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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Oct 09. 2022

(32) 더 멀리, 탐험의 시대

하윤의 Resolution

 뻗고, 가고, 보고,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다. 탐험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다.

-마이클 콜린스, 우주비행사



방랑하는 동물


우리 대다수는 일생 동안 집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쳇바퀴처럼 틀에 박힌 삶의 시간을 돌린다. 따로 신경써 작은 일탈을 하지 않는다면, 늘 같은 공간에 머물고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 이러한 정착/고착형 생활은 우리와 같은 도시인, 문명인에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이러한 고착형 생활을 인류가 고수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인간은 끊임없이 탐험하고 퍼져나가고 새로운 곳을 찾아 나서는 방랑자에 가까웠다.


인류는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 기원하여, 대략 1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빠져나왔다¹. 이들은 갈라져서 일부는 6만 년 전에는 폴리네시아와 호주에 도착했고, 4만 년 전에는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도착했으며 1만 5천 년 전에는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로 넘어갔다. 베링 해협을 건넌 이들이 얼어붙은 알라스카에서 칠레 밑단까지 1만 킬로미터를 넘어 퍼져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천 년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9만 년 만에, 비좁은 아프리카 해협을 빠져나온 이후 지구의 온갖 대륙을 탐험하며 퍼져나가 대륙의 끄트머리에 도달한 셈이다(그림 1)².


그림 1. 초기 인류의 이주 방향과 그 시간. 고고학적으로는 놀랄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인류는 거의 모든 지구상의 표면을 정복했다. 그 어떤 동물도 이루지 못한 성과다.


도대체 왜 인류는 이 위험하고 끝없는 모험을 해 왔는가? 그것은 탐험이 결과적으로 동물의 생존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험용으로 사용되고, 따라서 제일 잘 연구된) 쥐를 비롯한 수많은 동물들은 탐험 행동을 보인다. 이들은 경험해 본 적 없는 낯선 환경이나 물체, 개체를 만날 경우 눈을 크게 뜨고 콧수염을 더듬거리며 그것을 탐험하고 탐색한다. 그것은 아직 모르는 것에 대한 정보를 줌으로써 개체의 생존에 도움을 준다³.


인간도 마찬가지로, 탐험은 더 나은 식량 공급원, 더 나은 거주지, 새로운 발견과 생각을 공급하는 원천이 되었을 것이며, 수렵채집 사회에서의 상호간 거리 유지는 이러한 탐험을 더욱 가치있는 행동으로 만들었을 것이다(또는, 강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탐험은 도파민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으며, 도파민에 민감한 수용체 변이를 가지는 사람은 더욱 위험 부담이 높은 탐험을 시도한다는 보고들이 있다. 즉, 탐험 행동은 개체에게 도움이 되는, 쾌감을 주는 행위인 셈이다.



바다를 건너, 항해의 시작


이러한 탐험 과정 중, 의문이 드는 것이 있다. 이들은 어떻게 바다를 건넜을까? 어떻게 수많은 폴리네시아의 섬을 건너 정착하였을까? 그 답은 인간의 지능은 인간을 훌륭한 항해자로 만들기 충분했다는 것이다. 제임스 쿡을 비롯한 서구 뱃사람들이 폴리네시아를 방문하고 놀란 것은 이들이 해박한 항해 지식과 기억력을 통해 산발적으로 흩어진 섬들을 손쉽게 이동한다는 사실이었다(미주 5 또한 참고하라). 예컨대 쿡이 만났던 폴리네시안 항해자 중 하나인 투파이아Tupaia는 반경 수천 킬로미터 내의 섬 수백 개의 위치와 그 특성을 외우고 있었다(그림 2). 이들은 나침반 없이도 별자리⁴, 물새와 철새의 이동 방향, 주변의 지형지물, 산호초와 구름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섬 사이를 왕래했다(영 해군도 납덩이를 바닥에 던진 후 끌어당겨 붙은 물질을 조사함으로써 연안 항해에 이용하곤 했다).


그림 2. 쿡 선장이 그린, 투파이아의 항해 지도. 기억만으로 놀라운 세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항해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 보자. 항해 도중(뿐만 아니라 전반적 길 찾기 도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특정하는 것이다. 지도와 위치 그리고 방향 파악이 가능하다면,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에게는 구글 맵, 수십 미터 이내의 오차로 지구 상 위치를 핀포인트해주는 GPS시스템과 위성 시계, 자이로 센서가 있지만, 우리의 선조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이들은 어떻게 길을 찾았는가?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는 육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고, 연안에서 육지를 따라 항해하며 육지에서 보이는 주요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지문항법(pilotage)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항법은 육지가 보이지 않게 되는 원양 항해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이 때는 추측항법(dead reckoning)이 사용될 수 있다. 이는 간단히 말해 경로적분을 하는 것인데, 어느 방향으로 어느 속도로 몇 시간이나 이동하였는지를 파악하여 이 이동한 거리를 모두 더하는 것이다. 예컨대 속도랑 방향을 파악하여 서쪽으로 10km를 이동한 후 북쪽으로 10km 를 이동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현재 위치는 출발지로부터 북서쪽으로 14.2km가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⁵.


이 때 뱃사람들은 속도를 파악하기 위하여, 넓은 판을 물 속에 던지고 거기에 매달린 끈이 시간 당 얼마나 빠른 속도로 풀려나가는지를 계산했다. 이 때, 이 끈의 길이를 파악하기 위하여 대략 14미터마다 끈을 묶어 매듭(knot)를 지어 두었고, 모래시계로 측정한 시간 안에 매듭이 몇 개나 통과하였는지에 따라 속도를 측정했다(그림 3). 매듭이 열두 개 통과했다면 현재 속도는 '매듭 12개', 12노트인 셈이다⁶.  속도 단위는 지금도 쓰이는 과거의 유산이다.


그림 3. '노트' 를 측정하는 과정. 로그(통나무) 라고 불리는 판에 매듭을 묶은 끈을 연결한 후 던져, 속도를 간접적으로 측정했지만 오차가 큰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상상할 수 있듯, 이러한 추측항법의 문제는 오류가 계속 누적되기 때문에 점차 실제 위치와의 오차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또한 속도를 정확히 구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노련한 항해자들은 밧줄의 장력이나 주변의 해류를 모두 고려하여 '노트' 를 정확히 예측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원양 항해 시에는 배 위에서 천체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하는 천문항법(celestrial navigation) 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GPS가 장비된 첨단 선박에도 아직 천체의 위치를 측량함으로써 위치와 방향을 알아낼 수 있는 육분의가 실려 있기도 하다(그림 4, 미 해군에서는 1996년 GPS 의 도입으로 천문 항법을 항해사들에게 더 이상 가르치지 않았지만, 최근 이를 재도입했다. GPS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거나 고장난 상황에서도 위치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⁷).


그림 4. 6개의 궤도면에 떠 있는 31개의 GPS 위성에서 온 신호를 조합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특정할 수 있지만, 이것이 상용화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별과 달을 길잡이 삼아


어떻게 천체를 통하여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까⁸?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지구의 표면은 위도선과 경도선으로 나뉘어지는 구면 위의 위치로 특정된다. 즉, 우리는 위도와 경도를 파악하여야 한다. 위도는 비교적 쉬운데, 북극성 또는 남십자성과 같은 자전축 위의 별을 찾아 그 고도를 측정하면 된다(그러면 몇 가지 기하학적 법칙에 의하여 그것은 현 지역의 위도가 된다. 혹은 태양의 남중 고도를 이용할 수도 있다, 그림 5). 이렇게 측정한 위도를 늘 일정하게 유지하며 한 방향으로 향해하면, 등위도 상에 위치한 장소들을 손쉽게 오갈 수 있다.


그림 5. 왜 북극성의 고도가 자신의 위도가 되는지에 대한 간략한 모식도.


경도는 더 어려운데, 만일 우리가 정밀한 시계를 가지고 있다면 현재 지역의 정오와 그리니치 표준시의 차이를 이용하면 경도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1시간의 차이는 경도 15도 차이를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1700년대 중반 해리스의 해상 시계(크로노미터)가 만들어지고 보급되기 이전까지는 오차 없이 시간을 신뢰할 수 있게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으므로, 옛 뱃사람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림 6. 항해용 연감(좌) 와 해상 크로노미터(우). 정확한 시계가 등장하기 전까지, 항해자들은 골치아픈 계산을 통해 연감과 비교하여 경도를 측정해야 했다.


여러 방식이 제안되었지만 결국 가장 실용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월거법(lunar distance) 이었는데, 이는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관찰되는 달과 별의 각도를 모조리 기록해 둔 연감almanac 을 만들고, 해상에서 해당 각도를 관찰한 후 대조하여 시간 차이를 구함으로써 경도를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측정 기구와 씨름하며 별의 각도를 측정하고, 고도를 보정한 후 연감에서 외삽한 값과 대조하는 데에는 머리 아픈 몇 시간의 계산이 걸렸지만 엉터리 경도로 항해하다가 난파하거나 조난당하거나 임무에 실패하는 것보다는 나았을 테다(그림 6).



요람을 떠나


이처럼 인간의 탐험은 인류가 태어난 요람인 아프리카부터 인류를 뻗어나가게 하였고, 우리의 조상은 해안선과 빛나는 별자리를 나침반 삼아 GPS가 없었을 때부터 새로운 땅과 발견을 향해 항해했다. 이제 우리는 지구를 벗어나 다른 행성까지 눈을 돌리고 있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달에야 간신히 발을 디딘 인류지만, 용감히 해협을 건너고 거주지를 벗어난 조상들처럼 누군가는 화성을, 태양계 밖을 향해 발을 뗄 것이다. 치올코프스키의 말처럼, '지구는 인류 문명의 요람이다. 그러나 누구도 요람에서 평생을 살 수 없다'.



미주 Endnote


1. 이 과정에서 매우 적은 수의 인류, 수백에서 수천 수준(추정컨대 1,000~2,500 명)의 인간이 탈아프리카 원정대를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아프리카를 제외한 거의 모든 현생 인류는 기껏해야 수천 명에서 태어난 후손인 셈이다. 이와 같은 유전적 병목은 인간의 엄청나게 낮은 유전적 다양성을 설명한다(이 뿐 아니라, 기근이나 가뭄, 빙하기로 인하여 거의 멸종에 가까울 수준으로 인류 개체수 전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고로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적 문제가 없이 개체군이 유지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체수를 최소생존집단(minimum viable population) 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대략 남성 십수 명과 여성 수십 명(~50) 수준이라고 한다. 이보다 작은 집단은 근친혼으로 인한 유전적 문제로 인하여 장기간 지속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확률이 크다. 여담: 이 빠져나오는 루트는 육상 경로(현대의 이집트를 경유하는)이 아니고, 오히려 홍해 하단의 비브 알 만데브 해협(예멘과 에리트리아 사이의)을 통과해 넘어갔으리라 추측되고 있다. 이곳은 겨우 40km 가량의 틈새를 가지고 있다.


2. 이들은 주로 (최소한 아시아까지로의 이동 경로에서) 해안가를 따라 퍼져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시아의 해안가에는 곳곳에서 대규모의 패총, 그러니까 잡아먹고 남은 조개 껍데기 무더기가 발견되는데, 이것이 인류의 이동 경로를 반영하리라고 추측된다.


3. 호기심이라는 우리의 심적인 동기도 궤를 같이한다. 그것은 모르는 것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 생존 확률을 높이고자 하는 진화가 빚어낸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의 마주보는 지손가락, 선명한 시력, 길쭉한 다리나 DNA 수선 기작과 같이 우리의 마음 또한, 몸이 그렇듯 자연 선택이 빚어낸 피조물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이전에 인용한 도브잔스키의 말처럼 '진화에 비추어 보지 않고서는 생명의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 마음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의 마음은 자연선택과 성선택이 빚어낸 것이거나, 적어도 그 부수물이다.


4. 별자리는 최소한 수천 년이 지난 발명이다. 고대 그리스는 물론이요, 바빌론에서부터 현대 별자리가 명명되었다. 이러한 별자리는 왜 만들어졌을까? 그것은 천체의 항행이 미신적 목적 뿐 아니라, 길을 가르쳐 주거나 시간을 알려 주는 매우 유용한 척도였고(우리의 조상들에게는 나침반과 GPS가 없었다) 그에 따라 천체의 운행을 체계화해 기억하고 기록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 봉사하기 위해 이집트, 수메르, 로마, 그리스, 중국, 바빌론과 마야의 수많은 국가에서는 거두어들인 세금을 통해 천문학을 기록하고 연구했다. 그리스의 엄청나게 발달한 천문학 지식은 2천 년 전 제작된 안티키테라 기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수십 개의 톱니바퀴로 태양과 달, 행성의 위상을 계산하고 윤년 계산을 하는 등 놀라운 수준의 기술력을 엿볼 수 있다.


5. 이러한 경로적분은 매우 복잡한 지적 능력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연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개미가 그러하다. 이들은 빛의 편광이나 태양의 각도를 통해 방향을, 걸음 수를 통해 이동 거리를 측정하여 자신의 이동 거리를 적분하여 집에서부터 현재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다. 포유동물의 뇌 안에도, 자신이 머리가 향하는 방향과 공간 내에서의 상대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복잡한 기하학적 표상 뉴런이 존재한다. 이와 관련한 연구를 시작한 존 오 키프 교수는 201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위치 정보는 해마라는 뇌 구조에 저장된다고 생각되는데, 실제로 위치 기억을 많이 사용해야 하는 런던의 택시 기사들은 일반인 대비 더 큰 해마를 가지고 있다(Maguire et al., PNAS, 2000).


6. 이 매듭의 거리는 해리에 맞도록 조절된 것이다. 1노트의 속도는 1시간에 1해리(nautical mile, nautical 은 nau- 라는 배 또는 항해를 뜻하는 PIE 어원에서 왔고, Mile 은 땅에서의 마일과 같이 천 걸음을 뜻한다)를 가는 속도로 정의되었는데, 이 1해리라는 것은 구형의 지구를 자른 원형 단면의 1각분(arcminute), 즉 지구 둘레를 360로 나눈 것의 60분의 1에 해당하는 거리로 정의되었다. 즉 1노트는 한 시간에 1해리(약 1850m)를 가는, 시속 1.85km에 해당하며 10노트는 시속 18.5km 가량이 된다.


7. 정확하게 측정한다면 이러한 방법은 충분히 믿을만 한데, 예를 들어 1968년 로빈 존스턴은 312일간, 혼자서, 어떤 무선 통신 기기나 GPS 도 없이 전통적 육분의를 들고서 보트 하나로 세계일주를 성공했다. 지금도 여전히 이 때의 조건을 그대로 딴(GPS, 전자 기기, 정수기, 티타늄과 같은 첨단 재료, 자동 항해기 등이 모두 금지된다) 황금 나침반 레이스가 열리고 있다.


8. 5번 미주에서 다룬 것과 같이, 인간만 이러한 천문항법을 이용하는 존재는 당연히 아니다. 수많은 철새들은 어두운 밤하늘 별자리와 별의 회전을 이용하여 길을 찾는다. 물론 이들은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자기장 또한 감지하여 이용하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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