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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이 Oct 02. 2021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

대학병원 인턴 둘째날의 이야기



<여덟 번째 대학병원 인턴 이야기>


인턴 둘째 날의 이야기다.

둘째 날의 나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

최소한 바이탈(*)을 보는 의사는 되고 싶지 않다.

*바이탈을 본다는 것은 결국 환자의 생명을 다룬다는 것이다. 바이탈을 일상적으로 보는 과는 내과, 산부인과, 소아과, 마취과 등이 있고 바이탈을 일상적으로 보지 않는 과는 영상의학과, 피부과,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이 있다.


인턴이 된지 둘째 날, 인턴 동기에게서 복수천자(**)를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다.

**환자의 배를 찔러서 배에 찬 물을 빼내는 것.

복수천자를 처음 실패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을 잘 알기 때문에 바로 달려갔다.


어제 몇 번이고 봤던 풍경이다.

깡마른 환자는 힘없이 등이 반쯤 세워진 침대에 누워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아래로 보이는 두 눈에는 피로감과 체념, 간절함이 모두 뒤섞여 있다.

피골이 상접한 가운데 유일하게 팽팽하게 부풀어 있는 배.

부푼 배에 폐가 눌려 숨쉬기 버거워하고 있다.

옆 보호자 침대에 앉은 보호자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인턴 동기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환자 배를 초음파로 보고 있었다.

동기 주변에는 멸균장갑 포장지들과 멸균장갑들, 주사바늘들, 소독 솜들, 티슈 조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동기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동기는 애써 침착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어, 하윤아. 왔어? 이게 잘 안되네. 두 번 실패했어."


"안녕하세요. 많이 힘드시죠. 한 번 더 해볼게요."

잠깐 환자의 수척한 얼굴은 마음 속 한 켠으로 미뤄 둔다.

이걸 성공시켜야 환자가 웃는다.

그래야 보호자도 마음 놓는다.


초음파를 보고 물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 표시한 후 소독을 했다.

제발, 제발 한 번에!

간절한 마음으로 단호하게 환자의 배를 찔렀다.

물이 나온다!


휴.

안도의 한숨.

"됐다. 이거 고정하자. 물 나와요, 환자분."

보호자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아이고,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와요? 아유 감사합니다"

환자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생기가 돌았다.


어? 근데 물이 나오다 만다.

"어? 뭐지?"

당황한 내 목소리에 모두가 굳어버렸다.

"왜요!" 놀란 보호자.

"콸콸 잘 나오다가 또 안 나오네요. 잠시만요."

환자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진다.

환자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이젠 나도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동기 두 번, 나 두 번, 레지던트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또 두 번.

물이 나오지 않거나, 잘 나오다가 말기를 반복했다.

"정 안 되면 내일 다시 해야죠 뭐."

레지던트가 떠나고 다시 나와 인턴 동기만 남았다.


환자의 얼굴이 절망감으로 일그러졌다가,

다시 또렷이 눈을 뜬다.

간절함과 단호함이 느껴지는 눈빛.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선생님, 저 오늘 복수 안 빼면 죽을 것 같아요.나 진짜 숨이 안 쉬어져요.

밤에 자다가 죽을 것 같아요."

보호자가 울기 시작한다.

"선생님, 제발 저 포기하지 마세요."

환자도 눈물을 흘린다.


심장이 쿵, 깊은 심연으로 떨어진다.

당장 복수를 뽑지 않는다고 해서 환자가 사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환자의 애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 저 포기하지 마세요. 제발. 제발요."

계속되는 환자의 애원.

내 손을 붙잡는 가녀린 환자의 손가락.

그리고 무기력한 나.


무기력한 나.


의사란 그런 직업이었던 것이다.

나의 미숙함은 죄다.


환자, 보호자, 인턴 동기, 그리고 나.

한숨을 푹푹 쉬면서 얼마간 시간이 더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옆 침대에서 다급한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CPR 방송(***) 내주세요!"

***심정지 방송.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CPR 방송을 내면 CPR 팀이 달려온다.

교수님이 뛰어온다.


한 번도 CPR 상황을 직접 겪어보지 못한 나는 갑자기 발생한 상황에 당황했다.

옆 동기의 눈치를 봤다.

그런데 CPR이 난 환자의 얼굴을 확인한 동기의 낌새가 이상하다.


동기는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들고 있던 초음파를 내팽개치고 인턴노트(****) 쪽으로 달려갔다.

****인턴노트는 인턴이 각 환자에게 어떤 술기를 해야 하는지 적혀 있는 노트다.

동기는 노트를 다급하게 집어 들고 CPR이 난 환자의 이름을 찾았다.

환자에게 어떤 술기를 했는지를 확인한다.


후에 동기에게 CPR이 났을 때 왜 갑자기 인턴노트를 뒤적였냐고 물어봤다.

당시 동기의 머릿 속 상황은 이랬다.


CPR이다.

어?

환자 얼굴이 익숙한데?

철렁.

내가 저 환자한테 뭘 했더라?

설마 나 때문에 CPR이 난건가?

뭐더라?

내가 뭘 했더라?

하씨, 내가 뭘 했지?


다행히도 환자에게 어떤 술기를 했는지를 찾아낸 동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환자도 금방 의식을 되찾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허둥지둥하는 동기의 모습에 나도 심장이 철렁했다.

의사는 그런 직업인 것이다.

나의 미숙함은 죄다.

나의 미숙함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그 날 종일,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는 본능적인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자기방어와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큰 책임을 너가 질 수 있겠느냐,

너 견딜 수 있겠느냐,

하는 생각들이 온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 그 때를 떠올려 보면 조금 웃기기도 하다.

고작 둘째 날부터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것도,

고작 둘째 날이었기 때문에 의사가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것도.


하지만 직업의 무게는 오히려 갈수록 더 무겁게 느껴진다.

이 무게를 견디는 사람들이 존경스럽다.

나는?

나는 할 수 있을까.


제 글을 좀 더 가볍게 웹툰처럼 읽고 싶으신 분들!

인스타에도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이디는 baby_doctor_ha 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baby_doctor_ha

많이 놀러오세요!

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제 글을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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