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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이 Oct 15. 2021

응급실에서 의사의 하루는 또 이렇게

어느 대학병원 인턴에게서 제보받은 이야기

본 글은 어느 대학병원 인턴에게서 제보받은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각색한 글입니다.


24시간 환한 응급실에서 아침이 왔음을 알리는 것은 컴퓨터 시계와 교대하는 사람들의 출근이다.

그 날도 불이 꺼지지 않는 응급실에 아침이 왔다.

어제는 어땠으려나, 응급실이 많이 붐볐으려나, 생각하며 출근을 했다.


새벽과 밤에는 인턴이 환자 초진(*)을 본다.

*환자를 처음 만나 증상과 상태에 대해 듣고 신체검진 하는 것.

데스크탑 화면에 주증상이 물집인 환자가 왔다고 뜬다.

환자를 클릭해 보니 항암치료를 받고 요양병원에서 쉬던 환자다.

주증상이 물집인 건 좀 특이하네.

뭘 물어봐야 할까.


진료실에 들어가니 아빠 나이대로 보이는 환자가 앉아 있었다.

항암치료 때문인지 환자복 안으로 슬쩍 보이는 팔이 앙상하지만 눈빛만큼은 또렷하다.

민둥머리에 선한 인상.

옆에 비슷한 인상의 아내가 앉아 있다.

부부는 닮는구나.


오른쪽 발에 까만 피가 차 있는 물집이 있었다.

까만 피가 차 있는 물집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증후는 아니다.


열이 나는지, 최근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다른 지병은 없는지, 언제부터 얼마나 빠른 속도로 커졌는지, 전에도 그런 적이 있는지 등을 물어봤다.

우호적인 환자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금방 관계가 형성된다.

"최근에 생으로 해산물 같은 거 드신 적 있으세요?"

"아니요, 병원에서 주는 밥만 먹었어요. 회에 소주 한 잔 먹고 싶네요."

"하하, 병원에만 있으니까 많이 답답하시죠."

"네. 이 사람(아내)이 건강 챙기게 한다고 맛있는 것도 못 먹게 해요."

"아이고, 아내분 잘 하시고 계시네요."

"하하, 한통속이시네."


짧은 대화였지만.

투병생활이 꽤나 힘들어도 잘 견뎌왔다는 것, 자랑스러운 아들이 있다는 것, 퇴원을 하면 가장 먼저 세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부부가 서로를 많이 아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진을 마치고 환자에게 침대가 배정되었다.

초진 내용을 확인한 레지던트가 직접 환자를 만나보고 이런 저런 검사 지시를 내렸다.

검사를 수행하는 건 나다.

환자의 혈액을 뽑고 소변을 채취하고 물집을 터트려 배양검사를 했다.

환자가 아까보다 힘들어 보인다.

숨을 몰아쉬고 있다.

초진을 보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물집도 상당히 커져 있다.

"아이고 많이 힘들어 보이시네요."

환자가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숨이 차 단념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말씀하신다고 무리하지 마세요. 저희가 검사 결과만 나오면 바로 조치 해드릴거에요. 조금만 힘내세요."


검사 결과를 본 레지던트는 환자에게 대략적인 계획을 설명한 뒤 추가검사와 투약 지시를 내렸다.

추가검사를 수행하러 환자에게 다가갔다.

환자 상태가 이상하다.

자꾸 환자 눈이 감긴다.


"주선구님(가명)? 주선구님! 주선구님, 정신 차리셔야돼요. 주선구님! 제 눈 보세요."

환자가 힘겹게 눈을 뜬다. 천천히 눈동자를 움직여 내 눈을 바라본다.

"간호사 선생님! 마스크랑 산소통 좀 갔다주세요!"

마스크를 씌우고 산소를 올린다.

"주치의 선생님 좀 불러주세요!

주선구님, 제 눈 보세요! 제 눈 보고 계세요. 눈 뜨고 계세요!"

환자가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버틴다.

환자가 힘겹게 버틴다.

환자가 힘겹게 버티는 만큼 환자의 두 어깨를 쥔 내 손에도 힘이 들어간다.

"주선구님! 자지 마세요. 자면 안돼요! 주선구님!"


피가 찬 물집이 있는 환자에게 갑자기 쇼크(***)가 오기도 한다고 배웠었는데, 그런 경우인가 보다.

이론으로 배운 것을 실제 상황으로 맞닥뜨린다.

그간 이론으로 배운 것들을 앞으로도 계속 실제 상황으로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나를 짓누른다.

***혈압이 떨어지면서 생명에 위협이 가는 상태


금방 환자 주변으로 의료진이 몰려온다.

주치의 선생님이 내가 있던 자리를 차지하고 환자 상태를 확인한다.

옆으로 살짝 밀려난 나는 간절한 눈으로 환자 침대 위에 달린 모니터를 통해 혈압, 심전도 등 생체징후를 확인한다.

안돼.

갑자기 환자의 혈압이 뚝뚝 떨어진다.

환자의 혈압과 함께 내 심장도 바닥으로 떨어진다.


심정지가 난다.


"중환구역 4번 환자 CPR입니다. 중환구역 4번 환자 CPR입니다."

방송이 울린다.

응급구조사가 뛰어온다.

제발.


보호자는 혼절 직전이다.

"아아, 아아.. 아아! 아니야.. 아니야.. 아아.. 아아!"

보호자 쪽을 볼 수가 없다.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보호자 대신 아들에게 연락을 취한다.

"주선구님 아들 되시죠? OOO병원 의사입니다. 아버님이 많이 안 좋으셔서 지금 바로 병원으로 오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아, 오늘 물집 때문에 병원 간다고 들었는데.. 물집 때문인데 심각한 건가요? 제가 오늘 야근이 있어서요."

복장이 터진다.

"주선구 환자분 심정지가 온 상태입니다."

당황한 보호자가 말이 없다.

어떤 심정일까.

"...아, 네. 지금 바로 갈게요."


다행히 환자가 금방 돌아왔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심정지 후 심장이 돌아왔을 때 다시 심정지가 날 가능성이 높다.


일단 빠르게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겼다.

나는 환자에게 산소를 공급하며 침대를 따라간다.

정신 없는 와중에 보호자도 환자 침대를 따라온다.


중환자실에는 보호자가 들어갈 수 없다.

보호자는 남고 환자 침대만 중환자실 문을 통해 들어간다.

"보호자분, 여기는 보호자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아.. 아.."

마음이 타들어가는 보호자의 위태로운 모습이 자동문 사이로 보였다가, 사라진다.


환자를 중환자실 침대로 옮기려는데,

다시 심정지가 난다.


다시 한 번, 심정지 방송이 나온다.

내과 인턴들이 달려온다.

내 차례가 돌아올 때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가슴압박을 한다.

5분, 10분, 15분, 심폐소생술이 계속된다.

아, 환자가 안 돌아올 수도 있겠다.

보호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지속할지 말지를 결정하도록 하기 위해 주치의가 중환자실을 나간다.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잠기지 않는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다른 인턴이 가슴압박을 할 때에는 신께 기도를 하고,

내 차례에 가슴압박을 할 때에는 제발, 제발,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서, 입으로도 삐져나온다.

"제발, 제발.

제발 정신차리세요, 제발."

있는 힘껏 가슴압박을 한다.

신이 거기에 있다면, 제발 이 환자에게 기회를 주길.

아니, 보호자들이 작별인사를 할 기회라도.


레지던트가 맥박 확인을 위해 가슴압박을 잠시 중단한다.

"맥박 확인할게요."

덜덜 떨리는 손을 환자의 목에 갖다 댄다.


어?

어?!

맥박이 느껴진다.

"선생님, 맥박 만져집니다."

손에 느껴지는 연약한 맥박의 감촉이 눈물나게 감사해서,

몇 번이고 환자의 목에 손을 대 본다.


하. 다행이다.

환자가 돌아오고 나니 내 몰골이 눈에 들어온다.

머리는 산발에, 몸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고, 얼굴은 눈물 범벅으로 만신창이다.

아무렴 어때.


근데 보호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중단할지 말지를 결정하게 하려고 나간 주치의가 아직 안 들어왔다.

보호자는 아직 환자가 돌아왔다는 것을 모른다.


허겁지겁 중환자실을 나갔다.

주치의가 말을 하고 있고 보호자는 혼절 직전이다.

아들이 도착해 있다.

아들은 잔뜩 당황한, 허망한 얼굴이다.


"아니에요, 선생님. 환자분 방금 ROSC(**) 됐습니다.

보호자분, 주선구님 심장박동 돌아왔어요. 괜찮아요."

**환자의 심장박동이 돌아왔다는 뜻.


보호자의 초점 없던 눈동자가 나를 쳐다본다.

두 손으로 다소 거칠게 내 손을 붙잡는다.

"정말요? 정말 돌아왔어요? 아이고, 아이고..

왜 이렇게 땀이 많이 났어. 얼굴은 또 왜 이렇게.."

보호자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너무 고마워요, 애써줘서 너무 고마워."

"다행이에요. 보호자분도 고생하셨어요."

중환자실 문을 나서서 보호자와 마주치는 이 순간에 환자가 돌아온 상태라는 것이 너무 다행이다.


앞으로 환자가 잘 회복할 수 있을까.

의식도 잘 돌아올 수 있을까.

아까만 해도 그렇게 멀쩡하셨는데.

정말 한 순간이구나.

보호자분들은 얼마나 마음이 무너질까.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없다.

응급실을 너무 오래 비웠다.

눈물을 닦는다.

빠른 발걸음으로 응급실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마음을 가다듬는다.

"후우, 후우"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응급실에 도착했다.

다시 진료실로 들어간다.


"안녕하세요, 환자분.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나요?"



제 글을 좀 더 가볍게 웹툰처럼 읽고 싶으신 분들!

인스타에도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이디는 baby_doctor_ha 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baby_doctor_ha/

많이 놀러오세요!

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제 글을 읽어 주시는 것만으로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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