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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사람 Apr 08. 2022

뉴질랜드에서 임신 20주차, 젠더리빌 파티를 하다

뉴질랜드 임신일기 #005 - 이제는 베이비샤워가 아니라 젠더리빌이 대세

초음파 대기실

뉴질랜드에서는 임신 20주차가 되면, 정밀 초음파(Anatomy Scan)를 하고, 이 때 아기의 성별을 알게된다.


뉴질랜드 사람들 중, 아기의 성별을 끝까지 모르고 싶어하는 경우도 왕왕 있어서 을 때까지 서프라이즈로 알려주지 말라는 커플들도 있다.


수년 전 까지는 출산 전 베이비 샤워(Baby Shower)가 유행이었다면, 요새는 그 유행이 한 풀 꺾이고, 젠더리빌(Gender Reveal) 파티가 떠오르고 있는 듯 하다.

젠더리빌은 말 그대로, 아기의 성별을 그 자리에서 공개하는 서프라이즈 파티이다.


뉴질랜드 초음파 선생님들은 비밀유지 전문가시고, 요새는 젠더리빌 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아서

초음파실에 들어가서 성별을 직접 알려주지 말고 적어서 봉투에 넣어달라고 하면 협조를 잘 해주신다.

산모의 자궁상태는 물론, 아기의 발달 상태를 정밀하게 검사해야 하다보니 임산부도 계속 초음파 화면을 보지만

성별을 알 수 있을만한 초음파를 보게 될 때는 잠시 시선을 돌리라고 주의를 준다.


초음파가 끝나고, 미리 준비해 간 카드에 성별을 적어 주신 후, 이렇게 봉투를 봉해주셨다. 

봉투 안에는 아기의 성별을 볼 수 있는 초음파 사진을 손수 잘라서 넣어주셨다.


바쁜 와중에 이런 부탁 들어주기 귀찮을 수도 있는데, 뉴질랜드는 참 임산부과 아기들에게 친절한 나라임은 물론, 각 가정마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도와주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좋은 나라다.


원래는 가장 친한 친구들 가족들을 초대하고, 친구 한명에게 이 봉투를 주고 젠더리빌 서프라이즈 풍선을 준비해 달라고 했었는데.. 갑작스럽게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는 추세여서 최대한 서로 만남을 줄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남편과 둘이서 젠더리빌 파티를 준비했다.


어떤 남편들은 이런 이벤트 하는거 너무 귀찮아 한다던데 이런저런 아이디어 내고 더 예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자기가 더 열심히 하는 우리 남편은 정말.. 천사다 천사


짜잔! 부엌의 흰벽과, 갈색 식탁에 흰 식탁보와 함께 잘 어우러진 우리들만의 파티상이 꾸려졌다.


가운데에 있는 검정 풍선을 터트리면 하늘색 또는 핑크색의 티슈가 흩날리게 된다.

풍선도 우리 부부가 직접 사러 갔는데, 풍선가게에서 무표정으로 기계처럼 헬륨을 주입하고 있던 직원들이

우리에게 과연 협조를 잘 해줄까 약간 걱정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별이 적혀 있는 봉투를 내밀고 우리가 젠더리빌 할 건데, 우리 몰래 풍선을 만들어 달라고 하니

씨익 웃으면서, 밖에 나가서 5분 있다가 들어오라고 한다.

다시 돌아가니 예쁜 풍선이 잘 만들어져 있고, 센스 넘치게 봉투는 다시 잘 봉함이 되어있다. 

임신 6주차에 소식을 알리자마자 친구가 선물해줬던 젤리캣 애착인형에 마스크를 씌웠다.

코로나 시대에 태어난 아기니까.. 그런 의미루다가..


테이블을 꾸리고, 과일 및 스낵 플래터를 만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풍선 터트릴 준비를 했다.

생각보다.. 긴장이 많이 되었다!


친구들을 초대할 수 없지만 의견을 받고 싶어서 29명의 지인들에게 아기 성별 투표를 했고,

17명이 딸, 12명이 아들일것 같다고 투표했다.


평생 남을 기억이기 때문에 삼각대로 잘 설치를 해 두고, 자리를 바꿔가며 리허설을 해 본 후 풍선을 터트렸다!


하나! 둘! 셋! 펑!

하늘색 티슈가 온 집안을 흩날렸다!

우리 아기는 아들이라는 뜻이었다!


말로는 이미 성별은 정해진거니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 안한다고 해놓고 내심 딸을 원했기도 했는데, 

아들이라고 하니 또 그것도 좋다. 남편은 진심 성별이 상관없었어서 정말 기뻐하는 것 같았다.


우리집 큰 아들과 작은 아들 사이에서 나는 여왕처럼 살아야겠다. 

그리고 수영장 가면 아빠가 아들 데리고 가서 씻기면 되니까 그것도 참 좋다 ^^


딸이면 친구처럼 데이트하고.. 아들은 든든하고.. 뭐 이런 생각 했었는데 그게 다 부모 욕심이지 싶다.

딸도 꼭 나랑 붙어있어야 할 것은 아니고, 아들이어도 든든한 아이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그냥 하나의 인격체임을 잊지 말고 내가 기대하는 상을 주입시키지 말고 독립적으로 잘 키울 수 있어야 하겠다..!

예전에 내가 못된 시어머니 될까봐 무섭다고 했더니 아는 언니가 부부사이가 좋으면 아들한테 집착할 일이 없다고 그랬는데 맞는 것 같다.

나는 우리 남편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우리 아들은 진짜 그 아들 자신임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성별을 안다고 해서 하늘색 옷만 살 것은 아니지만 이제 너의 이름을 더 진지하게 지어볼 수 있어서 좋다!

우리 아들 엄마 아빠에게 와 주어서 정말 고맙고, 우리 함께 한 팀이 되어서 즐겁게 지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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