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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이 Sep 18. 2021

대학병원 초보의사 인턴의 일상.

근무시간, 당직 일정, 근무 중 업무, 당직 때 얼마나 잘 수 있는지

< 다섯 번째 대학병원 인턴 이야기 >


그간 글들이 많이 무거웠다.

이번엔 조금 가볍게, 인턴이 어떻게 사는지 인턴의 일상에 대해 적어 보겠다.


의대생은 의대를 졸업하면서 의사 국가고시를 합격하면 의사가 된다.

그 후 대부분은 대학병원에서 1년간 인턴 과정을 거친다.

인턴 과정 후에는 내과, 산부인과, 피부과, 영상의학과, 마취과 등 다양한 과들 중 하나를 선택하여 레지던트가 된다.

레지던트 4년(외과, 내과, 가정의학과의 경우 3년) 과정을 거치면 그 과의 전문의가 된다.


인턴들의 근무시간이나 일의 강도는 일반 직장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도 최근에는 인턴, 레지던트 근무시간에 대한 법이 만들어져서 사정이 나아졌다.

법적으로 인턴들은 연속 36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고, 주당 88시간 이상 근무할 수 없다.


대개 평일은 아침 7시나 8시부터 오후 5시나 6시 즈음까지 근무가 기본으로 깔려 있고 거기에 당직이 추가되는 식이다.

주말은 대개 기본으로 깔려 있는 근무는 없고, 무조건 당직인데, 주말 당직은 24시간 근무가 기본이다.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평일에는 1~2번, 주말에는 1번 당직을 선다.

예를 들어 월요일 당직이 있다면 월요일 아침 7시에 출근해서 화요일 오후 5시에 퇴근한다.

일요일 당직이 있다면 일요일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월요일 오후 5시에 퇴근한다.


월요일, 목요일, 일요일 당직일 시의 근무 스케줄 표. 월요일 7시 출근, 화요일 5시 퇴근. 수요일 7시 출근, 수요일 5시 퇴근. 목요일 7시 출근, 금요일 5시 퇴근.


근무시간 외에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각 인턴의 체력이나 의지에 달렸다.

나는 사람들 만나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성격에, 다행히 체력도 받쳐줬다.

그래서 위 예시 스케줄에서 수요일, 토요일과 같은 날은 무조건 무엇인가로 채워 넣었고 어떨 때에는 화요일, 금요일처럼 당직 선 다음날까지도 꽉꽉 채워 친구들을 만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턴들이 당직 다음날은 퇴근을 하면 저녁만 먹고 죽은 듯이 다음날 아침 출근까지 잠을 잔다.


인턴은 매달 근무하는 과가 바뀐다.

근무시간에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빡빡하게 일을 하는지는 과마다 다르다.

꼭 그렇지는 않지만 대개는 수술과들이 힘들고 비수술과들이 덜 힘들다.


인턴이 하는 일은 대부분 크게 병동 일과 수술장 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하는 것은 인턴이 하는 일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고 과마다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인턴이 하는 일 중 병동 일과 수술장 일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 일에는 장기이식이 있을 때 장기를 가지러 타 병원에 가는 일이나 응급실에서 환자를 보는 일 등이 있다.

나 역시 KTX를 타고 장기를 가지러 간 적이 있는데, 꽤나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후에 이에 대해서도 글을 써 봐야겠다.

병원에 따라서도 지침이나 분위기, 인력이 다르기 때문에 인턴이 하는 일이 크게 차이가 날 수 있다.

일단 내가 속한 서울대병원을 기준으로 소개해 보겠다.


병동 일은 또 어느 병동에서 근무를 하느냐에 따라 하는 일이 많이 달라진다.

어느 병동이든 하게 되는 공통된 업무들이 있는데, 온갖 드레싱(소독), 소변줄 끼기, 심전도 찍기, 동맥에서 혈액 채취하기, T cannula (기관절개술을 시행한 경우 기관지까지의 길을 터주는 플라스틱 장치) 바꾸기, 콧줄(코를 통해 위까지 넣는 관으로 주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용도로 쓰임) 끼기, 동의서 받기 등 나열하다보니 많아서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수술장 일은 비교적 명확하다.

수술장을 준비하고, 환자를 데려오고, 수술 보조를 서고, 수술 후 환자를 다시 데려다 놓으면서 필요한 채혈을 하고, 수술에서 나온 검체(조직검사 등을 하기 위해 환자 몸에서 떼어내거나 채취한 것들)가 있으면 접수한다.


대략적으로 수술과들이 더 힘들다고 한 이유는, 수술과는 보통 수술장 일과 병동 일을 병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술 보조를 서고 있는데 병동에서 급하게 찾는다던지, 병동 일을 처리하고 있는데 수술장에서 지금 당장 오라고 한다던지 하는 상황이 거의 매일 일어난다.

인턴이 필요한 병동 간호사 선생님들도 발을 동동거리고, 곧장 인턴이 오지 못해 인턴 일을 대신 하고 있는 레지던트 선생님들도 짜증이 나고, 몸이 두 개가 아닌데 어떡하지 중얼거리는 인턴도 멘탈이 무너진다.

그래서 '헬프'가 중요하다.


몸이 두 개가 아닌 인턴이 두 장소에 동시에 있어야 할 상황이 오면 '헬프를 친다'.

주로 인턴들이 모여 있는 카톡방에 헬프를 치는데,

"OO병동 OO일 급하다는데 제가 수술장이라서요ㅠ 지금 가능하신 분 계신가요" 하는 식이다.

인턴 동기들의 서로에 대한 자발적인 선행에 의해서 병원이 돌아간다.


주변 지인들은 인턴이 당직 때 얼마나 잠을 잘 수 있는지를 많이들 궁금해 한다.

이 또한 과마다 많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인턴마다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경험 상 2~3시간 정도 잔 날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밤을 꼴딱 새거나 5~6시간 정도 충분히 자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일의 양이나 근무 시 요구되는 신속함, 정확함 등은 전날 당직을 섰는지 여부를 고려하지 않는다.  

전날 당직을 섰는지, 당직 때 잠을 얼마나 잤는지와 무관하게 똑같은 일을 한다.

그런데 밤을 꼴딱 새워 근무를 시작한 지 30시간 즈음 되어 가면 반응속도가 확연히 느려진다.

인턴선생님 이거 해주세요 -> 이거. 이거 뭐드라. 아. -> 행동.

인턴이 대체 왜 이렇게 오늘따라 멍청하고 느린지 알 길이 없는 다른 의료진들은 복장이 터진다.


그래도 나는 공부하는 것보다는 일하는 것이 재밌고, 체력도 좋은 편이라 버틸만 하다.

선배 한 분이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인턴 때 놀아야 돼. 레지던트 1년차 되면 끝이야.

후,

산 넘어 산이다.


그래도 동기들이 있어 힘든 순간들은 잘 버티고 좋은 순간들에는 배로 즐거울 수 있다.  

동기들이 있어 이번 달도 무사히 지나간다.  


제 글을 좀 더 가볍게 웹툰처럼 읽고 싶으신 분들!

인스타에도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이디는 baby_doctor_ha 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baby_doctor_ha/

많이 놀러오세요!

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제 글을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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