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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Sep 25. 2022

(31)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크다

하윤의 Resolution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팀이 얼마나 전체로써 기능하는가에 달렸다. 전 세계에서 제일가는 스타들을 모았더라도, 그들이 같이 뛰지 않는다면, 팀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질 것이다.

-조지 허먼 루스, 미국의 야구 선수



1+1=?


일 더하기 일은 무엇일까? 우리의 추상적 수학 체계 하에 입각하면 그 답은 당연히 둘이 되어야 하겠지만, 현실을 바라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예컨대, 사람 한 명이 보이는 행동적 복잡성을 1이라고 상정해 보자. 그렇다면, 사람이 두 명 모이면 이 집단의 복잡성은 2가 될까? 엄밀한 증명이 없더라도, 우리의 직관은 2보다 큰 어딘가를 상상하게 된다. 혼자가 둘이 되면, 이 둘 사이에서는 다양한 작용과 반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이들은 대화할 수도, 협업할 수도, 반목할 수도, 배신할 수도,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¹.


그림 1. 도시는 하나의 생명체와도 같다. 어느 개개인은 도시가 아니지만, 이 개인들이 특별한 방법으로 모여 상호작용하면 그것은 도시가 된다.


둘이 아닌, 70억이라는 수로 늘어난다고 해도 큰 그림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 하나하나를 떼어, 현대 사회에 던져놓는다면 이들은 지금 우리처럼 풍족하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인간 하나하나는 발전기를 가동하는 법을 모르고, 기차를 운전할 수 없으며, 반도체를 만들고 프로그램을 코딩하지 못한다. 농사를 지을 줄 모르고, 세제를 만들 줄도 모르며, 오수와 쓰레기를 처리할 줄도 모른다. 벼를 털고 겨를 벗기거나, 혹은 동물을 도축하여 고기로 만드는 법도 모른다. 그럼에도 개개인은 이 모든 것의 산물을 누리며 산다(그림 1). 이는 수없이 나뉘어진 전문화와 분업의 덕택이다. 우리 개개인은 어느 하나만 알진데, 어떻게 이것을 공유하여 모두가 적절한 혜택을 볼 수 있는가? 그것은 사회적 틀 내에서 우리가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뿐 아니라, 더 깊은 수준으로 내려가면 사회를 이루는 인간 하나는 다시 '환원 불가능하게' 쪼개질 수 있다. 우리 몸을 이루는 38조 개의 세포를 자그마하고 섬세한 집게로 하나씩 떼어내어 보자(그림 2). 그것은 우리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 세포를 고배율 현미경 아래에 두고 관찰해 보자. 세심히 살펴보면, 이 세포는 핵이나, 단백질을 만드는 구조물들이나, 세포를 지지해 주는 뼈대와 같은 단백질들이 기름 막으로 둘러싸인 물체임을 알 수 있다. 그럼, 이 세포의 기름 막을 살짝 찢어내서 안에 있는 물질들을 쭉 꺼내 나열한다면 그것이 세포일까? 그렇지 않다. 이 물질들은 원자와 분자로 이루어지는데, 그렇다고 하여 이 물질, 예컨대 DNA 를 이루는 원자들이 DNA 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 잃어버린 틈새에서는 무엇이 빠진 것인가²? 


그림 2. 세포와 개체의 관계는 사람과 국가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세포들이 개체는 아니지만, 세포 없이 개체는 존재할 수 없다.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주인공 에드워드는 인간의 구성성분은 물 35리터, 탄소 20kg, 암모니아 4리터와 석회 1.5 킬로그램, 인과 소금… 이라고 말한다³. 이것이 인간을 이루는 모든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물질들을 한데 뒤섞는다고 인간이 되지 않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이것이 바로 창발적 성질이 가지는 독특한 점이다.



자르고 나누자


전통적으로, 과학은 환원주의라는 사조에 입각하여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였다(이전 글 참조). 에드워드 윌슨의 글을 인용하자면;


“환원주의는 다른 방도로는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복잡한 체제를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채용된 탐구 전략이다. 궁극적으로 과학자들을 흥분시키는 것은 단순성이지 복잡성이 아니다. 환원주의는 그 복잡성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

다음은 환원주의의 일반적인 작동 방식이다. (…) 당신의 마음이 그 체계 주변을 여행하도록 해라. 그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라. 그 질문을 잠시 내려놓고 그것이 함축하는 요소들과 물음들을 시각화하라. 대안적 해답들도 고려하라. 어느 정도의 증거들로 명료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그 해답들을 말로 표현하라. 만일 너무 많은 개념적 난점들이 발생하면 뒤로 물러서라. 그리고 다른 질문을 찾아라. 마침내 우리가 파고들 수 있을 만큼 약한 지점을 찾으면 결정적인 실험을 가장 쉽게 수행할 수 있는 모형 체계를 찾아라. (…)

 그 체계를 완전히 숙지하라. (…)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질문에 대한 답이 수긍이 가도록 실험을 설계하라. 새로운 질문과 새로운 체계에도 적용해 볼 수 있도록 그 결과를 활용하라. 다른 사람들이 이런 절차에서 이미 얼마나 멀리 앞서 나아갔는지를 검토해 보고 어떤 지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지를 결정하라”


이와 같은 환원주의적 절차를 수백 년간 밟아 온 인류는 자연이 드리운 베일을 벗겨내며 놀라운 성취를 이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마주치면 그것의 쪼갤 수 있는 틈을 찾아 정을 가져다 댐으로써, 우리는 우주의 시작을, 우주의 크기와 구조를, 그리고 세상을 이루는 제일 기본적인 알갱이들에 대한 기초적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우리는 쪼개진 틈과 틈 사이에 존재하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원자가 모여 물질이 되는 사이의 틈, 물질이 모여 세포가 되는 사이의 틈, 세포가 모여 뇌가 되고 생명체가 되는 그 사이의 틈 말이다.



요소에서 시스템으로의 이어붙이기


언뜻 보면 우리는 컴퓨터를 이해할 수 없는 듯이 보인다. 도대체 어떤 마법이 이 기계를 '생각하는' 기계로 만든다는 것인가? 그저 인간이 만들었으니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공학의 추상화에 힘입어 이루어진 성과다. 프로그래머는 기계어, 그러니까 0과 1의 이진법이나 컴퓨터의 기계적 구조를 몰라도 상관없으며, 게이트나 반도체에 대해서도 몰라도 된다. 이들은 '층위를 나누어' 존재하며, 한 층에 대해 전문가가 되기 위해 다른 층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컴퓨터는 인간이 만들었으며 하부 구조를 이용하여 상부 구조를 만들었으므로, 그 층을 잇는 원리를 알고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자연에 그어진 선과 층을 뒤섞는 연구를 통해야 우리는 '창발' 이라는 설명되지 못한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다.


이런 것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시스템 과학자라고 부른다. 하나하나의 요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 요소들이 한데 모여 어떻게 뛰노는지를 조망하는 사람들이다. 시스템 사회학자는 개체가 모여 어떻게 사회라는 복잡계를 만드는지를 연구하며, 시스템 생물학자는 생명을 이루는 물질이 어떻게 생명 현상을 빚어내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림 3. 줄리오 토노니는 뇌가 얼마나 통합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phi 값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이 나뉜다는 이론을 세웠다. 이를 통해, 전신마비 환자의 의식을 알아볼 수 있다!


예컨대, 우리 뇌에서 빚어내는 가장 놀라운 현상에 대해 생각해보자. 의식 말이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의식을 가지는 것인가? 카메라가 세상을 담아낼 수 있을망정 그것을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무언가를 '본다' 는 개인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시스템 신경과학자들은 그 답을 뇌세포 '사이' 에서 찾는다.


 마시마니와 토노니의 저작에서 인용하자면, 카메라와 뇌의 차이는 그 통합성에 있다(그림 3). 카메라의 1억 개의 화소를 떼어 놓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화소이지만 인간의 뇌를 반으로 가르면 그것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이 된다. 예컨대, 그것이 통합된 방식이 곧 의식을 만드는 구조물이라는 것이다⁴,⁵. 


앞에서 던진 질문에 부분적인 답을 던져보자. 사회와 개인 사이, 개인과 세포 사이, 세포와 물질 사이. 이 빠진 고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행간에 있는 것, 곧 암묵적 규칙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 들어, 책을 한 권 들어보자. 데미안이라고 하자. 종이책에 적힌 글자를 그대로 새로운 종이에 옮겨 적어 보자. 그것은 다른 종이에, 다른 잉크로, 다른 활자체로 담긴 것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것을 데미안이라고 부른다. 왜인가? 그 내부를 이루는 본질적 요소들이 여전히 같은 배열과 규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미안의 챕터를 찢어내어 다시 배열한다면 그것은 같은 종이와 같은 잉크와 같은 활자체를 가지지만 다른 글이 될 것이다. 배열과 규칙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즉, 창발은 그 원소들이 암묵적이고 일관성 있는 규칙을 따를 때 일어난다. 즉, 이 규칙이 일종의 '정보' 를 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글자도 그러한데, 예컨대 글자는 자음 뒤에 반드시 모음이 온다는 규칙을 따르며, 통사론에서는 문장을 만들 때 주어 뒤에 동사가 결합한다는 등의 규칙을 따른다. 이 모든 규칙이 없다면 더 이상 개별적 요소는 의미 있는 내용을 담지 못하게 될 것이다. "ㅇ로ㅓㅇㄷㅈ메" 와 같은 글자 집합이 무슨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 역설적이게도 모든 조합이 의미있다면, 그 체계는 안정적으로 의미를 내포하기 어려울 것이다. (섀넌의 정보 이론과 중복성redundancy 이 이를 설명한다) 이는 위의 컴퓨터 비유와도 잘 들어맞는데, 컴퓨터에서 층위 사이에서 사라진 것은 문법 즉 규칙이다. 0과 1을 명령어에 대응시키는 컴파일 문법을 생각해보라.




우리는 세상에 대한 산발적인 개별 지식들을 모아 왔다. 이를 통해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기술들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젠, 우리는 지식의 통합, 말하자면 통섭consilience를 목도하고 있다. 몇몇 학자들은 창발성이란 이해될 수 없는 신비로움이 아닌 그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세부사항이라 말한다. 이제 피어나고 있는 다학제적 연구를 통해, 이 틈새와 틈새는 언젠가는 메워질 것이리라.



미주 Endnote


1. 우리는 이와 같은 수많은 사회적 상호작용에 너무나 능숙하고 또 익숙하다. 평생을 뇌과학 연구에 전념한 마이클 가자니가는 '인간의 뇌는 사회적 작용을 위해 설계' 되었다고 말했고, 개미의 사회성을 연구한 에드워드 윌슨 또한 사회성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요소라고 주장했으며, 로빈 던바 또한 우리의 뇌는 사교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회적 뇌 가설social brain hypothesis' 를 제창했다. 여러 분야의 대가들이 비슷한 결론으로 수렴하고 있다.


2. 생명의 경우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은 생명체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힘, 생명력이라고 믿어 왔으며 생명력이 작용해야지만 유기물을 합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명이 탄생하리라고 보았다. 이러한 이론을 생기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뵐러는 유기물(요소)을 무기물로부터 합성함으로써 생명을 이루는 요소는 그렇지 않은 것과 화학적으로 전혀 다름이 없음을 보였다. 이는 생명에 대한 '기계론적 회의주의' 의 효시가 됐다. 


 3. 현재 인간이 찾아낸 원소의 종류는 1번 수소(H)부터 시작하여 118번 오가네손(Og)까지 118개이며,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닌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는 92종이다. 이 중 생명체의 생체 기능에 필수적인 것은 몇 개일까? 현재는 28개 정도로 생각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다. 잘 설명된 흥미로운 글,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4610 를 참고하라.


4. 적어도 수백, 수천 년 이전부터 철학자들은 의식의 원천에 대해 고민했다. 드하네의 광역 작업 공간 이론, 에델만의 재유입 이론 등 여러 이론들이 의식을 설명하고자 하고 있지만, 이들 모두 신경세포 사이의 어떠한 '연결된 패턴' 이 의식의 필수적 조건임에 동의한다.


5. 우리는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지금 여러분이 이 글을 더 읽을지, 여기서 끌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리지 않았던가? 오늘 저녁 메뉴를 선택하는 것은, 무언가를 할지 말지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몇몇 심리학 실험들은 우리는 그저 무의식이 내린 결정을 의식적으로 해석할 뿐일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가장 극적인 것으로는 가자니가의 분리뇌 실험이 있다.



* 이번 화에서는 30화를 기념으로, 글의 느낌을 약간 바꾸어 보았습니다. 좀 더 간결하 짧은 문장으로, 내용을 상세히 다루기보다 스스로 고민해 보고, 어떤 얕은 통찰을 줄 수 있는 화두를 던져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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