확률이 높다(그것이 생명체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으므로, 진화 과정에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영장류들은 알코올을 선호한다(Gochman et al., R. Soc. Open Sci, 2016).


 그리고 인간도 그렇다. 그 뿐만 아니라, 시각만을 통해서 과실을 찾는 것보다 과실의 발효취를 맡고 후각 단서를 이용하여 과일을 찾는다면 더 많은 과일을, 더 빠르게 찾을 수 있을 테다(초파리도 그렇다. 이들은 과실이 발효되며 나오는 에탄올과 아세트산에 현혹된다). 너무 독하지 않은 은은한 술냄새가 기분 좋게 느껴져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테다(어쨌건, 자연에는 20도가 넘는 술은 없다! 미주 4 참고).



나가며


이번 글을 통하여, 우리는 “왜” 술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음에는, 술에 관한 다른 이야기들을 살펴본다. 왜 술은 식욕을 돋구는가? 술 섭취와 수명의 관계는 어떨까(음주는 수명을 줄일까)? 알코올에 우리는 왜 중독되는가? 와 같은, 조금 더 일상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다루어 보자.



미주 Endnote


1. 우리가 먹는 소주도 마찬가지다. 주류 회사들은 카사바나 타피오카와 같은 탄수화물을 포함하는 저렴한 재료를 이용하여, 잘게 부수고 찐 후 거대한 발효조에서 효모와 배합하여 발효를 진행하여 알코올이 풍부한 발효액을 만든 후, 이것을 증류하여 주정으로 만든다. 이 주정을 물과 적당히 섞어 희석하고 감미료를 첨가한 것이 우리가 먹는 희석식 소주다.


2. 벌꿀은 우리의 조상들에게는 엄청난 특식이었을 것이다. 상상을 조금 곁들여 보면 당연한 일인데, 몇백 년 전만 해도, 그러니까 대규모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생겨난 산업 혁명 시기 이전까지만 해도, 설탕은 엄청난 사치품이었다(우리 나라에서도 설탕은 왕이 내리는 하사품이었다). 사탕, 아이스크림, 탄산 음료와 같은 고농축된 단맛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벌꿀을 통하는 것이었음을 생각해 보라. 이 단맛과 높은 칼로리는 사람들을 꿀에 집착하게 하였는데(하드자족은 최대 50%에서 20% 가량의 칼로리를 꿀로 섭취한다), 독특하게도 아프리카의 하드자족과 같은 수렵채집 부족은 새와 협동하여 꿀을 채집한다. 꿀잡이새라고 하는 새는 벌통을 발견하면 울음소리로 근처의 사람을 불러 벌통까지 안내하고, 사람이 벌통을 따면 남겨진 꿀을 먹는다.  


3. 아밀레이스는 우리의 타액, 그러니까 침에도 풍부한 효소다. 초등학교 과학 시간 때 배우는 상식인 밥을 오래 씹으면 녹말이 타액의 아밀레이스에 의해 분해되어 단맛이 난다는 것을 떠올려 보자. 그렇다면, 곡물을 인간이 씹어서 단당류로 분해해서 술을 담글 수는 없을까? 있다. 일본과 중국의 기록에 따르면 인간(보통 여성)이 곡물을 씹고, 이를 항아리에 뱉어 술을 빚은 기록이 있으며, 잉카에서도 치차 데 무코라고 하는 옥수수를 씹어 만든 술을 빚었다.


4. 효모가 당분을 먹고 이것을 부수어 알코올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꽃과 과일이 탄생한, 약 1억 년 전에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알코올의 살균 작용을 통하여 주변의 다른 생물을 죽여 효모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그러나, 너무 많은 발효가 진행되어 알코올 농도가 높아지면 효모도 죽어버린다. 특수한 효모 균주를 사용하고, 높은 도수를 얻기 위한 개량을 하더라도 효모의 발효 한계는 20도 정도이며, 일반적으로는 이보다도 낮다. 증류하지 않는다면 이보다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들 수 없는 이유다. 25도짜리 맥주나, 막걸리를 볼 수 없는 이유다). 술 뿐만 아니라 효모는 우리의 식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효모가 발효하며 만들어지는 이산화탄소는 빵을 부풀리고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이 이야기도 다음에 짧게 다룬다.


5. 우리는 이전 글에서, CYP 효소와 아데노신 수용체의 변이가 어떻게 누군가를 카페인에 민감하게 만드는지 알아보았다. 마찬가지로, 에탄올을 무해한 형태로 부수는 이 효소들이 잘 작동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술에 잘 취하게 된다.


* 참고 문헌: 이와 같은 연구 내용은 캘리포니아 대학의 교수 로버트 더들리가 주장한 '술 취한 원숭이 가설' 이다. 동명의 번역서를 찾아볼 수 있으며, 또한 글의 작성에 있어 잘 정리된 리뷰 논문으로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8308604/ 를 참고하였다. 관련 키워드로 많은 번역된 정보 또한 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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