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이 Sep 27. 2021

환자의 마지막 순간이 나라서 미안합니다.

어느 대학병원 인턴에게서 제보 받은 이야기.


<제보 받은 대학병원 인턴 이야기 - 첫 번째>


이번 글은 제보 받은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각색한 글입니다.


우리 병원 응급실은 인턴이 퐁당퐁당 근무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24시간 쉬고, 24시간 당직하고, 24시간 쉬고, 24시간 당직하는 것의 연속이다.

24시간 연속으로 근무하는 것은 상당히 지치는 일이다.

특히 응급실은 거의 쉴틈 없이 일하는데다가 온갖 종류의 인간군상을 대면하기 때문에 몸은 지치고 정신은 피폐해진다.


응급실에 환자가 도착하면 의무기록 응급실 환자 리스트에 환자의 정보와 환자가 현재 호소하는 증상이 띄워진다.

이를 확인한 인턴은 환자의 기저질환을 파악한 후 환자에게 가서 신체검진을 하고 필요한 정보를 물어본다.

응급실에서는 인턴이 대부분의 환자를 가장 먼저 만나고 초진(초기 진료)을 한다.


그날따라 구급차를 탄 환자들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잔뜩 지쳐 있는 상태였다.

제발 이제 더이상 오지 마라. 조금만 쉬자. 다들 왜 이렇게 아픈거야.

간절함 반, 짜증 반.


버릇처럼 의무기록의 응급실 환자 리스트를 새로고침했다.

하, 또 왔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은 복통이었다.

응급실에는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매일 한 트럭씩 온다.

배꼽 주변이 아프다니까 뭐, 장폐색인가.

터벅터벅 환자에게 걸어갔다.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는 많이 아파 보였다.

옆에는 피곤한 표정의 젊은 남자 보호자. 아들이었다. 환자는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복통이 생겼다고 한다.

"아파요, 아파요!"

"환자분,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아파요!" 환자는 배꼽 부위를 부여잡고 있었다.

"환자분, 어디 어디가 아프세요, 배꼽 주변이 가장 아프세요?"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죠! 너무 아파요, 빨리 뭐라도 좀 해주세요!"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꼭 이렇게 하루에도 몇 명씩 협조가 잘 안 되는 환자들이 있다.

"환자분. 정확하게 말씀해 주셔야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지를 알 수 있어요. 언제부터 아프셨어요?"

환자를 다그쳤다.

"아파요. 아파.. 아파요.."


어, 근데 좀 이상하다.

어느 순간부터 환자 의식이 온전하지가 않아 보인다.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이 그냥 협조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의식이 떨어져서라면?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펠로우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선생님, 저 환자분 배꼽 주변이 아프다는데, 배꼽 주변 말고도 여기 저기 다 아프다고 하고 의식이 처지는 것 같습니다. 어떡하죠?"

평온하던 펠로우 선생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구조사 선생님! 이 환자 빨리 EKG(*) 찍어주세요. 지금 당장."

*EKG는 환자의 심장이 잘 뛰는지를 체크하는 심전도를 말한다.


구조사 선생님은 다급한 손으로 환자의 심전도를 찍었다.

결과는 심근경색.

"OO구역 OOO환자 STEMI CP activation 하겠습니다."

심근경색은 초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CP activation"을 하면 의료진이 프로토콜대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여 대처한다.

간호사, 구조사, 의사가 한 무더기 몰려와 환자를 둘러쌌다.

환자의 혈관에 관을 꽂고 수액을 달고 몸에 상태를 체크하는 온갖 장치를 달고 상태를 평가하고 결정을 내렸다.


보호자는 놀란 눈으로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 누구도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와 앞으로의 계획을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무슨 일이에요?"

"환자 지금 심근경색이에요! 빨리 조치 해야돼요."

"어떻게 해요?"

"잠시만요!"


내가 환자 초진을 보기 시작한 지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환자의 의식이 무서울 정도로 뚝뚝 떨어진다.

처음에만 해도 환자는 눈도 잘 마주치고, 여러 번 달하면 대답도 잘 했다.

이제는 불러도 눈도 못 마주치고 대화는 아예 되지 않는다.


환자는 바로 소생실(**)로 옮겨졌다.

정신없는 와중 누군가가 보호자에게 말했다.

"보호자분, 환자분 지금 상태 안 좋습니다. 자녀들 다 오라고 연락 하세요."

소생실로 옮기기가 무섭게 심정지가 왔다.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어느새 자녀들이 모두 도착해 소생실 바깥에 모였다.

모두 나보다 2~3살 정도 많아 보인다.

**소생실은 위급한 환자에 대해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의료진은 간간히 소생실 밖으로 나와 자녀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자녀들의 얼굴은 놀람에서 간절함으로, 간절함에서 절박함으로, 절박함에서 좌절로 물들었다.


자녀들이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환자 곁으로 다가갔다.

환자는 의식이 전혀 없었다.

힘없이 게슴츠레하게 뜬 눈꺼풀 안으로 충혈된 흰자와 초점 없는 눈동자가 보인다.

입에는 공기를 주입하기 위한 두꺼운 관을 끼우고 이를 한 쪽으로 붙여 놓아 입술은 잔뜩 일그러져 있다.

생명력 없이 늘어진 손발은 가슴압박을 하는 기계에 의해서만 흔들거리고 있다.

자녀들이 보는 환자의 마지막 모습.

자녀들이 마지막으로 환자와 대화를 나눈 지 얼마나 되었을까.

오래전 일이 아니길.


정신없이 바쁘다가 다음날 비로소 근무가 끝났을 때,

밀려오는 죄책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환자가 마지막으로 대화가 가능했던 순간을 보호자로부터 뺏어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럽게 잃게 된 자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환자의 마지막 순간이 나였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미안합니다.


언젠가는 이 또한 무뎌질 날이 올까.


준비되지 않은 마지막이 왔을 때

환자는 허망하고 남겨진 이들은 절망한다.

준비된 죽음이 큰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제 글을 좀 더 가볍게 웹툰처럼 읽고 싶으신 분들!


인스타에도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이디는 baby_doctor_ha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baby_doctor_ha/

많이 놀러오세요!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혼자 콩팥 가지러 갔다 온 대학병원 인턴 (2/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