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기쓰는사람 Jun 10. 2022

평생 외로웠던 사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한국 나이로 17살, 만으로 15살. 애매하게 어린 나이에 뉴질랜드에 유학을 와서 살았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부터 친구 사귀는 걸 잘 하고, 좋아하고, 늘 친구들과 어울려 다녀서 '쟤는 친구 없이 못 산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었는데, 그 좋은 친구들을 다 두고 울며 불며 비행기 안에서 눈이 퉁퉁 부은채로 유학을 왔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뉴질랜드에 와서 살면서 현지에서도 친구들을 어영부영 잘 만들기는 했지만, 친해질만 하면 떠나고, 방학때면 다들 자기 나라 다녀오기 바쁜 유학생들의 나라에서 외로움은 습관으로 자리잡았다.


그렇게 지내다가 대학교를 가기 위해 지역이동, 또 친구 사귀면서 적응할 만 하면 또 첫 직장을 잡기 위한 지역이동, 이직을 위한 지역이동.. 그러다 보니 늘 함께 다니는 세트의 사람 하나 붙여놓기가 쉽지 않았고, 늘 외로움이 내 안에 자리잡혀 있었다. '당연하게 함께 있을 사람 한 명만 마련해 달라구요!' 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늘 이루어지지 않고 멀리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과 함께있어도 늘 나는 혼자라고 느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친한 친구를 새로 사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무리가 지어져 있는 그룹에 끼어들려고 노력했지만 이방인이라는 느낌 또는 민폐가 된다는 느낌이 많았고. 친해진 친구들 마저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나 둘 씩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뤄 떠나가면 더욱 더 혼자였다.


한 때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너무 보고싶은데 같이 볼 사람이 없어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 긁어모아서

억지로 영화를 봤었다. "같이 볼래?" 물었을 때 보지 않겠다는 대답이 들리면 거절감이 심하게 드는데도 그걸 감수하면서도 추진했다.

영화 보는 두시간만 즐겁고 그 전후로 민망하고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넷플릭스가 활성화가 안 되어서 그랬을까, 지금은 영화관도 잘 안 가게 되는데 그 때는 왜 그렇게 영화관 가는 게 좋았을까.


영화를 마음껏 보고 싶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 한국 놀러가게 되면 영화 보러 갈 생각에 미리부터 개봉영화 스캔 쫙 해놓고 또 혼영하러 갈 자신은 없어서 주저하다가 못 보고 오기도 하고.. 뭐 그랬다.


영화 자체보다도 영화관에 가고싶을 때 누군가와 함께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그 상태를 외롭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마음의 불안정함이 영화로 표출이 되었던 것 같다.

외로움을 누군가 제발 도와주었으면 싶기도 했지만, 외로움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고 외로운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아서 안간힘을 썼다.

이제는 예전일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오는 추억이지만 너무 추웠고,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다.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아가 2:11)

친구가 좋아했던 성경 구절. 나도 한 번씩 생각난다.

친구가 개인적인 광야에서 점점 회복 될 때 받았던 말씀 구절인데

과연 나에게도 그런 시즌이 오기나 할까 했는데, 언제나처럼 참 더디지만 결국은 온 것 같아서 감사하다.


이제는 굳이 약속을 잡아서 따로 만나지 않아도 '당연하게 함께 할 수 있는' 남편이 곁에 있다. 



작가의 이전글 뉴질랜드에서 임신 20주차, 젠더리빌 파티를 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