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등급

Episode 3

by 헤이즐리

회사 화장실은 많은 여자 직원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곳 중 하나다. 대기업 빌딩답게 화장실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향기로운 디퓨저가 자동으로 분사되며 쾌적함을 유지해 준다. 바쁜 아침,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출근한 여자 직원들은 화장실에서 메이크업을 손보고 동료들과 인사도 나누며 업무태세에 들어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김경희 여사님은 시설관리업체 소속으로 8층부터 10층까지의 환경 미화를 담당하고 있으며 나와 재직년수가 거의 비슷한 고참이다. 다른 층 여자 직원들의 소식은 김 여사님의 입을 통해 대체로 확인 가능하다. 화장실에서 수다를 떠는 김 여사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는 10층 여자 화장실과 가까운 내 자리까지도 울려 퍼지곤 했다.


화장실로 들어가자 김 여사님이 페이퍼타월을 채워 넣으며 금세 인사를 건넸다.

“이 과장님~ 왔어? 어제 뉴스 봤어요? 우리 딸이 그러는데 출산 계급제 같은 게 생긴다며? 앞으로는 나라에 사람도 많이 필요 없대. 세상이 참…”

“출산 위험도 등급제요? 그러게요. 진짜 특이한 정책이네요.”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입에 가글액을 털어 넣고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지원팀의 장은미 대리가 화장실칸 문을 열고 나오며 말했다.

“특이할 것도 없죠. 원래부터 있던 거잖아요.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애를 A등급, 은수저 물고 태어나는 애를 B등급으로 이름만 바꾸는 거죠.”

여사님이 폭소를 터트렸다.

“맞네 맞네. 그럼 C등급은 동수저, D등급은…?”

“흙수저. 그리고… E등급은 그냥, 무수저. 제 숟가락도 못 물고 태어날 애니까 국가에서 낳지 말라고 정해주는 거죠.”

“어머어머, 말 된다. 도대체 A등급은 어떤 사람이 받으려나?”

“부부간에 경제력 충분하고, 건강하고, 젊고. 그리고 양가 부모님까지 잘 사셔야 A등급 풀옵션 완성~”

그러자 옆에서 눈썹을 그리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인사팀 김혜미 사원이 말했다.

“그런데 재산이나 건강, 부모님 재력 같은 건 민감한 개인정보 아니에요? 국가에서 그런 것까지 다 평가한다니 좀 찜찜해요.”

“병아리처럼 귀여운 우리 혜미야. 내 전재산은 이미 국세청이랑 은행에서 다 알고 있고요. 내 건강상태는 건강보험공단이 속속들이 알고 있어요. 그리고 내 이름, 전화번호, 주소, 주민번호는 중국이나 캄보디아 어딘가에서 50원에 팔리고 있겠지. 아, 또 스팸전화야. 개인정보 또 어디서 털린 거야.”

장 대리가 짜증스럽게 전화를 받으며 나가자 김 여사님이 핸드폰을 보여주며 딸얘기를 시작했다.

“이거 봐봐. 우리 손자 백일 사진. 우리 딸은 공부를 잘 못해서 미용 기술 배워서 일찍 취직하고 결혼했거든. 집안일도 할 줄 모르고 게으른데 이게 애를 어찌 키울까 싶더라고. 근데 지 새끼 낳더니 어느 날 이러는 거야. 솔직히 애기가 사위 닮아서 인물은 그냥 그렇거덩? ‘엄마, 내 뱃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이쁜 애가 나왔지? 나 진짜 대단한 거 같아. 나도 이때 이렇게 이뻤어?’ 애 낳고 나서는 온 집안 맨날 쓸고 닦고, 애 몸에 닿는 건 다 소독하고 아주 유세야. 엄마 되더니 이제서야 사람 되는 거 같애. 애기 봐봐. 막 잘 생긴 건 아니어도 귀염상이긴 하지? 이 과장님도 얼른 하나 낳아. 똑똑하고 능력 있고 이 과장님 같은 사람은 A 등급이겠다, 그치?”

“하하… 그럴까요? 애기 너무 귀여워요.”

어색하게 웃으며 나갈 타이밍을 잡고 있던 그때 홍보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과장 여기 있었네? 이따 10시에 사장님 보고자료 한 번 브리핑해 줘.”

“네, 알겠습니다.”


홍보실장은 작년에 외부에서 영입한 회사 내 몇 안 되는 여자 임원으로 사장님 골프 인맥 인사라는 썰이 있었다. 핸디캡이 한 자릿수로 남자 임원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초고수라고 했다. 남자 팀원들 몇몇은 주말에 팀장을 따라 필드에 나가는 모양이었다.


두 달 뒤에 있을 유럽 고객 초청 행사는 1년 중 가장 큰 프로젝트로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되지 않는 중요한 연례행사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사장님 지시에 의해 전임 담당자들이 교체되고는 했다. 나는 역대 담당자들 중 가장 오랜 기간 이 업무를 맡고 있었다. 커리어를 고려해 업무 확장이 필요한 시점이었기에 연말 면담 때 홍보실장에게 업무 변경을 요청했더니 이 과장 같은 베테랑이 갑자기 기존 업무에서 빠지면 타격이 크니 1년만 더 고생해 달라고 했다.


홍보실장은 한결같았다. 보고서 내용을 숙지하지 못해 사장님 보고용 스크립트를 별도로 작성해 전달해야 했고, 이미 전달한 보고자료를 찾지 못해 똑같은 내용을 몇 번씩 다시 요청하고는 했다. 대신 맛있는 밥, 달달한 간식을 잘 사줬다.


올해를 잘 마무리해야 했다. 그래야 진급도 커리어도 잡을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기 직전,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안내 공지 확인하셨을까요? 기존 검사 결과 관련해서 추가로 설명드릴 부분이 있는데 가급적 오늘 내원 가능하실까요?”



무를 서둘러 마무리하고 병원 마감 시간 전 간신히 도착했다. 안내 데스크 앞에는 정부에서 배포된 출산 위험도 등급제 시행 공문이 부착돼 있었다. 진짜 현실이라는 것이 와닿았다. 진료실로 들어가자 의사가 내 차트를 열어두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실 지난번 검사 때 한 가지 더 나온 소견이 있습니다.”

의사는 모니터에 눈을 응시한 채 펜으로 책상을 톡톡 쳤다.

“자가면역계 쪽 잠재 질환으로 보이는데 평소에는 특별히 증상이 없다가 호르몬 변화와 면역 부담이 커지면 급격히 발현될 수 있습니다. 임신 출산이 트리거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심각한 건가요..?”

의사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AI 예측 모델 기준으로는 출산 이후 예상 평균 생존 기간이 19년으로 나옵니다. 지난번 검사 때 쇼크 반응이 온 것도 갖고 계신 잠재 질환과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겠네요. 통증과 스트레스에 신경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듯합니다.”

검사 도중 들었던 그 목소리가 퍼즐처럼 맞춰졌다.

“지난번에 차트에서도 본 것 같은데… 왜 따로 설명을 안 해주셨나요?”

“어디까지나 AI가 추측한 결과일 뿐이고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확실하지 않은 내용으로 불필요한 공포를 드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의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다만… 이 결과가 정부 시스템에 연동되면, 다른 평가 지표와 상관없이 등급은 D나 E로 분류될 겁니다.”

손발이 차갑게 식는 것이 느껴졌다. D, E 등급. 내 인생에서 받아본 적 없는 낯선 평가 수치다.

“하지만 정부 발표 이전에 한 검사라 연동 의무는 없습니다. 따라서… 제가 이 기록은 삭제해 두겠습니다. 향후 재검 시에는 다시 나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때는 자동으로 정부 시스템에 연동될 겁니다.”

의사가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자 차트에서 그 결과 문구가 삭제되어 화면에서 사라졌다.

“이건 의사로서 제 판단이고요. 선택은 어디까지나 환자분 몫입니다.”


진료실에서 나오자 간호사가 정부 연동 동의서 양식을 건넸다. 서명란 아래에는 ‘본인의 의료 정보가 국가 정책 시스템에 활용되는 것에 동의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여기 서명해 주시고요. 정부 시스템에 연동되고 나면 출산 위험도 최종 등급이 산출될 예정이에요. 결과는 일주일 뒤에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얼떨떨한 상태로 체크 표시된 곳에 서명을 한 뒤 사본으로 받은 정부 연동 동의서를 가방에 욱여넣고 집으로 향했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남편에게는 병원에서 들은 얘기를 공유하지 못했다. 내가 먼저 상황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 뒤 남편도 병원에서 간단한 검사를 받았고, 며칠 뒤 최종 통보가 도착했다.


남편 B등급.

나는 C등급.


같은 직장에서 같은 수준의 돈을 벌고, 같은 집에서 같은 밥을 먹는 사람이었다.

나보다 두 살이 많고 경제 수준과 기타 지표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출산 등급에 있어서는 남편이 더 안전한 쪽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내 결과 페이지 하단에는 추가 안내사항이 기재되어 있었다.


조건부 출산 권고.

정부 개선 프로그램 참여 필수.

프로그램 운영 장소 : 인구감소전략센터


나의 출산은 그렇게, 하나의 행정 시스템 안으로 편입되고 있었다.


# 본 작품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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