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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누 Jun 12. 2023

당신에게도 경우가 있었다면

경우 없는 세계 / 백온유 / 창비 

★★★★


이 책은 가출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른이 된 인수는 가출 소년 이호를 만나서 집으로 들인다. 소설은 현실과 과거회상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10대의 인수는 아버지와의 갈등 끝에 가출청소년이 되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성연을 만나며 집 나온 청소년의 삶을 살아간다. 성연과 인수는 무료급식소에서 '경우'라는 가출 청소년을 만난다. 경우라는 소년의 등장 이후로 서사는 더욱 흥미로워지는데 가출청소년들의 삶이 너무나도 핍진해서 마음이 많이 아픈 소설이었다.


대부분 청소년의 가출은 가족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청소년들에게 안정적인 공간이 되어야 할 집이 폭력에 방치되어 견디기 힘든 곳이 될 때, 그들은 거리로 나선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편이었던 주인공이 물질적인 빈곤에 노출되는 것을 마다하고 집을 나섰던 이유는 가족과의 관계가 그 이상으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 역시 하루, 이틀 가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거리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생존하려 했으며, 법의 사각지대에서 어른들에게 노동착취를 당하거나, 조건만남과 같은 불법적인 일로 살아남는다.


저자가 가출청소년들의 삶을 보여주는 묘사들은 흡사 옆에서 보고 기록한 것처럼 실감 났는데 10대에 평범하게 학교를 다녔던 나로서는 쉽게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들이었다. 이 소설이 단순히 가출청소년들의 핍진한 삶만 다루다가 끝났다면 인상 깊은 소설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경우의 존재였다. 경우의 등장부터 소설의 마지막장을 읽어 나갈 때까지도 '경우'는 현실적인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또한 내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경우는 가출청소년들의 공동체에서 나름의 규칙과 질서를 만들어 그들의 삶을 안정화하려는 인물이다. 환대와 돌봄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내가 가진 편견 속의 가출청소년들과는 너무나 다른 인물이었다. 경우 역시 보육원에서 자라고 엄마와 살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10대임에도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우'와 같은 사람을 찾는 청소년들이 있지 않을까. 오늘 낮엔 강남역에서 투신한 10대의 뉴스기사를 봤다. 저녁에 집에 오니 중학생이 투신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경우가 있던 소설 속 이상으로 한국의 현실은 더 냉혹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에게,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이해받고 싶은 청소년들에게 쉽게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건네지 못하는 공동체가 되어 버린 것을 부정하지 않으며 20대를 지나온 것 같다. 성인이 되고 나서 뉴스에서 사회문제로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10대들의 사건들을 냉소와 회피로 일관해왔다. 어른이 되니 그들의 문제는 그저 철없는 한순간이라고 생각했던 부끄러운 과거다.


다 읽고 나서 제목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라는 울분의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했다. 경우와의 기억을 가진 '나'는 결국 어른이 된 지금 '경우 없는 세계'를 살아가야 한다. 경우는 '나'를 환대했고 신뢰했다. 가출청소년들의 공간을 지키려고 애썼고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도 '나'에게 손을 뻗은 존재다. 비현실적인 인물일지라도 경우가 '나'에게 전한 메시지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떠오른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돌봄과 환대의 공동체는 어디서부터 누가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나쁜 어른들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을 거두는 것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시작해 봐도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202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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