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신이 아니야 / 듀나 / 창비
★★★
독서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연작소설은 처음 접했다. 우연히 집에 있는 책장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책
'아직은 신이 아니야'였다. SF 배경이라길래 최근에 SF소설은 재밌게 읽은 기억만 있었기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이 2023년이니까 꽤 멀지 않은 미래다. 2026년, 한국에 초능력을 쓸 수 있는 '배터리'들과 배터리의 영향을 받아 염동력, 환상술, 치유술을 쓰는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각각의 챕터는 같은 세계관 속에서 옴니버스처럼 진행된다. 후반부에 가면서 앞에서 뭔가 아쉬웠던 결말의 떡밥들이 회수되는 형식이라 흥미롭게 읽었다. 한국인 이름이 대부분이었지만 챕터마다 새로운 등장인물들이 나오다 보니 이름을 기억하는 데 애를 쓰면서 읽었다.
물건을 움직이고 하늘을 나는 설정, 사람들의 마음을 조정하는 설정은 꽤 익숙했지만 '배터리'라는 설정은 참신했다. 결국엔 배터리들이 없으면 초능력자들은 '애매한' 초능력자일 수밖에 없다. 21세기에 핵폭탄이 5개가 터진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에서 소설의 장소는 한국이다. 인천은 폐허가 됐고 전주에서는 초능력자 부대가 시작을 알리고. 반갑기도 했고 건물과 거리의 묘사 부분은 글에서 사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소설의 초반부는 살짝 불친절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세계관은 어느 정도 느낌이 오는데 어떤 전개가 될 지 예측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평소에 읽었던 소설들은 몇 명의 주인공 서사로 진행되는 소설이라 그랬던 것 같다. 초반 부분의 세계관을 잘 적응해 내니 중간 부분 '나비의 집' 파트부터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욕망에 사로잡힌 권력자와 그를 저지하는 주인공의 구도라 그런 것도 있었고 적당히 '사이다' 전개였기 때문이다. '부적응의 끝' 부분 역시 예측가능한 전개여서 오히려 즐겁게 읽었던 것 같다.
후반부엔 초능력을 가지고 우주로 나간 인류, 그리고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결말 부분은 직접 읽는 게 재밌을 테니 자세하게 얘기하진 않겠지만 내게 이 작품은 도전적이고 엄숙했다. 신과 비슷해져 가는 신 인류들의 등장은 결국 인간이 가진 결핍을 극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환상술사들은 사람들의 정신을 조정해 '증오'를 에너지로 이용하고 인간들은 배터리 능력을 가진 돼지를 발견해 지성을 가진 인류를 만든다. 초능력을 가진 인간들은 지구의 소멸에 아주 착실히 기여했다. 타이탄 편에서 '선택의 기회가 있다면 인간이 아닌 것들을 택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지, 인간의 삶의 의지는 대단하면서도 인간이 전부인줄 알지.
건담의 '뉴타입'이 그랬듯 SF에서 인간의 인간다움을 뛰어넘는 신인류에 대한 열망은 스테디셀러다.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신인류를 찾고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불완전한 인간다움으로써의 회귀를 열망하는 것 역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게도 초능력이 생기면 좋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어떤 초능력을 가장 먼저 얻을지 고민을 하곤 하지만 그때마다 너무 거창한 초능력은 결국 '실험실에 갇히는 결말' or '인간병기로 이용되어 후회하며 자살하는 결말'의 엔딩 선택지 밖에 없어 보인다. 오늘도 역시 '지하철 개찰구에 카드를 찍을 때 지하철이 항상 전역 도착'인 정도의 초능력이면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