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함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문화
언젠가 온라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명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눈치문화 때문이라는 설명을 한 포스팅을 읽은 적이 있다. '눈치', 영어로 번역을 해보려 해도 잘 번역이 되지 않아 영어로도 "nunchi"라고 쓰이는 한국어 단어들 중 하나이다. 지리적으로 봤을 때도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일본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껴서 늘 수난을 겪어왔고 그 강대국들의 비위를 맞추랴, 나름대로 약소국이지만 발전시키랴 고생을 많이 했다. 눈치의 문화가 역사적으로도 길다는 의미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문화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집단주의" 정신은 개인적인 특수성보다는 다 함께 조화롭게 사는 것을 더 아름답게 여긴다. 이 집단주의, 즉 공동체주의 사회에선 독자적인 자아(individual self)보다는 관계 속에서 현실 되는 자아(relational self)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집단속에서 무난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선 남들,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기분을 살피고 표정만 봐도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즉, 눈치를 발달시키게 된다.
눈치의 가속화는 현대 사회에서도 계속된다.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엄청난 속도의 발전으로 인해, 이제는 나름대로 선진국의 틀 안에 끼는 축이 되었다. 엄청난 경제 발달의 결과로 평균 소득은 높아지는데, 물가도 같이 높아진다. 게다가 좁은 땅에 인구는 계속 늘어난다. 한마디로 지천에 나 자신을 비교할 대상들이 깔려있는 부대끼며 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이의 결과 중의 하나로써 한국에서는 유난히 명품, 좋은 차, 그리고 그것들의 유행에도 사람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 비슷비슷하게 사는 형편에 옷이라도 좋은 옷 입는 티를 팍팍 내어서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고 싶은 것 같다. 전 세계가 경제 불황에 시달리면서 해외 명품 시장은 겨우 시장점유를 유지하거나 고작 5% 내외의 성장에 머무른 반면에 한국 명품 시장은 20%의 성장률을 자랑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에도 이 명품에 대한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은 채 그 전년도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해외여행 등 바깥 활동이 불가해지면서 생긴 보복 소비라고 보인다고 한다.
명품 주 소비층은 흔히 말하는 MZ세대, 즉 20~30대 젊은 층으로 이들이 영혼을 끌어모아서 ('영끌'이라고 한다) 모을 수 있는 돈을 모두 끌어모은 뒤 일회적인 소비를 하는 '과시'로부터 단기간적인 행복을 찾는다. 아무래도 살기 팍팍해서 그런 거 아니겠냐만은, 취업난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외제차를 할부로 미리 당겨 빚을 내거나 리즈(lease)로 빌려 타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카푸어(car poor)족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물론 내가 형편이 되어서 소비를 한다면 누가 말리겠냐만은, 이건 선후관계가 잘못 성립되었다는 거다.
솔직히 말하면 나부터도 한국에 살 때만 해도 이 남들의 잣대,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맞춰 사는 삶에 급급했었다. 벌써 고등학교 시절부터도 노스페이스니 케이 투니 블랙야크니, 지금 돌이켜보면 후덜덜한 가격의 겨울 패딩들을 턱턱 입고 다니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도 어떻게든 뱁새가 두루미 좇는 것처럼 따라 해 보려고 엄마 아빠의 등골을 휘게 했었던 기억이 있다. 메는 가방, 신는 신발 모두 브랜드여야만 했고 심지어 쓰는 펜마저도 고가의 일본산을 사 가면서 내 가치를 입증하려고 허우덕댔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 돈들이 너무너무 아깝다. 차라리 그 돈을 모아서 주식을 사서 투자했더라면!
내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또 다른 한 가지는 한국인들의 전체적인 과소비 경향이다. 유행에 너무 민감해서 그냥 옷 한 벌도 한철만 입고 버리거나 핸드폰도 고장의 여부와 관계없이 새 모델이 나오면 그냥 바꿔버린다. 환경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면 정말 너무 유해해서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한 철만 쓰이고 버려지는 물건들이 모두 재활용되면 좋겠지만, 그걸 달성하기까지는 아직 우리는 먼 길을 가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유행에 너무너무 민감해서 반려동물들 마저도 유행을 탄다. 한 번의 유행을 지내고 나면 그 특정 종의 강아지나 고양이들이 대부분 유기된 상태로 발견된다고 하니, 유행이 도대체 뭐길래, 싶다.)
외제차, 명품 가방 등 브랜드에 열광하는 아시아 문화권과는 달리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중국 문화권도 참 명품 좋아라 한다.) 유럽권에서는 이 명품을 과시하는 문화를 더 이상은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내놓으라 하는 대부분의 명품들이 유럽에서 탄생한 것을 감안하면 조금 아이러니한데,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간단히 말해서, 돈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전을 하고 다니다 보면 신형 자동차를 보기가 힘들고 회사 고위층 간부들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들만 봐도 10년이 훌쩍 넘은 자동차들이다. 언젠가 한 번은 왜 더 좋은 차를 사서 타고 다니지 않냐고 묻는 내게 오히려 "멀쩡히 잘 굴러가는 차를 놔두고, 왜 굳이?"라는 식의 반응을 받은 적이 있었다.
반면에 이번 연도 10월에 방문한 한국에서는 사방팔방에 보이는 전기자동차니 외제차니, 도대체 이 좁은 땅덩어리에 이 많은 자동차들이 다 들어갈 수 있긴 한 건지 (주차난으로 인한 갓길 주차에 골목 운전이 거의 불가능한 지경인데 자꾸 자동차의 대수는 늘어기만 하는 것 같다), 아니면 이 신형 전기 자동차들을 충전할만한 인프라는 갖춰져 있긴 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 본가는 그다지 부촌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하주차장에 테슬라, 벤츠, 아우디 등등의 고가 외제차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랐었다. 네덜란드에서는 정말 잘 사는 사업가가 아니면 이런 완전 최신형 자동차를 타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타본 가장 좋은 차는 (나는 차알못인 것을 감안해주길 바라며) 우리 사장님이 타고 다니는 대형 SUV, 디스커버리 랜드로버이다. 람보르기니니 페라리니 옆나라 이탈리아 출신인 슈퍼카들도 여기 유럽보다 오히려 한국에서 훨씬 더 많이 봤다. 물론, 현대나 기아자동차가 우리나라에서 국산차로 여겨지듯이 이곳에선 아우디나 벤츠가 국산차로 여겨지긴 하지만 요지는 이렇게 짧은 주기로 자동차를 바꾸는 일은 없다는 거다.
또 다른 예시로는 명품백이 있다. 한국에 갔을 때 정말 놀랐다. 내 나이 또래의 여성들이라면 너도 나도 구찌니 프라다니 샤넬이니 뭐니 하는 디자이너 백을 하나쯤은 갖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네덜란드에서 명품 로고가 크게 박힌 브랜드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이 현상에 대해 네덜란드 친구들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었는데, 결론은 이곳에선 오히려 대놓고 들고 다니면 뭔가를 증명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히려 상류층을 모방하기 위한 평민들의 발악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네덜란드인들은 한 물건을 사면 오래 쓰는 게 더 아름다워 보인다고 여기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네덜란드인들은 안 그래도 "짠돌이"의 이미지가 강한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밥값을 나눠 낼 때 쓰이는 "더치페이 (Dutch Pay)"의 용어만 봐도 여기서 "더치"가 "네덜란드의"라는 의미이니 이해가 가기 쉬울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는 한 물건을 사도 좋은 가격으로, 그리고 되도록이면 오래오래 고쳐서 쓰는 것을 보고 자랐으니 이러한 명품 유행을 이해하기가 힘든 게 당연하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작은 동네여도 꼭 하나씩은 좋게 말해 vintage shop, 쉬운 말로는 중고 물건을 쌓아두고 파는 가게들이 있는 것 같다. 나도 이곳에서 살면서 이 중고 아이템을 보물찾기 하는 것의 맛을 알게 되어서 웬만한 것들은 모두 중고로 사기 시작했다.
물론 좋은 음식 혹은 좋은 물건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이지만, 한국의 미디어에서의 지속적인 압박으로 인해 자신의 가치와 명품의 가치를 일치화 시키려는 현상이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5년 전에 지하상가에서 산 보세 가방과 빈티지샵에서 산 스웨터를 삼 년째 입고 있는 내가 부끄럽게 여겨질 수도 있는 환경에 노출된다는 건 생각보다 더 끔찍했다.
우리도 과연 이런 과소비와 과시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탈피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게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그리고 지구에게도 더 득이 될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쓴 제 글이 어딘가에 소개가 된건지 조회수가 거의 8만을 기록하며 개인적으로는 놀라운 반응이 보였네요. 아무리 가볍게 쓰여졌더라도 읽으시는 누군가에게는 기분이 상할수도 있었다는 포스팅이었다는 점, 알게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사는 성격인 제가 아직 서툰 글솜씨로 어떻게 써본게 이렇게 되었나봐요. 그래도 애교 아닌 애교로 봐주시길 바라며 시간 내어 읽어 주신 것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