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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만 보고 있다.

(3)

by Hazelle

강원도는 강원도다.

아까까지 쌀쌀하기만 하더니 어느새 제법 센 바람을 타고서 떨어지는 눈들이 테크노 댄스를 추고 있다.


“빙어낚시하다가 빙어 되는 거 아냐?”


“걱정 마, 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 죽어. 또한 허무하게 쉽게 죽을 수도 있고…”


유독 장 선생은 의사라 그런가 죽음에 관련해서 초지일관 허망하다.


“오호, 역시 행님도 응급실 근무할 때 그런 초자연적인 것을 좀 보셨는갑습니다. 제 친구 놈도 응급실 뺑뺑이 돌더니 진짜 신기한 일 많다고 하데예. 분명히 죽을 각이었는데 멀쩡하게 살아나는 사람들도 있다고…”


“반대인 경우도 많고… 그래서 의사를 오래 할수록 오히려 사주팔자, 정해진 운명, 수명 이런 거 믿게 된다지…”


“오… 그런 것도 믿습니꺼? 오데 그라믄 제가 관상 좀 봐드릴까예?”


“볼 줄 알아요? 한 번 읊어봐요 그럼.”


엉터리 같은 강일이 오빠의 말에 의외로 호응을 해주는 의사 선생.


“에… 또, 보면 눈썹이 아주 진~~한 것이 남성적인 매력이 넘치셔서 밤의 황제라는 느낌이 팍팍 오고요, 콧날이 아주 서늘한 것이 본인 한 번 마음먹은 것은 잘 안 꺾겠어요. 눈매가 은근히 길고 끝이 아주 살아 있어 이성한테 매력 만점이고요, 다만 인중이 좀 약해서 장수하는 것에만 신경을 좀 쓰시면 되겠습니다.”


“…… 흠… 은근히 엉터리 아니네? 잘 보시는데? 그나저나 왜 관상 읊을 때는 사투리 안 쓰남요?”


“아… 나름 매끄럽지예? 뭔가 객관적인 지식이나 사실을 전달할 때는 표준어 사용을 해야겠다는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더. 좀 더 신빙성 있는 정보 전달을 위하야!”


“푸하하하, 재미있는 오빠야네. 볼수록…”


“크하하하, 알아봐 주시네예. 저 기집애는 몇 년을 봐도 제 매력을 못 찾던데 말이죠. 입매가 나름 이성한테 매력적인 관상인데 저기 김 대리는 눈이 나빠서 그걸 못 보는 모양이에요.”


“참 흐뭇하네요. 우리 김 대리… 만화방 후배한테도 사랑받고, 강일이 오빠야한테도 은근히 점 찍혀 있고… 가까운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것은 참 좋은 사람이라는 이야기니까… 내가 여복도 좀 있나 보오?”


“암만요, 있지요, 있다마다요. 저 여인이 그 복에 해당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강일이 오빠는 떠나기 전 출출하면 먹으려고 샀던 간식 보따리에서 꺼내 던진 핫바에 명중되어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장 선생은 경상도 인간들의 유머 코드에 딱 맞는 모양 인제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은 꼴랑 세 명인데 한 열댓 명 탄 것처럼 시끄러웠다.


택시 매니아 장 선생은 알고 보니 전국 곳곳 모르는 곳이 없는 모양 네비게이션도 없이 길을 잘도 찾는가 싶더니 여느 시골집들과는 영 다르게 생긴, 어디 유럽 시골에서나 만남직한 작고 귀여운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아는 민박집인교?”


누구 아는 사람네거나 하겠지, 생긴 것만 딱 봐도 민박집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뜰리에 풍의 집 앞에서 고향 오빠가 나를 또 부끄럽게 한다.


“하하, 뭐 민박집이나 마찬가지지. 우리 고모가 가끔 그림을 그리러 오는 작업실. 지금은 절대 오실 리가 없으니까 우리가 마음 놓고 써도 되지.”


“왜 절대 오실 일이 없어?”


“… 다른 길을 떠나셨어.”


하도 무미건조하고 덤덤하게 이야기해서 외국을 나가신 거겠지 했다.


“정말 멀쩡했었는데… 운명은 아니, 유전자의 저주는 누구도 빠져나가기 힘들어.”


“어느 나라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강일이 오빠의 성급한 질문과 장 선생의 다음 문장이 맞물렸다.


“아…”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은 생각보다 살다 보면 자주도 마주친다.


“할 말 없지? 더 묻기도 그렇고… 그러니까 그냥 여긴 우리 고모네 작업실이라고 알면 되겠어. 하하. 자, 이제 짐을 좀 풀고… 방이 총 세 개니까 마음에 드는 방을 하나씩 … 아니다, 그래도 우리 김 대리가 우리 고모방을 써야지. 여자니까.”


그 방은 묘했다.

분명 아무도 살지 않은 지 오래인 것이 피부로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정돈됨이 그랬고, 대체 전 주인의 나이가 어느 정도였을까 가늠되지 않는 것도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톤이 무척 다운된 인테리어와 가구들, 그런데 그 옆의 장식장에는 아기용 배넷 모자며 앙증맞은 파스텔톤의 신발들이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 중세 영화에서 본 듯한 스타일의 안락의자가 코너마다 세 개나 있는데도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서성이는 참에 장 선생이 열린 문 틈 사이로 조용히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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