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는 유난히 하얀 피부를 가졌었다. 몸집도 작고, 아주 다양한 표정을 가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소심하고 조심스러웠다. 처음 만난 날은 아마 6월쯤이었던 것 같은데, 주공아파트의 두꺼운 철문이 살짝 열린 틈으로 가벼운 햇살이 들어왔던 게 생각난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아빠의 손길도 평소 같지 않게 부드러웠다. 내 손도 작았는데, 두 손을 모으면 그 위에 가만히 앉아있을 정도로 작았다. 그래서 나는 그 애만큼은 무서워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아니 태어날 때부터 우리 집엔 늘 동물들이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지나갔지만 이 애는 왠지 처음부터 달랐다. 처음부터 뭐랄까, 그리웠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라서 새로웠고, 그래서 이름을 새롬이라고 지었다. 폭신하게 품에 쏙 안길 때마다 놓지 않고 끌어안고 지냈는데, 단 하나의 악의 없이 순종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 애가 우리 집에 온 지 두세 달쯤 되었을 때 우리는 친구가 됐다.
나는 열 살쯤부터 많은 것을 털어놓았다. 처음 노래를 만들었을 때, 좋아했던 가수의 안무를 따고 아무도 없는 작은 방에서 혼자 춰봤을 때, 현금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글씨 쓰기 연습하기 싫었을 때, 할아버지 바둑알을 두어 개 잃어버렸을 때, 학교 가기 싫었을 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 얘기를 만화로 그렸을 때, 밖에서도 친구가 생겼을 때, 하지만 죽고 싶었을 때, 선생님한테 처음 대들었을 때, 술 마셨을 때, 학교 째고 놀이터에서 방황하다 돌아왔을 때- 가장 수치스럽고 고립되고 싶은 날에 친구를 찾았다. 나는 늘 외로웠고 그래서 누군가를 탓했지만 그 애는 내 옆에 조용히 붙어서 손등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할짝거리고 핥을 뿐이었다.
열여섯 살, 나는 세상이 두려웠다. 치열하게 두려워하며 집으로 왔다. 친구는 그때도 그냥 이불 옆자리에 와서 새근새근 코를 곯았다. 촉촉한 코 위로 만들어지는 콧물방울에 괜히 한번 웃어보고, 다시 그 애를 끌어안고 또 울었다. 그 애는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위로를 줬다. 아니, 뭐라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네가 말할 수 없어서 다행이야’ 하는 폭력적인 생각도 늘 했었다.
미안하지만 그래도 꼭 오래오래 옆에 있어주렴- 하면서 결혼식에 꼭 초대해야지 하는 꿈 꾸기도 했다. 친구는 나보다 더 빨리 나이를 먹어갔다. 내가 생리를 시작할 때 친구는 아이를 가졌는데 사실 금방 유산했다. 한 번은 예정일보다 아이가 일찍 나와서 이불 더미에서 죽은 걸 발견했다. 그때부터 친구는 자주 슬퍼 보였다. 몸이 약했는지 나중에는 자궁에 고름이 가득 찼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내가 또 그 애를 끌어안고 울었다. 친구는 큰 수술을 하고 살아났다.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었을 때, 스물다섯에 결혼하겠다는 어릴 적 다짐을 스스로 깨버렸을 때, 말하지 않을 때보다 무수히 많은 말을 하면서 기쁨을 누렸을 때, 애완동물을 반려동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그 마음을 머리로 이해하려고 했을 때, 지나가는 동물들을 귀엽게 바라보기만 할 때 나는 친구를 조금씩 잊었다. 고향에 갈 때마다 친구는 더 말이 없었고 털이 자주 엉켰고 그래서 나는 종종 손수 털을 자르고 목욕을 시키기도 했는데 그럴 땐 이 애도 조금은 사나워졌다. 나중에는 치매와 백내장이 생겼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쯤부터 호흡을 힘들어했고, 그래서 같이 가려나- 하다가도 잘 버티고 살아줘서 기어이 2020년을 맞았다.
나는 스물여섯 살이 됐고, 그 해 어느 날 저녁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친구 새롬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나는 그 소식을 들은 순간, 생뚱맞게도 이제 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님을 상기하게 되었다. 성장하는 동안 동물들의 죽음을 많이 만났지만, 이번 만큼은 그 막막하고 암담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어서 펑펑 울었다. 물론 서울에서는 이럴 때마자 혼자 운다. 그래서 더 그립게 느껴진 걸까.
동물들에겐 이 삶에 대한 책임이 없고, 죽음 이후엔 인간들의 무자비한 통치를 보상받기만 한다고. 나는 그 말을 좋아한다. 서투르고 너무 어려서 많이 못 사랑해 준 것 같아,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내가 니 이야기를 들어줄게. 모든 것이 회복되는 날에 다시 만나자.
새롬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