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상담을 통해 그동안 계속 엄마에게 고통받은 얘기, 엄마와의 문제에 대해서 주로 얘기를 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와 정서적 교감은 있었기에 나는 그래도 잘 버틸수있었던 것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권유로 아빠에 대해서 좀더 깊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엄마가 계속 말하던 무능력한 아빠, 책임감없는 아빠는 사실 무능력한 남편, 책임감없는 남편이었던거지, 나한테는 줄곧 좋은 아빠였다. 엄마의 생각이 배재된 오로지 나와 아빠와의 관계에 대해서만 얘기해보려고 한다.
전에도 썼듯이 난 아빠를 정말 좋아했다. 이제는 너무 시간이 흘러서 기억도 잘 나지않는 어린시절이지만, 그래도 난 막연하게 아빠품을 더 좋아했고 아빠랑 있는 시간을 더 좋아했다는걸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릴 때 아빠는 나한테 만능이었다. 아빠가 끓여준 김치찌개는 엄마가 해준것보다도 맛있었고(여전히), 내가 망가뜨린 이것저것들을 투닥투닥 고쳐줬었고, 차도에 지나가는 그 많은 차의 이름도 다 알고있었고, 네비가 없던 그시절에 지도도 안보고 경상도에서 서울까지 운전할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도 운전할때는 네비를 쓰긴하지만 그냥 길을 갈때는 네비를 키고 가지않고 그냥 길을 보면서 갈정도로 길눈이 좋은편이고 이 점은 확실히 아빠를 닮았다 (엄마는 길치)
또 배구경기, 축구경기도 직접 경기장에 데려가서 설명해주면서 보여줬고, 그 당시 그 지역 축구팀 광팬이었으며, 2002년 월드컵으로 K-리그 인기가 올라가기도 전부터 우리는 K-리그 팬이였다. 지금까지도 나는 월드컵도 혼자 다녀오고, 매주 EPL도 챙겨보는 축구광이다.
초등학교때는 주말에만 집에 왔기 때문에 주중에 엄마가 날 혼낼때는 거의 중재가 안되었지만 중고등학교땐 같이 살았는데 엄마가 공부나 다른걸로 혼낼때도 아빠가 있으면 폭력적으로 때리진 않았던거 같다. 또 혼내는 강도가 너무 심해지고 길어지면 항상 그만두라고 화를 내면서 결국 둘의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항상 엄마가 혼낼때 아빠도 빨리 화내고 둘이 싸우고 엄마가 나한테 화좀 그만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았던 것같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방학때마다 한국에 갈때면 엄마는 바빠서 첫날에만 맛있는 음식해주고 나머지는 그냥 내가 알아서 시간보내고 놀았는데 그때도 아빠가 항상 델고 나가서 맛있는 사먹고 그랬다. 또 남자친구 사귀면 내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아빠랑 얘기를 꽤 한편이었다. 엄마는 말해봐야 걔네 부모 뭐하시냐밖에 안물어보니까 아예 대화를 하고 싶지않았는데 아빠는 잘생겼냐 잘해주냐 이런걸 물어봐줬다. 그래서 아빠랑은 그런 얘기를 종종했고 심지어 군대간 남친 면회하러 가는데 아빠가 데려다준적도 있었다 ㅋㅋ
어릴 때 진짜 이상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내 오른쪽 가운데손가락에 보면 불로 지진듯한 상처가 있는데 기억은 잘 안나지만 그때 손에 뭔가 벌레 물린건지, 아니면 뭐가 난건지 여튼 그 염증난 거 같은거를 치료를 했어야했다. 근데 그 치료방법이 그냥 레이저같은걸로 지지는 거였다; 그때 엄마랑 아빠랑 다같이 병원을 갔었는데 진짜 아직도 그 병원에 대한 무서운 공포감이 남아있을정도로 무서웠다. 그리고 마취를 했을수도 있겠지만 여튼 내가 버젓히 깨어있는데 날 엎드리게 해서 손을 지지는거였다. 심지어 진짜 연기도 났고 살 타는 냄새도 났었다. 당연히 온몸을 발광하면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었는데 그걸 의사가 엄마랑 아빠한테 날 꽉 잡고 고정시키라고 했다. 근데 엄마는 그상황이 너무 웃기다면서 엄청 웃었다.
지금 그 개무서운 병원에 누워 살이 지져지고 있는것도 너무 어이가 없는데 엄마가 웃고 있는게 진짜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그에 반해 아빠는 내 다리를 꽉 잡으면서 괜찮다고 금방끝난다면서 날 달래고 웃는 엄마한테 뭐라뭐라 핀잔을 줬다.
물론 그 상황 자체가 시트콤 같아서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맞는데, 그 상황에서 그렇게 웃는 엄마가 진짜 싸패같았다. 상대적으로 아픈 나를 달래주고 엄마한테 핀잔을 주는 아빠만이 내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이 된 후에 정말 엄마랑 너무 크게 싸워서(혼나서) 태어나서 딱 한번 가출한적있었는데 그때도 사실 말이 가출이지 걍 집에서 안잤을뿐이고 그 담날 학교도 가고 학원도 갔다. 엄마가 폰을 뺏어가는 바람에 연락두절이 된거고 그때 집에 가면 엄마가 진짜 날 죽일꺼같아서 집에 안갔는데, 담날 학원으로 아빠가 데릴러왔다. 내가 집에 안들어와서 엄마도 많이 놀랬다면서 잘 풀자고 하면서 고기집가서 셋이 고기 먹고 집에 들어간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아빠가 나 데릴러 왔을때, 집에 안올까봐, 바로 나쁜길로 빠졌을까봐 무서웠다고 했다. 반면에 엄마는 본인의 행동이 좀 과했다는 말로 (사과도없이) 얼렁뚱땅 넘어갔고 그 학기가 끝나고 나는 유학을 갔다.
내 어린시절 좋았던, 재밌던 순간에는 아빠가 있었다. 물론 엄마도 있었지만. 아빠랑은 둘이서도 재밌고 좋았지만 엄마랑은 둘이서 좋고 재밌던 순간은 많지 않다. 있을수도 있겠지만 엄마한테 받은 상처때문인지 그런걸 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엄마랑 단둘이 있는 시간은 나한테 항상 긴장상태였고 아빠랑 있는 시간이 진짜 여유가 있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아빠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아빠로부터 깊은 사랑과 변함없는 지지를 받았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나를 보호해주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아빠 덕분에 엄마의 억압과 폭력에도 크게 삐뚤어지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렇게 다정하고 이해해주고 가정적인 아빠를 보면서 자란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은건 당연한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