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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Oct 15. 2023

(55) 철의 시대

철기 시대의 태동과 현재

아무도 철을 파괴할 수는 없지만, 철 위에 난 녹은 그렇게 할 수 있다.

-라탄 타타, 인도의 철강왕



현대 문명의 뼈대, 철


인류의 문명을 생명체에 비유한다면, 그 원동력은 에서 얻어낸 에너지와 전기가 될 것이다. 그 문명의 형체를 지지하는 뼈대는 무엇일까 하면, 그것은 이 될 것이다(그림 1). 현대 문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산업 혁명을 뒷받침한 것은 막대한 물류를 나를 수 있게 해 준 강철제 철로와 금속제 기계들이며,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마천루와 빌딩들을 가능케 한 것도 철이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철을 보지 않는 것이 더 힘들 정도인데, 일상 생활부터 첨단 산업까지 모든 곳에 존재하는 물질로는 철만한 것도 손에 꼽기 힘들 테다. 2023년, 인류는 18억 톤의 강철을 생산했다(생산량의 절반은 중국에서 만들어진다).


그림 1. 거대한 뉴욕의 마천루. 이 <문명의 심장>을 지지하는 것은 철골과 철근, 철 파이프와 철 로프들이다.


철은 인류가 머나먼 기원전부터 사용해 온 물질인데도(철기 시대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철이 몹시도 흔하기 때문인데, 철은 우주 전체에서 6번째로 흔한 원소이며(미주 1), 지구 지각에서는 네 번째로 흔한 원소다(그림 2; 이 구성비를 클라크수Clarke number라고 부른다). 지각에서도 그렇지만, 금속질로 이루어진 지구의 내핵은 다량의 용융된 철로 이루어져 지구 전체 무게 중 1/3을 철이 차지할 정도다.


이렇게 철이 몹시도 흔한 이유 중 하나는 의 원자핵이 에너지적으로 가장 안정된 이기 때문인데, 철보다 가벼운 원소들은 궁극적으로 핵융합을 통해 에너지를 방출하며 철로 변화하고,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은 핵분열을 통해 에너지를 방출하며 철(또는 인접한 원소들)로 변화한다. 즉 철은 핵화학 반응의 종착지인 셈이다. 이에 비해 금과 같은 귀금속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량이다(94개 원소 중 75위로, 지각의 0.0000007% 를 차지한다). 이러한 풍부함은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철을 가장 저렴하고도 유용한 산업용 물질로 만들어 주었다(미주 2).


그림 2. 지구 지각에서의 원소 분포, 출처: https://en.m.wikipedia.org/wiki/Abundance_of_the_chemical_elements


이러한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철보다 다른 금속들을 더 먼저, 편리하게 사용해 왔다(물론 모든 문명에 적용되지는 않지만, 청동제 도구들은 철기 도구보다 더 먼저 발견되며 더 나중에야 철제로 대체된다). 그 이유는, 지표에서 철광석의 형태로 발견되는 대부분의 철은 산소와 강력한 결합을 하고 있는 산화철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미주 3). 


*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우리의 문명을 책임지는 이 철광석들은 남세균 덕분에 만들어졌는데, 본디 지구의 바다에는 화산 활동과 침식을 통해 녹아든 수많은 철이 이온 형태로 존재했다. 그러다가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만들어 내는 남세균이 출현하고, 이 세균들이 잔뜩 만들어 낸 산소가 바닷속에 녹아들며 37억 년 전부터 물 속에 녹아 있던 철이 산소와 만나 산화철이 되었고, 이 산화철은 바닥으로 침전하여 수억년간 쌓임으로써 띠 형태의, 수-수십억 톤 규모의 거대한 철광석 지대를 만들었다(그림 3).

 

그림 3. 거대한 철광석 광산. 이 광산은 수백 미터의 호상철광상(Banded iron formation, BIF) 라는 띠 모양의 퇴적된 철광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강 그리고 제철: 돌에서 강steel 으로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다시 돌아오면 산화철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녹과 같은 물질이며, 우리가 금속 철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강도나 물질적 특성을 전혀 갖지 않는다. 결국 금속으로 된 철을 얻고자 한다면, 이 철광석에서 모종의 방법으로 산소를 제거하여 철을 얻어내야만 한다. 그러나, 철의 녹는점은 1,500도 가량으로 단순히 장작을 가지고 낼 수 있는 화력으로는 철을 가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나무로 때우는 모닥불은 그 연소의 효율성 때문에, 600도에서 높아야 1000도를 넘나드는 정도의 온도밖에 낼 수 없다) 인류는 매우 제한된 경우가 아니면 철이라는 금속을 이용할 수 없었다(미주 4).


그림 4. 모루(anvil) 에 뜨겁게 달군 쇳덩이를 올리고, 망치로 쳐서 모양을 잡는 주조. 모루의 특징적인 뿔 모양은 쇠를 둥글게 구부릴 때 사용한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쌓인 기술로 철을 이용해보고자 하는 여러 시도가 있었는데, 가장 이르게 사용된 것은 블루머리bloomery 라고 부르는 간단한 구조의 용광로였다. 기원전 중국부터 중세 시대 유럽까지 폭넓게 사용된 이 용광로에서는 석탄이나 목탄과 함께 철광석을 가열했고, 이 과정에서 비록 철광석을 완전히 녹일 수는 없었지만 철광석에 들어 있는 산소를 석탄이나 목탄에 들어 있는 탄소와 결합시켜 빼낼 수는 있었다. 이렇게 산소가 빠져나간(즉 환원된reduced) 철광석을 직접환원철(direct reduced iron) 이라고 부르는데, 철광석에서 산소가 떨어져 나가면서 빈 공간이 마치 스펀지처럼 구멍이 송송 뚫려 있다고 하여 스펀지철이라는 이명으로도 불린다. 이러한 구멍이 숭숭 난 철은 당연히 강도가 약했으므로, 묵직한 망치로 어떻게든 두드려서 이 구멍을 메우고 형태를 잡아 사용해 왔다(그림 4; 이렇게 두드리고 눌러서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을 단조forging 이라고 부른다; 미주 5).


그림 5. 아주 먼 과거부터, 무쇠(주철) 는 조리도구와 같은 일상 용품에 널리 이용되어 왔다.


이렇게 철에 석탄과 같은 탄소 재료를 첨가하게 되면, 철의 녹는점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그 이유는 단단하고 견고한 철 격자 사이에 탄소가 끼어들어가며 격자구조 형성을 방해하기 때문으로, 분자 결합이 약할수록 녹는 점은 낮아지게 되므로 탄소 함량이 높을수록 철광석은 녹기 쉽게 변한다. 고함량의 탄소(~4.3%) 를 포함하는 철은 따라서 훨씬 쉽게 녹아 1100도 정도로도 녹일 수 있었으므로, 풀무나 석탄을 이용해 어떻게든 녹여볼 수 있는 정도였다.


따라서 이러한 녹인 쇳물을 이용해, 미리 모래나 점토 같은 재료로 만든 틀에 쇳물을 부어 굳혀 내는 주조(casting) 방법이 널리 이용되게 되었다(그림 5). 그러나, 이러한 주조에 사용되는 주조용 철(casting iron, pig iron 또는 선철이라고도 부른다; 미주 6) 은 탄소의 함량이 매우 높아서, 쉽게 휘지 않고 강한 충격을 받으면 깨져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특성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주철에서 탄소를 제거해 내야만 했다.


그림 6. 저 거대한 솥처럼 생긴 것이 전로다. 이곳은 철이 아니라, 강철을 만드는 곳이다. 쇳물에 산소나 공기를 격렬하게 주입해 강철을 만들어 낸다.

산업 시대로 접어들며 고효율의 연소 효율을 내는 석탄과 같은 에너지원을 통해서 대량의 철광석을 제련해 낼 수 있게 됨에 따라, 이렇게 얻어진 대량의 선철을 더 강도와 연성이 뛰어난 강철로 바꾸고자 하는 수요가 생겨났다(강철의 강은 강할 강強 자가 아니다. 흔한 오해 중 하나로, 강철 강鋼 자를 사용한다. 따라서 강철이라고 하는 대신 그냥 강이라고만 불러도 무방하다). 주된 원인은 탄소가 많이 들어가 탄소의 함유량이 높아지기 때문이었으므로, 초기에는 석탄과 같은 가열용 재료를 물리적으로 섞지 않고 따로 간접적으로 가열하는 방법을 택하였으나 나중에는 용광로에서 주철을 먼저 대량으로 만들고(제철 과정), 이 주철을 전로로 옮겨 불순물을 없애고 산소를 다시 불어 넣어 주철에 녹아 있는 탄소를 '태워' 없앰으로써 강철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채용했다(제강 과정). 이러한 전로(그림 6; converter, '전환시키는 노') 는 초기 개발 이후 수많은 개선을 거쳐 왔으며, 현재도 대부분의 강철을 생산해 내고 있다.




사실 이번 글을 적은 것은 최근에 수중에 들어온 무쇠 프라이팬을 시즈닝하는 것에 대해 적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제강과 철에 대한 것으로만 꽤 길어져 버렸다. 다음 글에서, 현대 건축의 정수인 철근 콘크리트와 함께 시즈닝은 별도로 다루어 보겠다.



미주 Endnote


미주 1. 우주 전체에서 가장 흔한 원소는 수소, 그 다음은 헬륨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전체 물질의 99% 가량을 차지한다(수소가 약 74퍼센트). 우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존재들인 별이 바로 고도로 압축된 수소와 헬륨 덩어리이며, 이 별의 초고온, 초고압 핵에서 핵융합을 통해 나머지 미량의 원소들이 생성된다(그리고 이 별들이 죽어 폭발하며 더 무거운 다른 원소들을 만들어 낸다; 우리가 금이나 은으로 된 반지를 만질 때, 우리는 수십억 년 전 죽어 스러진 별의 잔해를 만지는 것이다).


미주 2. 철은, 여타 금속들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쉽고 유연하게 모양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열과 전기를 잘 전달하고 단단하며 광택을 가진다. 이 모든 특성들은 다양한 산업적 이용에 도움이 되는데, 유연성과 인장력을 동시에 가지는 특성은 건축이나 여러 모양의 물건을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이 되어 왔다. 이런 특성은 금속만이 가지는 금속 결합이라는 고유한 결합 때문인데, 이는 여러 인접한 금속 원자들이 어느 하나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는 전자를 매개로 결합한 것을 의미한다. 이 자유로운 전자들 때문에 금속은 쉽게 변화할 수 있으며, 이 전자들의 움직임 때문에 열과 전기의 전도가 쉽게 이루어진다.


미주 3. 다른 사례는 알루미늄인데, 알루미늄은 지구 지각에 철보다도 흔한(3번째로 많다) 원소인데도 불구하고 그 제련의 어려움 때문에 1800년대 말에 전기 제련법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굉장히 비쌌다. 한때는 금보다 비쌌을 정도고 귀금속으로 취급받아 장신구를 만드는 데도 사용됐었다.


미주 4. 이 아주 제한된 경우라는 것이 운철(meteorite) 로, 하늘에서 철로 된 운석이 떨어지며 여기 포함된 미량 금속 원소들과 공기와의 마찰 및 단열압축으로 인한 초고온을 통해 자연적으로 고품질의 철 주괴를 형성한 것을 의미한다. 철광석을 녹일 수 없었던 고대인이 접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고품질의 철이었기에, 수천 년 전부터 이러한 운철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선물로 신성시되며 지배층이 사용하는 값비싸고 귀중한 무기나 장신구에 사용되었다. 표적으로 투탕카멘의 무덤에 있는 부장품 중, 이 운철로 만들어진 칼이 있었다는 것이 분석을 통해 알려졌다.


미주 5. 이렇게 열을 가하고 금속을 두드리게 되면, 금속 내부의 가스가 만들어 낸 미세한 틈을 채울 뿐 아니라 내부의 미세한 금속 결정을 균등하게 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정렬시켜 피로 저항성을 높여 준다. 물론 이러한 단조는 여러 명의 숙련된 장인이 필요한 엄청난 노동력과 연료가 드는 작업이었기에 생산량에 한계가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대장간을 묘사한 작품들을 보면, 달구고 두드린 금속을 물에 집어넣어 급격히 식히는 장면이 있다. 이것을 담금질(quenching) 이라고 부르는데, 열처리 공법의 일환으로써 금속의 결정이 굳어지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조절하여 결정 구조를 변화시키는 목적으로 행해진다. 이는 오랜 기간의 경험이 쌓인 경험적 행동이었는데 현대 과학으로 이 원리가 밝혀지게 되었다. 펠라이트강 상태의 탄소강을 공정점(금속이 합금을 형성하는 온도) 이상으로 가열한 후, 급격하게 냉각시키면 탄소강 특유의 강성을 주는 상phase인 마르텐자이트가 형성됨이 알려졌다.


미주 6. Pig iron 은 주철로 만들어 낸 주괴의 모양에서 본뜬 말로, 주철 주괴를 만들 때 긴 가운데 길을 따라 좌우로 주괴를 채울 공간을 만들어 마치 나뭇잎이 양 옆으로 달린 나뭇가지 모양의 거푸집을 사용했다. 이것이 마치 어미에게서 젖을 먹는 새끼 돼지들 모양과 같다고 하여 pig iron 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담으로, 우리 나라의 엽전은 잎 엽 자를 쓴다. 이름이 붙은 가설 중, 주조식으로 부어 내면 마치 중앙 가지에 동전이 잎처럼 붙은 모양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 최근 한 달간 현생이 바빠 업로드가 늦었었습니다.

앞으로 조금 더 박차를 가해서*, 당분간 성실히 글을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박차가 무엇인지 알고 계셨나요? 박차는 카우보이와 같은 말을 타는 사람들이 신발 뒤에 달아서 말을 찔러 빠르게 달리게 할 때 쓰던 도구입니다. 이것이 관용어구로 전해져 박차를 가하다는 말이 일을 빨리 진행시킨다는 뜻이 되었습니다.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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