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네가 남기고 간 자리에서
전학 첫날이었다.
봄 햇살이 교실 창가에 부서지고,
분필 냄새와 새 교복의 뻣뻣한 촉감이 섞여 있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어딘가 멀게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이 학교 공기가 낯설었다.
“이도윤입니다.”
내 목소리가 낯설게 울렸다.
그 말에 누군가 조용히 나를 봤다.
“거기 비었지? 도윤아, 저기 수아 옆에 앉아.”
담임이 말했다.
그 이름을 처음 들은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멈췄다.
수아.
짧고 단단한 이름.
봄 햇살 같은 이름이었다.
그 애는 창가 두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손끝으로 노트 가장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 찰나에, 공기가 달라졌다.
햇빛이 머리카락 끝을 따라 반짝였고,
그 눈은 평범하게 나를 봤는데
이상하게 그 평범함이 심장을 건드렸다.
그건 낯선 학교에서 처음 느낀
“아, 여기가 조금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옆자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책가방을 내리고 펜을 꺼냈다.
가방 지퍼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괜히 불편해서,
괜히 그 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녕.”
수아가 먼저 말했다.
나는 잠깐 멈칫하고는 조용히 대답했다.
“응.”
'안녕'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짧고 조용했는데,
그 목소리가 묘하게 따뜻했다.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칠판보다 옆자리의 그림자에 집중했다.
햇살에 반사된 연필심,
교복 소매 끝에 묻은 분필가루,
노트를 넘길 때 손끝이 잠시 멈추는 순간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전부 눈에 들어왔다.
그게 왜 그렇게 신기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이유 없이 좋았다.
쉬는 시간마다
나는 괜히 필통을 열었다 닫았다.
지우개를 떨어뜨려서 주워주고,
연필을 빌리고,
그 애가 나를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만들고 싶었다.
그 애는 별로 말이 없었다.
대답은 늘 짧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짧은 대답 속에 마음이 자꾸 걸렸다.
“응.”
“아니.”
“괜찮아.”
그 세 글자들로 하루를 버텼다.
하루는 수아가 나를 불렀다.
“도윤아.”
처음으로 이름을 부른 날이었다.
그 순간,
심장이 단 한 번 크게 뛰었다.
그냥 이름을 부른 건데,
그게 이렇게 설렐 줄은 몰랐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왜.”
“아니, 이거 네 펜이잖아.”
“아, 고마워.”
그 애가 건넨 펜이 손끝을 스쳤다.
그건 아주 짧았는데,
하루 종일 그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괜찮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눈이 가는 거라고.
근데 그 다음날,
그 애가 웃는 걸 봤을 때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았다.
햇빛에 비친 웃음이
그냥 웃음이 아니었다.
그건 누군가의 하루를 바꿔버릴 만큼 맑았다.
적어도, 내 하루는 그날부터 달라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이상하게 하루가 짧게 느껴졌다.
첫 교시부터 종이 울릴 때까지
그 애의 옆모습만으로 하루가 다 찼다.
손이 닿을 만큼 가까웠지만,
이상하게 닿으면 안 될 것 같은 거리였다.
밤에 누워 있으면
수아의 웃음이 자꾸 떠올랐다.
눈을 감으면
그날의 햇살이 그대로 스며들었다.
좋아한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좋아하지 않으려 애쓴 적은 많았다.
그게 내 하루의 절반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애가 내 옆에 앉아 있는 게
얼마나 짧은 기적이었는지.
매일 보던 평범한 시간이
언젠가 나에게 봄으로 남을 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