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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즐넛커피 Oct 16. 2024

또 국밥이나 한 그릇 먹는다

난임 그 힘들고 고독한 길 위에

Photo by Cody Chan on Unsplash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잔뜩 흐린 날씨에 약간 안개가 끼었는지 어둑하고 쌀쌀한 느낌이었다. 오늘 일어날 일에 대한 느낌을 미리 느끼게 해주는 걸까. 오늘은 오전에만 일을 하면 일찍 마치는 날이다. 평소 같으면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설 텐데 오늘 있을 일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원인불명의 난임 부부로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을 하다가 결국 시험관을 시도하게 되었다. 과정에서 보통 다른 사람들이 겪는 약의 심한 부작용은 없었다. 난임여성이 시험관 전에 난자 채취 전후 과정으로 주사나 경구를 이용한 호르몬제을 투여하면 난소과자극증후군 같이 약에 의한 불편한 부작용들이 생길 수 있지만 내 아내는 다행히도 그 과정마저 큰 무리 없이 지나갔었다. 어찌 보면 이것마저도 큰 복이라도 생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끝나지 않은 여정은 앞으로도 예상할 수 없는 많은 험난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난임을 극복하는 과정을 다른 블로그 등으로 보면서 참 많이 놀랐다. 처음에는 우리가 난임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다음에는 이유가 없는데 난임인 것에 또 놀라고 많은 글들을 보면서 우리와 같이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실에 또 놀라게 된다. 전부다 남의 일처럼만 생각되던 것들이 직접 겪으니 당연히 또 다르게 다가오면서 그 중간에 서있는 우리 부부도 항상 마음을 다잡으며 묵묵히 이 길을 가고 있다. 많은 연예인들의 시험관 도전기들이 티브이나 SNS 등을 통해 접할 수 있어서 그나마 요새는 그러한 과정들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난임부부들이 겪는 과정은 마치 깊은 산의 산중턱에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이다.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고 어딘가로는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야 할지도, 그 끝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길도 가본 사람만이 그때의 느낌을 알 수 있듯 해보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이것이 고독하고 외롭고 힘든 길인지 공감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시험관 1차를 시도하고 배아 이식 후에 경과를 보던 중이었다. 많은 임신을 준비하는 여자분들이 임신테스트기를 갖고 집에서 임신여부를 기대하며 일정 시기가 되면 스스로 검사를 하고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미리 예견되었다. 임신테스트기에서 반응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너무도 희미하고 날이 지나도 진하기가 크게 차이 나지 않을 정도로 변화가 없던 것이다. 배아의 착상이 늦어 늦게 발달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경우는 적은 빈도에서 정상 임신까지 갈 수 있을 것이고, 일반적으로는 비정상 임신인 경우에 해당된다. 착상이 잘 되지 않았거나 불완전하고 안정적이지 않은 착상을 하게 되면 테스트기에서 반응이 약하게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식하고 약 10일 후에 하는 혈중의 hcg 농도 검사이다. 우리는 낮은 수치가 나왔고 2차 검사에서도 수치의 증가가 예상에 많이 못 미쳤다. 병원에서는 수치 증가가 미미하니 쓰던 약들을 중단하도록 연락을 받았다. 비정상 임신이 유지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화학적 유산으로 가는 수순인 것이다. 약을 중단하고 생리를 시작하는 것 같아 이렇게 시험관 1차는 종결되는 듯했다. 하지만 또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길로 가고 있었다.


3차와 4차 피검사에서 수치는 계속 증가되고 있었다. 아내는 양이 많지 않지만 하혈을 하고 있고 정상적인 과정보다는 수치 증가 정도가 약 1주일가량 늦은셈이다. 아무리 늦게 착상을 한다고 해도 이렇게 늦게 올라가지 않을 텐데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일단 수치가 올라가고 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는 병원의 결정에 시간을 보냈다. 얼마 있다 아내가 또 스스로 임신테스트기에 손을 대었다. 만약 수치가 다시 내려간다면 표시선이 다시 흐려져야 하고 차라리 화학적 유산이 몸에도 제일 부담 없이 현재 상태를 종결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임신테스트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한 두 줄이 보였다. 임신을 기대하고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보면 기뻐서 날뛰어야 되는데 우리는 이미 그게 아니었다. 정상임신이 아닌 상태이고 어딘가 임신상태가 유지되고 있지만 비정상임신이기에 자연스럽게 어느 한순간에 화학적 유산처럼 발달하고 있는 배아가 자연도태 되기를 바라야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다.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자궁 외 임신과 고사난자라고 하는 상태이다.  자궁 안에서 배아가 잘 자리를 잡아 발달하는 정상임신과 달리 자궁 외 임신은 말 그대로 자궁이 아닌 다른 곳에 착상을 해서 자라는 것을 말한다. 위치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임신이 유지도 되지 않을뿐더러 잘못하면 수술을 하거나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일을 하고 있는데 혼자 병원에 가서 초음파 체크를 했던 아내로부터 문자가 와있었다. 아기집이 보이지 않아 자궁 외 임신으로 약물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문자이다. 문자를 보는 순간 털썩 주저앉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될 뻔했다. 나는 보통 무언가를 크게 기대하고 엄청 긴장하거나 하진 않는다. 갑자기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바로 좌절하거나 크게 슬픈 표현을 하거나 티를 내지도 않는 편이다. 가뜩이나 일을 하던 중이라 쉴 수도 없었는데 아내에게 받은 문장이 내 온몸의 힘을 빼앗아갔다. 일단 최대한 침착해야 하고 평정심을 유지해야 했다. 왜냐하면 나에게 검사를 받는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이 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함을 알면서도 그게 힘들었지만 일이 끝나는 시간까지 최대한 일에만 몰두하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다시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나 햄야채볶음밥 먹었어~~"  너무나도 덤덤하고 평소 같은 문자에 (아내는 모르겠지만) 울컥했다. 그냥 '나 괜찮아'를 저렇게 써서 보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답문을 보내며 문자를 마치고 건물 밖을 나오니 출근때와 다르게 맑은 하늘이 보였다. 야속했다. 밥부터 먹어야 하는데 식욕도 없고 무얼 먼저 해야 할지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되뇌었다. '정신 차리자. 어차피 한 순간일 뿐.', '내가 기운을 내야 한다.'라는 생각들을 계속했다. 분명히 아내는 더 힘들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기 때문에 걱정이 됐다. 앞으로 상황에 따라 항암제를 이용해서 유산을 유도하거나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아직도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다른 글들을 보면 고생하는 많은 아내들의 생각, 느낌, 상황을 알 수 있는 글들이 있지만 남편의 생각이나 입장은 잘 모를 것이다. 분명 무언가를 같이 하고는 있지만 제일 힘든 건 아내이고 옆에서 지켜보는 것 말고는 크게 도와줄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일이 여유가 있거나 유연하게 근무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을 가도 항상 아내가 혼자 가야 한다. 그러면 진료하면서 상담할 때 듣는 좋지 않은 얘기들을 혼자서 듣고 감당하는 꼴인데 그걸 같이 못해 주는 게 미안하다. 어쩔 수 없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올 때마다 직접 들어도 불편한 말들을 아내의 입으로 전달받아 듣는 것도 참 좋지 않다. 앞으로의 치료과정도 그렇게 보낼 텐데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리고 남자는 힘들고 슬퍼도 잘 내색하지도 않고 어디 하소연하기도 쉽지 않다. 그저 받아주는 것도 때로는 힘들 때가 있긴 하다. 그래도 그냥 내가 지금 해주는 위로의 말은 그저 아내의 몸에 가장 부담이 없고 후유증 없는 경과를 갈 수 있도록 치료 빨리 받고 앞으로 계속 몸 관리에만 신경 쓰자고 하는 것뿐이다.



  슬프고 아프다. 입맛이 없지만 평소 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점심은 순대국밥을 먹었다. 어찌 보면 여러 가지 힘든 시절 중에 수련받으며 보냈던 긴 시간들이 꽤나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때마다 병원 근처에 있는 국밥집을 찾았던 거 같다. 그냥 빠르고 편하게 한 끼 해결할 수도 있고 뜨끈하고 고기가 들어간 국밥을 한 그릇 먹고 나면 아무리 기운이 없어도 정신이 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무슨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먹으면서 다짐한다. '그래 평소같이 하자.', '내가 강해져야 한다.', '내가 덤덤해야지.'라는 생각들을 계속 반복한다. 그래야 힘든 아내가 나에게 기댈 수 있을 것이다.



          - 2024.10 난임극복의 한 과정 속에서



  "일상들을 적는 이곳에 보통 재미있거나 희망적인 글을 적고 싶어 이런 글을 적기 싫었지만 어디 하소연할 곳이 마땅치 않아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 보다 더 어려운 이유로 난임의 상태이신 분들도 있을 것이고 이미 시험관도 여러 번 했다든지 그 과정 속에서 화학적 유산, 계류유산 등등 각종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많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모두 응원합니다. 그리고 건강하십시오. 모든 임신을 준비하는 부부들에게 행복한 일만 있길 바랍니다."

(이 글은 혹시 언젠가 지워질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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