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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이 Oct 06. 2021

이틀만에 42학점 시험 보는 현실 의대생 라이프

의대생 일상


<두 번째 의대생 이야기>


의대 4년을 통틀어 가장 힘든 시기를 꼽으라고 하면 항상 언급되는 시험이 있다.

본과 3학년 연말고사.

연말고사는 1년간 배운 지식을 전부 쏟아내는 시험이다.

이틀간 시험을 보게 되는데 우리 학번의 경우 첫 날 22학점, 다음 날 20학점치 시험을 봤다.


시험은 1월 초에 이루어진다.

때문에 본과 3학년은 크리스마스도 새해도 없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몇 달은 잡고 공부를 한다.

시험 10일 가량 전까지는 계속 실습이 있어 실습과 공부를 병행한다.

"턴말고사"라고 하는, 각 과목 실습이 끝날 때에 있는 시험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턴말고사 공부와 실습과 연말고사 공부를 병행하게 된다.


실습을 하는 과목의 순서는 사람마다 다르다.

과목마다 실습의 체력적, 정신적 난이도가 천차만별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실습을 하는 과목이 어떤 과목이냐가 또 중요하다.

학교마다도 천차만별이겠지만 우리 학교의 경우 외과, 정형외과 등이 실습이 빡빡하고 소아과, 신경과는 비교적 할만 하다.

마지막에 내과가 있는 경우에도 조금 힘들어지는데,

내과는 10학점짜리 과목인 만큼 턴말고사도 범위가 엄청나기 때문에 턴말고사를 준비하면서 연말고사를 병행하기가 상당히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42학점을 공부하려다보니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한다.

모든 내용을 다 머리에 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어떤 과목은 연말고사 성적이 별로 안 중요하다더라, 어떤 과목은 기출문제에서 많이 나온다더라, 하는 소문들이 무성하다.

그 중 믿을만한 정보를 모아서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어떤 과목은 정리본만 보겠다, 어떤 과목은 기출문제만 파겠다, 어떤 과목은 쿨하게 버리겠다, 하는 식이다.


그렇게 잘 걸러내도 여전히 양은 방대하다.

학교 학생들의 공유 드라이브에 굴러다니는 산부인과 정리본이 가장 좁은 여백, 9포인트로 빼곡하게 45쪽이다.

우리는 이틀간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신경과, 영상의학과, 외과, 응급의학과, 정신과, 정형외과 시험을 본다.

동아리 선배가 했던 말이 있다.

"연말고사 기간에는 머리를 조심해야돼. 머리를 조금만 기울여도 지식이 우수수 쏟아지니까, 정면만 보고 있어야 돼. 어떻게 꾸역꾸역 집어넣은 정보들인데, 아깝잖아."

그저 우스갯소리인 줄 알았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동기들, 선배들이 있다는 것이다.

학번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우리 학번은 서로 많이 돕는 분위기였다.

학교 학생들의 공유 드라이브가 있는데,

여기에 각자 만든 정리본이나 필기본을 많이들 올려주고, 또 감사하게 받아 썼다.


몇 달 동안 혼자 앉아 막막한 양의 지식을 꾸역꾸역 씹어먹고 있으면, 

특히 크리스마스와 새해에는 더더욱,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들곤 했다.

정말로, 동기들이 함께 하지 않았으면 못 했을 것 같다.


본과 3학년의 크리스마스날, 마음이 맞는 동기들끼리 작은 난리를 피웠었다.


크리스마스 날, 우리 네 명은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흘려보낼 수는 없다는 데에 동의했다.

의대 기숙사에는 지하에 야식을 먹는 용도의 작고 퀴퀴한 방이 있다.

각자 기숙사 어딘가에서 뿔뿔이 흩어져 공부를 하던 우리는 잠깐 이 방에 내려와 모였다.

각자 준비한 조각케잌을 꺼내 나눠먹었다.

다들 피곤한 와중에도 크리스마스 기운을 한껏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케잌을 먹으며 얘기를 할수록 점점 열이 받는거다.

아니, 우리 왜 이러고 있는거야.

하.

질린다 질려.


크리스마스 날이라는 데서 오는 들뜬 마음과 대상을 알 수 없는 불만이 뒤섞여 한껏 상기됐다.

안되겠다. 

우리 나가자.

나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오자.


막막한 양의 시험범위가 우리를 족쇄처럼 붙잡아 멀리까지 나가지는 못했다.

병원 앞 산책로까지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가자, 가자!


기숙사에서부터 충분히 떨어졌을 때,

그 와중에 환자들한테 시끄러울까봐 병원 반대편에 대고,

다같이 있는 힘껏 소리 질렀다.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연말 X까!"


소리치자마자 병원에서 보안요원이 나오려는 낌새가 보였다.

야, 보안요원 나온다.

튀어, 튀어.

기숙사까지 있는 힘껏 달려갔다.


간만에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자 온 몸에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왔다.

오랜만에 에너지가 넘친다.

달리면서 생각했다.

동기들이 있어 너무 다행이다.

이 사람들이 너무 좋다.


키득거리며 기숙사로 들어선 우리는, 

곧장 다시 뿔뿔이 흩어져 각자 기숙사 어딘가로 사라졌다.


예쁜 기억이다.


제 글을 좀 더 가볍게 웹툰처럼 읽고 싶으신 분들!

인스타에도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이디는 baby_doctor_ha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baby_doctor_ha 

많이 놀러오세요!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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