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기른다는 것에 대하여

대한민국에서 대형견 견주로 살아남기 - 01

by 하진
DSCF3287.JPG 언제나 해맑은 나의 악마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지금도 낑낑거리며 관심을 갈구하는 강아지를 다리 사이에 두고서 가까스로 집중력을 끌어모아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런 삶은 내가 상상한 종류의 것은 아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온전히 혼자였고, 모자람 없(다고 생각했었)던 나는 스스로의 똑부러짐에 한껏 도취되어 남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나 자신을 큰 자랑거리로 삼았다. 혹여 눈총을 받는 일이 생기면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게 나의 탓이든 남의 탓이든 오래도록 곱씹고 속을 끓였다.


그러나 이 강아지라는 생명체는, 이런 30여 년간의 내 노력을 가볍게 걷어차버리고 투명한 그림자처럼 지내던 나를 사람들 앞으로 들이밀었다. 내가 소유하고 있음에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감히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놀랍게도 처음 깨달았다.


길거리를 지나다니기만 해도 쏟아지는 시선, 어지러운 보도 위에서 미숙한 산책습관 탓에 제멋대로 엉키는 동선, 아무리 타일러도 궁금하면 들이밀고 보는 커다란 몸뚱이, 모든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와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탈진하기 일쑤였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털뭉치


엄마도 예전에는 수줍음이 많았었는데 너희를 낳고 기르다 보니 용감해졌어, 라는 말이 와닿지 않았었다. 이젠 알겠다고 말할 정도로 내가 용감해지지는 않았지만 그 말이 무슨 말인지는 이해하게 되었다. 이것은 강아지를 입양하기 전 얼마나 준비를 했냐, 강아지가 얼마나 크냐, 뭐 이런 구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물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약간쯤 줄이는 데 기여할지는 모르나, 내 통제 하에서 이 작은 녀석들을 완전히 마이크로 컨트롤해서 누구에게도 책잡히지 않을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당연한 거 아냐? 당연한 것을 몰랐다. 알더라도 피하고 싶었다. 너 때문에 내가, 라고 강아지를 원망해봤자 소용도 없다. 남 보기에 미운 꼴도 조금쯤은 이해해 주길, 이해를 못 해주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고 사는 수밖에.


불편했던 남의 소음이 내 강아지의 소리를 감춰주어 고마워졌다. 오지랖이라고 생각했던 소소한 친절이 감사해지는 순간들이 생겼다. 다가오는 누군가의 관심에 매서운 눈길 중 하나쯤이 한결 부드러워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Let It Go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반갑다고 올라타는 개를 급히 막아보았지만 상대의 낯에 어리는 불편한 기색, 하필이면 사람이 꽉 찬 지하철 엘리베이터에서 히융대며 존재감을 드러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 지나가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겠다며 꼬리를 홰홰 쳐서 눈길 한 번이라도 더 받는 나의 버르장머리 없는 E(외향형) 강아지 덕에 한숨이 끊이지 않는 하루하루다.


정말이지 나는 이런 걸 원하지 않는다. 지금도 강아지를 뜻대로 다스리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은 늘 발생한다. 내 평온하고 품위 있는 일상은 강아지 앞에서 속절없이 와장창 깨어진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쪽팔리는 순간도 눈을 질끈 감고 견뎌야지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가 나에게 알려 주었다.


앞으로 너는 나를 얼마나 더 바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