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초, 엄마에게 결혼에 대한 긴 편지를 보냈다. 바로 이전글의 내용이 진짜로 엄마에게 보낸 메일이었다.
3월까지 천천히 생각해보라는 메시지와 함께였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 갑작스럽게 한국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엄마가 편지를 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연락을 했더니 엄마는 편지를 읽었고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생각해보려 노력 중이라는 답을 해줬다. 그 답장을 받고 마음이 조금 놓였지만, 여러 걱정과 함께 한국으로 향했다.
한국에 도착해 엄마를 만났을 때 처음에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대화를 시작하게 됐다.
엄마는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분노와 실망, 그리고 자신의 삶이 허무하다고 느꼈던 감정을 솔직히 털어놨다. 나에게 실망했고, 내가 엄마 말을 잘 듣는 딸이 아니었다며, 내 행동들 때문에 창피했던 순간이 많았다고 울며 이야기했다. 특히, 내가 과거에 엄마가 원하는 사람과 선을 봐서 결혼하겠다고 했던 말이 배신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는 정말 변하지 않는 사람인가? 내가 엄마의 자랑거리일 때만 딸인 건가?"
엄마는 5~6년 전부터 교회를 다니며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는데, 그 모습이 때로는 위선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편지를 여러 번 읽으며 기도를 했다고 했다.
기도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했다고 한다. "내 딸이 결혼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할 때, 희생하고 양보할 자신이 있는지 물어봐라." 그리고 그런 마음이 있다면 반대하지 말자고 결심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순간 놀라서 엄마를 쳐다봤다. 정말 그럴 자신이 있냐고 묻길래 대답했다.
"사람 인생에 100% 확신은 없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예비 배우자와 함께 얘기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나가며 살 자신은 있다."
그 대답에 엄마는 마침내 "결혼해라" 라는 말을 했다.
엄마는 완전히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기도를 통해 이런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나중에 결혼을 후회하게 되더라도 "왜 더 말리지 않았냐"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엄마가 결혼을 허락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지금 엄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내 말을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본인의 행동들이 모두 나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또한, 엄마는 아빠에 대해 계속 부정적으로 말했던 이유를 털어놓았다.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동시에, 아빠가 어려운 시기에 엄마가 응원하고 믿어줬더라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 거라는 점도 인정했다. 엄마가 아빠의 좋은 점을 인정하고, 본인의 부족함도 인정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그럼에도, 엄마가 왜 나에게 실망했다는 말과 창피했던 순간을 굳이 언급했는지, 엄마가 나를 원하지 않았다는 거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본인은 기억이 안난다고 했다. 역시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엄마와의 근본적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가 내 결혼을 허락하고, 앞으로의 내 인생을 내가 알아서 하라는 말을 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큰 진전을 이뤘다.
여전히 얼떨떨한 마음이지만, 엄마와의 관계에서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는 점이 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앞으로 더 성숙해지면서 엄마와의 관계도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