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도 아닌, 불법도 아닌, 하지만 합법 같은 너
대. 마. 초.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하고 나를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만 같은 엄청난 마약...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마약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민감하고 안 좋게 바라보기 때문에 나 또한 자라면서 마약은 절대 절대 손에도 대지 말고 마약을 사용하는 사람들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성장한 것 같다.
내 기억에 2000년대 초반 모 연예인이 대마초를 사용하면서 엄청난 이슈가 되고 사회적으로 매장이 되었었다. 최근에도 어떤 래퍼가 대마초를 사용한 혐의로 입건이 되기도 했었던 것 같다. 해당 래퍼가 "음주운전은 되지만 대마초 사용은 문제가 되는 나라"라며 한국의 시스템을 비판했다. 이런 와중에 한국 밖에서는 조금씩 조금씩 대마초를 (의료적 의도에 한해서) 합법화하는 움직임이 점점 커지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이 이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을 거다.
마약은 마약이라던데, 왜 미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 같은 선진국들에서 이를 합법화한다는 거지? 이거 진짜 나쁜 거 맞아? 담배가 더 몸에 나쁘다는데, 이거 진짜야?
그러던 내가 대마초를 처음 보게 된 건 호주에서였다. 그나저나, 계속 강조하겠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손에 댄 적도 없다.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리 합법인 곳에서 복용을 해도 속인주의로 인해 불법으로 간주된다!!!! 주의주의 또 주의!!
공식적으로는 호주에서도 대마초가 불법이다. 아니, 적어도 내가 호주에 지냈을 당시에는 불법이었다. 호주에서는 2016년 의료적 용도의 대마초를 합법화하고, 2019년 9월 부분적으로 대마초를 합법시키면서 그때 이야기는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당시 불법이었음에도 암암리에 만연하게 대마초를 많이들 폈던 것 같다. 당시 함께 살던 룸메이트 중 한 명이 네덜란드인이었고, 다른 두 명의 이탈리아인들도 퇴근 후 대마초를 피우며 정원에서 휴식을 취하던 것을 종종 본 적이 있다. 내가 상상했던 마약중독자들의 모습 - 즉, 머리나 이빨이 다 빠지고 삐쩍 말라가며 피부엔 두드러기가 나거나..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 이 아닌 오히려 더 웃고 릴랙스 되는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 사실 두려움이 더 큰 채로 나는 그냥 멀찍이 앉아서 "그거 피우면 기분이 어때?" 라거나 "불법인데 붙잡히면 어떻게 될까 무섭지 않아?"라고 묻곤 했다. 그런 나의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며 나를 순진무구한, 아무것도 모르는 착한 소녀로 다루던 친구들과는 아직도 랜선으로라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배웠던 대로라면 내 친구들은 늘 헤롱헤롱 해야 할 텐데, 몇 시간 좀 더 게을러지고 눈이 빨개질 뿐이지 대화를 할 수도 있었고 어느 때에는 더 활동적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내가 잘못 생각했나, 싶어서 인터넷을 켜고 열심히 검색해봤다. 온라인상에서도 첨예하게 두 입장이 나뉜 채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반대하는 입장의 문화, 사회 출신인 나는 찬성하는 입장 쪽의 의견이 궁금했다. 찬성의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1. 질병들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통제로 작용한다.
이는 울렁증, 근육통, 입맛 상실, 만성 통증에 효과가 있다는 수많은 연구로 확인되었다. 의학적 용도의 대마초 처방 합법의 역사는 이제 꽤 길다. 실제로 현재 미국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를 최초로 전체 52개의 주 중 29개의 주가 의료용 대마를 허용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서는 진통제 처방 시 마약성분 진통제인 오피오이드(opioids) 남용으로 큰 사회적 문제점이 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복용자들이 마약중독의 길로 빠진다. 즉, 마약성 진통제를 대신할 수 있는 좋은 대체 제이다.
2. 대마초는 중독성이 없다.
그래프를 보면 대마초 (Cannabis)가 실제로 알코올이나 심지어 담배보다 더 의존성이 낮다는 연구결과를 보여준다. 그래프를 보고 좀 충격받았다. 알코올이 심지어 헤로인보다 의존성이 높다니.
3. 천연성분이다. 대마초가 발암물질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도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대마초에 불을 붙여 피우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생기는 것이지 그 자체에는 발암물질이 없다. 식품, 오일, 훈증기 등으로 발암 성분을 피하고 효과를 볼 수도 있다.
4. '취하는' 부분이 우려된다면, 대마의 화합물질을 추출해내서 그 부분만을 제거할 수도 있다. (오일형태가 이에 해당한다)
5. 대마초가 마약 입문용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 건 불법적으로 구매하는 과정에서 판매자들이 다른 약품들을 끼워 팔기 때문이다. 합법화로 인해 이를 방지할 수 있다.
6. 합법화로 인해 세금을 매길 수 있게 된다면 국가 경제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7. 어차피 수요는 계속 있을 터이니 합법화를 해버려서 차라리 규제를 하자 (이는 매춘 합법화에서 설명했것과 비슷한 논지)
조사를 해보고 나니 나도 오해를 많이 하고 있었구나, 놀랐다.
내가 살고 있는 네덜란드는 마약과의 오랜 전쟁 끝에 1976년 아편 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출처: 대마초 합법화 논쟁: 미국과 네덜란드 사례의 비교분석, Debates toward Marijuana Legalization - A Comparative Analysis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Netherlands, 박진실)
그 배경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대마초의 비형벌화 같은 이슈에 대한 정책의 과학화
2. 마약통제에 대한 보정적 효과의 최소화
3. 마약 사용의 결과로 나타나는 피해 최소화
4. 마약 사용의 현실적 문제를 받아들이고 마약중독자도 '격리'가 아닌 '공생'할 수 있는 신념으로의 정상화
5. 마약 생산과 밀매는 형사 처벌하되 소프트 드러그(대마초)는 개인 소지 30g까지 허용하는 비형벌화, 즉, 대마초에 대한 비범죄화
이는 정책적으로 소프트 드러그(accpetable risk,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으로 중독성이 낮다고 여겨지는 마약류 - 대마초가 여기에 해당. 30g 가지는 사용과 소비는 가능)는 허용하되 하드 드러그(unacceptable risk, 받아들일 수 없는 위험으로 코카인, 암페타민, 헤로인 같은 중독성이 강한 아주 질 나쁜 마약류)는 금지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마약에 관대(?)한 나라로 거듭나게 된다.
1980년대 대마초를 더 정상적이고 규제가 된 방법으로 판매함으로써 개인의 소비를 어느 정도 보호 관찰하자는 의미로 대마초를 파는 커피숍 (koffieshop)들이 등장했다. 그 전에는 그냥 길거리에서 샀으니 그 안에 사실은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는데, 파는 상점이 생기면서 소비자들은 그 권리를 보호받게 된다. 개인의 대마초 소지, 소비에 대한 비범죄화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
이 커피숍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급증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다양한 규제를 거듭하며 변화하게 된다. 1990년대에는 그 가이드라인이 더 엄격해져 미성년자에게 판매 금지, 알코올이 함유된 음료 판매 금지, 5g 이상 판매 금지, 공급받을 수 있는 양은 최대 500g으로 강화된 규제를 갖게 된다. 이는 현재도 비슷하게 지속 중이다.
그러니까 결국엔,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엄청 가늘고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매해 마약관광(?)을 하러 몰려오는 암스테르담에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2010년에 들어서는 계속해서 늘어만 가는 마약관광을 단속시키기 위해 국경에 인접한 도시들에서는 외국인에게 대마초 판매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그 긴 역사 탓에 이 단속이 말처럼 쉽지가 않고, 관광객들로 인해 큰 수익을 얻고 있는 암스테르담 같은 경우는 시장의 권한으로 외국인이나 미성년자에 대한 단속이 눈 가리고 아웅 수준이다.
길거리를 걸으며 커피숍을 수없이도 지나치고 길거리는 물론 가끔 갖는 술자리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대마초를 피우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네덜란드에서 나는 아직도 적응 중이다.
머리로는 대마초가 그렇게 정말 악마 같은 존재가 아닌 걸 알게 되었지만 볼 때마다 마치 사고 현장을 보기라도 한 듯 가슴이 두근대기도 한다. 혹시나 경찰이 들이닥쳐서 한국인인 내게 여기서 뭘 하고 있냐고 다그치면 어쩌지, 라는 이상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읽게 된 논문들에서 한국에도 해악 감소를 위해 대마초 합법화를 추진하는 활동가들이나 학자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게 될지 호기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