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이즐넛커피 Sep 08. 2024

아버지의 어깨

인생이 몸에 남긴 흔적

  올여름에 우리 모두를 괴롭히던 불볕더위는 물러가고 있다. 곧 또 추운 겨울이 오면서 산들도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사진은 올해 3월 부모님을 모시고 강원도 삼척을 향해가며  보였던 풍경이다.  


  평소 나는 부모님과 잘 연락하지는 않는다. 부끄러운 부분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고 믿으며 오히려 가끔씩 연락이 닿으면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되려 놀라기도 한다. 자주 뵙지도 못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 1달 터울의 부모님 생신을 맞아  멀리 해외는 못 가더라도  같이 여행을 한번 가야겠다는 생각에  오래전부터 삼척에 숙소를 잡아놓고 기다렸던 여행이다. 차를 타고 서울에서 삼척까지 가는 건 짧은 거리는 아니다. 젊은 사람도 당일치기는 좀 무리인데 이미 연세가 있을 만큼 있으신 부모님들은 짧게 갔다 올 수 없어서 길게도 못 가지만 2박이라는 계획을 잡고 출발했다.  마음 같아선 일평생 고생하시고 즐기지 못하신 부모님들께 해외여행이라도 보내드리고 싶지만 금전적인 부분보다 다른 게 더 고민이다.  가족끼리 여행을 다 같이 갔던 것은  내가 어렸을 때 동해의 간이 해수욕장에 한번 간 것이 전부이고 아버지도 출장으로 다녀오신 것 말고는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이라고는 가보신적이 없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지금 여행을 보내드린다고 해도 가시려고 하지도 않지만 신경 쓸 것이 한둘이 아니다. 적어도 부모님들 자신이 내키지가 않는 것인지  심지어 이번 삼척으로의 여행도 오랜 고민 끝에 확정되었다.



숙소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직 겨울 끝자락이어서인지  사람도 많지 않고 야외수영장을 즐길 순 없지만 숙소 바로 앞의 탁 트인 바닷가를 보니 가슴이 더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식사도 마음에 들고 실내수영장에서  아이들이나 탈만한 짧은 워터슬라이드를  그나마 등 떠밀어 어머니도 한번 타보셨다.


 정말 오래간만에 나들이를 하시며 삼척 근처 해상케이블카도 즐기며 이것저것 안 하던 것도 해보시고 맛있는 것도 드시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케이블카 탑승장이 있는 한 어촌마을도 조용하니 좋다.  나는 사진 찍는데 노력을 안 들이는 편인데 평생 사진을 업으로 하셨던 아버지는 핸드폰 카메라로  툭툭 찍으시면서 저렇게 또렷하고 멋있는 갈매기 사진을 찍으셨다. 역시 보통 솜씨가 아니다.


 여행하는 동안도 아버지랑 살갑게 찍은 사진 하나 없었다. 표현하진 않았지만  그리고 눈물이  흐르지 않았지만 흘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버지의 모습이 한없이 짠하고 고마운 순간은 사실 그 수영장의 탈의실에서였다.

  가족 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아버지와 샤워를 마치고 탈의실로 돌아가며  아버지의 맨몸을 뒤에서 보게 되었다.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목욕탕을 같이 다니거나 한 것도 아니었으니 거의 처음 보는 느낌이었다. 평소 본새로 짐작은 했지만 등허리가 많이 굽어있으셨다. 어깨는 한쪽으로 내려가게 기울어져있다. 구부정한 자세만 보면 걸음걸이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분명 운동을 거의 매일 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자세는 펴지지 않나 보다.


친가는 모두 시골에 있고 홀로 맨 몸으로 상경해서  공부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젊은 시절 바로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야 했던 아버지였다.  누가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혼자 자취를 해가며 대학 공부도 못하셨다.  사진일을 하시면서 낮밤 없이  일하셨다.  지금도 가끔씩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은 아버지가 얼마나 집에 안 들어오셨는지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오늘은 아빠 들어와?"가 맨날 하는 소리였다는 것이다. 기억을 잘 못할 정도의 어린 나이가 아니라 초등학교 고학년 이후에도 내가 잠들기 전에 들어오시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주말이 안 계실 때도 많고  어쩌다 쉬는 날이면 밀린 잠을 주무시다가 간신히 하루도 안되게 쉬시곤 했다.  집에 계실 때도 거의 누워서 졸거나 주무시거나 하곤 했는데  한 때는 나는 어릴 때 아버지와의 추억이  없는 게 괜히 밉게 느껴지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막연히 항상 일이 바쁘고 힘드셔서 그러려니 하는 부분이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대화로 한층 더 깊게 이해가 되어버렸다.



나는 워낙 몸을 쓰는 일을 좀 하다 보니 반나절 서있기만 해도  이미 하루는 지난 것처럼 체력이 내려가는 느낌이다. 특히 스트레스와 체력을 요하는 일이다 보니 온몸에 근육통을 달고 살고  어떤 때는 어깨와 등에서부터 올라오는 근육통이 두통까지 심하게 만들어서 주말 단 하루 휴식도 꿈쩍 못하고 가만히 쉬다가 간신히 회복하기도 한다.  그걸 식사하면서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가 내가 그랬지라고 하시는데  바로 찌릿하게 강한 느낌이 왔다. 그래 바로 아버지가 수십 년을 느꼈을 고통이 이거였구나 하는 깊은 공감이 왔다.  오히려 밤낮없이 일하시고 잠도 서너 시간 겨우 자고 나가신 일도 많았으니 더 심했으리라.  상업사진을 하셨는데 흔히 광고사진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렌즈만도 수백만 원에 이르는 장비를 사용하고 그래서 장비들이 커다란 철재가방에  들어있다. 무게도 만만치 않고  촬영에 동반되는 조명기기나 소품들까지 움직이려면 이삿짐을 옮기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밤이고 새벽이고  공장이든 백화점이든  영업하지 않거나 고객이 요구하는 시간에 맞춰 작업이 이루어진다.  한 장의 좋은 사진을 건지기 위해 수백 장  촬영은 기본이다. 나도 일 할 때 꽤나 꼼꼼하게 하려는 편인데 아버지는 성격이 결국 더 하면 더했지 대충 하는 법은 절대 없는 분이라 얼마나 일 할 때 열심히 하실지 상상이 간다.  젊은 시절 직접 몸으로 부딪혀 현장에서 배운 솜씨가 뛰어나 한 때는 대학 교수 자리까지 제안받은 적도 있었지만 본인 가방끈이 짧은 탓에  가르치는 일은 부담스럽다고 거절한 적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좋은 자리도 마다하고  수입이 좋지도  않고 더 힘든 일에 매달려 한평생을 달리신 거다. 그렇게 힘들게 일하시면서도 월급이 좋지 않아 어릴 때부터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외식도 일 년에 손에 꼽을 정도로만 했던 것 같다. 이제는 나이가 너무 드셔서 일만 놓지 않는 느낌으로  미련 때문인지 실제 일은 없어도 빈 사무실을 지키러 매일을 나가신다.  



아버지의 축 처진 어깨를 보면서 외로움과 삶의 무게를 느낀다.  어릴 때 엄하시고 항상 고집 있으셔서 아버지 하고는 대화를 많이 하지도 연락을 잘 주고받지도 않는 살갑지 않은 자식이지만  누가 물어보면 난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아빠처럼 안 살 거다라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 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나 또한 그러는 것 같다.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지금은 그저 다른 것 생각할 거 없이 내 가족과 나를 위해 지금 하는 일에만 매달려 그냥 그렇게 달리는  과정인 듯하다. 시간이 흘러도 결국 삶의 무게가 내 어깨도 저렇게 만들 것 같다는 확신이 들고 있다. 슬프지는 않다. 그저 아버지처럼  열심히 사는 것만으로 나중에 저렇게 될 수 있다면 만족할 거 같다. 그게 아버지가 말로 가르쳐주신 것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신 가르침인 것 같다.


"아버지 조금만 더 건강하세요. 맛있는 거도 많이 사드리고 더 좋은 곳도 보내드릴게요. 평생 자신뿐 아니라 가족을 위한 희생에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 2024.09  3월 가족여행을 회상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렴 어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