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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이 May 11. 2023

[마음] 현대사회의 오지라퍼들

당신이 자기조절감을 상실한 이유 2

지난 이야기 복습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조절감을 지켜내는 것은 지독하게 어렵다.
자기조절감은 쉽게 말해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감각이다. 여기서 “원하는 대로 삶을 만들어 간다"라는 것은 본인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가치와 일관된 방향으로 삶을 꾸려나간다는 뜻이다.

현대인이 자기조절감을 지키기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 원인 중 지난 글에서는 "충동과의 전쟁"을 다뤘다. 이번에는 "시끄러운 오지라퍼들" 차례다.


시끄러운 오지라퍼들 


사회적 기준을 무시하기 어려운 현대사회 


현대인이 자기조절감과 멀어지게 되는 두 번째 이유는, “넌 이렇게 살아야 해! 너도 이걸 원할걸?”이라고 외치는 것들이 사방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앞서 자기조절감이 ‘내 인생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가고 있다는 감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수많은 주체들이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귀가 멍멍할 정도로 시끄럽게 “넌 이걸 원할걸?”이라고 외쳐대는 탓에 “내가 원하는 대로”가 실제로는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SNS가 대표적이다. 특히 ‘나 들여다보기’가 연습이 되어 있지 않아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더더욱, SNS에서 보여지는 ‘행복의 기준’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기가 쉽다. 이러한 ‘행복의 기준’에는 화려한 레스토랑, 알만한 브랜드에서 구매한 선물, 값비싼 호텔에서의 휴식, 흠 하나 없는 외모, 나아가 소위 말하는 인싸 성격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


“넌 이렇게 살아야 해, 너도 이걸 원할걸?”이 양육자로부터 주입되는 것은 한국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다. 딱딱한 주입식 교육 환경 속에 아이들이 각자가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찾아볼 기회가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해야할 일”과 “바람직한 학생상”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고 그 외의 생각이나 행동은 모두 일탈적인 것으로 취급받아 불이익이 주어진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연습을 하기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내가 어디까지 어떤 것을 해볼 수 있는지를 알기 어렵게 된다. 대신에 사회에서 요구하는 어떤 ‘상’에 나를 맞추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다.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나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그래서 오히려 제발로 사회가 요구하는 '상'을 찾아 그 안에 나를 우겨넣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가 진정 원하는 것을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이를 추구하기에 있어서 매우 소극적이게 된다. 다시 말해, 자기조절감이 희미해진다.


그냥 따라가도 되는거 아니야? 


사회적 기준에 끌려다니는 삶이 행복해지기 어려운 이유


SNS, 양육자, 교육환경 등을 통틀어 "사회"라고 하자.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끌려가듯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되는 순간은 분명히 온다. 


첫째,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은 없고 해야만 해서 하는 것들만 잔뜩 일상을 채우게 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면서 사회상에 맞추다보면 언젠가는 행복해진다고 들었는데. 근데 대체 언제부터 행복해진다는 거지?” 라는 의문이 든다.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 지금 걷고 있는 길에 끈기와 열정을 유지하기가 대단히 힘들어진다. 


둘째,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다. 이는 사회가 말하는 바람직한 "상"에 나를 끼워맞추려 노력하다 보면 당연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상을 파악하고 이를 나에게 반영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사회적 주체들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짜 '나'는 위축되고 지워진다. 



셋째, 우월과 열등이 가려지고 옆에 있는 동료들이 경쟁 상대가 된다. 우리가 학습하는 사회적 기준에는 대표적으로 돈, 성적, 외모와 같은 기준들이 포함된다. 내가 스스로 나의 가치를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이런 기준들에 집착하게 되고, 줄세우기에 밀려들어가게 된다. 나보다 우월한 사람을 보며 불행하고, 나보다 열등한 사람을 보며 안심하지만 언제 내 자리가 뒤로 밀려날지 몰라 전전긍긍 불안하다. 


저자의 경험담. 호주랑 한국이 뭐가 달라? 사람들에게 "너는 너 일이 좋아?"라고 물어봤다.


저자가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를 갔을 당시 마주친 다양한 사람들에게 “너는 너의 직업과 커리어를 좋아하니?”라고 물어봤다. 돌아온 반응이 처음에는 꽤나 쇼킹했다. 사람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게 무슨 질문이야? 당연히 내 직업에 내가 좋아하는 구석이 있으니까 이 커리어를 유지하고 있지. 나는 내 일에서 이런이런 부분이 재밌어/이런이런 부분에서 열정을 느껴.” 라고 대답했다. 호주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한국에 있는 지인들보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놀라울 정도로 높았다. 다 사람 사는 곳이니 직업의 성격이나 하는 일 자체에는 큰 차이가 없을텐데, 어떻게 이렇게 다른 반응이 나오는 걸까 곰곰히 생각해 본 결과, 비밀은 ‘내가 원하는 대로’에 있었다.

2021년 뉴스에서 가져온 자료. 한국은 행복지수에서 37개국 중 35위를 했다.

호주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진정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인식하지만 한국의 많은 친구들은 직업을 주체적으로 선택했다는 인식이 비교적 덜하다. “그렇게 해야만 해서” 안정적이거나, 연봉을 많이 주거나, 당장 일자리를 얻을 수 있거나, 그간 공부해온 것과 일관된다거나 하는 조건에 맞는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서 혹자는 “근데 그 사람이 연봉 많이 주는 걸 진정으로 원할 수 있잖아?”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누군가가 “연봉 많이 주는 것”을 제1의 가치로 두고 직업을 골랐다고 했을 때, 이것이 정말로 본인의 내면 깊숙이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인지, 사회가 이게 가장 중요해서 이렇게 해야만 한다며 머리에 심어준 가치인지는 한 번쯤 고민해봄직하다


다음 이야기: 그럼 자기조절감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감을 잡기 위해 먼저 자기조절감이 높은 자존이의 의사결정과정, 사고방식을 들여다볼 것이다. 

자존이의 하루 다시보기: 체중과 자기조절감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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