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김용균들/권미정, 림보, 희음/ 오월의 봄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해
이 책은 김용군이라는 청년 노동자가 사고로 죽고 나서 삶이 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석탄화력발전소 산재 생존자 이인구 씨, 유가족 김미숙 씨, 발전 비정규직 동료 이태성 씨의 삶은 사고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김용균 씨의 주검을 발견한 이인구 씨는 사고 이후 트라우마와 맞서 싸우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는 슬픔과 분노로 일상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싸운다. 그리고 이태성 씨는 계속되는 일터의 죽음을 막기 위해 싸운다. 그날 이후 모두가 싸우지 않고는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사람들이 됐다.
책은 석탄화력발전소의 현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 사고 이후 사건을 덮기에만 열을 올리는 사측 등 분노와 한숨 없이는 읽을 수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차라리 소설 속 내용이라면 좋으련만, 현실로 일어났고 일어난 지는 벌써 5년이 다되어간다. 특히, 재판과정이 묘사된 부분에서 정말 화와 슬픔, 안타까움 등의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빠르게 돌아가는 컨베이어 개구부에 몸을 집어넣어야 했을 때의 김용균 씨가 떠올라서다.
"용균이 동료들이 증인을 섰는데, 증인들 거의 다가 '우리는 들어가기 싫었다. 위험한데 누가 들어가고 싶냐.
근데 일의 구조상 들어가서 안 할 수가 없는 구조다.' 다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105P
"구조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원래 다 이렇게 해왔어."라는 말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을까. 그리고 이 순간에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것들조차 지키지 않는 작업장들은 계속 돌아가고 있다. 하루의 5.7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얻은 병이나, 일터에서 겪은 사고로 죽는다고 한다. 나 역시, 물류창고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로 일 했을 때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높게 쌓은 물류 탑 위에 올라갔던 적이 있었다. 발 디딜 공간이 별로 없는 지게차의 포크 부분에 올라타면 지게차 운전수가 포크를 들어 사람을 올려다 주는 방식이었고 안전한 방식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올라타도 되는 건가? 떨어지면 최소 골절 이상인데?' 라며 의구심을 가지며 머뭇거렸던 내게, 김 과장의 '원래 다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말은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책임한 말이었다. 지게차 포크 위에서 별 탈없이 내려왔을 때,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수고했다던 그 사람의 얼굴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2022년엔 SPC 노동자 A 씨가 제빵공장 소스 배합기에 끼어 사망했다. 김용균 씨의 죽음 이전에도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다. 김용균 씨와 A 씨 모두 20대 초반이었고 2인 1조의 작업원칙이 있었음에도 혼자서 일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기계엔 사고를 방지하는 안전장치가 없었다. 분명 다른 해에 일어난 일인데도 너무나 비슷하다. 회사의 대응 방식 역시 굉장히 치졸한 점도 비슷했다. 구조적으로 막을 수 있었음에도 막지 못했던 사고들을 접할 때마다 분노보다는 무력감이 더 많이 느껴지기도 했던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김용균 재단의 활동처럼 산안법 통과, 중대재해처벌법 통과와 같은 일들이 점진적으로나마 사업장의 모습들을 바꾸어 가는 것은 안전한 일터를 위한 작은 희망의 불씨가 아닐까. 이런 움직임들에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연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하다 다치는 것만큼 서럽고, 일하다 죽는 것만큼 안타까운 것은 없다. 이 책엔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생명 <이윤 논리 등 한국 사회가 가진 노동환경의 병폐가 집약되어 있다. '노동'이라는 무거우면서 평생 마주해야 하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고민하게 된다. 20대에 내가 할 '노동'을 찾느라 다른 사람들의 '노동'엔 관심조차 가지지 못한 나날들이 더 많았던 걸 보면 지금도 싸워나가는 '김용균들'의 목소리를 듣고 전하는 것부터라도 해야 할 것만 같다. 노동자들의 죽음이 애도를 표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원래 그런 것, 그냥 그런 것'이 당연해지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진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