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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Feb 20. 2022

(7)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1)

하윤의 Resolution

음악이 가지는 제일 큰 목표는 단순한 즐김이 아닌, 사람의 영혼을 신성한 자연에 연결시키는 것에 있다.

-피타고라스


음악은 이름지을 수 없는 것을 이름짓고, 알 수 없는 것들을 전달한다.

-레오날드 번스타인, 미국의 지휘자이자 작곡가.



화음의 정체


우리는 현대 사회에서 음악에 푹 젖어 살고 있다. 길거리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영상 매체를 비롯한 미디어는 음악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우리의 감정을 조절하곤 한다. 고성능 스피커가 들어찬 극장에서는 음악 하나로 우리에게 긴장감, 압도감, 혹은 눈물을 흘릴 법한 애픔을 전달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몸을 흔들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몇 개쯤은 쉽게 흥얼거릴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길거리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어폰을 통해 자신의 음악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마 이것이 음악의 힘일 것이다. 음악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좀 더 알아본다).


이러한 음악은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을 시간에 따라 쌓아나가는 것으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이다. 동일한 시간대에 여러 음을 연주한다면 그것은 화음이 되며,

그러한 화음을 다시 어울리게 시간 상에 배치함으로써 음악이 된다. 즉, 음악은 리듬에 맞추어 배치한 연결된 화음(화성)과 멜로디로 정의할 수 있다. 렇다면, 음악을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 중 하나인 화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떤 것은 화음이 되고, 어떤 것은 그저 시끄러운 잡음이 될까?


기타와 같은 악기를 조금이라도 연습해 본 사람은 손을 살짝만 잘못 짚더라도 조화로운 소리가 끔찍한 불협화음으로 변하는 것에 익숙할 것이다. 고작 음 하나, 그것도 약간의 높낮이 차이일 뿐인데 우리의 귀는 이 차이를 기막히게 알아채어, 특히나 남 앞에서 연주할 때면 우릴 곤혹스럽게 만들곤 한다. 문득 생각해 보면 이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음 하나, 하나를 들을 때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 차이가 다른 음과 어울릴 때면 약간의 차이로도 불쾌한 감정을 유도하니 말이다.


그림 1. 네안데르탈인이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뼈 피리. 음악의 기원은 매우 오래 전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일부는 그저 동물의 송곳니가 만든 흔적이라고도 주장한다.


음악은 미술과 함께¹ 인간이 가장 초기에 발달시킨 예술일 것으로 생각된다. 무려 5만 년 전에 만들어진 악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그림 1). 이것은 곰의 대퇴골을 깎아 만든 플루트인데, 이미 여러 구멍을 통해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등 상당히 발달한 형태임을 고려하면 이보다 더 이전부터 원시적인 음악은 시작되었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고고학적 연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있는 곳에는 음악이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 악기는 우리에게 구석기 시대의 예술로 잘 알려진 빌렌도르프 비너스 상(기원전 2만 5천 년 경), 피카소가 보고 ‘우리의 예술은 하나도 진보하지 않았구나!’ 며 탄식했다던 알타미라 동굴 벽화(기원전 3만 6천 년 경, (그림 2))나 1만 7천여 년 전의 로스코 벽화들보다도 앞선 시기다.


그림 2. 스페인 칸타브리아에서 발견된 알타미라 동굴 벽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² 인간의 예술적 본능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음악에 대한 탐구의 시작


음악은 초기에도 목소리나 박자에 맞춘 춤, 플루트와 같은 관악기나 타악기의 형태로 원시적인 상태부터 존재해 왔을 것이나, 이런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는 그리스 시대가 그 시작일 것으로 널리 받아들여진다. 우리도 잘 알고 있는 그리스 고전기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던 피타고라스가 여기서 등장한다(그림 3).


그림 3. 피타고라스(기원전 570-495) 에 대한 회화적 묘사. 그의 주된 업적들이 묘사되어 있다. 왼쪽의 리라를 주목하라.


피타고라스학파는 수학을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수와 수학적 법칙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추상적인 개념이었던 수학을 현실에 접목하여, 세상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수학적인 아름다움으로 환원되리라 믿었³. 우주의 수많은 것들은 아름답고 완벽한 정수 비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 정다면체로 우주 만물을 설명하려 한 것 또한 여기서 기원한다. 평면 도형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작은 숫자 3, 4원소의 4, 행성의 수 7 등을 신성시하고, 우리가 십진법을 사용하니 10을 아주 신성하게 여겨 10명 이상은 모이지 않았다고도 한다. 우리에게는 피타고라스의 법칙로 유명하지만, 수학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천문학은 물론이고 음악의 기초를 수학적으로 해석하는 데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그림 4. '피타고라스의 망치' 일화.


 (아마도 거짓일) 전설에 따르면 대장간 앞을 지나가던 피타고라스가 모루와 망치의 크기에 따라 어울리는 음과 그렇지 않은 음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전해지는데(그림 4), 그 당시의 음악적 경험에 따르면 현의 길이에 따라 퉁길 때 다른 높낮이의 소리가 나며, 이 현의 길이 비율에 따라 어울리는 음과 그렇지 않은 음이 정해진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그림 5. 오음계 시스템에 대한 도식도, 현재 피아노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옥타브를 12등분한 평균율이 그려져 있고, 초기에 찾아낸 5 비례음들을 녹색 원으로 표시했다.


피타고라스가 이것을 측정해 보니, 그 길이가 1:2 인 것과 2:3인 ‘아름다운 정수비’ 일 경우에는 참 어울리는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아내었던 것. 또한, 애매한 길이 비율인 13:14 와 같은 길이의 현에서는 불협음이 난다는 것도 알아냈다. 본디 생각하던 완벽한 정수 비의 아름다움을 찾아낸 피타고라스는 1:2 와 2:3 이라는 비율을 이용하여(이것을 현대 우리는 완전 5도라고 부른다) 현을 1.5 배 혹은 2배 늘리거나 줄이는 과정을 반복하여 8/9, 16/27… 과 같은 5개의 음을 만들어 내었고, 이것이 다섯 개의 음을 가진 오음계(펜타토닉스) 또는 발견자의 이름을 기려 피타고라스 음계라고 부르는 것이 되었다(그림 5,6). 재미있게도, 이러한 1:2 와 2:3 의 비율을 아름답다고 자연적으로 느낀 것은 그리스인뿐만이 아니었으니, 아시아에서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5가지 음을 만들어 이용하였다. 우리가 학교 음악 시간 때 듣곤 하는 궁, 상, 각, 치, 우와 같은 음들이 바로 이 펜타토닉스 음계.


그림 5. 다른 음으로 오음계를 만들면 다른 이름이 붙게 된다. 각 오음계에 대한 이름들.


그리고 이와 같은 1:2 와 2:3 을 이용한 계산을 더욱 진행하면 5음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7개의 음, 혹은 12개의 음으로 나눌 수 있다. 이 7음을 사용하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도레미파솔라시도의 온음계이고, 여기서 옥타브라는 말도 나왔다(8번째octa 마다 같은 음이 나오니까). 이 7음이 가지는 약간의 음높이 차이인 온음과 반음을 세부적으로 나누면 12개가 되고(2개의 반음과 5개의 온음이 있으므로, 2+5*2=12), 이것을 반음계라고 부른다(반음들로 이루어짐). 즉, 음이 하나 높아질 때마다 2^(1/12) 배만큼 소리가 높아져, 12개의 반음들을 지나면 2배가 높아지도록 만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도 사용하는 기본적인 음들의 역사다. 바흐와 베토벤, 비틀즈부터 방탄소년단까지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수많은 선율들은 1:2와 2:3 에서 시작된 셈이다.


그림 6. 그리스 고전기에는 리라나 하프, 아울로스(피리) 등의 악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거북이 껍질로 만든 리라, 대영박물관 소장.

(참고) 고전적 리라의 연주 영상 . 일종의 국악과도 비슷한 느낌이 난다.


약간은 여담이지만, 여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엄밀한 1:2 와 2:3 비율을 계속 적용해 나가다 보면, 2배를 정확히 1/12 로 나눌 수 없다(이 값은 x^12=2 를 만족시키는 x, 즉 2^(1/12) 로 무리수이기 때문). 그래서, 2배가 되어야 할 옥타브가 사실은 2.027 이라는 애매한 차이(피타고라스 수차라고 부르는)가 등장하고, 이 차이는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귀로 인식 가능한 수준의 오차이므로 문제가 될 뿐더러 조옮김과 같은 작업들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존재했던 것. 그래서, 피타고라스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2:3 이라는 정수 비가 아니라 정말로 한 음을 2의 1/12제곱, 즉 1.0595... 배만큼 증가시키는 평균율을 도입하게 되었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악기는 이 평균율에 따라 조율되어 있다. 피타고라스가 살아 있다면 자신의 아름다운 정수 세계에 더러운 무리수를 끼워 넣었으니, 땅을 치고 슬퍼할 노릇이다(그림 7).


그림 7. 무리수를 찾아냈다고 전해지는 히파소스의 초상화. 주석 4를 참고할 것.


다음 글에서는 소리란 무엇인지, 화음이 어떻게 인식되는지, 그리고 이러한 음악적인 요소가 동물과 인간, 문화권에 따라 어떻게 다를지에 대해 다루어보도록 하자.



미주 Endnote


1. 최초의 예술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아프리카 남부의 블롬보스 동굴에서 약 7만 5천 년 된 그림들이 발견되었고, 심지어 이것이 과연 예술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있지만 호모 에렉투스 시절의 50만 년 전에도 조개 껍데기에 선을 그어 새긴 유물 등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2. 이 벽화는 숯, 오커(산화철이 포함된 점토로, 전 세계적으로 고고학적 천연 안료로 사용된다. 노란색에서 붉은 색 빛을 띤다. 지금도 패션업계 등에서 '오커색'이라고 칭하는 것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적철석으로 그려졌다. 이 세 가지 재료는 벽화 등에서 매우 널리 사용된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검은색, 노란색과 붉은색이 인류에게 친숙한 색이었던 것도 부분적으로 이 때문일 것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런 벽화의 75% 가량은 여성이 그렸다고 한다(벽화에 찍힌 손 스텐실을 통해 추정했다). 이런 벽화 예술가는 남성일 것이라는 기존의 고정 관념을 뒤엎는 연구 결과다.


3. 이러한 접근은 접근 방향은 달라졌어도, 많은 분야에서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론물리학에서 대칭과 같은 수학적 아름다움이 가지는 의미는 물론이요, 수학에서도 깔끔하고 간결한 이론과 공식, 증명을 찾아 헤메는 것이며, 혹은 복잡한 작업들을 아주 간단한 코드로 정리하고자 하는 프로그래머들의 바람이나 넓게 보자면 우주를 설명하는 간단하고 일관적인 법칙을 찾아 헤메는 과학자들의 소망 역시 넓게 보면 피타고라스학파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닌 게 아니라 인간의 뇌는 어려운 문제를 풀거나, 깊은 통찰을 얻는 순간에 쾌락 중추가 활성화된다. 깨달음의 즐거움이란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것.


4.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정수 분의 정수로 명확히 떨어지는 유리수가 아닌 다른 수(무리수) 가 있다는 사실이 피타고라스학파 내에서 발견되어 버리고 말았다. 다름 아닌 각 변의 길이가 1인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가 무엇일지 고민하다 보니, 이것이 절대 유리수로 표현될 수 없음이 알려지게 된 것. 이 사실은 피타고라스학파의 근간을 뒤흔드는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사실이니, 전설에 따르면 무리수를 발견한 히파소스를 지중해 앞바다에 던져 살해했다는 말이 전해진다.


5. 사실 피타고라스의 법칙은 피타고라스가 만든 법칙은 아니다. 이미 피타고라스보다 한참 앞서 바빌로니아에서도 이 법칙을 발견하고 응용하고 있었다. 다만 그리스에 피타고라스가 처음으로 널리 알린 것으로 보인다.


6. 기본적 물리 법칙이 같으니, 거기에서 파생된 것들도 동일한 현상을 보이는 셈. 만일 우리가 외계인을 만난다면, 아마도 그들은 다른 생물학과 다른 언어와 문자를 가지고 있겠지만, 같은 물리 법칙과, 똑같은 주기율표와, 같은 수학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같은 물리 법칙이 지배하는 공간을 공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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