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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이 Sep 20. 2021

혼자 콩팥 가지러 갔다 온 대학병원 인턴 (1/2)

대학병원 초보의사 인턴 이야기

< 여섯 번째 대학병원 인턴 이야기 >


장기이식이 동의된 뇌사자가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뇌사 판정이 끝나고 나면 각 장기별로 어느 병원에 1순위 여자가 있는지 판단이 내려진다.

췌장은 서울대병원, 간은 성심병원, 심장과 폐는 아산병원 하는 식이다

연락을 받은 병원은 뇌사자의 키, 몸무게, 기저질환, 사인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여 수여자에게 해당 장기가 적합할지를 결정한다.

병원이 장기를 받겠다고 결정하면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전반적인 상황을 관리한다.

다른 장기들 적출 시간을 고려했을 때 우리 병원 의사는 언제 출발해야 할지, 의사가 타고 갈 이송수단은 어떻게 할지 등을 결정하고 준비한다.


외과 근무를 할 때 운이 좋으면(?) 장기를 가지러 갈 기회가 생긴다.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인턴은 달마다 근무하는 과가 바뀐다.

나는 그 달 외과에서 근무를 한 인턴 동기들 중 가장 처음 장기를 가지러 가는 사람으로 당첨됐다.


뇌사자가 생겼는데 콩팥 1순위 수여자가 우리 병원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뇌사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평소에 겁이 없는 나는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일을 그르쳐서 장기를 못 쓰게 되면 어떡하지.

기적과도 같은 일을 내가 망쳐버리면 어떡하지.


그런데 설상가상, 그 날 뇌사자가 한 명 더 생겨 버렸다.

하루에 뇌사자가 두 명이라니.

이런 일은 듣도 보도 못했다.

하.

"임하윤 내공(우리 병원에서는 운을 내공이라고 한다) 실화냐." 동기들은 혀를 내둘렀다.

적출 시기가 겹쳐 두 곳에 모두 갈 수는 없었지만, 두 곳에 갈 준비물은 다 내가 준비해야 했다.


잠시 그 전 달에 외과 근무를 했던 인턴 동기에게 도움을 청해볼까 생각했지만 정규시간이라 다들 바쁠거라는 생각에 그만뒀다.

아니, 충분히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다들 바쁠거라고 변명하며 도움 청하기를 포기했다.

겁이 나서 패닉할지언정 도와달라 연락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면서,

급하게 외과 장기이식 인계 파일을 다시 프린트해서 밑줄을 치고 요약을 해가면서 읽었다.

한 번 읽고 요약하고, 내가 할 일을 다 요약한 것이 맞나 못미더워서 한 번 더 읽고, 확인차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읽었다.

자,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시간 순서대로 머리에 잘 저장되었다.

출발 전까지 최대한 병동 일을 마무리하자.

내가 떠나면 다른 외과 인턴 동기들이 내 콜까지 다 받아야 하게 될 테니까.


솔직히 병동 일에는 거의 집중하지 못했다.

준비가 얼마나 걸릴지 몰라 시간을 넉넉히 잡고 준비를 시작했다.

퀘스트 깨듯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준비물을 모아 왔다.

일단 7층 병동에 올라가 아이스박스 두 개를 챙겨 3층 수술장으로 내려갔다.

아이스박스 두 개를 양 손에 하나씩 끌고 가려니 박스의 방향은 제멋대로고 박스끼리 서로 부딪히고 우당탕, 난리도 아니었다.


장기 이송용 아이스박스. 내가 사용했을 때만 해도 검은색은 없었는데 업그레이드 된 것 같다.


수술장은 최근에 확장을 해서 구 수술장과 신 수술장으로 나뉜다.

일단 구 수술장에 가서 아이스박스에 각얼음을 마구 담았다.

무거워진 아이스박스를 양손에 질질 끌고 신 수술장으로 이동했다.

수액을 슬러시 성상으로 얼려 놓은 1L짜리 팩을 7개씩 담았다.

더이상 무게가 감당이 되지 않아 하나는 한 손으로 끌고,

하나는 걸어가는 방향 앞에 두고 다른 손으로 약간 기울인 후 발로 차면서 이동했다.

이동하던 중 은인을 만났다.

간호사 선생님.

"적출하러 가세요? 아이고 맞아 두 명이라고 들었어요."

"네. 혹시 적출 가방 D로젯에 있는 것 맞나요?"

"네 맞아요. 아 잠깐만요!"

간호사 선생님은 적출 가방과 수액(custadiol 용액으로, 장기를 담그는 물)을 꼼꼼하게 챙겨서 넘겨 주셨다.


두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산도 넘고 강도 건넜다.

두 번 왔다갔다 하기는 귀찮다는 일념 하나로 계단을 올라갈 때에도 두 박스를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올랐다.

인턴은 강력하다.

드디어 병원 정문에다 무사히 준비를 마쳤다.


실제 정문 오른쪽 구석에 준비해 놓은 모습. 두 번째 뇌사자에게 적출 간 다른 인턴에게 준비물을 둔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해당 사진을 찍어 보냈었다.


앰뷸런스를 타고 경기도의 한 병원으로 출발했다.



제 글을 좀 더 가볍게 웹툰처럼 읽고 싶으신 분들!

인스타에도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이디는 baby_doctor_ha 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baby_doctor_ha/

많이 놀러오세요!

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제 글을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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