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윤 May 07. 2023

(47) 기억은 너를 불러오고 -(3)

기억 연구의 최전선에서

“기억이 되기 전까지, 우리는 순간의 가치를 잊곤 한다.”

-닥터 수스


* 커버 사진은 메멘토(2000)의 한 장면을 가져왔다.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Memonto: 기억의 증표)



이전의 두 글에서, 우리는 기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고 그것을 밝히고자 노력했던 과학자들의 삶에 대해 알아보았다. 오늘은 이렇게 살펴본 내용들을 조금 좁히며, 현대 과학이 드러낸 기억의 비밀에 대해 살펴보자.



간단한 생명체를 이용한 시냅스 변화 연구:

기억의 과정에서 변화하는 시냅스의 강도


이미 많은 학자들이 이론적으로 기억의 작동 방식을 제시해 왔다. 신경세포들이 서로 간의 연결 강도를 바꾸어 가며, 마치 컴퓨터가 0과 1을 바꾸어 가며 '메모리' 를 저장하듯 작동하리라는 예측이다(미주 1). 그렇지만 대관절 이것을 어찌 보여줄 것인가? 사람은 차치하고, 원숭이나 생쥐, 고양이 같은 실험동물들은 너무나 복잡한 구조 때문에 이러한 사실들을 증명하기 마땅치 않은 실험계였다. 그렇게 기술적 한계에 도달할 때마다 과학자들은 늘 더 간단한 시스템을 찾아 떠나곤 한다. 칸델은 아주 간단한 행동을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면서도, 그 내부의 신경 세포들을 쉽게 관찰하고 활동을 기록할 수 있는 생명체를 찾았다. 군소라고 불리는 달팽이였다.


칸델은 군소가 가지는 아주 간단한 학습 반응을 모델로 삼았다. 이들은 물 속에서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기관인 아가미를 가지는데, 이것을 건드리면 휙 움직이는 보호용의 아가미 반사 반응을 가진다(마치 우리가 눈앞에 무언가 날아들면 눈을 질끈 감듯이). 그런데 꼬리에 전기 자극을 주면 군소는 더 강한 아가미 반사 반응을 보이며, 이러한 반사 반응의 강화(potentiation) 는 몇 시간 가까이 이어진다. 이것은 생명체가 가지는 아주 간단한 수준의, 그렇지만 확실한 기억이다.


그림 1. 강한 자극을 받아 민감해진 경우에는, 감각 세포(위) 와 운동 세포(아래) 의 연결성이 강화된다. 이것이 바로 민감성에 대한 기억이 된다.


칸델은 군소의 이 '기억' 이 일어나는 동안, 실제로 아가미의 반응을 유도하는 신경 세포와 자극을 감지하는 감각 신경 세포 사이의 연결이 강화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그림 1)  이 사이의 연결이 강해졌기 때문에, 똑같은 가벼운 자극을 주더라도 아가미가 더욱 강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이것은 시냅스라는 신경 세포 사이 간의 연결 강도가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기억을 저장하는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과정임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였다.



시냅스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칼슘 그리고 CREB


그렇다면, 이 시냅스의 연결은 도대체 어떻게 변화하는가? 칸델을 뒤따른 수많은 기억 연구자들은(미주 2) 이러한 모델을 바탕으로, 그 메커니즘을 연구했다. 이들이 밝혀낸 것은, 신경 세포가 동시에 활성화될 경우 이 세포들 사이의 연결이 강화되며(헵의 가설대로; 미주 3), 이 과정에서 신경세포 내부로 들어오는 칼슘이 여러 단백질 체계를 활성화시켜서, 시냅스를 더 크고 ‘튼튼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더 크고 튼튼해진 시냅스는, 똑같은 자극이 와도 다음 신경 세포를 더욱 강하게 흥분시킬 수 있고, 이것은 우리의 장기간 무언가를 기억하는 능력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림 2.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우리는 이제 생체 내에서 새로운 시냅스 돌기가 자라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Yu, 2014).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자세한 디테일은 오히려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든다 생각하는 분은 이 문단을 건너뛰어도 좋다), 시냅스 이전 세포와 시냅스 이후 세포가 아주 약간의 시차를 두고 동시에 활성화될 경우, 시냅스 후 신경세포는 ‘동시에 활성화되는 것’ 을 감지한다(coincidence detection). 이것은 신경세포에 발현하는 정교한 통로 단백질인 NMDA 수용체를 매개로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마치 구슬로 틀어막은 구멍과 같은 구조를 가진다(라무네 소다를 생각해 보라). 이 구슬-구멍 구조는 시냅스 이전 신경세포와 시냅스 이후 신경세포가 같이 활성화될 경우에만 칼슘을 들여보내는 동시 활성화 감지기로 작동한다. 앞에 설명한 구슬은 사실 마그네슘 이온인데, 양전하를 띠는 마그네슘은 본래 세포 바깥에서 음의 전압을 띠는 세포 안쪽으로 끌어당겨지며 구멍을 꽉 틀어막는데(빨대로 쪽 빨아올리는 힘에 의해 빨대를 틀어막은 버블티 안의 펄을 상상하라), 세포가 활성화되며 양의 전압으로 올라가게 되면 전기적 반발력에 의해 퐁 튀어나가며 구멍을 열어준다(빨대가 막혀 짜증 난 사람이 입으로 후 불어서 펄이 튕겨나가는 것처럼)(미주 4).


이렇게 칼슘이 들어오게 되면, 칼슘은 세포 안에서 (cAMP, PKA 따위를 통해) 궁극적으로 CREB 이라는 유전자를 활성화시키게 된다. 이 유전자는 다양한 세포 내 스위치를 켬으로써 시냅스를 더 크게 만들고(그림 2), 발현된 통로 단백질의 양을 늘리고, 이 단백질들을 꽂아 넣을 수 있는 뼈대 구조물들을 더 많이 만들게 한다. 이렇게 시냅스를 강화하는 단백질들이 대량 합성되고 이것이 유지되면 해당 시냅스는 이제 ‘강화되어’ 유지되게 되는 것이다.



'기억을 조절하는 유전자' : 학습 장애와 과잉기억증후군


CREB 유전자는 놀랍게도, 군소 뿐 아니라 초파리와 같은 무척추동물, 쥐와 같은 포유동물 그리고 사람에게서도 기억을(정확히는 장기 기억을) 매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파리에서 CREB 이 망가지게 되면 이들은 더 이상 무언가를 배우고 기억하는 장기 기억 능력을 잊어버린다! 아무리 전기 충격을 주면서 무언가를 피하게 학습시키려고 해도, 이들은 순식간에 까먹고 다시 전기 충격을 가하는 곳으로 향한다(그림 3; 사실은 학습 능력을 잊어버린 초파리 돌연변이들을 먼저 발견했고-이들의 이름은 재미있게도 멍청이dunce, 건망증amnesiac등이다-, 수십 년이 지나 이것이 CREB 돌연변이라는 것을 찾아낸 것이긴 하다. 무작위성의 힘을 빌리는 돌연변이 연구에서는 아주 흔한 일인데, 멘델이 밝힌 완두콩의 모양을 조절하는 유전자는 백 년 가까이 지나 그 정체가 밝혀졌다).


그림 3. CREB 유전자가 망가진 초파리는 더 이상 냄새를 회피하는 회피 학습을 하지 못한다. 사진은 전기 충격과 냄새를 연계하는 실험 패러다임.


아주 흥미롭게도, 반대로 CREB 을 과활성화시키는 돌연변이를 가지는 초파리는 마치 인간에게서 보이는 과잉기억증후군(hyperthymesia; 미주 5) 을 가지는 듯이 딱 한 번만 자극을 주어도 순식간에 배우고 까먹지 않는다!!! 인간에게서도 동일한 메커니즘이 작동하는지의 여부는 과잉기억증후군을 갖는 환자 수가 너무 적어 아직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CREB 유전자를 적당히 조절할 수 있다면, 우리의 기억력을 향상시키거나 기억력이 저하된 것을 복구할 수 있지 않을까? 와 같은 놀라운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치매 환자에서 CREB 유전자가 저하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현대의 기억 연구 - 인셉션에 한 발 더 가까워지기


현대 유전학의 놀라운 발전에 힘입어, 우리는 이제 기억을 저장하는 세포들(그러니까, 우리가 찾던 <엔그램>)을 말 그대로 보고, 또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억에 CREB 의 활성화가 중요하다면, 반대로 CREB 에 의해 조절되는 신경 세포들을 보고 ‘기억을 저장하는 세포’ 가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새로운 유전자 변형 동물들을 이용하면, 이 ‘기억-저장 세포’ 를 특이적으로 활성화시키거나 비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그림 4)!


그림 4. 기억을 하는 과정에서 특이적으로 활성화되는 해마의 엔그램 세포들. 이 세포들을 조작함으로써 우리는 가짜 기억을 만들거나, 기억을 없앨 수 있다.


토네가와 스스무로 대표되는 이와 같은 기억 연구의 패러다임 체인저들은 이런 기법을 이용해 기억을 선택적으로 지우고(Han et al., 2009, Science), 인셉션처럼 가짜 기억을 심어 넣고(Ramirez et al., 2013, Science), 기억을 우리가 원할 때 활성화시키는 법을(Liu et al., 2012, Nature) 개발해 내었다! 우리는 이제 살아 있는 동물에게서 기억을 조절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그림 5).


그림 5. 인셉션의 한 장면처럼, 이제 우리는 생명체의 기억을 조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인간에게까지 갈 길은 멀지만.



기억 그리고 잠: 기억의 추상화와 공고화


마지막으로, 기억과 잠에 관하여 한 문단만 더 이야기하고 이번 연작을 끝맺도록 하자.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익히 경험해 알고 있듯, 잠은 기억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수없이 진행된 심리학 실험들은 무언가를 학습한 후 숙면을 취하면 훨씬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발견했다(그러니, 벼락치기와 밤샘 공부는 그만하고 저녁에 공부를 한 후 숙면을 취하자). 이것은 잠이 기억에 모종의 영향을 미친다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렇다면, 이 두 요소는 어떻게 상호작용하는 것인가?


대부분의 학자들은, 잠을 자는 동안 우리의 장기 기억이 형성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해마라는 구조물은 우리의 기억을 ‘형성’ 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했었는데, 그렇다면 기억의 장기 '저장'은 해마가 아닌 해마 외 공간, 예컨대 피질에 저장될 것이다(해마를 절제하면 새로운 기억의 형성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과거의 기억을 까먹는 것은 아니므로). 이 해마에서 피질로 기억이 옮겨가는 과정을 우리는 시스템 기억 공고화(system memory consolidation) 라고 지칭하는데, 이 과정이 바로 수면 시간 동안, 그 중에서도 특히 깊은 잠인 서파 수면에서 일어난다 (그림 6).


그림 6. 해마에서 피질로의 '기억 전달'. 쥐의 공간 기억이 이동하는 것을 모식도로 나타내었다. Draguhn, 2018.


해마는 내부의 회로 배선을 이용하여 외부에서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들을 한 데 직물처럼 엮어 내는 역할을 맡는다(해마는 오감을 비롯한 온갖 정보를 종합하여 받아들인다). 이렇게 오감을 엮어 만들어진 초기의 기억은 해마 내부에 위치하다가, 우리가 잠을 자는 동안 재활성화된다. 해마 신경 세포들이 낮 동안 겪었던 기억들을 반복해서, 그리고 요약해서 아주 빠르게 재활성화하는데, 이 과정에서 해마에서는 초당 200번 가까이 세포들이 진동하SWR (Sharp-wave-ripple, 예파 진동) 이 나타난다. 이 짧은 진동 속에 낮 동안의 일을 반복해 재생하며, 연관된 피질 부위에 반복적으로 정보를 제시함으로써 피질 안에 기억의 흔적을 만드는 것이다(실제로 SWR 이 나타날 때 전기 자극을 주어 이 진동을 차단하면 동물은 기억을 올바르게 형성하지 못한다).


비유컨대 마치 해마는 우리가 낮 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세세히 기록한 수첩과도 같으며, 밤에는 이 수첩을 보며 중요했던 내용들을 추려 반복 학습하며 옆에 있는 두툼한 공책(피질) 에 오랫동안 저장하기 위해 옮겨 적는 것과도 같다(수첩은 용량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옮겨 쓰기를 마치면 이제 새로운 내용을 적기 위해 지워버린다). 즉 해마는 낮과 밤에 쓰기 모드와 읽기 모드로 번갈아 순환하며 정보를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역할을 맡는다(이 모드의 전환은 전두엽에서 오는 뇌파 진동이 조절한다고 제시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취득한 기억을 장기간 유지하고 체계화하기 위해서는 깊은 숙면이 필수적인 것이다.


앞서 해마에서 피질로 기억이 옮겨 갈 때, 중요한 내용을 선별하여 추린다고 했다. 사실, 우리는 기억을 할 때 일어난 일 자체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미주 5 를 참조하라). 우리의 기억은 사진이나 영상처럼 불변하는 무언가를 정밀하게 담아 두는 매체보다는, 수업 시간에 필기하듯 중요한 몇몇 단어나 요소들을 맥락에 따라 배치한 것에 더 가깝다(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오류에 취약하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거짓 기억을 만들어내는가?(미주 6)). 그렇기 때문에 기억은 고도로 추상화되고 요약된 정보인데, 예를 들자면 우리가 '개' 라는 대상을 '다리가 네 개 달리고, 혀를 내밀고 헐떡이며, 사람을 좋아하는 포유동물' 이라고 개념화하는 것과도 같다. 이는 세세한 정보를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수많은 정보들을 요약적으로 저장함으로써 우리의 저장 능력을 향상시키고 추론적 사고를 가능케 한다.



그림 7. 우리의 스키마 네트워크는 이전에 들어온 정보들의 공통 부분을 추출하여 지식의 뼈대를 만들며, 이를 이용해 새로운 정보를 배운다. Gilboa, 2017

기억에 있어 이와 같은 추상화되고 정리된 내용을 스키마(schema,인지틀) 라고 부르는데, 여러 심리학 및 동물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스키마를 이미 가지고 있는 내용에 대해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학습할 수 있다(그림 7). 예컨대, 우리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분야의 지식을 더 빠르게 배운다. 왜? 이미 해당 분야에 대한 스키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전혀 기반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분야(예를 들어 내가 철학이나 로마사를 공부할 때)를 학습할 때 또는 단순 암기를 할 경우에는 훨씬 학습 속도도 느리며 쉽게 잊는다. 기존의 정보에 연결할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물체들을 실로 엮어 모빌을 만들 때, 더 많은 물체들과 연결된 개체는 쉽게 제거할 수 없으며 다른 물체들이 흔들릴 때 더 쉽게 따라 흔들릴 수 있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변두리에 한두 개의 실로 연결된 개체는 쉽게 떨어질 뿐더러, 눈길도 그다지 끌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추상적 사고와 내용의 연결이 기억에 중요한 이유다(나는 그래서 무언가를 배울 때, 그것을 추상화하고 마치 거미줄과 같이 나의 기존 지식에 연결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고자 노력한다).



맺는 글


이번 글에서는 기억 연작의 마무리를 짓다 보니 담고 싶은 내용이 많아 다소 무리한 감이 있지만, 이전 글의 고전적 연구를 지나 최신의 기억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시작하는 글 첫머리에서도 말했지만, 기억은 복잡한 현상이고 아직도 수많은 토의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하다 못해, 이 글 마지막에 적은 해마-피질 간의 연관성도 여러 이론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글의 간결성을 위하여 (그리고 나처럼 취미로 논문을 읽는 사람이 다루기에는 너무 복잡하여) 이와 같은 여러 대립 이론을 다루지 못하고 과도한 단순화를 한 설명에 아쉬움이 다소 남지만, 기억에 대한 하나의 '스키마' 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이길 바라며 마무리한다.



미주 Endnote


미주 1. 컴퓨터의 저장 장치들은 실제로 그렇게 작동한다. 몇 개의 논리 회로를 잘 연결하면, 전원이 공급되는 한 이전에 입력된 0 또는 1의 값을 '기억' 하는 간단한 회로를 만들 수 있고, 이것이 바로 램의 작동 원리다. 더 장기간 기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전기의 유무에 상관없는 물리적 방법을 통하여 기록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자성을 이용해 기록하는 하드드라이브 따위다.


미주 2. 이들은 간단한 군소 모델의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쥐나 토끼와 같은 훨씬 복잡한 생명체의 뇌에서도-그 중에서도 해마에서-이와 같은 시냅스 연결 강도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1966년 이후 몇 년간 토끼의 해마에서 전기 자극의 강도에 따라 달라지는 시냅스의 장기적 강화를 관찰한 뢰모의 연구이다.


미주 3. 데이비드 이글먼의 비유를 빌리면, 같은 시간대에 계속 마주치는 사람들끼리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은 격이다. 아침 아홉 시에 산책하는 사람과 아홉 시 오 분에 산책하는 사람들은 자주 마주칠 것이고, 우연한 계기로 대화를 시작하고 친구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 아홉 시에 산책하는 사람과 오후 세 시에 산책하는 사람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물론 실제 생명 체계는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하지만, 간결한 비유로 충분히 적절해 보인다.


미주 4. 이와 같은 전압 의존적인 조절은 다른 단백질에서도 관찰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칼륨(포타슘)의 방향을 조절하는 스퍼민이라는 물질이다. 스퍼민 또한 전압에 따라 구멍을 틀어막거나 열게 해서, 전류가 한 방향으로만 흐를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처음에는 정액에서 발견된 물질이다.


미주 5. 우리는 시험을 볼 때마다 더 나은 기억력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하며 한탄하지만, 인생의 많은 것이 그렇듯 기억 또한 적당한 것이 낫다. 전 세계에 62명만 존재하는 과잉기억증후군 환자들은 인생의 수많은 기억들을, 심지어는 잊고 싶은 기억들조차도, 잊지 못하며 산다. 이것은 마치 방에 물건을 들이기만 하고 버리지 않는 것과도 같다. 정리 없이 모든 것을 가지고 들어오기만 한다면 우리의 방은 무용한 쓰레기 더미나 다름없게 될 것이다. 우리의 기억도 소중하고 필요한 것만을 선별적으로 골라, 그것을 압축하고 저장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선별적 필터 없이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면 쓸모없는 기억들의 홍수에 우리의 중요한 기억들을 묻어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 마치 듣지도 않을 강의를 모조리 녹화했다가 꼭 필요한 부분을 다시 찾아내지 못한다던가, 책의 모든 페이지 모든 문장에 형광펜을 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꼴이다. 관련하여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푸네스> 의 문단을 인용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에게는 일반적인 사고, 즉 플라톤적인 사고를 할 능력이 실질적으로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개'라는 속적 상징이 형태와 크기가 상이한 서로 다른 개체들을 포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으며, 또한 3시14분에 측면에서 보았던 개가 3시 15분에 정면에서 보았던 개와 동일한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곤 했다. 또한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자신의 손을 보고 매번 놀라기도 했다. (…) 그는 거의 참을 수 없을 만큼 정밀하고 순간적이고 다양한 형태의 세계를 지켜보는 외롭고도 명민한 관객이었다. (…) 그는 힘들이지 않고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라틴어를 배웠다. 하지만 나는 그가 사고하는 데는 그리 훌륭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해 본다. 사고라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화하고 추상화하는 것이다. 푸네스의 비옥한 세계에는 상세한 것들, 즉 곧바로 느낄 수 있는 세세한 것만 존재했다.”

추억은 삶을 아름답게 만들지만, 삶을 견딜 만하게 해 주는 것은 망각뿐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


미주 6. 이 <잘못된 기억>의 존재는, 증인의 말이 그렇게 신뢰할 수 없는 증거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심지어 피해자의 증언 또한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표적으로 한 강간 피해자는 도널드 톰슨이라는 심리학자를 가해자로 지목했는데,  톰슨은 범죄 시각에 생방송을 진행하던 중이었다(따라서 가해자가 아니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피해자는 범죄 동안 톰슨의 얼굴이 나온 TV 프로그램을 보았고, 이 두 가지 사실을 잘못 연합하고 기억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일부로 거짓 증언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진실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의 기억은 왜곡에 취약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