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김혜남/ 메이븐
★★★★
온라인 서점 주간 베스트를 둘러보던 중 3대 온라인 서점의 랭킹 최상위권에 위치한 책이라 읽게 된 책이다.
에세이류는 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해서 읽지 않는 편이다. 결국 나의 힘듦을 위로받고 싶어서라는 동기가 컸고 읽고 나서 눈앞에 있는 문제들이 닥칠 때 딱히 도움이 됐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신분석 전문의인 저자가 파킨슨 병에 걸리고 나서 꾸준히 글을 썼다는 것 때문에 읽을 만한 동기가 충분했다. 심지어 2001년에 걸리셨으니까 지금은 20년째 병마와 싸워 오신 것 아닌가. 삶의 조언을 듣고 싶어서라는 느낌의 접근보다는 파킨슨 병에 걸린 의사의 이야기라니. 정말 궁금했다.
초반의 10만 부 특별에디션을 자축하는 저자의 글부터 참 좋았다.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 자신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그것을 고치고 싶어 하는 우리가 건강하다는 말. 책을 펼치자마자 뒷 내용이 더 궁금해졌다. 아마 저자의 글을 꾸준히 읽어왔던 독자들에겐 더욱 특별한 책일 것이다. 실제 자신의 마흔이 넘는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담으셨다고 하니 말이다. 시작부터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 책은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저자의 그날로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파킨슨병을 겪으면서 겪는 솔직한 감정들을 책에 담아낸다. 병을 원망하고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오지도 않은 시간에 대한 걱정.
저자는 불행을 담담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일어서기를 시작한다. 책을 읽을수록 각 에피소드마다 참 적절한 제목들이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겐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라는 부분이 제일 좋았다. 저자는 대학교 입학을 앞둔 언니의 죽음을 겪고 방황한다. 방황하는 저자에게 저자의 사촌오빠가 해준 말이 참 좋았다. 마치 저자뿐만 아니라 지금 방황을 거듭하거나 실패 앞에 좌절한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혜남아, 인생에 최선만 있는 건 아니야. 최선이 안되면 차선이 있고, 차선이 안 되면 차차선도 있는 법이거든. 그래서 끝까지 가 봐야 하는 게 인생이야." 30p
나는 아직까지 이렇다 이룬 것이 없다.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지에는 실패라는 과거만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차선이라는 이정표를 찾았을 때 '삶은 역시 생각대로 안되지만, 막혔을 땐 늘 돌아서라도 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천천히 가더라도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글귀가 2022년의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 이유 역시 사람들은 수없이 꺾이고 방황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이뿐만 아니라, 열등감에 대해, 쉽게 상처받는 자신에 대해, 혼자를 편해하는 내게 저자가 직접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저자가 만난 환자들의 걱정 속에는 내 걱정이 있었고 환자들이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내가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들 같지만, 저자의 에피소드에는 직접 겪은 진정성이 있었다. 내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결핍이 있고 누구나 강박과 비합리적인 습관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한국은 정신적인 결핍에 대하여 관대하지 못한 사회아닌가. 몸이 불편한 것을 이야기 하는것 이상으로 정신적인 결핍을 이야기 할 때 이상한 눈초리를 받게 된다. 나 역시 사회에서 요구하는 건강하고 이상적인 멘탈을 가진 사람에 대한 강박 때문에 더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다.
소제목의 몇 개는 자기 계발서 같은 느낌도 아예 없진 않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을 업으로 하셨던 분 답게
인위적이지도 않고 달콤한 말만 하지도 않는다. 다양한 근거와 저자의 실감 나는 경험 덕분에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베스트셀러에 올라오는 책들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였지만, 그것 역시 대중적인 책에 대한 편견과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 지금의 난 이뤄낸 것도 없고 이루어야 할 것이 많은 시기이다. 지금 시기에도 적절하고 많이 이루는 것이 생길 때 보더라도 좋은 말들이 참 많았다. 생활 습관에 있어서 보수적인 편에다가 변화보다는 안정지향적인 내 삶이었지만 조금씩이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해 봐야겠다. 그래야 값진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니까. '만일 인생을 다시 산다면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살고 싶다'.는 저자의 말을 꼭 기억하면서 말이다.
끝으로, 작가님이 계속해서 잘 버텨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