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일요일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남편은 커피를 내리고 나는 프라이팬에 계란을 풀어 스크램블을 만들었다. 블루베리에 그릭요거트까지 곁들이자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주말 아침 풍경이 완성됐다.
치열하게 일에 매달리고 찾아온 한 주의 끝에 남편과 여유를 즐기는 이 생활에 특별히 부족함은 없었다. 남편과 내가 다니는 회사는 좋은 복지에 나쁘지 않은 급여를 제공했고 우리는 매년 두세 차례 해외여행을 다니며 취미생활을 즐기고 양가 부모님께는 서운치 않게 용돈도 드릴 수 있었다.
“어제 병원에서는 뭐래?”
“특별히 큰 문제는 없대. 그래도 나이가 있으니 시험관 하려면 빨리 시작하는 게 좋다고.”
차트에서 보았던 ‘예상 생존 기간 19년’이라는 문구가 순간 스치듯 떠올랐다. 하지만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단은 생각에서 털어내기로 했다.
“그래? 그럼 바로 할 거야?”
“글쎄… 그런데 나 두 달 뒤에 유럽출장 길게 잡혀있잖아. 일단 다녀와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은데...”
“그러네. 급할 건 없으니까.”
남편은 입가에 그릭요거트를 묻힌 채 무심하게 대꾸하며 핸드폰 게임으로 눈을 돌렸다.
몇 번의 이별과 재결합을 반복하는 연애 기간 동안 나는 결혼에 대해서 다소 소극적인 입장이었지만 장손으로 태어난 그에게 결혼만은 피할 수 없는 숙제였던 모양이다. 몇 년 동안 능청스럽게 결혼을 요구하는 그에게 딱히 저항할 이유를 찾지 못해 구렁이 담 넘어가듯 결혼이라는 스텝을 밟았다. 결혼 후에는 무심한 건지 나를 배려한 건지 남편은 출산 계획에 대해서는 먼저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감탄사와 탄식을 연발하며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다 나 역시 핸드폰을 들어 포털 사이트의 뉴스 페이지를 습관처럼 열었다. ‘정부 출산 정책 개선안 발표’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정부 브리핑 영상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출산과 육아 지원 정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출산율은 몇 년째 뚜렷한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제 검사 이후 출산이라는 이슈가 조금은 현실적으로 다가온 느낌이라 과연 어떤 지원안이 나올지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중계 영상 링크를 클릭했다. 청와대 브리핑룸 단상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올라와 목례를 한 후 준비된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정부는 다음 달부터 출산 위험도 등급제를 공식 시행합니다.”
기자들의 타이핑 소리와 카메라 플래시 소리가 몇 초간 어지럽게 울렸다.
“정부는 오랫동안 출산율을 양적으로 높이는데 집중해 왔습니다. 그러나 국민 개개인의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인 출산 장려 정책은 뚜렷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경제적·신체적·정신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출산이 늘었고, 이는 오히려 국민의 삶을 더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일정한 기준 없이 모든 국민들에게 출산을 장려하여 개별 가구의 잠재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대신 출산의 질적인 면에 더 집중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장관은 브리핑룸의 스크린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슬라이드에는 국가 AI 적용 단계별 계획, 생산 자동화 시스템에 따른 노동 수요 변화 그래프가 나열되어 있었다.
“AI 기술의 확산과 산업 구조 변화로 우리는 이미 노동력 수요의 질적 전환을 겪고 있습니다. 과거처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미래 사회에 중요한 것은 인구의 양이 아니라 질, 그리고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어서 A부터 E까지 구분된 표가 나타났다.
“출산 위험도 등급제는 국민 개개인의 건강, 경제, 돌봄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A에서 E까지 다섯 등급을 산출하여 출산이 각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감당 가능한 선택인지 판단하게 됩니다. 등급에 따라 출산 권장 여부와 양육 지원안이 마련되며 이를 통해 무분별한 출산 지원 정책으로 인한 복지 예산 낭비, 과도한 의료비 지출, 돌봄 사각지대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오늘부로 인구감소전략위원회를 신설하여 인구감소 시대의 건강한 사회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상세 정책안은 배포된 보도자료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관의 브리핑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그러면 정부는 인구 감소를 사실상 받아들이겠다는 건가요?”
장관은 잠시 숨을 고르고 기자를 응시하며 말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뜻입니다. AI의 확산뿐만 아니라 빠르게 진행 중인 고령화 역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입니다. 정년 연장과 노령 인구 활용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점점 커지는 현실에 부응하여 정부는 출산율을 무조건 끌어올리는 대신 노령 인구의 노동력을 보다 확대 활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할 것입니다.”
뒤이어 다른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인구 감소는 결국 내수 경제 침체로 이어질 텐데요.”
장관은 예상한 질문이었다는 듯 답변을 이어갔다.
“내수 경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소비 인구를 늘리는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따라서 수출 중심으로 산업 구조 개편을 더욱 가속화하고 내수 경제는 단순 소비량 확대가 아닌 소비의 고급화, 지속 가능한 내수 체질로 전환하는 데 집중할 것입니다.”
기자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다면 이 제도는 출산을 개인의 선택에서 국가의 승인 대상으로 바꾸는 것 아닙니까? 국민의 기본권 침해로 해석될 수 있을 텐데요.”
장관은 잠시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출산을 막는 제도는 아닙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출산 위험과 양육 부담을 국가가 시스템적으로 관리하여 국민 생애주기의 안정성을 높이자는 취지입니다. 이를 위해 출산과 양육 지원을 등급에 따라 차등 관리할 계획입니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장관이 퇴장하자 기자들의 손이 다시 바쁘게 움직이며 우레와 같은 타이핑 소리가 브리핑룸을 채웠다.
관련 뉴스는 오후 내내 인터넷을 도배했다.
「출산율 대신 ‘출산 적정성’ 관리… 정부, AI 기반 인구 정책 대전환」
「노동력 과잉 시대, 출산 정책도 구조조정 들어가」
「A는 낳고 D는 보류?… 출산 등급제, 차별 논란 불붙어」
「출산 허가제 아니냐는 비판에 정부 “관리일 뿐”」
남편에게 뉴스를 보여주자 역시나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응했다.
“하긴 지금 태어나는 애들은 나중에 일자리 구하기도 더 어려워질 텐데 무조건 낳는 게 능사는 아니지.”
“그렇게 생각해?”
“부모가 경제적으로나 교육적으로 뒷받침할 여건이 안되면 그렇다는 거지. 우리야 그래도 둘이 벌면 먹고 살만은 하니 크게 상관없겠지만.”
“우리 둘이 벌면 부족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애 어느 정도 클 때까지 한 명은 일을 못할 수도 있잖아. 혼자 벌면 교육비까지는 빠듯할 것 같은데.”
“에이, 일단 낳고 나면 어떻게든 되겠지. 사람은 원래 제 숟가락은 물고 태어난다잖아. 정 안되면 부모님한테 좀 봐달라고 부탁드리던지.”
“아버님이랑 어머님은 아직 일하시고 우리 아빠엄마는 지방에 계신데 어떻게 봐주셔. 혹시 봐주실 수 있다고 해도 그만큼 용돈도 챙겨드려야 할 거고.”
“그런가? 뭐 그래도 못 키우기야 하겠어?”
남편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컴퓨터방으로 들어가 버리더니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나는 관련 뉴스를 계속 클릭하며 거실에 멍하게 앉아있었다. 나는 국가에서 권장하는 출산 주체일까? 혹시 출산 여부를 관리받아야 하는 비권고 대상인건 아닐까? 오전까지만 해도 임신을 고민하며 저울질하던 갑의 위치에서 순식간에 임신 적정성을 평가받는 을의 위치로 입장이 곤두박질친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 난임병원 앱으로 공지 알림 팝업 하나가 떴다.
"정부의 출산 위험도 등급제 시행에 따라 본원이 보유 중인 귀하의 의료 기록에 대한 정부 연동 동의 절차가 필요합니다.
서면 동의서 작성을 위해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내원 부탁 드립니다."
덧) 보도자료 (보건복지부 · 인구감소전략위원회 공동 배포)
출산 위험도 등급제 시행 안내
본 등급은 부부의 건강, 경제 상태, 출산 리스크 및 사회적 지원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산정됩니다. 등급은 고정값이 아니며, 생애주기 및 관리 결과에 따라 상하향 조정될 수 있습니다.
[주요 평가 지표]
1. 연령 지표: 임신·출산 위험 증가 구간 반영
2. 신체 건강: 난임, 만성질환, 잠재 기저질환
3. 정신 건강: 스트레스 지수, 우울·불안 위험
4. 재정 안정성: 소득 대비 부채, 고정 지출 구조
5. 돌봄 네트워크: 배우자·가족·사회적 지원 가능성
[등급 기준표]
A등급 | 저위험군
출산 권고
출산·보육비 정부 지원: 확대 지원 적용
B등급 | 관리 가능군
출산 권고
출산·보육비 정부 지원: 표준 지원 적용
C등급 | 조건부 관리군
조건부 출산 권고
출산·보육비 정부 지원: 조건부 지원 적용 (정부 개선 프로그램 참여 조건)
D등급 | 고위험군
원칙적 비권고
출산·보육비 정부 지원: 예외적 지원 (의료 보호 목적)
E등급 | 극고위험군
출산 비권고
출산·보육비 정부 지원: 지원 불가 (예외 없음)
※ C 등급은 출산 권고 구간이나 정부 프로그램 참여 결과에 따라 등급 하향이 발생할 수 있음.
※ D·E등급은 산모와 영아의 삶의 질 유지 측면에서 출산을 원칙적으로 권고하지 않음.
# 본 작품은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