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자들은 동물 간의 차이에서 신비로움을 찾는다면, 생리학자들은 그 모든 동물들이 근본적으로 같은 방법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에서 신비로움을 발견한다.
-앨런 호지킨
들어가며
우리는 같이 이전의 글에서, 신경세포가 가지는 독특한 특징인 활동 전위의 발생 기전에 대해 알아보았다. 신경세포는 이 갑작스러운 전기 신호의 발생을 위해, 마치 댐 너머에 물을 쌓아 두었다가 쏟아내듯 막에 전기를 띠는 이온을 저장하였다가 그것을 투과시키는 방법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오늘은 이 제일 마지막 부분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더 진행해 보며 우리의 첫 질문, <신경세포의 특징들은 동물, 그리고 뇌와 함께 생겨났는가> 에 대해 답한다.
세포를 흥분시키는 단백질
갑작스러운 전기적 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세포를 통틀어 우리는 전기적으로 흥분 가능한electrically excitable 세포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것이 신경세포와 근육세포인데, 이들은 독특한 단백질을 발현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세포가 가지고 있는 막은 본질적으로 아주 얇은 기름층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기름막은 물 그리고 물에 잘 녹는 전해질들의 이동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따라서, 전기를 띠는 입자를 투과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을 위한 통로가 필요하다(우리가 벽을 맘대로 통과할 수 없어서 문을 설치하듯이). 이러한 통로 단백질은 정말로 통로 구조로 생겼는데,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을 층층이 위로 쌓아 만든 팔토시를 상상하면 된다(그림 1). 이 '구멍pore' 은 이온을 투과시키는 물리적 공간을 만들면서, 내부에 있는 단백질의 전하charge 와 구조를 통해 아무 이온이나 통과시키는 것이 아닌 특정 이온들만을 투과시키는 역할을 한다(미주 1). 이러한 구분을 통해, 포타슘(칼륨) 이온을 투과시키는 단백질은 포타슘 채널, 소듐(나트륨) 이온을 투과시키는 단백질은 소듐 채널 따위로 구분하여 부른다(미주 2).
그림 1. 전압의존성 포타슘 채널의 단백질 구조.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하면 도넛 모양을 볼 수 있을지도. (Fowler, 2013)
이런 단백질 중에서도 우리는 특히 전압의존성 이온 채널들에 관심이 있다. 즉, 세포막에서 약간의 전압 변화가(전기 신호가) 관찰되면 그것을 인식하고 증폭해 신경세포에서 관찰되는 급격한 전류로 바꾸어 주는 단백질들 말이다. 이러한 전압 의존성 채널들은 동물계에 아주 널리 퍼져 있다. 대표적으로, 인간에게는 235개의 막 발현 단백질 유전자가 발견되는데(T. Jegla et al., 2009, combinatorial chemistry and high throughput screening; 2009년 자료고, 언제나 새로운 유전자 기능이 발견되고 있으니 아마 지금은 이보다 몇 개는 더 알려졌을 것이다; 최근 각광받고 있고 21년도 노벨상 수상의 대상이었던 Piezo 채널은 기존 알려진 채널 구조와는 완벽하게 달라 많은 연구자의 놀라움을 샀다), 이 중 60여 개가 전압의존성 포타슘, 칼슘 그리고 소듐 채널이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수를 차지하는 것은 전압의존성 포타슘 채널(40개-12개의 서브타입으로 구성된다)고, 전압의존성 칼슘과 소듐 채널이 10개씩 존재한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칼슘과 소듐 채널은 모두 약간 변화된 포타슘 채널같이 생겼다. 포타슘 채널이 가지는 기본적인 구조를 '복사-붙여넣기' 한 똑같은 구조가 칼슘 및 소듐 채널에서 모두 발견된다는 말이다(미주 3).
구조에서 예측하는 역사 : 이온 채널의 진화
이러한 유전자의 다양성 및 구조에서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진화의 과정이다. 우리가 컴퓨터에서 무언가 파일에 대한 새로운 버전을 만들 때, 기존의 파일을 바로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복사본을 만들어 낸 후 그것을 수정하듯(그림 2; 그래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기록 겸 기존 파일과 새로운 파일을 모두 보존하듯) 우리의 유전자에는 이와 같은 복사-붙여넣기가 흔히 일어난다. 미주 3에서 언급했듯, 전압의존성 칼슘 채널과 소듐 채널은 포타슘 채널 4개를 그대로 이어붙인 것과 같이 생겼다. 이는 아마도 포타슘 채널 유전자가 진화 과정에서 그대로 두 번 복제되고(* 그래서 4배가 되었고) 돌연변이에 힘입어 새로운 기능에 차용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림 2. 우리는 기존의 것을 수정할 때, 수정 사항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겸, 일종의 백업을 남긴다. 우리의 유전자에서도 이런 '복사 후 수정'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복사> 된 횟수가 많은 파일은 아마도 더 오래 전부터 만들어 진 파일일 가능성이 클 테다. 반면, 복사본이 몇 개 없다면 그것은 최근에 새롭게 만들어진 파일일 가능성이 클 것이다(이것은 우리 주변의 물건들과도 비슷한데, 최근의 발명품은 개량되고 아종이 도입될 시간이 충분치 않은 반면,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온 물건은 다양한 개조와 개량을 통해 다양한 서브타입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추측에 입각한다면, 우리는 이 유형들 중 포타슘 채널이 훨씬 오래되었으며, 칼슘과 소듐 채널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림 3. 생명체에 존재하는 다양한 막 채널들의 진화 도표. 왼쪽에 있을수록 진화적으로 오래된 유전자다. 포타슘, 칼슘, 그리고 소듐 순서로 생겨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포타슘 채널이 가장 먼저 나타났고 다양화 과정을 겪었으며, 그 다음은 칼슘, 그리고 그 다음으로 소듐 채널이 나타났다(그림 3). 일반적인 우리가 아는 신경세포는 양이온으로 소듐을 들여보내며 양의 전압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어느 과거 순간에는 소듐이 아니라 칼슘을 이용해 활동 전위를 만드는 동물들도 있었음을 시사한다. 사실은 지금도 있는데, 많은 무척추동물들은 칼슘과 소듐 모두를 이용해 활동전위를 만들며, 예쁜꼬마선충은 심지어 소듐 채널이 없어서 칼슘만 사용한다(그림 4). 왜 이미 칼슘이 있는데도, 굳이 소듐을 이용한 메커니즘을 생명은 새로 개발했을까? 아마도 과다한 칼슘에 의한 독성을 막기 위해서였거나, 더 빠르고 시간적 패턴을 정밀하게 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다.
그림 4. 959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예쁜꼬마선충. 이 선충도 뉴런을 갖는데, 이들은 독특하게 전압의존성 소듐 채널이 없어 칼슘을 이용한 활동전위를 만든다.
또한, 아마도 더욱 오래 전에는 포타슘만을 이용한 신호 전달 기능이 존재했음을 추측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세균들이 그렇다. 이 세균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 낸 바이오필름에서는 마치 야구장 파도타기를 하듯, 한 세균이 내보낸 포타슘이 전기적 활성을 일으키고 이를 감지한 옆 세균이 다시 포타슘을 내보내며 연속적으로 전달되는 전기 펄스가 생겨난다(그림 5; 미주 4). 이러한 펄스는 세균들에게 아주 원시적이고 간단한 의사소통 수단을 제공하며(현재 먹을거리가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유전자 조절을 담당하며, 세균의 이동과 부착에도 관여한다), 놀랍게도 비슷한 메커니즘을 통해 해파리와 같은 간단한 신체 구조를 가지는 동물들은 근수축을 조절한다(미주 5).
그림 5. 세균 바이오필름에서의 전기 활성. 활성화된 세균은 포타슘을 내보내고, 이것은 옆 세균을 다시 활성화함으로써 전기의 파도를 만든다. Prindle, 2015
막전위와 채널들-신경세포만을 위한 선물?
아무튼, 여기서 놀라운 것은 심지어 첫 '동물' 이 나타나기 전에도 이 채널들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동물이 없고, 따라서 신경 세포가 없음에도 이런 이온 채널들이 존재했다는 건 우리의 상식과 다르게, 이온 채널이 신경세포를 위한 특이한 구성 요소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다른 일을 하는가?
최근, 비흥분성 세포(즉 근육과 신경이 아닌) 에서도 나타나는 이온의 농도 구배와 막전위 기능에 대한 새로운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그림 6). 이러한 연구에서는 이온 채널에 의해 나타나는 막 전위가 단순히 신경세포나 근육세포의 활성을 위한 메커니즘이 아니라, 생명 현상에 근본적으로 중요하며 필수불가결한 무언가임을 반복적으로 시사한다(상식적으로, A가 나타나기 한참 전부터 B 가 있었다면, B가 A를 위해서만 준비된 무언가이기보다는 A가 B를 바탕으로 나타난 것일 테다; 지구는 인간이 태어나기 까마득한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지구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셈이며, 오히려 인간이 지구라는 환경에 힘입어 지금처럼 번영한 것이 올바른 인과적 설명이겠다). 이는 막전위가 신경세포를 위한 독특한 형질로 나타났다기보다는, 모든 세포에 존재하는 막전위를 신경세포가 차용해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그림 6.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 모든 동물 세포들은 능동적으로 이온 농도를 조절하며 막전압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그 기능은 무엇인가? (Kadir, 2018)
그렇다면, 우리의 신경이 너무나 잘 차용해 이용하고 있는 이 이온 채널과 막전위는 본디 무슨 일을 하는 장치인 것일까? 막전위와 이온 농도 구배는 아마 초기에는 세포의 크기 및 삼투압 조절 메커니즘으로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포 내부에 용질이 들어오면 물이 삼투압으로 인해 자연스레 들어오므로, 세포의 부피가 커지게 되는 등 두 가지가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많은 세포의 성장 및 분열 주기가 막전위에 의해 조절받는다(그 증거로, 왕성히 분열하는 세포들일수록 막전위가 높고, 분열을 멈춘 세포들은 막전위가 낮다. 또한, 높은 막전위를 가진 세포의 막전위를 인위로 낮출 경우 세포들의 분열과 성장이 멈춘다). 또한 전기적 활성도와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면역 세포들도 사실은 전압의존성 이온 채널들을 통해 다양한 면역 인자를 내뿜는다는 것이 밝혀졌으며(이는 우연히 전압의존성 칼륨 채널 억제제가 면역 억제 기능이 있다는 관찰을 통해 알게 되었다), 세포의 분열과 막전위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암의 진행에 대한 연관성을 시사한다(암이란 본질적으로 조절받지 않는 세포 분열이기에). 아직 이 분야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어쩌면 암과 같은 난제에 대한 해답이 여기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미주 Endnote
미주 1. 여기서 신기한 것 중 하나는, 이러한 이온 특이적 투과성에 있다. 예를 들어서, 포타슘 이온(K+) 은 소듐 이온(Na+) 보다 더 큰데도 불구하고 포타슘 채널은 소듐이 아닌 포타슘만 통과시킨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키가 180cm 인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문은 170cm, 160cm 인 사람들은 더욱 쉽게 통과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선택적 필터링selectivity filter의 메커니즘은 1990년대 말에 밝혀졌는데, 간단히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이 문은 마치 팔다리를 뻗어서 동시에 4개의 버튼을 눌러야지만 열리는 문인 셈이다. 그래서 180cm 인 사람에 맞추어 만들어진 문은 딱 그 정도의 키를 가진 사람에게만 맞고, 키가 더 작다면 '스위치를 누를 수 없으므로' 통과할 수 없는 셈이다 (더 정확한 설명은 탈용질화와 수화에 관련된 에너지 메커니즘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로드 매캐넌은 2003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미주 2. 한국 과학 용어에서는 종종 일본-독일식 명명과 미국식 명명법이 뒤섞여 혼란을 주곤 한다. 나트륨은 소다를 뜻하는 나트론natron에서 온 말이고, 소듐은 소다soda에서 바로 따 온 말이다. 마찬가지로 칼륨은 아라비아어로 타고 남은 재ash를 뜻하는 칼리에서 왔으며 포타슘은 영어로 식물 재를 의미하는 pot-ash 에서 온 말이다(타고 남은 재는 강한 염기성이라서, 염기성을 뜻하는 알칼리도 같은 어원이다-NaOH 를 양'잿'물 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 결국 그 어원은 동일하지만, 어느 언어에서 기원한 것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것 뿐이다.
미주 3. 사실은 그 뿐 아니라 거의 대다수의 채널들에서 이런 유사성이 관찰된다. 포타슘 채널은 6개의 막투과단위(transmembrane domain) 을 가지는 서브유닛이 4개 모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그리고 이 중 5번과 6번 사이의 루프가 '구멍' 을 형성하고 4번 도메인이 전압을 감지한다-, 칼슘과 소듐 채널은 이 서브유닛 4개가 한데 엮여 24개의 막투과단위가 줄줄이 소시지로 엮인 형태다. 또한 이 6개의 막투과 단위를 가지는 전압의존성 포타슘 채널은 2개의 막투과 단위를 가지는 더 간단한 포타슘 채널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생각되며, 이 채널은 수많은 다른 채널들의 기원으로 여겨진다. 대표적으로 우리 뇌의 시냅스에서 아주 중요한 AMPAR 및 NMDAR, 칼슘의존성 포타슘 채널Kca, 내향성 포타슘 채널Kir, 2포어 포타슘 채널K2p, 환상뉴클레오티드의존성 채널CNG, 통증, 온도 및 촉각 등 감각전달에 중요한 TRP 채널 패밀리 등이 모두 매우 유사한 구조를 갖는다.
미주 4. 이와 유사한 전기 활동을 사용하는 것은 비단 동물들뿐이 아니다. 우리가 밟고 있는 땅 밑에는 거대한 균사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있는데(곰팡이가 뻗어내는 길다란 실 같은 구조물), 이 네트워크에서는 끊임없는 전기 활성이 일어나고 있다. 아마도 뿌리에서 뿌리 사이를 연결하는 이 균사들이 동물의 신경세포가 그러하듯 거대한* 균체 간 빠른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 연구는 이러한 균사를 통한 의사소통이 최대 50개의 어휘를 가진다는 걸 발견했다(A. Adamatzky, 2022, Royal society open science).
* 세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가 뭘까? 흰긴수염고래나 거의 100미터까지 자라는 세쿼이아를 떠올릴 사람도 있겠으나, 가장 큰 면적을 가지는 생명체는 균류에 속한다(일반적인 용어로, 곰팡이다). 미 오레건주에서는 무려 9제곱킬로미터를 덮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균사가 발견되었는데, 약 2400살 먹은 이 균사체는 600톤 이상 나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주 5. 여기서 엄청나게 놀랍고 재미있는 상상이 가능한데, 해파리와 같은 동물의 '피부' 에 있는 세포들이 이런 전기 펄스를 통해 의사소통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우리 인간이나 척추동물은 피부에서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데? 여기엔 발달 과정을 보아야만 알 수 있는 심오함이 있는데, 좌우대칭동물들의 피부와 신경계는 모두 외배엽이라는 공통된 배엽에서 발달한다(이후 접혀 들어가며 몸 속으로 이동한다)! 일반적인 다른 내장기관들은 내배엽과 중배엽에서 생성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발생과정은 우리의 섬세한 신경세포와 해파리의 단순한 전기흥분성 피부에 대한 흥미로운 관계를 보여 준다.
* 참고 문헌
- L. Kadir et al., Front. Physiol., 21 November 2018
- P. Anderson et al., Comparative Biochemistry and Physiology, 2001
- W. Kristan, Jr., Current Biology, October 24, 2016
- 면역세포에서 이온 채널의 역할에 대해서는 Feske, S., Skolnik, E. & Prakriya, M, Nat Rev Immunol 12,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