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멀고 먼 길
나는 절대로 아이 안 낳고 살 거야.
몇 년 전, 아니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를 낳지 않고 사는 딩크족이 되리라고 선언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내 믿음에 대한 이유들은 거창하진 않아도 확고했고, 나는 이들을 열렬히 믿고 살아왔다.
첫 번째, 나는 내 몸 망가지는 게 싫다.
두 번째, 나는 경력 단절 등으로 내 인생을 희생시키며 10여 년간 다른 인생과 삶을 서포트하며 살고 싶지 않다.
세 번째, 환경문제다 뭐다 세상이 망해가면 망해가지 더 이상 좋아지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 왜 굳이 미래 세대를 낳아서 이 짐을 짊어지게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네 번째, 무엇보다도 난 한 생명을 책임질만한 배짱이 없다. 즉, 무섭다.
이러한 개인적인 이유들로 아무리 선언을 하고 선포를 해도 돌아오는 반응들은 대부분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이런 말 하는 애들이 오히려 더 빨리 출산하더라."
"네가 한번 낳아봐, 세상에 그런 기쁨이 없어."
라는 식이였다. 그때마다 씩씩거리며 내가 내 몸, 삶에 대해 결정한다는데 왜 이렇게 어디에 숟가락 놓으라 젓가락 놓으라 훈계하는 사람이 많은 건지, 짜증만 났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주변인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이유들로 나와 함께 딩크의 길을 영원히 함께 할 것만 같았던 지인들도 이제는 아기들의 사진을 간간히 올리는 행복한 엄마, 아빠가 되었다. 내가 아직 어려서 그렇다던 사람들의 말이 정녕 맞다는 말인가?
가장 큰 변화점은 바로 이곳에서 사귀게 된 친구들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운이 좋은 나는 20대 초반부터 3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과 친구가 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중에서 결혼을 하지 않고 남자 친구와 7년째 동거만 하며 살고 있던 핀란드 출신 지인 A양은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에 자기 분야에 대한 개발과 투자에 열심인 내가 너무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임신소식을 알렸다. 눈이 동그래져 축하한단 말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자연스럽게 전하지,라고 2초 정도 망설이던 내게 불쑥 환하게 웃으며 "맞다, 너는 임신하고 싶지 않다고 했었지? 나도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 근데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 엄청 행복해. 이제 준비가 되었던 것 같아."라고 말한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오버를 떨며 축하인사를 건넸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원치 않는다고 해서 남들도 원치 않을 거라는 위험하고도 이상한 마인드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수개월 후, 그녀는 정말로 출산을 했다. 정말로,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녀의 임신과 출산이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1년이 지난 후에도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정말 정말,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복직도 했으며 여전히 자신을 위한 개발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녀의 행보를 서포트해주는 아기 아빠와 집에 돌아가면 반겨주는 아기를 보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원동력을 얻는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임신, 출산을 하며 자신의 커리어에서 경력단절이 되며 낙오 아닌 낙오되는 여성들에 대한 기사와 다큐멘터리를 보여줬을 때 엄청난 분개를 표했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은 이유가 이런 사회적인 이유라는 게 그녀의 생각엔 부당하다는 거였다. 한 번도 그런 쪽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정말 그런 건가?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이라고 여겼던 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일화를 다른 여성 친구들에게 들려줬다. 한 명은 깔깔 웃으며 나다운 반응이었지만 나름 부드럽게 잘 넘겼다며 웃어댔고, 다른 한 명은 정말 좋은 점을 A양이 지적한 데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래서 우린 둘러앉아 이에 대한 길고 긴 토론을 했다. 내가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의 정말 그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이유를 탐색하고자 하는 게 목적이었다. 한번, 두 번째 물어봤을 땐 자신 만만하게 대답하던 내가 다섯, 여섯 번째 물어볼 때가 되니 정말 그런가? 싶다가 나를 닮은 아이를 낳는다는 게 궁금해지는 지경이 되었다. 다시 한번 유럽의 토론 문화가 내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 경우였다. 이 길고 긴 밤, 이 이유에 대한 설명 혹은 이론에 관해 우리는 몇 가지의 결론에 도달했다. - 이 결론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내게 출산을 한 엄마들의 이미지는 미디어에서만 보이던 푸석푸석한 머리에 후줄근한 옷, 수면 부족으로 지쳐 보이고 언제나 도망치고 싶어 하는 모습. 이에 더해져서 어쩌면 이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을 부정적인 것 마냥 노출해왔던 티브이 프로그램, 드라마, 영화들과 토크쇼에서 나와서 "아내가 무섭다", "결혼은 자살이다"라는 식의 농담을 따먹던 셀러브리티들의 기여로 단단히 빚어진 상황이었다. 티브이를 틀면 출산 몇 주 만에 완벽한 몸매로 복귀한 스타들에게 찬사가 쏟아진다. 그 비법이 유행을 타며 너도 나도 출산 후 몸조리도 전에 다이어트에 뛰어든다. 독박 육아다 경력단절이다, 같은 여성들마저도 결혼, 출산은 최대한 늦추라고 한다.
그랬던 내게 사실상 출산, 그리고 그 행복감으로 빛(glow)이 나는 사람을 직접 두 눈으로, 그것도 장기적으로 보게 되니, 나 정말 알게 모르게 세뇌당했던 건 아닐까,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경이로운 기적, 이런 게 정말 있긴 한 것 같기도 싶고. 심지어 A양은 내게 그 부른 배를 만져보게도 해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사람의 몸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산다니. 출산 후에도 수면 교육에 성공한 그녀는 수면부족에 시달리지도 않았고, 출산 전과 똑같은 사람으로 복귀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은 건 너무 소중하지만 아기를 낳은 자체가 그녀를 규정할 순 없다고 했다. 그녀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 여전히 A양이었다.
물론 미혼인데다가 아이도 낳아보지 않은 내가 왈가왈부할만한 깜냥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녀의 출산으로부터 단 한가지 배운 것은 임신, 출산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진 않는다는거다. 그리고 더 중요한건,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파트너의 역할이 엄청나게 중요하다.
아직도 육아예능버라이어티 쇼에서는 등장하는 아빠들이 기저귀를 갈거나 잘 재우거나, 잘 먹이고 잘 놀아준다는것에 감탄하며 얼마나 상냥하고 좋은 아빠인지를 추켜세워주기 바쁘다. 단 한번도 엄마가 아기를 잘 재우고 잘 먹여서 칭찬받고 '스윗맘'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보지 못했다. 어쩌면 당연한 아빠의 역할을 우리는 엄청난 업적인것마냥 모델화시킨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 모든 일들은 엄마들이 24시간 내내 하며 아빠들 또한 마지않고 해야만 한다. 임신도 육아도 혼자하는 일이 아니다.
이혼가정에서 성장한 내가 한 생명과 인생을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는 내가 9살이 되던 해, 언니와 나를 아빠에게 두고 떠났다. 떠났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라도 정말 그것밖에는 쓸 말이 없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그녀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어떠한 설명도, 이유도 없이 나는 그렇게 하루아침에 엄마 없는 아이가 되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알고 보니, 아빠에게마저도 말없이 정말 도망가버린 그녀는 그로부터 1년이나 지난 후에야 이혼의 절차를 적절히 밟게 된다.
보통 '모성애'는 '무조건적인 궁극적인 사랑의 형태 (unconditional, ultimate)'로 묘사가 되곤 한다. 나는 이를 경험하지 못하며 성장했다. 즉, 보고 배울 모델이 없었다. 심지어는 그에 더해져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모성애마저도 저버리고 떠난 여자의 딸'인 나는 그런 강력한 모성애를 선천적으로 갖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까지 내리게 되었다. 아기들을 봐도 시끄럽고 귀찮다, 라는 감정에 죄책감이 들어도 나는 '엄마 없이 자란' 사람이니까 당연한 거겠거니, 싶기도 했다.
나는 그래서 늘 엄마가 싫었다. 미웠고, 이해할 수 없었으며 원망스럽기만 했다. 왜 책임도 못 지는 나를 낳아서 이런 삶을 살게 하는지. 사춘기 시절엔 '엄마마저도 원치 않았던 나'로서 어딜 가나 사랑받기 위해,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노력하는 요령까지 터득했다. 결국에 나는 현재까지도 이로 유래된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Abandonment issues)"를 갖고 있다. 이는 심리학적 용어로, 유년시절 부모나 보호자에게 적절한 관심, 애정을 받지 못한 경우 자라서도 이를 두려워해서 타인에게 늘 휘둘리는 삶을 살게 된다는 거다. 주로 남들을 믿지 못하거나, 항상 나보다 남을 먼저 기쁘게 해주려고 하고, 의존적이며 늘 관계에 확인, 확신을 요구한다.
나는 지난해부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단히도 노력해왔다. 심리학자들은 완전한 극복이나 치료는 불가능하지만 이를 다스리고 본인이 이를 알아차리고 그 영향을 최소화하는 게 관건이라고 한다. 아직까지도 과거 엄마의 부재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 이제는 내가 스스로 멈추는 방법밖에 없다. 나는 이제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나를 규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My past cannot define present nor future).
여기까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지금까지 굳건히 믿어왔던 나의 결정이 끝도 없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들이 바로 과거에 생긴 사건의 두려움에서 비롯되었다니. 난 늘 현재를 충실히 산다고 생각했는데. 좀 억울하기도 했다. 그리고 늘 불안정한 연애관계를 가졌던 내가 잔잔한 호수 같은 현재의 파트너를 만나 장기 연애를 하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내가 살기로 결정한 나라인 네덜란드에서는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등 사회문제가 좀 적은 편이기도 하다 (아예 없는건 아니다). 네덜란드에서는 법적으로 16주, 즉 4개월 동안의 육아휴직(maternity leave -zwangerschapsverlof)이 보장되어있다. 언제부터 휴직을 낼지는 본인의 선택이지만, 반드시 임신 36주 차 전에는 휴가를 써야만 한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최소 12주간의 휴직이 보장이 된다. 이 모든 휴직 기간 동안, 급여는 100% 지급되어야만 하며 이는 최대 하루 223.40유로에 해당한다.
엄마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돌아가면 4개월 아기를 맡길 데가 없어서 허둥지둥할 필요도 없다. 아빠도 좀 더 짧긴 하지만 아빠로서의 육아휴직 (paternity leave - vaderschapsverlof)이 따로 보장된다. 첫 번째 주는 100% 급여를 받고, 그다음 최대 5주간 최소 70%의 급여를 받는 휴직이 주어진다. 고용자에 따라 이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닌 부모 두 명 모두에게 적용되는 육아휴직(ouderschapsvoerlof)이 또 따로 있다. 부모 모두가 각자 주당 근무시간에서 26을 곱한 수만큼 휴가날짜를 적립(?)할 수 있는 제도인데, 만약 내가 주 40시간을 근무한다면 40*26=1040시간=약 130일, 아이 아빠도 비슷한 시간을 일한다면 총 260일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제도이다. 급여 의무는 없지만 신청할 시에는 직장에서 반드시 이를 허용해줘야 한다. 이는 아이가 8살이 될 때까지 계속 적용이 되어서 한 번에 다 쓸 수도 있고 나누어서 쓸 수도 있다. 가장 흔하게는 하루에 이틀씩을 엄마, 아빠의 날로 정해서 부모 중 한 명이 집에 남아서 아이를 케어할 수 있게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제도를 그 누구도 눈치를 보지 않고 누리고,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육아휴직을 쓰지 않으면 오랫동안 힘써서 싸워온 여성을 위한 권리를 침해한다고 여기기에 (특히 여성의 경우에 그렇다. 남성의 경우에는 아직 그 제도가 비교적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경우가 다르다.) 임신을 한다고 해서 내 일자리가 없어진다거나 하는 일은 현저히 더 적다. 오히려 육아휴직을 적용하지 않은 기업들은 불법적인 고용정책으로 벌금을 물게 된다.
포스팅을 작성하며 한국에서도 육아휴직에 대한 중요성이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행이다. 하지만 사람인에 따르면 대기업들을 제외한 중소기업에서는 육아휴직 제도가 잘 적용되지 않고 있다. 비율로 따지자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육아휴직 제도를 적용하고 있음에도 사용시 불이익을 주는 곳도 있다고 27.2%가 답변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불이익은 '퇴사 권유'가 45%로 가장 많았다. 당연히 이 때문에 사용에 대한 69.8% 직원들에 불편함과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이를 낳고 복직을 하더라도 이 사회가 엄마를 가만 두질 않는다. 워킹맘들의 죄책감과 미안함은 늘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있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온갖 눈총을 받으며 조퇴를 하는 모습, 저절로 떠오르는 그림이다. 첫째 아이를 낳자마자 다시 임신을 하고 출산휴가를 떠나는 동료에게 모두들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고, 고생이 많을 거라며 아기용품이 담긴 바구니를 보내는 네덜란드의 회사에서 근무하는 나는 오늘도 나의 치기 어렸던 딩크족이 되리라, 다짐했던 과거의 나 자신에게 의문을 갖는다.
이에 관련하여 한국과 비교했을 때 가장 다른 점은 바로 남들이 내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다. 아니, 적어도 내 면전에 대고 내 일에 참견하진 않는다. 나는 파트너와 현재 4년 차 동거 중이다. 곧 5년 차에 들어선다. 그 누구도 내 동거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동거하는구나? 그렇구나. 끝. 심플 그 자체이다. 그러다가 아이가 생기면 아이 생겼구나? 축하해. 그걸로도 끝이다. 그래도 결혼 먼저 해야 하지 않겠니, 이 순간 우리 엄마가 하던 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지난 10월 한국에 잠깐 다녀왔다. 만나는 사람마다 화두는 해외에서의 나의 삶이다. 첫 번째 질문은 "남자 친구는 있니?" 두 번째 질문은 "그분은 몇 살이니?"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 들어오는 직업, 학벌, 연봉, 심지어 키까지 묻는 질문들의 행렬에 숨이 막힌다. 아무래도 적응 안 되는 이 면접보다도 더 치열한 질문세례에 대충 웃어 보이며 나는 말끝을 흐린다.
한국에서는 좀 오래 연애를 한 커플들에게 모두 입을 모아 묻는 것이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거다. 결혼을 안 한다니, 확신이 없어서 그래. 그만큼 사랑하지 않아서 그래. 정말 무례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등 떠밀려 결혼을 하고 나면 아이는 언제 갖냐며 재촉한다.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한 살이라도 젊어서 낳아야 고생하지 않는다며 겁을 준다. 그래서 아이를 가지고 나면 둘째까진 낳아야 한다고 참견한다. 경제적으로 지원해 줄 것도 아니면서, 아이 한 명 키우는데 드는 돈이 어마어마하지 않던가? 아이를 갖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들의 속사정도 알지 못하면서도 무궁무진 시나리오를 만들어내서, 본인 마음에 꼭 들어야 하고 본인 머릿속에서 말이 되어야지만 발 뻗고 잘 수 있나 보다.
전 포스팅들에서 좀 엿보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문화가 정말 진저리 나게 싫다. 그래서 아마, 이에 반항하고자 하는 심리에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한 거였는지도 모른다. 누가이기나 갈 때까지 가보자, 라는 심정 아니었을까?
한 티브이 쇼에서 난임, 불임으로 고생하던 젊은 부부에게 아무렇지 않게 "아내가 살이 쪄서"라던지 "~를 먹으면 금방 애가 들어선대"라던지 조언으로 위장한 날카로운 화살을 쏘아대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일화를 얘기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아무래도 해외에 살게 되면서 나의 부정적인 과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조금은 더 수월한 것도 있겠고, 이것 저것 고민해보면서 내가 많이 변하긴 했구나 싶었다. 결국엔 누군가가 했었던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라는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나 보다. 나는 비자발적으로 딩크족을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요즈음 나는 "너는 나중에 아이 갖고 싶어?"라는 질문에 섣불리 대답하지 못한다. 전 같았으면 단번에 "아니"라고 답했을 것을 이제는 "지금은 확답을 못하겠어. 준비된 환경에서 나와 파트너가 확신이 들면 아마도?"라며 상당히 애매모호한 답변을 한다.
어느 주말 커피 한잔 하러 만난 A양의 품에 안겨 단 한 번도 찡얼 소리를 내지 않던 그녀의 눈을 닮은 아기를 바라보며, 그리고 그 눈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그녀를 보며 나는 오늘도 내게 질문한다.
너, 정말 확실해?