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나 Sep 12. 2024

길을 건너려는데 그가 보였다.

입은 셔츠가 얇았다. 결혼식에 다녀온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S가 말랐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날씨가 추워진 탓인지 유별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나기로 곳은 작은 도로변에 있는 카페였다. 말이 있어서 밥을 먹기에는 그렇고 곧장 카페에서 보자고 했다. 카페의 입구는 통유리창이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에 주문하는 곳이 있었다. 문의 왼쪽으로 간이 의자가 설치되어 있어 주문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앉아 메뉴판을 보기도 하는 구조였다.

S는 반듯한 자세로 앉아 윗쪽의 나무판에 메뉴가 적힌 것을 보고 있었다. 결국에는 커피를 마실거면서, 어딘가 골똘한 것이 긴장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입구를 마주보고 서 있던 바리스타 여럿이 나를 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내 목소리를 듣고 S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 내 옆에 설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빨리 왔네. 자리는 잡았어?"

"응. 다섯시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그는 나의 메세지를 오해한 것 같았다. 다섯시나 여섯시에 시간이 될 것 같다는 그의 말에 나는 다섯시 삼십분에 보자고 말했고, 나는 근처에 있으니 다섯시쯤 미리 가있겠다고 연락했었다. 이전 일정이 빨리 끝난 것인지 결국은 그가 나보다 먼저 도착해있던 것이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들고 S가 가방을 올려둔 자리로 함께 걸어 내려갔다. 철제로 된 계단을 세면서 갔다. 발자국 소리가 투박하게 번져들렸다.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머뭇거리는 동안, S도 자리에 앉아 내 안색을 살폈다. 걱정이 깃든 표정을 보니 입이 달싹거렸다. 할 말이 있다는 것은 그냥 해 본 말이고, 한 번 보고 싶어서 불렀다고 이야기할까 짧은 시간 고민했다.


그것은 내가 사람들을 대해 온 오래된 방식이었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잘 믿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쉽게 사람을 내치지도 않았다. 밍숭맹숭 한 채로 관계를 이어가다보면 별 수 없이 상처를 받았고, 나는 여지껏 한 번도 적절한 때에 그것을 표현해 본 적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랬다.

그러나 나는 상대의 의도가 선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점에서 사람을 잘 믿었다. 내가 받은 상처가 오해이고, 상대쪽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당황할까봐 걱정하는 패턴인 것이다.


정말 중요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해선 안된다는 교훈의 서슬 퍼런 직감으로 찾아왔다. 결코 풀리지 않던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나를 관통해가는 세밀한 감정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과제이구나. 나는 이 숙제를 S와 같이 해보기로 했다.

그는 지독한 외로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의 방식과 과정은 늘 나와 달랐지만, 채워지지 않는 공간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통하는 구석이 있었고, 나는 늘 그게 기뻤다.

속내를 꺼내니 별 수 없이 눈물이 주륵 났다. S는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내 방식대로 말하는 걸 내내 듣고 있다가, 결정적인 부분에서 짐짓 놀라며 말을 끊었다.


"...그때, 기억나...!"

생각지 못한 부분을 꼬집힌 듯 그의 눈이 커졌다.

S가 나의 진심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가 받은 상처에 함께 아프다는 점에서, 그의 놀란 표정에서 나는 사과보다 앞선 위로를 받았다. 사실 그 이후로는 어떻게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S를 믿고 좀 더 울었다.

"나한테 중요한 일이었는데, 가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어, 너무 무서웠어."

"정말... 미안해."

"무엇보다, 친구를 잃어버릴까봐 무서웠어. 진짜야."

그는 내가 우는 것을 지켜봤고, 울음이 수그러질 때쯤 목소리를 냈다. 온전히 나를 위해서였다.


"내 이야기를 해도 될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이 나를 안심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이번에는 내가 긴장하는 쪽이 되었다.

"갈등이 있다고 해서 친구였던 관계가 끊기지는 않아. 어쨌든 서로의 존재를 같이 하기로 한 거잖아."

수그러든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터져나왔다. 내가 대답하지 못하는 동안 S는 뭔가를 더 말했다.

"나에게는 연약함이 있어."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인정이라면 내쪽에서 먼저 해야 할 것 같아 되려 미안해졌다.

밥을 먹고 가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골목에서 피자를 먹고 헤어졌다. 종일 긴장했더니 몸이 으슬거렸다. 마침내 나의 찌질한 모습을 보인 경험에 대해, 알 수 없는 기쁨과 해방감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 우정에 관한 글을 찾아 읽었다. 그러는 동안 S와 나눈 메세지에는 자상하고 깊은 위로가 들어있었다.

"다시 한 번 상처줘서 미안해. 포기하지 않는 관계로 지내자."

나는 안도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작가의 이전글 이번에는 정신없이 계단을 올랐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