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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이 May 09. 2023

[마음] 충동과의 전쟁

당신이 자기조절감을 상실한 이유 1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조절감을 지켜내는 것은 지독하게 어렵다.


이전 글을 복습해보자. 자기조절감은 쉽게 말해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감각이다. 여기서 “원하는 대로”라는 것은 “충동적으로”와는 거리가 멀다. 자기조절감이 높은 사람은 본인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가치와 일관된 방향으로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간다. 


자기조절감은 자존감을 이루는 세 가지 구성요소(자기효능감, 자기조절감, 자기안전감) 중 하나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는 세 요소들 중 자기조절감의 상실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존감을 지키기 어렵게 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현대인이 자기조절감을 지키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는 그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충동과의 전쟁


첫 번째는, 손만 뻗으면 닿는 수많은 충동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현대사회는 그런 충동적인 결정들을 장려하고 특정 상황과 충동적인 반응의 연결을 강화시킨다.


충동이가 왜 직장 스트레스에 집에 도착했을 때 바로 배달 앱을 켜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자. 충동이는 직장에 있으면서 알게 모르게 계속해서 배달음식 광고에 노출된다. 검색을 위해 들어간 인터넷 사이트 배너에는 “스트레스를 받을 땐 매운게 최고야” 라는 떡볶이 광고가 나온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매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연결이 되었다. 핸드폰에는 배달 앱에서 3일 뒤면 사라지는 할인 쿠폰이 도착했으니 얼른 확인하라는 알림이 울린다. 빠른 시일 내에 배달음식을 시켜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충동이의 머릿속에 자리잡는다. 이런 하루를 보낸 충동이가 직장 스트레스를 잔뜩 안고 집에 도착했을 때 배달 앱을 켜고 매운 떡볶이를 시키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의 주의집중을 훔쳐가는 사방에 널린 자극들


스마트폰의 많은 앱들은 기회만 보면 알림을 울리거나 푸시 메시지를 보내며 '나 좀 봐봐!' 라고 소리친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컴퓨터를 켰다가 수많은 자극에 휩쓸려 기존의 목적을 잊고 몇 시간이고 웹서핑을 하기도 한다.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광고판, 포스터, 길거리 상점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음악소리 등 우리의 주의집중을 훔쳐가려는 자극들을 나열하려면 끝이 없다. 심지어 이러한 자극들은 우리의 주의집중을 빼앗으려는 명확한 목적에 따라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방심하면 휩쓸려버린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가 어떤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또렷하게 의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자극들은 어느 틈에 뇌를 해킹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특히나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는 더더욱 그렇다. 불안, 우울, 스트레스 등 부정적인 감정이 높아질 때, 우리는 이러한 자극에 더 쉽게 끌리게 되고, 의식적인 판단 없이 행동하게 된다.



즉각적인 충족에 익숙해진 우리들


충동이가 스트레스를 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배달 앱을 켠 상황과 유사한 예시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무료함을 느끼면 쇼츠를 켜 자극적인 영상을 보고 외로움이 올라오면 인스타그램을 켜 사람들 소식을 본다. 이러한 과정은 생각을 거치지 않는다. 우리의 뇌는 스트레스 → 떡볶이, 무료함 → 쇼츠, 외로움 → 인스타그램으로 조건화되어 있다. 


이처럼 현대사회는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코앞에 제시해주고, 우리는 즉각적인 충족을 위해 이를 마다하지 않는다. 혹자는 부정적인 감정을 바로바로 해소할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특정 감정에 대한 즉각적인 충족은 의존성을 만든다. 우리는 점점 떡볶이가 없으면 스트레스를, 쇼츠가 없으면 무료함을, 인스타가 없으면 외로움을 해소하지 못하게 된다. 떡볶이를, 쇼츠를, 인스타를 소비하면서 내가 왜 이 행동을 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과 행동을 통제 아래에 놓기가 어려워진다. 다시 말해, 자기조절감이 점점 희미해진다. 


*저자가 한창 기획자로 일할 때에는 서비스를 어떻게 특정 감정에 조건화시켜 유저들을 서비스에 중독시킬지를 고민했었다.


'나 들여다보기'가 어색한 우리들


습관적으로 쇼츠를 켜기 전에, 잠깐만 멈춰서 내가 왜 쇼츠를 보려고 하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보자. 재미를 느끼려고? 휴식하려고? 행동의 목적 이전에,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정의해보자. 무료함일수도, 외로움일수도, 불안함일수도 있다. 이전에 쇼츠를 보면서 해당 감정이 해소되었었는지도 되짚어 보자. 또, 다른 방법으로 해당 감정을 해소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보자. 자존이의 이야기에서처럼, 내 가치에 더 잘 맞게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방식이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나의 가치와 합치하는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취한 행동보다 훨씬 더 충만하고,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 다음 글에서는 현대인들이 자기조절감을 지켜내기가 어려운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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