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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나 Jan 01. 2025

균형을 맞추는 일

나도 정답이 아니다

올해는 교회에 거의 못 갔다. 5년 전에 내 집처럼 생각하던 교회를 나온 뒤로 꽤 많은 교회에 방문했다. 그중 어떤 곳에는 정착하는 듯하다가도 결국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발길을 끊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교회는 신앙보다 공동체로서 의미가 더 컸다. 나를 알기 전에 교회를 먼저 알게 된 것이 아주 오랫동안 아팠다. 이제 나는 서른 살도 끝난다.


처음에는 그냥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따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나온 것인데, 교회에서 보는 것과 카페에서 보는 것은 조금 달랐다. 대학시절 전부를 쏟아부은 사람들. 동역자에서 친구가 되는 사람들. 그중 어떤 것이 더 좋을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훨씬 친해지기는 했다. 웅장하고 추상적인 단어들은 덜 사용하게 됐고, 나의 언어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 스스로에게 내 존재를 인정받는 시간이었다.


조금 더 지나서는 찬양을 부르고 싶었다. 집에 혼자 앉아서 불러보고 풀세션으로 연주하는 기도회 영상도 틀어봤지만 좀 부족했다. 찬양을 흥얼거리는 것과 있는 힘껏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달랐고, 기도와 가사를 섞는 감각은 점점 희미해졌다. 소리 내서 기도하지 않으니 이제는 내가 여전히 방언을 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습관처럼 꼬박꼬박 기도를 했고 플레이리스트에는 늘 CCM이 있었다. 매일 아침에 QT를 하면서 나는 내가 여전히 교회언니 같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교회에 가면서 여러 교단의 공통적인 문제들을 봤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한결같이 선한 성도들의 모습도 봤다. 세상과 너무나 동떨어진 공간, 그러나 그 자체로 완전히 고정된 세계. 어린 나는 교회를 아주 사랑했는데 그 튼튼한 울타리가 세상과 성도를 양방으로 어떻게 가로막는지 확인하고 마음이 슬퍼졌다. 친구가 되지 못한 교회 사람들은 나를 집 떠난 탕자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끔 교회에 가면 탕자가 언제 돌아오려는지 확인하기 바빴다. 하지만 난 하나님을 떠난 적 없다.


조금 더 지나서는 교회 사역에 지쳐서 마음이 병든 친구들이 보였다. 그 거대한 집단을 떠나올 때 내 모습을 보게 됐다. 너를 먼저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여러 가지 효과를 본 방법들을 나눴지만, 신앙적으로는 뾰족한 해답이 없었다. 그래서 얼마간은 조급했고 약간 주눅이 들었다. 그냥 좀 가만히 있으라는 듯, 신으로부터 나 그렇게 쪼잔하지 않아- 하는 메시지가 왔다.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 난 늘 건실하게 살아왔는데, 처음으로 덜 긴장하는 나를 용납받았다.


올해는 슬픈 일이 너무 많다. 나라도 학교도 회사도 가족도 연애까지도 박살이 났다. 언제 연말이 왔는지 알아챌 여유도 없이 마지막 일요일에는 비행기 사고가 났다. 회사 사람들과 매일 그 이야기를 하면서 눈시울을 붉힌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이 이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그래서 오랜만에 집 근처 교회에 왔다. 송구영신예배에서는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나 역시 틀렸음을 인정하고, 세상을 화목하게 하라고 말했다. 인상이 좋으신 목사님들이 예배당 안내를 도와주셨다.


맞다. 나도 치우쳤다. 그래서 신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송구영신의 마지막 기도에 인상 깊은 대목이 두 가지 있다. 제주항공-무안공항 사고를 당한 유가족들과 함께 울게 해 달라는 말, 질서가 무너진 세계 질서가 회복되고 바로 세워져 동성애 합법화가 되지 않게 해 달라는 말. 나로서는 여전히 이 기도가 위선적이다. 우리가 그런 모순을 가지고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 믿음의 선한 싸움인가? 하나님은 정말 그런 새해를 기대하시나? 나는 새해가 조금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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