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규정하는 것들

Episode 4

by 헤이즐리

등급을 받고 제일 먼저 한 일은 C등급이 상위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지 검색해 보는 것이었다. 어쩌면 상위가 아니라 하위 몇 퍼센트 쪽에 더 가까운지도 몰랐다. 40에서 60퍼센트 그 사이려나, 아니면 더 아래…? 매일매일 ‘출산 위험도 등급제’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 봤지만 정부에서 발표한 공식 자료와 제도를 논평하는 언론 기사 외에는 한동안 새로운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의사가 조치를 취해준 검진 결과대로라면 등급에 큰 영향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서른일곱이라는 나이가 가장 큰 점수 하락 요소였겠지. 그래도 내 소득 수준이면 상위 20% 이내에는 들어갈 텐데? 노후 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부모님 경제 상황이 영향을 주었을까. D등급 이하는 정부 지원금 지급도 제한된다. 그래도 C등급이면 조건부로 등급 조정 가능성이 있으니 다행인 걸까. 내 등급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안도해야 할지 불안해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무심코 숏폼 영상을 넘겨보던 중 한 젊은 여성의 영상 썸네일에 손가락이 멈췄다.


출산등급 A, 고민이에요.


영상을 클릭하자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한강 산책로를 여유롭게 걷고 있었다. 셀린느 캡모자에 캐주얼한 샤넬 백팩, 반 클리프 목걸이, 무심한 듯 보이는 트레이닝복 차림. 뒤로는 반포대교가 보였다.


“여러분, 제가 엄마 성화에 못 이겨서 얼마 전에 산부인과 검진을 다녀왔거든요? 아직 결혼할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출산등급을 받아놔야 유리하다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검진받고 어제 종합 등급 결과받았는데 글쎄, A등급이 나온 거예요. 등급 보더니 엄마가 빨리 선 자리 알아봐야겠다고 그러는 거 있죠? 30대 넘어서 등급 떨어지기 전에 빨리 결혼해야 한다며… 여러분,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더 즐기고 싶은 저, A등급인데 그냥 썩히면 너무 아까운 걸까요?”


영상은 캡션 한 줄과 함께 끝났다.

A등급 받은 비결이 궁금하다면? 풀영상 링크 클릭!


캡션 문구를 보고 잠시 벙찐 기분이 되었다가 서둘러 ‘A등급’, ‘B등급’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방금 본 것과 같은 브이로그 스타일의 영상들이 몇 개 보였고, 등급 결과를 인증하는 사진들도 여러 개 나왔다. 밑에는 해시태그들이 달렸다.


#출산등급A #A등급인증 #인생관리 #미래설계중 #타이밍이중요 #관리의결과 #엄마아빠고마워

#출산등급B #B등급인증 #B등급도괜찮아 #적정등급 #미룰수록하락 #나이도스펙


이어서 ‘C등급’ 키워드를 검색하자 출산 등급제와 상관없는 콘텐츠 몇 개만이 나열되었다. ‘D등급, ‘E등급’ 역시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C등급 이하를 받는 사람은 거의 없는 걸까. B등급을 인증하는 한 사진을 클릭해 댓글을 스크롤했다.


‘축하해요, 저도 B등급.’

‘오, 저도 B등급인데. 어지간한 결격 사유 없으면 대부분 B등급인 듯요.’

‘솔직히 C등급 이하면 ㅈㄴ늙었거나 가난하거나 둘 중 하나인 듯. 결혼도 안 했으면 인생 망. 여자로서 폐급 인정?’


마지막 댓글에 소스라치게 놀라 서둘러 창을 닫아버리고 지하철에서 내렸다. ‘폐급’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날카롭게 박혔다. 얼어붙은 표정으로 회사 건물로 들어서자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익숙한 풍경에 마음이 다소 진정되기 시작했다. 세련된 현대식 빌딩,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회사 사람들, 내 루틴에 딱 맞게 정리된 익숙한 책상, 내 컨펌을 기다리는 에이전시의 기획안과 시안 메일들. 나를 규정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언제나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는 삶이었다. 다섯 살도 되기 전에 한글을 뗐고, 늘 반장을 놓치지 않았다. 성적은 전교 상위권을 유지했고 성실하게 공부한 결과 서울의 괜찮은 대학교에 입학했다.


단 하나, IMF 때 기울어진 집안 살림이 정상화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학교 학비는 성적장학금과 정부학자금대출로 해결했다. 집에서 보내주는 생활비는 자취방 월세를 내는 것만으로도 빠듯했기에 수업이 끝나면 과외와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다. 그래도 내 능력으로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큰 자부심이었다.


해외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같은 경험은 쌓지 못했지만 학과 생활에 충실했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대기업에 취업.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상이었지만 그만큼 인정받았고 휴가 때는 혼자 해외여행도 다니며 대학 시절 못 누린 만큼 세상을 즐겼다.


결혼한 여자 선배들은 나의 롤모델이 되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어린이집과 통화하며 전전긍긍 눈치를 보는 옆 팀 선배의 모습에서 불편한 이질감을 느꼈다. 아이를 키우며 장기근속하는 여자 선배들 대부분은 지원부서에 배치되어 만년 진급 누락이 당연시되어 있었다. 업무로 인정받고 승승장구 진급을 하면서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미묘한 고양감을 느꼈고 출산 계획은 자연스레 미뤄졌다.


항상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둔 기준에 부합하는 결과를 내왔기에 나 자신의 선택에 실망하거나 후회한 적이 없었다. 이 출산 위험도 등급제라는 시스템을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가 받은 C등급이라는 결과가 나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메일 링크로 전달받은 인구감소전략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해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을 잡았다.




인구감소전략센터 건물은 지하철역에서 꽤 떨어진 한 골목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변은 구축 아파트 단지와 빌라촌으로 이루어져 한산한 분위기였다. 이 지역의 행정복지센터로 쓰였을 법한 무미건조한 외관의 회색 건물 입구에는 ‘인구감소전략센터’라고 적힌 세로 현판이 걸려있었다. 상단에 걸린 LED 전광판 문구가 시선을 끌었다.


예측 가능한 삶으로 안전한 미래를!


여기서 내 삶을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일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외관과는 다르게 아늑하고 모던한 인테리어의 로비가 나타났다. 은은한 조명과 공기 중의 피톤치드 향이 내가 다니는 에스테틱샵을 떠올리게 했다. 칸막이로 구분된 안내 데스크에는 단정한 정장 차림을 한 직원 대여섯 명이 접수를 받고 있었다.


일단 번호표를 뽑고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대기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 여자였지만 혼자 온 남자들도 더러 보였다. 생각보다 젊은 사람들도 있어서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소파는 서로 마주 보지 않게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놓인 테이블 위에는 센터 브로슈어가 비치되어 있었다. 브로슈어에는 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개인 상담, 집단 상담, 봉사활동 등. 적힌 내용들을 자세히 살펴보던 중 내 대기번호를 호출하는 안내음이 들렸다.


내 번호가 표시된 안내 데스크로 가자 다소 호리호리한 체격에 날렵한 인상을 한 남자 직원이 서류를 뒤적이며 나를 맞이했다. 명패에는 코디네이터 김경수라고 적혀 있었다. 피부과나 성형외과 시스템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신분증 확인 하겠습니다.”

동네 미용실에서 폭탄머리 파마를 하고 열아홉 살 때 만든 주민등록증을 건네자 직원은 사진과 나를 여러 차례 대조해 봤다. 이런 곳에서까지 위조 신분증을 쓰는 사람은 없을듯한데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애써 시선을 피했다.

“이지선 님. 접수 확인되셨습니다. C등급이시구요.”

나는 주변에 들리지 않을지 걱정하며 목소리를 낮춰 질문했다.

“네. 그런데… 여기 센터에는 C등급 받은 사람들만 오는 건가요?”

그는 내 자료가 기록된 파일을 출력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B등급인 분들도 오세요. A등급으로 재평가받고 싶은 분들이 계시거든요.”

“아, 그럼 혹시… 등급 별로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의 입가로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많이들 오해하시는 부분인데요. 등급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로 산정됩니다. 따라서 등급별 비율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아직 등급 평가를 받지 않은 분들도 많아서 통계치를 말씀드리는 것 역시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해되실까요?”

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겠네요. 그럼 제가 왜 C등급이 나왔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가 출력한 자료를 내 앞에 펼쳐 보이며 대답했다.

“네, 설명드릴게요. 정책 내용 이미 보셨겠지만 주요 평가 지표로 연령, 신체 건강, 정신 건강, 재정 안정성, 돌봄 네트워크 이렇게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등급은 AI 시스템에 의해 공정하게 산정됩니다. 이지선 님은 신체 건강과 재정 안정성은 무난한 평가를 받으셨네요. 정신 건강 쪽에서 스트레스 지수가 다소 높게 나왔지만 직장 생활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연령이 만 35세가 넘으셔서 나이 부분에서 등급 저하 요인이 큰 것으로 보이구요. 돌봄 네트워크 지표에서도 ‘관찰 필요’ 평가가 나왔어요. 맞벌이 부부인 경우에는 양가 부모님이 재정적으로 안정되어 있으신 상태에서 양육 지원이 가능해야 좋은 평가가 나오는데 이 부분도 등급 하락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이해되실까요?”

나이와 부모님 재정 상태. 예상한 대로였다. 거기다 정신 건강 지표까지 발목을 잡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내가 자료를 들여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가 질문했다.

“출산 계획을 언제로 잡고 계신가요?”

내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려 고개를 들자 그가 설명을 이어갔다.

“출산 계획 시점에 따라 등급 재평가가 필요할 수도 있고 참여할 프로그램도 달라집니다.”

내가 여전히 머뭇거리자 그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말했다.

“아직 결정하기 어려우실 수 있죠. 그런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일단 전문 컨설턴트를 배정해 드릴 테니 한 달간 상담 후에 결정하셔도 됩니다. 상담이 끝나는 한 달 뒤에 다시 문의드리겠습니다.”

순간 정신이 퍼뜩 든 내가 다급하게 질문했다.

“한 달 뒤에도 결정을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AI 시스템 평가에서 등급 하락 요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출산이 삶에서 얼마나 우선순위에 있는지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니까요. 이해되실까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분과도 충분히 대화 나눠보시고요. 안내해 드리는 일정에 맞춰서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면 됩니다.”


센터를 나서며 걸어 나오다 입구의 LED 전광판 문구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예측 가능한 삶으로 안전한 미래를!


예측 가능한 삶은 정말 안전한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일까. 그 안전한 미래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동안 미뤄왔던 선택의 시기를 이제는 예측 가능한 시점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 본 작품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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