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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이 Sep 22. 2021

혼자 콩팥 가지러 갔다 온 대학병원 인턴 (2/2)

대학병원 초보의사 인턴 이야기


< 여섯 번째 대학병원 인턴 이야기 -2 >


앰뷸런스로 이동하는 경우에는 병원 수술복이나 당직복을 그대로 입고 간다.

초록색 수술복에 가운을 걸치고 병원 정문 앞에서 두리번두리번 앰뷸런스를 찾았다.


앰뷸런스를 운전하는 기사는 어려 보이는 남자애였다.

기사는 아이스박스들을 앰뷸런스에 실어 올렸다.

기사와 나는 각각 앰뷸런스 운전석과 조수석에 타고 출발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20살이요."

"헉, 엄청 어리시네요. 그럼 고등학교 졸업 하자마자 일 하시는 거에요?"

"네. 아는 분이 해보지 않겠냐고 하셔서 그냥 졸업 하자마자 면허 따고 바로 일하고 있어요."


앰뷸런스 기사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 제공되는 기숙사에서 기사들끼리 생활하며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앰뷸런스 기사도 당직 근무가 있기 때문에 한 숨도 못 자는 날도, 밤 내내 푹 자는 날도 있다고 했다.

출동이 떨어지면 곱지 않은 말들을 뱉으며 침대에서 내려온다고 했다.


너나 나나.

잠 좀 자고 싶다. 그치.

대개 삶의 고된 부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는 금방 친해진다.

"인턴쌤 분명 돌아가는 길에 골아떨어질거에요."

"나 체력 좋아요. 두고 보세요."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뇌사자가 발생한 병원에 금방 도착했다.

병원 도착했습니다.

우리 병원 이식 팀에게 카톡을 남겼다.

아이스박스를 내려주는 기사에게 무슨 일 생기면 연락 줄테니 천천히 밥이나 먹고 오라고 말했다.

이제 들어가자.



다른 병원에 의사로 가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 자체로도 긴장이 되었다.

웃긴 생각이지만, 우리 병원 이름에 먹칠하지 말아야지. 능숙한 척 하자, 하는 생각도 했다.


해당 병원의 코디네이터에게 수술장 위치와 들어오는 방법, 탈의실 위치 등을 안내받았다.

탈의실에서 그 병원의 수술복으로 다시 갈아입은 후 잠시 대기했다.

수술방에 들어가서 본 광경은 꽤나 인상깊었다.

수술방 안에서는 이 병원 저 병원에서 두세 명씩 소환된 의사들이 조용히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인턴 혼자 온 건 나뿐인 것 같군.


선생님들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잠깐 속으로 뇌사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냈다.

아까 머릿속에 집어 넣었던 내가 해야 할 일을 찬찬히 되짚어 보았다.

겉으로는 일상적으로 장기 적출을 다니는 사람인 것 마냥 행동했지만 속은 긴장상태로 어느때보다 또렷한 의식이었다.


1번, 샘플링(검체 채취).

해당 병원의 간호사 선생님에게 환자 소변이 어디에 있는지, 라인(혈관에 꽂아 두는 길로, 혈액을 채취하거나 약 또는 수액을 주입할 때 쓴다)이 어디에 잡혀 있는지 물어보았다.

"혹시 환자 소변이랑 a-line(동맥 혈관에 잡는 라인)이 있나요?"

"아, 네. 소변은 얼마 안 남아서 충분할 지 모르겠는데 저기 마취과 선생님 쪽에 있구요, a-line은 오른쪽 손목에 잡혀 있어요."

수술을 할 때에는 수술하는 부위에 균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수술 부위 외의 다른 곳을 다 멸균된 포로 덮는다.



슬의생 뇌 수술 장면. 머리를 제외한 다른 부위는 모두 덮여 있다.


포를 걷어내거나 포 위를 더럽히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포 아래로 기어들어가서 소변과 혈액을 채취했다.

2번, 시간 보고.

이식 팀에게 clamping 시간, 간 적출 시간을 보고했다.

3번, 이제 콩팥이 적출되면 이를 인계에 나온대로 싸야 한다.


콩팥은 거의 마지막으로 적출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남았다.

긴장이 풀리고, 그제서야 수술장 풍경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수술하고 있는 선생님들 세 명은 원래 속한 병원의 약자가 쓰여 있는 남색 두건을 맞춰 썼다. 아마 가톨릭에서 온 사람들인 것 같다.

수술장 문 쪽 선생님들 두 명은 이미 장기를 챙겨 나가는 길이다.  

내 옆에 있는 선생님들 두 명은 장기를 기다리고 있다.


"OO대병원 선생님, 이제 준비하세요."

내 차례다.

내 앞의 테이블에 슬러시가 담긴 대야와 custadiol 용액(장기를 넣는 용액)이 담긴 대야가 있다.

어떻게 시작하지? 내가 가져온 준비물을 여기에 더 부으면 되는건가?

내가 잠시 얼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간호사 선생님과 내 옆에 있던 의사 선생님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어, 일단 슬러시는 충분하니까 놔두고 custadiol만 더 부어요. 장기 싸는 비닐은 이거 쓰면 되고. 장기 담을 통은 어딨어요?"

"아, 여깄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들은 이런 저런 준비를 같이 해 주었다.


의사 선생님 두 명 중 교수님 나이대로 보이는 분이 농담을 던졌다.

"이거 이거, 이렇게 해주면 안 되는데 말이야. 뭐, 가면 다 해준다고 그러디?"

"아, 사실 인계에 가면 다 도와주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써있긴 합니다."

"껄껄, 그거 인계 바꿔야겠구만. 선생님이 가서 하나도 안 도와준다고 쓰세요. 하하."


감사하게도 두 선생님은 내가 장기를 싸기 시작하는 모습까지 보고 갔다.

혼자 해도 문제가 없겠다고 판단될 때까지 옆에 있었다.

처음에 병원에 들어올 때 우리 병원 이름에 먹칠하지 말아야지, 생각한 것이 우스웠다.

어느 병원에 가나 나는 인턴이고, 간호사든 의사든 선생님들은 모든 게 처음인 나를 도와줄거다.

마음이 든든했다.


무균 상태가 되기 위해 손을 깨끗하게 씻고 들어와서 수술가운과 장갑을 착용했다.

장기 비닐로 장기통을 싸고 장기통에 각얼음을 넣고 장기 비닐 두 개를 겹쳐 놓고 custadiol 용액으로 채운 후 콩팥을 받아 넣고 장기 통의 남은 공간을 수액 슬러시로 채워 넣은 후 장기 비닐을 하나씩 꽁꽁 묶었다.

꼼꼼하게 싼 장기와 남은 수액 슬러시를 아이스박스에 붓고 플라스터(접착력이 매우 강한 의료용 테이프)로 아이스박스를 칭칭 감았다.




실제 외과 인턴 인계에 누군가가 그려 놓은 장기 싸는 법.


해야 할 일 마지막 4번. 수술을 집도한 선생님에게 필요한 정보를 물어봤다.

"선생님, 혹시 어느 쪽 콩팥입니까?"

"좌측이에요."

"콩팥 혈관에 특이사항 있습니까?"

"아 참, 정맥은 하나인데 동맥은 콩팥에 매우 가까운 곳에서 두 갈래로 나뉘어요. 그 외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좌측, 정맥 하나, 동맥 콩팥 쪽 두 갈래.

좌측, 정맥 하나, 동맥 콩팥 쪽 두 갈래.

좌측, 정맥 하나, 동맥 콩팥 쪽 두 갈래.

까먹지 않으려고 여러 번 되뇌었다.


우리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한 숨도 자지 않았다.

앰뷸런스 기사와 함께 음악을 들으면서 즐겁게 병원으로 돌아갔다.


앰뷸런스 안에서 잠을 자지 않은 것을 밤 새도록 후회했다.


 "인턴 선생님 도착하자마자 최대한 빨리 바로 D2 로젯으로 와주세요."


오늘 밤은 이식 수술이 두 건이다.

나는 오늘 밤 수술 당직이다.

수술이 모두 끝날 때까지 제 정신이길 빌면서,

수술이 모두 끝난 새벽 그 당일 근무 전에 30분이라도 눈 붙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수술장의 D2 로젯으로 아이스박스를 끌고 갔다.  



제 글을 좀 더 가볍게 웹툰처럼 읽고 싶으신 분들!


인스타에도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이디는 baby_doctor_ha 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baby_doctor_ha/

많이 놀러오세요!

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제 글을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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