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난임 병원 대기실은 사람들로 늘 붐비면서도 특유의 고요함이 유지된다.
나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부부가 진료실에서 나왔다. 아내는 바알갛게 젖은 눈으로 서러운 숨을 내뱉으며 어깨를 들썩였고,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아내의 어깨를 토닥이며 감싸 안았다.
진료실 앞의 간호사가 그들을 불러 세우며 특별히 살갑지도 차갑지도 않은 말투로 말했다.
“다음 생리 2, 3일째에 다시 오세요. 아래층에서 수납하시고 귀가하세요.”
올해로 세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서른세 살에 회사 CC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 3년의 연애를 했고, 서른다섯에 결혼했다. 결혼을 하면서도 늦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지금의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인정받고 싶어서 전력을 다해 일에 몰두했고, 대리, 과장까지 일사천리로 승진했다.
결혼 후에도 회사일에 휩쓸려가다 보니 임신에 대해 계획하고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남편은 해외 사업부이고 나 역시 해외 홍보 업무를 맡고 있어서 둘 다 출장이 잦았다. 남편은 한 번 출장을 나가면 기본 한 달이었고, 나는 한두 달에 한 번꼴로 출장을 다녔다. 임신을 하는 순간 지속하기 어려운 업무를 맡고 있었기에 코앞으로 다가온 승진을 생각하며 임신 계획을 미뤄온 것도 사실이다.
만 35세 이상 여성이거나 결혼 후 1년 이내 임신이 되지 않은 부부는 자동으로 난임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초고위험 산모군에 속하는 나이에 진입하고 있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낳게 되더라도 ‘지금’이 맞는지 확신이 없을 뿐이었다.
일단 나는 생물학적 출산 주체로서의 능력치를 점검하기 위해 다소 떠밀리는 심정으로 난임 병원의 문을 두드렸다. 난임 검사 예약일에 맞춰 오후 연차를 내고 혼자 병원을 찾았다.
여러 종류의 검사 중에서도 나팔관 조영술은 고통스럽기로 악명이 높았다. 난임 검사와 진료, 시술까지의 여정이 길고도 멀었기에 매번 남편까지 연차를 내고 동행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소 통통한 체형의 간호사는 친절하지만 묘하게 긴장된 표정으로 나를 검사실로 안내했다.
검사실은 병원의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듯 노후화되어 있었고, 차가운 형광등 불빛이 몸과 마음의 온도까지 낮추는 듯했다.
나는 굴욕의자로 불리는 시술대에 두 다리를 벌리고 누웠다. 얇은 병원 가운 사이로 등과 엉덩이에 냉기가 스며들었다.
곧이어 목사님 같은 인상을 한 담당 의사가 들어와 내 다리 사이를 향해 대화를 시작했다.
“자, 금방 끝나니까요. 긴장 푸시고 몸에 힘 빼세요. 소독부터 하겠습니다.”
차가운 금속 소독기구가 삐그덕거리며 내 몸을 관통하자 마치 콧구멍을 삽으로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이 엄습하며 숨이 턱 막혔다. 아직 소독밖에 하지 않았는데도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이제 조영제 들어갑니다.”
뒤이어 뜨겁게 퍼지는 조영제가 내 몸 안을 훑고 올라오자, 이번에는 커다란 수박이 내 자궁과 나팔관에서 폭발하는 듯한 충격이 가해졌다.
“자, 이제 고개를 돌려서 옆 화면을 보세요. 양쪽 나팔관으로 조영제 들어가는 것 보이시나요?”
의사의 말소리가 물속처럼 먹먹하게 들렸다.
통증으로 몸을 뒤틀며 검사기 화면으로 고개를 돌리려 애쓰는 순간, 삐― 소리와 함께 눈앞이 깜깜해지며 기계음 아래로 가라앉듯 정신을 잃었다.
순간 귀 한쪽에서 작고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출산 후 예상 생존 기간, 19년
차갑고 기계적인 목소리였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하려는 순간, 다시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며 천장의 형광등 불빛이 나타났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숨 쉬어 보세요.”
당황한 얼굴로 내 손과 다리를 분주하게 주무르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보였다. 너무 고통이 심해서 공황 증상이 나타난 모양이었다. 내 공황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마주하는 상황에서 이따금씩 내 퓨즈를 끊어버리곤 했다.
시간이 지나 상태가 진정된 후, 나는 옷을 갈아입고 결과를 들으러 진료실로 들어갔다. 심장이 여전히 가쁘게 두근대고 있었다. 의사는 차트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자궁 모양이 베스트 컨디션은 아니지만 양쪽 나팔관 모두 문제없이 뚫려 있으며 임신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난소 나이 검사인 AMH 수치도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노산인 만큼 난자의 질과 자궁의 착상 여부가 관건이다.
화면 속 차트를 빼곡하게 채운 여러 페이지의 결과 지표들 사이로 순간 한 줄의 문장이 지나갔다.
Estimated Postpartum Survival Period: 19 Years
나는 숨을 멈추었다. 아까 들었던 목소리와 같은 의미의 문장.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순간, 의사가 마우스를 클릭하며 다음 페이지로 화면을 넘겼다.
“혹시 저기 방금…”
“네? 아, 다른 결과는 별로 특이사항 없습니다. 전반적으로 예측 가능한 수치입니다.”
의사는 친절하지만 다소 얼버무리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 생리 주기 때부터 시험관 시술 시작하실 거죠?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까요. 아까 검사받다가 많이 놀라셨을 텐데 수액 처방해 드릴 테니 좀 누워 있다 가세요.”
진료실을 나서기 전 차트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지만, 의사는 이미 화면에서 내 차트를 정리해 버린 뒤였다.
침대에 누워 수액을 맞으며 생각했다.
‘내년에 진급 연차인데… 시험관 시술을 바로 진행하면, 임신하고 출산하고 휴직까지…진급은 한참 미뤄지겠지.’
일단은 긍정적인 검사 결과에 안도해야 했지만, 오히려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아이를 낳을 것인지에 앞서, 지금의 커리어와 삶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를 먼저 결정해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임신은 내 선택의 권리 범주 안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 본 작품은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