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by Hazel



엄마,

이렇게 편지 쓰는 것도 진짜 오랜만이지. 또 한 해가 바뀌었네. 시간이 정말 빠르다. 엄마랑 얘기할 게 많아서, 전화보다는 이렇게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써봐.


남친과 결혼얘기 할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를 해야할지, 정말 쉽지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 이친구하고 결혼할꺼야.


엄마 지금 기가 막히고 또 화를 내겠지만 또 납득할수도없겠다고 하겠지만.

내가 무슨 말로 엄마를 설득하려고 해도 엄마가 다 납득할수 없고 용납할수없겠다고 하겠지만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부터 설명할게


1. 의식주 해결

엄마가 말한 의식주가 '생활을 꾸려갈 능력'이 아니라 '집을 가져오는 남자'라는 뜻이었던 것 같더라. 안타깝게도, 이 친구는 집이 없어. 하지만 우리가 1년 동안 돈을 모으면 꽤 괜찮은 집을 살 수 있어. 그리고 돈을 모은다는건 사실상 내가 버는 급여정도는 다 적금하고 그친구 급여로 내 차값 할부도 내고 1년동안 월세값도 내고 생활비도 내고 주말에 나가서 맛있는것도 사먹어도 여유가 있을정도는 된다는 거야. 나는 이런 게 의식주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해.


2. 그 친구의 직업

엄마 그랬지 그친구가 하는 일은 경제 좀만 어려워지면 힘들다고. 경제 어려워지면 무슨 일이든 어려워. 하지만 여기 특성상 기회도 많고, 지금도 일이 너무많아서 주말에도 출근하고 그래. 내가 지금회사에서 경력쌓고 그 이후에는 그때가서 결정할것처럼 이 친구도 여러가지 옵션들을 고민하면서 경력을 쌓고 있는 과정이야.


3. 그친구의 인성

나는 항상 엄마한테 궁금했던 점이 내가 남자친구를 만난다고 하면, 혹은 친구를 만난다고 하면 왜 한번도 그친구 성격은 어떤지, 나한테 잘해주는지, 왜 그친구를 좋아하게 됐는지는 궁금하지 않아 ?

오로지 엄마가 궁금한건 그친구의 직업, 그친구 부모의 재력 이런것 뿐이야? 내가 만나는 사람의 성격이 어떤지가 제일 중요한거 아니야?


나도 이 친구랑 사귀기전에 기도했어. 나 계속 좋은 사람 만나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했는데 얘 맞냐고. 근데 그친구는 내가 마음열기를 기다려줬어. 그리고 만나면서는 예전처럼 내멋대로 굴고 다 나한테 맞춰라 이렇게 행동하지 않게 됐어. 내 행동이나 말을 한번더 생각하게 되고. 상처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에 나도 놀랬어. 내가 그친구를 만나면서 얼마나 안정감이 생겼는지, 내 주변사람들도 느껴.


엄마는 내가 존경할 사람을 만나야한다고 하지만, 그건 엄마가 나이들어서 재혼했기 때문에 가능한 조건이야. 내 나이또래에서 존경할만 한 사람을 찾을수있을까? 나는 그게 존중이라고 생각해. 내가 상대방을 무시하는게 아니라 존중할수있는 사람. 엄마는 내가 벌써 그친구 무시한다고 했지만 그것도 엄마생각이지. 그친구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아. 그러면 엄마는 또 지금이야 좋아서 그런거다 하겠지만 이친구를 만난 사람도 나고 이친구의 성격이 어떤지도 아는 사람은 나잖아. 나는 이친구의 가족들도 만나봤고 이친구의 어릴때 얘기도 들었잖아. 그런걸 다 듣고 보고 겪으면서 내가 이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라는걸 꺠달은거야.


4. 그친구의 가족

엄마는 그친구네가 엄마가 원하던 사돈이 아니여서 자존심 상해서 화를 더 많이 낸거 같은데 지금 사시는 아파트도 자가고, 작은 건물도 갖고 계셔. 결혼해서 부모님 노후 걱정만 안 해도, 우리는 우리가 버는 돈을 우리를 위해 쓸 수 있으니까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


내가 결혼하기 싫었던 이유중에 하나도 내가 원하지 않는 가족의 확장이었잖아. 그게 겁도 나고 두려웠어. 나는 가족이 없잖아.엄마. 나는 그냥 엄마랑 미안한 마음에 나한테도 연락도 잘 하지않는 아빠가 따로따로 있을뿐이지. 그걸로 끝이었으니까 가족이 생기는 게 항상 두려웠어.


내가 처음 결혼얘기를 했을 때 그 친구의 가족 얘기를 했던건, 그친구한테는 정말 가족이라는 존재가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구나. 모두가 다 엄마가 원하는 의사,변호사 이런거 아니여도 각자 열심히 살면서 서로서로 도우면서 사는구나. 이런게 가족이구나. 이런게 가족이라면 나도 가족이 있으면 좋겠다.


사실 그동안 내 세상은 온통 엄마였어. 엄마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나는 항상 엄마한테 버림받을까봐 무서웠어. 엄마가 날 원해서 낳지 않았다는 거 알고있었으니까, 엄마 마음에 들고싶었고 잘해보고 싶어서 어릴떄 그렇게 거짓말도 하고, 엄마가 소개해주는 사람하고 결혼하겠다는 말도 했어. 그런말 해주면 엄마가 날 좋아해줬으니까. 그래서 엄마가 더 많이 실망하고 그런다는것도 알아. 그리고 항상 엄마 마음에 다 들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 난 항상 부족했어, 엄마의 지원에도 엄마의 기대만큼 해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게 나한텐 최선이었던거야. 그당시에는.


나는 엄마를 보면서 컸고, 그리고 엄마의 지원덕분에 돈 부족하지 않게 컸지. 그래서 자기 앞가림할수있고 부모님의 노후만 잘 되어있다면 그다음은 남편과 함께 벌면서 해내가는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경제적으로도 충분한 능력이 있고, 문제가 생기더라고 해결할 능력도 있어. 난 엄마 딸이잖아.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내안에 결핍이 많아. 엄마가 생각하는 나의 모든 불완전한 점들은 사실 내가 너무나도 불안과 결핍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래. 그리고 안타깝고 엄마한테 미안하게도 나의 그런 점들은 단순히 공부하고 지식을 쌓는다고 나아지는게 아니야. 그건 내 유년시절이 결핍했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사소한것에도 쉽게 흔들리고 스트레스 받고 흔들리니까 날 100%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고 날 지탱해줄 땅 같은 사람, 그래서 내가 그사람을 존중할수있는 사람이 내가 평생 함께 살아야할 사람이라고 믿어. 그래서 나는 이친구를 선택한거야. 이 친구가 나한테 그런 사람이 되어주니까.


나 이제 곧 마흔이야 엄마.

내가 어느 회사를 다닐지, 어느 부서에서 일할지, 어디에 살지, 누구를 만날지 이런거 이제 다 내가 결정해도 돼. 엄마가 내 결혼을 통해서 엄마가 원했던 거 말고, 진짜 내행복을 좀 생각해주면 좋겠어. 내가 행복한 삶이 진짜 엄마가 바라는 나의 행복이 아니야 ? 엄마가 원하는 사돈, 사위의 조건이 아니라고 해서 내가 불행할거라고 저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결혼은 사랑과 존중으로 이루어진 관계를 만드는거고, 나의 선택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거라고 생각해. 나는 이친구랑 여기서 살면서, 재밌고 능력 잘 발휘할수 있는 일하면서 돈도 모으고, 가끔 유럽 가까운곳으로 여행도 가고 엄마도 가끔 놀러오게 해서 같이 구경하고. 그렇게 살기를 바래.


엄마는 아빠와의 결혼을 원하지도, 나를 원하지도 않았으니까 계획도 없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게 돼서 힘들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나는 계획도 있고 이미 경제적으로도 어느정도 자립 되어 있어. 사람일 계획대로 되는거 아니라고 하겠지만 계획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문제가 생겼을때 대응하는건 다른문제잖아.


결혼은 사랑과 존중으로 이루어진 관계를 만드는거고, 나의 선택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거라고 생각해. 나는 이친구랑 여기서 살면서, 재밌고 능력 잘 발휘할수 있는 일하면서 돈도 모으고, 가끔 유럽 가까운곳으로 여행도 가고 엄마도 가끔 놀러오게 해서 같이 구경하고. 그렇게 살기를 바래.


우리는 3월말에서 4월초쯤 한국에 잠깐 들어갈 예정이야. 그때 엄마한테 인사도 하러 갈거고. 상견례도 하고 대부분의 준비를 마치려고 해. 6~8월 사이가 우리가 좀 한가한 시기라 그때 빨리 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당연히 엄마가 와줘서 축복해줄거라고 믿어. 하지만 어느정도는 엄마가 끝까지 반대해서 엄마가 오지 않을수도 있겠다라는 생각과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어.


내가 엄마를 배신했다거나, 나를 잘못키웠다더거나 그런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내가 이렇게 내 선택을 책임질 수 있는 어른으로 잘 키웠다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어.


3월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엄마도 무작정 반대하고 화내지만 말고 잘 생각해보고 기도해봐. 엄마가 정말로 온전히 나의 행복을 바라는건지, 엄마의 자랑거리가 되길 바라는건지. 만약 전자라면 나는 엄마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를 이해하고 내 삶을 축복해줄거라고 믿어.


엄마도 그렇겠지만 나도 엄마 원망하고 싫어하는 거 있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엄마를 너무 사랑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을 거야.

엄마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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